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63
309. 대리인의 의무(1)
신정현이 달려와 이진희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진희는 온몸의 힘을 뺏는지 신정현이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진희는 여전히 엉금엉금 기었다.
이진희가 바지를 입고 왔었지?
신정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진희가 기어 오는 것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일어설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결국 기어서 태영의 발 앞까지 왔다.
“가…… 가사 하이다…… 가사……하이……다.”
발음은 뭉그러졌고 코에는 풍선이 달렸다.
풍선을 매단 얼굴을 태영의 종아리에 비볐다.
그 풍선으로 옷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니 다리를 빼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진작 일어날걸.
“약…… 주신대요…….”
정수경이 휠체어에 앉은 진선주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이제 살 수 있어요.”
진선주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다.
고개를 숙이며 무언가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저 봐요. 이제…… 아프지 않아요. 그 약으로 치료할 수 있어요. 저처럼.”
정수경이 진선주의 귀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마치 아이에게 말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이 보내는 위로와 병이 나아서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
그것보다 더 좋은 설명은 없을 것이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문이 열리고 심다윤이 들어왔다.
태영이 말한 ARN이 쓰인 종이 박스를 들고.
“자요.”
치료제를 받아서 이진희에게 주자 이진희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공손하게 받았다.
그리고 말 대신 태영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런 때는 그 어떤 말보다 저 행동이 차라리 낫다.
그리고 지금 주는 이것이 샘플이라는 것을 앞서 샘플 공방이라는 말로 정리해 두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성민과 김재하가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심 대리, 좀 늦었지만, 차 부탁해요.”
“네, 사장님.”
심다윤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차, 조금은 식었을 차를 각각의 앞으로 돌렸다.
“엄마, 엄마, 엄마, 이거로 엄마 나을 수 있대.”
이진희는 치료제 박스를 두 손으로 꼭 안고, 진선주의 귓가에서 작은 목소리로 연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 죄송하지만…….”
김재하가 머뭇머뭇 서두를 꺼냈다.
“네.”
“그 치료제 하나, 아니 두 개만 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래,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길고도 긴 이야기를 한 것인데, 결국 하고 만다.
“이대로라면…… 올해를 넘길 수 없는 또 한 분이 계십니다. 치료가 불가능한…….”
심다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ARN이 쓰인 종이 박스는 저것이 유일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저게 전부입니다. 다시 만들려면 원료 수급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구요.”
“아아…….”
태영의 말에 김재하는 탄식을 내뱉는다.
박성민 역시 긴 한숨을 쉰다.
“그래도 좋은 소식 하나는 알려 드려야겠군요.”
“네, 네?”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그게 뭐냐고 묻는 거지만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다.
“얼마 전, 미국 FDA에서 많은 인원이 와서 며칠간 레피우스에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FDA에서?”
“아, 그, 혹시 5월 초에 온 사람들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
“새로 개발된 8종의 치료제를 가지고 갔고, 그것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한 후에 90퍼센트 이상 완치되면 승인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아,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미국의 승인 사례가 있으면 국내 승인은 조금 더 쉽게 가능합니다.”
그럴 것 같더라니.
“FDA에서는, 빠르면 7월에 승인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아……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병증을 치료하는 치료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레피우스에서 해야 할 일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구요. 루게릭 치료제, 장애 치료제 등이 포함되어 8종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게 승인된다면…….”
“혹시, 장애 치료제는 게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장애 치료제라고 말했지만, 총리 일행에게는 신경 복원제로 말해 주었고, 치료제의 정식 이름은 오르스힐스다.
거기까지 아직 말해 줄 필요는 없다.
“자, 제 대답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승인이 나면 레피우스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정부에서 먼저 발표하게 될지도 모르구요.”
“그…….”
박성민이 뭔가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서두를 꺼냈다.
“네.”
“루게릭 임상 병원을 저희 병원으로 지정해서 신청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클리닉 센터를 운영 중이니 욕심이 생기나 보다.
그 정도 욕심은 의사로서 당연하지 않을까?
“그걸 결정할 곳은 레피우스입니다. 연락해 둘 테니 레피우스의 신약 연구소 김성현 소장을 만나 보세요.”
“김성현? 김성현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아는 사람 같다.
“어쩌면 아는 사람일지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 대리.”
“네, 사장님.”
신정현은 군기가 바짝 든 군인같이 대답을 한다.
“두 분, 모셔다 드리고 와요.”
“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클리닉에서 치료제의 사용과 회복 과정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물론 두 분이 허락하신다면이요.”
센터장 박성민의 말이다.
그것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면 최초가 되겠지.
병원 측으로서는 수많은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상에 얼굴 나올 일도 없으니 아무 상관없지만, 두 분의 의견이 중요하죠.”
“네, 두 분과 상의하겠습니다.”
“이진희 씨.”
박성민의 답을 듣고 이진희를 불렀다.
“네, 네?”
“만일 승낙을 하시게 되면, 입원실과 그에 따른 모든 부수적인 비용은 병원이 부담하겠지만, 촬영을 하니까, 그에 따른 출연료? 말이 좀 이상하지만, 적절한 비용을 요구하세요.”
이진희는 태영을 한번, 박성민을 한번, 그리고 김재하를 한번 본 후에 자신의 어머니 진선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영에게 대답했다.
“언니가, 편의점 일을 하면서 어머니의 치료비를 부담했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나 사채도 많이 썼을 겁니다.”
신정현이 옆에서 거들었다.
“염려 마십시오. 병원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먼저 떠났다.
신정현과 정수경은 그들이 떠난 후에도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정수경은 ‘별이 되어’ 가족으로 신정현이 신청한 ‘별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욕이 넘치는 것을 보니 많이 나아진 듯 듯하다.
“사장님께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사장님도 건강하십시오.”
그 말을 남긴 정수경이 신정현과 함께 브리핑 룸을 나갔다.
“사장님, 정말 짱이십니다.”
심다윤이 눈물이 흘러 화장이 흐트러진 얼굴을 휴지로 말끔히 정리한 것인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엄지를 쑥 내민다.
“하하하, 그래요?”
“20억도 더 하는 약을 바로 척…… 정말 감동했습니다.”
심다윤의 진심이 담기긴 했지만, 저런 표정으로 장난을 한 적이 있었나?
어찌 되었거나 본인도 기분이 좋다니 좋은 거다.
“자, 난 나갑니다.”
“네, 다녀오십시오.”
태영은 심다윤의 인사를 받고 브리핑 룸을 벗어나 16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
{젊은 사람인데, 거기에 전공도 아닌데…….}
위니가 연결해 준 음성 신호로 김재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태영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게, 나도 납득이 안 돼.] [이거 의학 분야에 노벨상감 아닙니까?] [맞지, 그런데 그 부분에 관심 없는 것 같지 않아?]“영상으로 연결해 봐.”
여기는 복도이니 영상으로 받아도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
[네, 마스터.]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는 1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까지 가는데, 왜 저기 서 있는 거지?
그런데 진선주와 이진희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진선주, 이진희 두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아, 두 사람을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였구나.
[그런데, 최 사장 어리지만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하지. 치료제 개발도 개발이지만…….] [네, 약가가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겠지만, 최소 20억에서 그 이상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주는 거 보고 심장이 다 떨리더라구요.] [조건이야 있었지.] [어떤 조건이요?] [치료제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마라, 만일 말이 새어 나가면 너희 둘, 의사는 더 이상 못 할 거다.]맞다.
새어 나가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돌려서 한 말이다.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 같다.
[그런 말은…… 아, 그랬군요.] [소름이 오싹하더라. 정말 그럴 것 같았거든.] [후. 입조심해야지.] [젊은 사람이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이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의 기운을 내뿜다니.] [그래도, 우리 병원을 임상 병원으로 지정하면 효과가 아주 높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정수경 환자, 검진 센터에서 넘어온 자료 검토해 봤지?]같은 병원이니 자료 공유가 가능한 모양이구나.
[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검사를 해 보자고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겠죠?] [최 사장 봐. 대하는 태도가 달라. 정수경 환자가 비밀 누설을 했는데도 잘못했다는 말은 않고 위로와 격려만 했잖아?] [네, 그랬네요.] [그러니까 괜히 정수경 환자에게 접근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관계를 잘 가져가서 임상 병원이 될 수 있도록 해 보자고. 임상용 치료제는 무료니까, 우리는 임상 대상자들에게 무료 치료를 할 수 있는 거야.] [맞습니다. 돈 때문에 어쩌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기회입니다.]말을 들어 보니 사람들이 착한 것 같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병원으로 이익이 돌아갈 방법을 찾겠지만, 저 정도면 착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임상 3상은 수백 명이 대상이잖아? 과연 그 정도의 임상용 치료제를 받을 수 있을까?] [치료제 수백 명분…… 그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렇겠지?] [네, 보험가는 훨씬 낮아지겠지만, 약가 자체로 엄청나게 고가일 텐데.] [그래도 법에서 정한 규정이 있는데.] [FDA에 임상용으로 공급된 양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서 그 정도 선에서 요구하면 어떨까요?] [그래, 그게 좋겠다. 김성현 소장이 내가 생각하는 김성현이 맞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볼 수 있을 거야.] [바로 연락해 볼까요?] [아니야, 일단 두 분이 동의한다고 하면, 병원장님께 보고 드린 후에, 입원 수속까지 하고 계획을 제대로 세워서 접근하자구.] [네, 알겠습니다. 임상을 우리 쪽으로 지정해서 해 주기만 하면 행운인데요.] [그래, 여기 최 사장이 레피우스에 미루기는 했지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김성현과 이야기 잘 해서 해결이 되면 좋고.]“위니, 임상 시험하는 곳이 많아?”
[한국 대학교 임상 시험 센터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의과 대학교 병원은 임상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200곳 이상입니다.]많네.
“한국 대학교를 먼저 말한 이유가 있어?”
{세계 탑 5위 안에 들어갑니다.}
“오, 그 정도면 대단한데.”
글로벌 제약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탑 5위 안에 들어간다면 괜찮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 이름이 나왔다.
2사람분의 치료제를 말할 때, 적당한 시점에 이름을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다.
[중간에 두 개로 말을 바꾼 이유는 그분 때문이지?] [네, 구할 수만 있다면 강호영 회장님의 치료제도 가능할까 해서 말했습니다.] [강 회장님은 아직 초기이지. 그분은 치료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아까워.]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라.
병동 하나쯤 지어 줄 생각이라도 하고 있나?
“홍소연, 확인 좀 해 봐. 그리고 강호영도.”
[네, 마스터.]***
“어서 오십시오.”
16층 사무실로 들어서자 김나은이 인사를 한다.
“이사 잘 했어?”
“네, 잘 했습니다.”
“도와주러 오지 못했네.”
멀리 있던 켈시와 알프레도가 인사를 하며 대화에 합류했다.
“그 정도는 도움이 없어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드론이 있어서 아주 쉬웠습니다.”
하긴, 드론으로 하는 이사이기에 힘이 많이 들지는 않을 거다.
김나은이 만들겠다는 휴머노이드가 있었다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이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일을 두고 굳이 주말에 이사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고생했어.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혹시 공장 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매입 절차는 마무리되었는데, 그쪽으로 이사 가려면 몇 달 걸려.”
“그렇습니까?”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을 뿐, 건물은 전혀 없는 상태야. 평탄화 작업부터 시작해서 공장을 다시 지어 올려야 해.”
“그럼 혹시, 저희가 원하는 구조로 지을 수 있습니까?”
“원하는 형태가 있으면 그게 더 좋겠지?”
“그럼, 구조도를 만들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사장님,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저희가 하고 있는 일들은 공장이 있어야 시험과 생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니,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을 때, 제 현재의 신분…….”
“신분?”
말을 잠시 멈추기에 물었다.
“대리인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나은의 대리인으로서의 의무? 구체적으로 말해 봐.”
“복수를 해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음.”
복수 이야기는 이미 있었다.
가능하면 하고 싶다고.
그런데 뭐? 라는 뜻을 담아 답했다.
“정보 탐지, 수색, 공격이 가능하면서 원격 조정이 가능한 그 어떤…… 것이 있나 해서요.”
이 말은 복수를 태영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고 싶다는 거다.
“클라미.”
“아, 그 정도면 아주 좋습니다.”
바로 반응이 나온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