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54
300. 배상이라 하지 말고
들어서던 김희성.
태영의 얼굴이 보이자 걸음을 멈추고 노려본다.
“에이씨…….”
그리고 입에서는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말이 나오다가 말았다.
“…….”
인사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저렇게 욕을 하려던 사람에게 인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태영은 웃지도,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김희성은 시선을 태영에게 고정시킨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탁~
김희성이 테이블에 노트를 던지듯 내려놓으면서 제법 소리가 크게 울렸다.
레티어도 공짜로 하나 줬는데, 그게 노트보다 편할 텐데.
“인사도 할 줄 모르고 말이야. 뻣뻣하기 짝이 없어.”
이어서 한마디 하는 말이 저따위다.
정부 부처와 각을 세워서 좋을 것이 없어서 웬만하면 원만하게 가려고 하는데, 자꾸 시비를 걸어온다.
특히, 산업부와는 이상하게 자주 꼬인다.
“왔는가?”
뒤이어 들어온 사람은 국토부 장관 박준하.
들어서면서 먼저 아는 체를 한다.
그나마 누구와는 다르다.
박준하의 뒤에는 한 명이 따라 들어섰다.
“네.”
태영은 아무 표정 없이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공관에 미리 와 있다가 태영이 오기를 기다려서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딸깍~
태영이나 다른 부처 사람들이 들어온 문이 아닌 별도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시게.”
총리가 나오면서 태영에게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총리님.”
총리에게는 그래도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뒤따라 나온 세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지난번에도 만났던, 총리실의 비서관으로 생각되는 이민건 부이사관.
이민건의 얼굴은 굳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들어선 사람도 지난번에 봤던 사람이다.
셋 중에 총리실 소속이 아닌 사람은 한 명.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온 오정미 사무관이다.
비서실장이 오정미를 대신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눈에 익었다.
보안 문제가 있으니, 보안 각서에 서명한 사람들만 회의에 참석했을 것이다.
이제 다 온 듯.
총리실에서 총리 포함하여 세 명.
산업부에서 셋, 국토부 둘, 비서실에서 한 명, 국정원 한 명.
그리고 태영이다.
정부 인원 열 명에 태영 혼자라니.
인원이 많아야 전투력이 높아지는데, 상대가 정부 부처다.
아무리 인원이 많아도 소용없다는 거다.
“도청한 거야?”
산업부 장관을 뒤따라온 사람이 불쑥 물었다.
신준서. 부이사관이 맞을 거다.
앞뒤 맥락 없는 질문이지만, 뜻하는 바는 한 가지.
비밀을 외부인에게 발설했다는 것을 어찌 알았느냐 하는 거다.
“…….”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시선만 주었다.
“자, 집중해 주세요.”
총리실의 이민건 부이사관이 한쪽 팔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회의를 대신 주재할 사람인가?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산업부의 세 사람인데.
“회의에 앞서, 저는 약속에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장난처럼 웃으며 한마디 했다.
약속이 지켜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경고의 의미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태영에게 쏠렸다.
이주현은 웃는다.
류지현도 웃었지만 콧방귀도 한번 뀐다.
“ㅆ…….”
입 밖으로 쌍소리를 뱉어 내려던 사람은 신준서다.
총리가 있으니 대놓고 욕을 못 할 뿐이다.
저놈이 저따위 거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장관 김희성이 시킨 것일까?
아니면 본래 싸가지가 저따위일까?
“오늘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만 짚고 가겠습니다.”
이민건이 총리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고,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최 대표가 서명을 요구한 그 서류에 모두 서명했기에 모든 분들에게 보안 유지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참고로 대통령께서도 지키겠다고 했고, 그와 아울러 다른 약속도 했습니다.”
다른 약속.
건물 하나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크기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몇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표정이 벌레 씹은 것처럼 바뀌었다.
“이건 지극히 비정상적인 질문인데…….”
이민건이 태영의 눈을 보며 말했다.
“만일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요?”
“…….”
대답은 않고, 일부러 멍한 느낌이 나도록 이민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졸다가 깬 사람 눈으로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자 시선을 피한다.
“…….”
이번에는 이민건이 아무 말도 않고 서류를 보는 시늉을 한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라.”
마치 잠꼬대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제법 걸린 대답이지만, 뜻하는 바는 한 가지다.
“문제를 일으킨 쪽이 산업부라고 했으니 마무리를 산업부에서 하는 게 맞지?”
그때 총리가 툭 던지듯 말했다.
너희 쪽에서 새어 나갔으니 책임도 그쪽에서 져라, 그런 뜻이다.
“총리님.”
산업부 장관 김희성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표정이다.
그럼, 국토부는 와 왔을까?
“네, 말씀하세요.”
“우선, 한 서기관이 비밀을 누설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최 대표가 거짓을 말했다는 것입니까?”
여기서부터 회의 주재자는 총리가 되었다.
총리는 저울추가 태영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 뜻이 아니라, 증거가 없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김희성은 억눌린 무언가를 해소하지 못하고 분출하듯 말했다.
짧을 대화를 지켜보면서, 문득 이건 심리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부에서 시작된 일이니 책임을 지라는 것은 태영이 없는 자리에서 논의되어야 맞다.
그런데, 이들은 태영을 앉혀 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 증거를 보이라고 해야겠군요?”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지 않겠습니까?”
“우선 그 전에, 한 서기관.”
“네, 총리님.”
이제 모든 대화는 태영을 참관인 위치로 분리시켰다.
마치 설정된 대사처럼.
이 사람들은 행정 관료이지만, 정치 바닥에서 평생을 굴러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속에서 머리싸움으로 이길 수 있나?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러나 처음부터 포기해 버리면 안 된다.
포기하더라도 무언가를 충분히 받아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외부에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한규철은 장관인 김희성을 한번 본 후에 대답했다.
“가족과 양심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네.”
단호하네.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양심은 없다고 쳐도 가족이 걸려 있는데.
‘위니, 한규철 가족?’
재빨리 손가락으로 물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 유치원 아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중학교 교사로 있고, 부친은 두영 중공업 사외 이사, 모친은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 했습니다.]‘형제는?’
[누이와 남동생이 있습니다. 둘 다 결혼했고, 누이는 5급으로 행안부 재직 중, 누이의 남편은 기재부 부이사관으로 있습니다.]공무원 집안이다.
“가족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가족을 거네, 가족이 소유물인가?”
태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선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규철의 얼굴이 벌게졌다.
“내가 비밀을 유출했다는 증거를 대봐. 그게 아니라면 불법이 개입된 건가? 그렇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 말을 들었는지 태영을 향해 소리친다.
이제 대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불법 증거 수집.
이걸로 걸고넘어질 거라 생각은 했다.
이것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회피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 능력이 없다.
법으로 가면?
우선 그 서명을 유효하다고 볼까?
수사는 할까?
기소가 되기는 할까?
판결이 서명한 대로 나올까?
어떤 판결이 나든 정부와 정부 부처에서 배상을 할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그러는 사이에 장관들은 임기가 다하고, 총리도 임기가 끝난다.
대통령?
당연히 퇴임한 후다.
부질없는 싸움이다.
태영이 짐작하는 것보다 이들은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렇게 끝이 난다는 것을.
위니에게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는 태영도 유추 가능하다.
“토요일에 등산 가지 않았나?”
“……갔습니다.”
“임석재. 아는 사람이지?”
“아…· 네, 등산 멤버입니다.”
총리는 태영에게 들었던 정보를 토대로 질문하고 있고, 한규철은 깜짝 놀란 듯 대답했다.
“조인준도 같은 멤버지?”
“……네.”
“그 이야기를 임석재에게 할 때 조인준이 옆에 있었지?”
“…·그…….”
“있었나, 없었나?”
“…….”
한규철은 대답 대신 김희성을 바라보았다.
“대답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 대답은 정치인의 전형적인 수법인데, 공무원도 쓰는구나.
그런데, 이 시점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 전의 모든 것을 시인하는 것 아닌가?
잡아떼려면 거기서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지.
“김 장관님.”
총리가 김희성을 무거운 음성으로 불렀다.
“네, 총리님.”
“책임지시게.”
“네?”
정보의 유출과 관련한 전달 과정은 서로 입을 맞추지 않는 모양이다.
“뉴스에 나온 그날 최 대표와 통화했더니, 한규철 서기관이 등산 중에 임석재에게 말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조인준이 양원호 기자에게 톡으로 써 보냈다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보여 주게.”
“네.”
총리의 말에 김규원 사무관이 레티어를 켰다.
그리고 화면을 세로로 키운 후에 사진 하나를 올렸다.
“조인준의 폰 캡처.”
총리의 말이 끝나자 스크린의 방향을 돌렸다.
조인준이 자신이 들은 것을 요약해서 보낸 톡 스크린 캡처 화면이다.
한규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세로로 길게 쓰인 장문의 내용에는 ‘멤버 중에 산업부 직원의 말’이라는 부분과 역시 멤버인 ‘임 부장’이 명시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규철의 이름과 임석재의 이름은 없다.
그때, 이민건의 턱짓이 있었고, 김규원이 레티어의 한쪽을 툭 눌렀다.
음성으로 녹음된 내용이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사진을 확인하는 듯.
거기서 음성은 중단되었다.
김규원이 정지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하.”
“…….”
김희성과 신준서의 한숨 소리.
와, 여기서 놀랐다.
태영은 정말 입 밖으로 ‘와’ 할 뻔했다
조인준을 찾아서 톡으로 보낸 내용을 캡처해서 받아 둘 생각을 하다니.
거기다 증언 녹음까지.
조인준을 설득하여 녹음을 받아 내는데, 어느 정도의 협박과 유화 전술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하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심리 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바꾸기로 했다.
“더 증거가 필요한가요?”
“…….”
김희성에게 물었지만, 김희성은 한규철만 노려보고 있다.
“자, 난 갈 테니 산업부에서 해결해요. 회의 끝날 때, 정리된 내용 카피 본은 내게도 한 부 넘겨주고.”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를 빼고 몸을 돌리던 총리가 태영을 바라보았다.
“참, 이 회의실 사용은 앞으로 1시간이오.”
총리의 그 말에 태영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총리를 따라 이민건 부이사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탁~
문이 닫히고 회의실은 정적이 감돌았다.
총리실의 김규원 사무관과 비서실의 오정미 사무관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총리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책임질 곳은 산업부이니 거기서 해결하고, 1시간 줄 테니 그 안에 마무리해라.
그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부는 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오늘 이 자리가 너무 어렵다.
생각 같아서는 나가 버리고 싶다.
오늘, 이 상황의 결론이 어떻게 나건 상관없이 일어서고 싶다.
“최 대표.”
여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국토부 장관이 불렀다.
“네, 장관님.”
“중소기업에 해당하지?”
“중소는 아니고, 소기업이지요.”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낯간지럽기는 하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봉담 인근에 토공이 시행자로 국가 산업 단지 조성 중인 곳이 있네. 부지 크기는 약 650헥타르. 산업 단지 개발 절차 중에 조성 단계에 들어가 있고.”
650헥타르?
어느 정도나 되는 크기인지.
혹시 그걸 보상으로 주려나?
“네.”
“그 부지 절반의 권리를 주지. 그것으로 총리실과 국토부에서 져야 할 책임을 갈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절반이면 325헥타르에 해당한다.
‘위니, 절차에서 조성 단계면 어찌 돼?’
[행정적인 모든 일은 끝나고 공사 착공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아하.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된다.
‘325헥타르면 평수가 어찌 돼?’
[약 98만 평입니다.]백만 평 가까운데, 크네.
그럼 박용재가 협업 조건으로 내건 30만 평은?
땅 부자?
‘평당 단가는?’
[예정가 기준으로 250만 원입니다.]그럼, 대략 2조 5천억이다.
“그냥 주시는 것이 맞죠?”
이건 확인을 해야지.
“배상이라 하지 말고, 중소기업 정책 지원 절차를 밟아 주게.”
공짜라는 대답은 아닌데, 조금 모호하다.
“알겠습니다.”
“토공 측에서 연락이 올 것일세. 나머지는 그쪽과 이야기하면 되네.”
이게 배상을 하겠다는 뜻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 주면 안 되나?
중소기업 정책 지원이라는 것에 뭔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무리 정책 지원 어쩌고 하더라도 금액이 그 정도 되는 것을 처리할 수 있나?
국토부 장관은 고정은 사무관을 통해서 서류 한 장을 전달해 주었다.
대략 제목과 상단의 몇 줄만 읽어 보고 반으로 접었다.
“답을 기다리겠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