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58
304. 메타버스 시작
“응.”
[다음 주에 언제 시간 되냐?]류지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보나 마나 윗사람이 시키는 일로 전화했을 때의 톤이다.
“다음 주에 조금 바빠. 시간 안 돼.”
[그래도 시간을 내 봐. 원장님이 좀 보자고 하신다.]역시, 윗사람이 맞다.
그런데, 원장은 여태 만난 적이 없는데?
그쪽은 정보 요원이 아닌 정치인으로 알고 있다.
언론에 수시로 노출되는 사람이다.
“내가 가야 하는 거냐?”
[아무래도.]“바쁜데.”
[…….]“수요일 오후 3시 이후.”
답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좋다. 세 시 반으로 알고 있겠다. 혼자 와.]누군가와 같이 오면 안 된다는 거다.
“근데, 난 너희 회사 위치를 몰라.”
[……에이, 정말.]일반인이 NIS 위치가 어딘지 아는 것이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러니 알아도 모르는 거지.
[문자로 보내 주마.]“만나서 할 이야기도 같이 써 보내. 내용 없으면 바람이다.”
그렇게 하고 통화를 끝냈다.
“……최 사장이 말해 봐.”
통화가 끝나자 바로 오영배가 말했다.
이 사람은 한곳에 매몰되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생각도 안 나는 것 같다.
조금 전에도 사준이 던진 제안에 답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건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난, 고민할 거리가 없습니다. 그건 회장님이 생각할 문제이지.”
***
[하, 그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오영배의 원망 어린 눈길에서 겨우 벗어나 차에 앉으며, 위니가 녹화해 둔 지종해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지종에게 태영은 ‘그 새끼’가 되어 있었다.
~우우우웅~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는지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동행자도, 운전자도 대답이 없다.
“이거 완전 쌍 또라이잖아?”
계속되는 지종해의 말을 들으며 태영의 입에서 상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만 보자.”
5분 정도 더 보다가 중지시켰다.
“뭔가 모르겠지만, 돈 안 주고, 고분고분 안 하니까 나나 회사에 피해를 줄 계획을 세운다는 거지?”
[그렇습니다.]계획이라는 것이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것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보좌관이 즉각즉각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중간에 나온 말에서 알 수 있었다.
[병원에 한번 가 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바쁘잖아? 알면서 왜 그래?]보좌관 전용석의 질문에 지종해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전용석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입 모양으로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병신같이, 그런 일도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말이야.]“위니, 염기선 USB나 농장 USB 중에 지종해 있어?”
[농장 USB에 영상 파일이 3개 있습니다.]“오, 다행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종해에게는 불행이 맞다.
오늘 자폭을 시켜 보니 그 반응이 기가 막히던데, 앞으로 그쪽을 주로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주용기의 아내, 갔지?”
미동 기획 이야기로 넘어갔다.
화재 사건이 나자마자 사장 주용기와 부사장 김근배는 당일 새벽 항공편으로 해외로 도주했다.
출국과 함께 폰은 꺼졌고, 종적이 사라졌다.
모두가 위니가 확인한 정보이면서 뉴스에서도 동일하게 보도되고 있다.
지금도 그 화재 사건은 수사 중이다.
뉴스에도 계속해서 나온다.
그리고 한결같이 수사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하고 있다.
경찰에서는 도주해서 잠적해 버린 주용기와 김근배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은 한다.
그런데, 참고인이 될 수 있는 중요 인물인 주용기의 아내 정혜정을 출국 금지하지 않았다.
법으로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놓아주는 것인지.
[오늘 오전 런던행 항공기에 탑승했습니다.]“다른 곳에서 만나겠네.”
[최종 기착지는 스웨덴 알란다 국제공항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럼 주용기도 그쪽으로 가겠지, 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합류 지점일 수 있다.
아닐 수도 있고.
[방콕 도착 이후, 행적을 포착하지 못해서 추가 정보가 없습니다.]요즘은 폰이 신분증 역할을 대신하다시피 한다.
특히 해외로 도주한 사람이 폰 끄고, 위조 신분증을 사용했으면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한번이라도 기존에 사용하던 폰을 켜서 통화를 한다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혹시 주용기와 메일로 주고받은 것은 없어?”
[그것까지 확인했지만, 없었습니다.]“고글 메일은?”
[그쪽은 본인 인증이 없기에 확인이 불가능합니다.]진짜 종적이 묘연해졌다.
“정혜정의 폰에 클로즈캣 심었지?”
[네, 인트랙스도 같이 심어져 있어서 추적을 떨쳐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클로즈캣.
그 폰의 주변 반경 2미터 이내의 다른 폰 번호를 자동 전송하는 기능을 말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소멸하지만, 근접 거리에 있는 주변에 있는 폰의 번호를 계속 전송해 준다.
인트랙스는 인태프 기능과 트랙스, 그리고 포인뷰 기능을 통합해서 하나로 합쳤다.
“딸은?”
[아직 세종시에 그대로 있습니다만, 정혜정이 떠나기 전에, 오픈 항공권을 보낼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딸의 행적은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지하의 비밀 공간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정혜정이 떠나기 전에 전화를 한 곳들 중에 김근배의 아내와 남강전설 대표 남강욱이 있습니다.]남강전설에서 주용기와 김근배 집의 지하 비밀 공간 공사를 했다고 했었다.
“그래?”
[김근배의 아내 유수연과 화재 사건 등을 통화하면서, 폰을 바꾸고, 당분간 그 집을 떠나 행적을 감추고 있으라는 말도 했습니다.]태영이 봤을 때는 어설픈 조언이다.
그래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당분간 찾아낼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바뀌는 번호 확인하고, 잠적하면 알려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남강욱에게는?”
[당사자가 행불이라 조사는 곧 종결될 테니, 조용해지면 지하의 금고를 별장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별장?”
[주용기나 김근배의 이름으로 된 별장으로 구분될 수 있는 가옥은 없습니다. 대신 아들 주지훈의 이름으로 임야와 그 임야에 딸린 산속 주택과 농가 주택이 있습니다.]“그건 뭐냐?”
[조부의 유언장에 의하여 조손 상속된 임야로 면적이 2.2평방킬로미터입니다. 그중 대지의 일부에 농가 주택이 있습니다.]“그 정도면 평수로…… 거의 66만 평이네?”
[그렇습니다.]“허.”
땅 부자?
남들은 몇십 평도 없는데, 아무리 임야라고 해도 66만 평이라니.
입이 쩍 벌어진다.
주말 농장 수준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려면 반드시 거기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무조건 거기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럼, 임야는 소유 제한이나 그 비슷한 의무 사항이 없나?
임야이니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럼, 별장이란 것이 산속 주택이나 농가 주택을 말하는 거야?”
[통화에서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으나 산속 주택으로 예상됩니다.]“그 산속 주택 볼 수 있어?”
[사프캣 보내면 4분 후에 확인 가능합니다.]거리가 40킬로미터 전후 정도라는 뜻이다.
“보내 보자. 그나저나 미동 기획, 여기 정말 이상한 곳이네.”
처음에 위치 추적기를 붙였을 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추적기를 붙이면서 조사할수록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껍질 벗기면 또 다른 껍질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 금고 옮기라고 하면서 김근배 집의 금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없었습니다.]당분간 그 집을 떠나 행적을 감추라고 한 것은 단순히 수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오늘 밤에 가 보자.”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아, 그리고 그 주차 빌런이 아직 차 빼지 않았습니다.]아파트 주차장에서 맨날 주차 구역 2칸을 차지하고 시비를 거는 그놈 이야기다.
그 막가는 놈의 이야기를 이새봄에게 듣고는 그날부터 그놈이 주차장에 차를 대면 매일 밤에 펑크를 냈다.
그것도 4짝 모두에.
범인은 당연히 찾을 수 없고, 관리 사무소까지 가서 온갖 행패를 다 부렸다고 했다.
오늘 아침 출근 시에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 입구를 그놈의 차가 반쯤 가리고 주차를 해 둔 것을 보고 출근을 했다.
출근 시간이라 입차보다는 출차가 대부분이라 크게 방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입차 시에는 문제가 생긴다.
출차 통로를 가로질러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경찰은 왔다 가지 않았어?”
[그게 사유지라서 경찰이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며 그냥 갔다고 합니다.]“하, 이런.”
기가 막힌 법체계 같으니.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대체 상식도, 기본 규칙도 없는 자다.
그럼 받은 것에 몇 배수를 해서 돌려주면 된다.
“오늘 밤에도 차 안 빼면, 차를 4조각으로 자르자.”
[휘발유 새어 나오게 됩니다.]“그럼…….”
좋은 방법이 없을까?
[출입을 방해해서 사람들을 괴롭히니, 역으로 그자의 집 출입을 방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그거 좋은 생각이다.
“좋아. 타이어 펑크도 내고, 그놈의 집 도어 록을 망가뜨리자.”
[그렇게 하겠습니다.]그래도 계속하면 문을 용접할까?
집 안의 가전제품을 모조리 망가뜨릴까?
그래도 누가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지는 모를 거다.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 자신이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지.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통쾌해하지 않을까?
그놈 때문에 이사 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별장에 사프캣 도착했습니다. 영상 보내 드리겠습니다.]“와, 대단하네.”
영상으로 보이는 산속 주택은 초호화 별장이다.
[건평 320평, 지하 1층, 지상 3층입니다. 3년 전에 완공되었습니다.]“서류상 주인이 유학 가기 전이야?”
[당시에 유학 중이었습니다.]분명 그린벨트 지역일 텐데, 어떻게?
돈과 권력이면 안 되는 일이 없기는 하지만.
“구석구석 잘 촬영해 두고, 거기도 외부인 감시 시스템 같은 거 있나?”
[네, 지하에 있습니다.]“한번 가 봐야겠네. 다음에.”
***
그 시간, 공중파와 케이블 TV의 뉴스에는 조용하게 파문이 일고 있었다.
사건을 찾아 눈을 부라리던 너튜버들에게는 정말 맛있는 소재다.
이것을 놓칠 수 없다는 듯 너도 나도 그 내용을 근거로 영상을 쏟아 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기자의 자폭 영상이라니.
뉴스 화면 하단의 글씨는 자극적이지 않고, 앵커가 사용하는 단어 또한 자극적이지 않지만, 몸은 떨리는 듯하다.
다른 뉴스 채널을 선택하면 그곳에서도 기자의 동영상 이야기다.
또 다른 곳을 선택하면 거기서도 그 이야기다.
“와, 이거 난리도 아닌데?”
이새봄은 태영이 보낸 것을 안다.
“그렇지?”
“파장이 이렇게 크게 번지다니, 내일모레 휴일이라서 또 어떨지 모르겠네.”
최근에 태영과 관련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일들이 여럿이다.
우주 통신 회사의 설립과 관련해서 수많은 언론에서 중요 기사로 다루었다.
그 후, 언론사 서버가 통째로 날아가는 사건으로 언론사가 뒤집혔다.
그 후.
컨설팅 회사 빌딩이 전소되었다.
화재는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방대의 진입을 막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연히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
문제는 그 안에 시신이 무려 9구나 나왔다는 점이다.
그것도 신원이 불분명한 외국인이었다.
그 문제로 한동안 뉴스마다 시끄러웠다.
오늘은 한 기자가 자신이 협박한 두 명의 여성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3천여 명의 사람에게 보냈다.
“우리는 뉴스나 보면서 웃으면 되지.”
“아, 아파트 들어올 때 고생하지 않았어?”
이새봄이 생각난 듯 물었다.
“주차장 입구를 반쯤 막고 차를 세워 둔 그 빌런?”
“응, 관리인 아저씨들이 고생하고 있어. 교대로 통행시키느라.”
주차 빌런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반쯤 걸쳐 차를 세워 두었다.
그 때문에 입차와 출차가 교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행정적 처리 절차가 끝나면 차를 견인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는 견인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필 금요일 밤이다.
토, 일을 꼬박 그대로 지나가야 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언제 처리될지 모른다.
“주차 구역 2칸 차지하고 맨날 시비 터는 그놈이야.”
“아, 그렇구나. 난 또 개진상 한 명 더 나왔네 했는데.”
“차를 조각내 버리려고 하다가 위니가 다른 사람 출입을 막았으니, 그 빌런이 자기 집에 못 들어가도록 막자고 해서 도어 록을 고장 냈거든.”
“우와, 그거 굿 아이디어.”
“위니, 아직 귀가 안 한 거지?”
[다른 자동차로 강릉으로 갔습니다.]“하, 엿 먹으라는 거네?”
위니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새봄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참아, 한번 해 보자니까 해 보는 거지.”
“더 심하게 혼내 줘야 해.”
“아, 광고 나온다.”
TV에서 메타하나의 광고 영상이 나타났다.
초록이 가미된 연한 하늘색에 새털구름이 움직여서 글자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음성이지만, 조금은 식상한 멘트로 시작되는 메타버스 광고.
그리고 어느 곳으로 빨려 들어가서 메타버스 내부의 세계가 펼쳐졌다.
불과 5초간 화려한 영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영상이 사라지며, VR 헬멧을 벗는 사람이 환희에 차서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은 유명한 걸 그룹 멤버이다.
다른 위치의 트레드밀에서 내려선 사람이 VR 글라스를 벗으며 흥분된 소리를 지르는 다른 멤버들.
시점이 이동하며 한쪽에서 레티어에 떠 있는 메타하나의 내부 영상이 보인다.
그 영상을 보던 또 다른 멤버가 트레드밀에서 내린 사람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는다.
그들의 표정과 환희에 떠는 몸짓은 식상하게 시작 멘트를 완전히 뒤집었다.
15초짜리 광고다.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광고이지만 태영은 오늘 아침에 첫 광고를 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틀어 둔 TV에 메타버스 광고가 나왔다.
“이번에 예정한 광고비가 얼마라고?”
“250억.”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