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62
308. 약 주신대요(2)
“그리고, 오늘 이 사태가 만들어진 경위를 설명해 봐요.”
“네, 사장님. 음 으음.”
목을 푸느라 잠시 힘을 준다.
“엄마가 아플 때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장님은 엄마를 잘 아세요.”
그러면서 가리키는 사람이 김재하다.
“그리고, 진희 언니는…….”
루게릭 환자의 보호자 격으로 따라온 여성.
[환자의 이름은 진선주, 보호자는 딸 이진희입니다.]‘추가 정보.’
[진선주는 5년 전에 이혼했고, 이진희는 36세로 미혼입니다. 루게릭 진단은 이혼 전에 내려졌고, 딸이 모친의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습니다.]힘들었겠다.
이진희의 얼굴에는 고생의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다.
진선주의 눈은 태영을 보고 있지만, 팔은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
“엄마가 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병원에서 마주치면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똑같이 어머니가 루게릭이고, 딸이 보호자로 있는 상황.
동병상련이었을 것이다.
“저…….”
센터장이 말하려고 했지만, 태영이 다시 손을 들어 막았다.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건 센터장 생각이고, 태영은 과정을 부드럽게 풀어가고 싶을 뿐이다.
“언니가 참…… 많이…… 힘듭니다……. 사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저보다 훨씬 더…….”
그렇게 말하는 신정현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다.
말은 중간에 멈췄다.
이진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이미 턱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말을 시키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얼마 전, 엄마의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이진희에게 시선을 준 신정현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졌다.
“그때, 병원에서 진희 언니와 마주쳤고, 언니는 엄마가 건강을 회복하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흐윽.”
이진희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건강 검진 센터에서 정보가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현장에서 봐 버린 모양이다.
“어떻게 치료가 되었느냐고, 어느 병원이냐고, 가르쳐 달라면서 저에게 매달렸습니다.”
“…….”
“그렇지만, 저는 그 어떤 것도 말해 줄 수 없었습니다. 흐윽, 흐으으윽.”
그 대목에서 울음이 새어 나왔다.
“흐으윽.”
이진희의 울음소리도 켜졌다.
“그렇지만, 언니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틈나는 대로 전화를 해 왔고, 문자와 톡은 수십 번씩 보냈습니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이해된다.
충분히 이해되고말고.
“집에도 여러 번 찾아왔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매달렸을 것이다.
그러니 집을 찾아간 것도 납득이 된다.
“저는 사장님과의 약속 때문에 말은 못 하고,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신정현이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비비며 눈물을 닦아 냈다.
그래 약속을 했지.
두 사람의 관계로 봐서 그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는 의사 선생님에게 따졌고, 그날 크게 싸웠다고 했습니다.”
김재하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아마도 이진희가 김재하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을 것이다.
같은 병을 앓았던 누구는 다 나아서 걸어 다니는데 자신의 어머니는 지금도 계속해서 죽어 가고 있으니.
“며칠 전, 과장님이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기적…… 흐읍.”
김재하가 허탈한 웃음과 함께 신정현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호흡이 뒤따랐다.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센터장님에게 즉시 보고했고, 보호자인 신정현 씨를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왜 말해 주지 않느냐고…….”
“…….”
신정현이 김재하를 보는 눈빛이 안타깝다.
“죄송하게도 행패도 부렸습니다……. 알려 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나쁜 분이군요.”
태영이 장난스럽게 받았다.
그 말에 박성민은 태영을 노려본다.
“저분을 보십시오. 말도 못 하십니다. 본인 앞에서 이런 말씀드리면 안 되지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바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진선주를 가리키며 격앙되어 말했다.
“흐으으윽…….”
이진희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언니가 저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과장님도 같이…….”
“흐으윽.”
신정현의 말에 이진희가 더 큰 울음을 토해 냈다.
의사 둘만 오지 않고, 굳이 힘들게 저 환자를 대동하고 온 이유.
그래야 치료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흐으으응…… 흐으으응.”
정수경의 울음소리다.
“제가…… 제가 말을 했습니다. 도저히 말하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정현이 잘못이 아닙니다, 사장님. 흐으으윽.”
정수경이 자신이 말했다며 자책한다.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손님을 위한 차를 준비해 와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심다윤이 차를 돌리지도 못하고 한쪽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벽을 짚고 울고 있다.
어찌하다 보니 브리핑 룸이 울음바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정도 하셨으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탓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의 잘못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니까,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흐으윽.”
“다만 과정이 궁금했을 뿐이어서 물은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말하지 않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
정수경이 눈물을 닦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버틸 만큼 버텼을 것이다.
“신 대리, 어머니 좀 달래 드려요.”
신정현이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수경을 안았다.
서로 다 같이 울고 있느라 누가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심다윤이 정신을 수습하고 달려가더니 휴지 박스 2개를 들고 왔다.
천정에 시선을 두고 있던 김재하의 눈가에서 귀 쪽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 내고, 마음을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센터장님.”
“네.”
“루게릭 치료제는 아직 승인 전입니다.”
“아…….”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건 김재하 역시 마찬가지.
“우선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네 분은 의문이 많겠지만,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네.”
“네, 그리하겠습니다.”
신정현의 대답과 정수경의 대답.
이진희와 진선주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지난번에 대통령이 우리 회사에 다녀간 거 알고 계시죠?”
“요즘 워낙 핫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그렇게 시선을 받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그냥 조용히 할 일 하며 살고 싶은데 생각과는 달리 자꾸 이슈가 된다.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사전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네.”
“그다음 날 총리를 선두로 레피우스라는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뉴스에도 꽤 많이 나왔으니 모를 리가 없다.
“총리 외에 복지부 장관, 식약청장, 국립 보건원, 보건 진흥원, 의사회, 약사회 등에서 수십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 일이 루게릭 치료제와 상관이 있습니까?”
“네.”
“아, 네.”
“그곳에는 내 연구실도 있습니다. 루게릭 치료제는 내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아…….”
신정현도 정수경도 눈이 동그래졌고, 김재하 역시 마찬가지다.
“허, 그게 정말입니까?”
박성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아, 놀랄 일이긴 한 건가?
하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신약을 학생이 개발했다고 하니 그럴 것이다.
치료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미래의 기술을 가져온 것이지만, 말은 그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김재하는 흥분된 얼굴로 박성민과 태영을 번갈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이나 학술지에 게재 운운할 것이다.
그건 레피우스에서 할 일이기도 하고.
“자, 뭘 생각하시는지는 알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
“…….”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손을 들어 다시 막았다.
“신약 승인 이야기를 하죠.”
“……네.”
“신약 승인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때, 긴급 승인 제도를 적용했습니다. 그렇죠?”
“네, 그랬습니다.”
“총리께서 방문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만든 약에 대해 긴급 승인 제도를 인용하여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10년 이상 걸리는 작업을 압축해서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해당 업무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스크가 너무 컷을 것이다.
그것도 이해된다.
“코로나 백신은 받아들여졌지만, 유감스럽게도 레피우스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 그걸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이 그러하니까요.”
“네.”
센터장 박성민보다 김재하가 더 풀이 죽는다.
“자, 치료제가 그런 절차를 거쳐서 승인되었을 경우, 센터장님이 보시기에 약가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기간은 빼고 생각하죠.”
“음…….”
“그냥 희망 사항 말고, 국제적으로 희귀 질병의 경우 치료제가 얼마나 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보십시오.”
“……비슷한 약, 근위축증 치료제…… 20억 하지요. 보험가는 6백만 원 정도이지만.”
FDA팀이 왔을 때, 이것저것 조사를 해 봤고 비슷한 것을 본 것 같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맞아?’
[루게릭이 아닌, 남성에게만 발병하는 척수성 근위축증인 SBMA 치료제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박성민이 치료제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으니, 추측이 맞을 거다.
‘그래?’
[SBMA가 맞으면, 치료제 가격은 20억이 맞습니다. 다국적 제약사인 노빅터에서 개발했고, 건강 보험 적용가는 598만 원입니다.]보험가가 6백만 원 정도라고 했으니 맞는 것 같다.
20억에서 6백만 원을 뺀 차액은 건강 보험 공단에서 부담하는 돈이다.
“그럼 루게릭 치료제는 얼마나 될까요?”
“…….”
답은 않고 의사 둘이 시선을 교환하며 눈으로 말을 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시간이 30초쯤.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죄송합니다.”
센터장은 이진희에게 고개를 잠시 숙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마 20억보다는 더 고가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쿵~
이진희가 테이블에 머리를 찧었다.
“으흐흐흐흑…….”
그리고 테이블에서 머리를 떼지 않은 상태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20억.
그보다 더 비쌀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 돈이 든다면, 서민들은 치료제가 있어도 치료를 할 수가 없다.
평생을 벌어서?
불가능하다.
이진희의 울음.
치료제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어머니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다.
신정현과 정수경은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헉 소리를 낸 후에 서로를 껴안았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20억도 넘는 치료제를 공짜로 준 셈이니까.
그리고 치료가 되었다.
신정현의 눈물 젖은 눈이 태영을 향했다.
태영은 신정현에게 무표정한 눈길을 보냈다.
또 다른 환자가 옆에 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승인 나지 않은 약을 공급하면 어찌 됩니까?”
이 부분이 중요한 대목이다.
그래서 박성민의 눈을 쳐다보고 질문한 것이다.
“약사법 의료법…… 위반…… 흐음.”
“위반자는 누구누구가 해당됩니까?”
“…….”
박성민은 말로 하지 않고, 태영과 자신과 김재하를 가리켰다.
“일단 나도 나지만, 두 분 의사 생활이 끝납니다. 그렇죠?”
사실 맞는지 모르겠다.
그것으로 고발이나 고소를 당하면, 법정에서 결론이 나와 봐야 안다.
“……네.”
“……헤”
한 사람은 말이 새서 ‘네’라는 대답이 ‘헤’라고 나왔다.
그것이 얼마나 모험적인 결정이 되는지 두 사람도 아는 것이다.
“그래도 됩니까? 아니, 그럴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이 모두 고개를 숙인다.
말은 없다.
대신 한숨만 내쉰다.
“이분을 위해 내가 치료제를 내어 주면, 그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진선주를 가리키며 박성민과 김재하에게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꼭 들어야 하니까.
여기에는 몇 가지의 의도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2가지다.
첫째, 20억 이상이나 되는 고가의 약을 계속 달라고 할 거냐? 하는 것.
둘째, 지금 치료제를 줬을 때 그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그 벌은 누가 받을 거냐? 이다.
물론 그조차도 여기서 정할 수 없다.
법은 법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한다.
“뭐, 그날 거기서도 샘플 공방이 좀 있었습니다.”
“샘플 공방이요?”
“샘플 주는 것으로 법 위반을 따지면, 제약사 영업 사원이나 의사들 중에…… 그렇죠?”
뒷부분을 생략하면서 물었다.
“아, 네. 그렇긴 하네요.”
대답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들도 그것을 안다.
물론 주어진 상황과 조건은 다르겠지만.
“심 대리.”
“네, 사장님.”
“내 방 옆 보관소의 약장을 열면 ARN이라고 쓰인 박스가 있습니다. 좀 가져와 주세요.”
“네, 사장님. 그 방과 약장 출입을 허가해 주십시오.”
“이걸로 열어 줄 테니.”
레티어를 툭툭 건드렸다.
그 말을 들은 심다윤이 거의 달려 나가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장 열어 두겠습니다.]‘그래.’
실제로 일은 위니가 했다.
“흐어어엉…… 감사…… 가…….”
이진희가 의자에서 일어서려 하다가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서 그런 것이겠지.
태영이 시킨 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흐으으응…… 카사……하니다.”
이진희는 주저앉은 채로 울었다.
발음이 새어 나와서 제대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지만,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