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64
310. 대리인의 의무(2)
28세기에서 온 과학자이다 보니, 부연 설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
“NC급.”
“네? NC급이요?”
“맞아.”
“충분합니다.”
“그런데 한지아가 아는 수준의 NC급이 아닌 김나은이 아는 수준이야.”
“소재 때문이군요.”
“그래.”
“그래도 문제없습니다. 현시대의 무기와 방어 장비로는 T급 소재에 의한 NC급 클라미라도 방어 불가능입니다. 그리고 클라미 정도면 들키지 않고 임무 수행이 가능하니까요.”
“그래, 컴퓨터는 제탄급 1대와 지난번에 약속한 페사티급 4대를 주지.”
“아, 제탄급. 감사합니다. 받으면 네트워크 상태 확인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김나은의 여권은 상해에 있었다.
그렇다고 실종지가 상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여권을 챙겨 올 때는 올 3월이었지만, 실종된 지는 이미 1년이 넘었는데 찾을 수 있을까?”
“SNS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곳이 상해의 예원이라는 장소입니다.”
“그래?”
“그 직전 글이 상해 임시 정부 유적지인 것으로 보아 거기서 예원으로 간 듯한데, 2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상해에 갔다면, 임시 정부 유적지를 가 보는 것은 국룰이지.
비록 태영은 못 갔지만.
“그럴 수도…… 예원은 어떤 곳이야?”
조금 생소해서 물었다.
“명나라 때 개인이 만든 정원인데, 전쟁 중에 많이 훼손되었고, 1961년에 복원된 상해의 관광 명소입니다. 문제는 그 주변입니다.”
“왜? 관광 명소인데 주변이 왜?”
“제가 설명 드리기보다는 사진으로 한번 보십시오.”
김나은이 레티어로 화면을 가장 크게 펼친 다음 사진을 띄워 올렸다.
“복잡한 동네이네.”
몇 장의 사진을 휙휙 넘기는데 대부분 2층이나 3층 정도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다.
보통 상하이 하면 넓은 강과 높은 빌딩 사진이 주를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자동차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을 끼고 줄 지어 서 있는 낮은 건물에 상가들도 빈틈이 없이 촘촘하다.
그 상가들의 화려함만 보면 유명 관광지가 맞다.
그러나 작은 상가가 개미굴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는 거다.
상가가 아닌 곳은 그 좁은 길을 끼고 있는 낡은 건물의 벽면에 바이크와 자전거 등이 세워져 있고, 짐들도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굳이 예상을 해 보자면, 예원이 복원되었다는 1961년에 시간이 멈춘 곳.
그렇게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서울도 그런 곳들이 있으니, 이상할 것은 아니지만.
“클라미를 이용하려면 통신 환경이 받쳐 줘야 하는데, 혹시 위성은 언제로 예정하고 있으십니까?”
콜로니가 있는데.
아, 김나은은 콜로니의 존재를 모르지.
웃음이 나왔다.
“위성은 아직 한참 걸려. 대신에 디테미어.”
“디테미어요?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없었을 텐데요?”
이번 질문은 켈시다.
“가져왔지. 올 때.”
“아…… 네…….”
김나은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졌다.
그렇게 좋은가?
하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만 하면 탁탁 꺼내 놓는데, 좋겠지.
“대신 큐브 1개밖에 가져오지 않아서 중국을 위주로 깔려 있어.”
“중국과 연결될 일이…… 그닥…… 사장님은 중국 싫어하는 것 같던데요?”
“맞아. 나하고는 처음부터 악연이었지.”
“처음부터 악연이요?”
이 시대로 돌아온 후.
티베트 임무가 시작되면서 극단으로 치달은 악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피디지에 빨려 들어가서 시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몸에 새겨진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면?
티베트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산골짜기 어느 곳에서 벌레들의 양식이 되고 있거나, 이미 백골이 되었을 거다.
함께 갔지만 돌아오지 못한 그들처럼.
“아무튼 만주 지역을 제외하고 대도시에는 대부분 깔려 있어.”
“그럼 디테미어가 있으니 콜로니 역할을 하니까 충분한데, 그건 왜 깔아 두셨는데요?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김나은이 장난스레 물어온다.
“해킹을 너무 심하게 시도했거든.”
“해킹 시도…… 그 이유 때문에 그렇다구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본다.
“왜 믿기지 않아?”
“네, 사장님의 이미지와 전혀 달라서요.”
“이미지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
“뭔지는 알 것 같아요.”
어? 얘 봐라.
“뭘 알아?”
“적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바로 맞혀 버리네.
그나마 말을 순화시킨 것이다.
속을 들킨 것 같아서 김나은을 빤히 바라보았다.
반드시 몇 배로 되갚아 준다는 말을 한 사람은 이새봄과 류지현 정도일 것이다.
이새봄은 함께 눈 뜨는 사람이고, 류지현은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를 함께한 전우이니까.
“그거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사장님은 충분히 힘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김나은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그사이에 사장님을 뵈면서 느낀 점이에요.”
“뭐야? 김나은, 심리학자야? 과학자 아니야?”
“심리학도 과학의 한 분야입니다.”
씩 웃으면서 말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궤변이야?
심리학이 과학의 한 분야라니.
심리학이나 철학이나 그런 분야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혀 모른다고 쳐도, 그걸 과학이라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 상태의 발현은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과학 맞습니다.]대화를 듣고 있던 위니가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인정.
“좋아. 그렇다고 치고.”
“그쪽에서 사장님을 공격했다는 건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도 예상했다고?
“음…… 피디지 현상?”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꺼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피디지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말했었다.
한 침대에서 함께 잠들고, 또 같이 잠에서 깨는 이새봄에게.
김나은과 켈시는 잘 알고 있으니까 말해도 되겠지?
“피디지 현상이요?”
“거기서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기 위해 시작한 ‘타임 리터너 프로젝트’”
“네, 저희를 과거로 보낸 프로젝트죠. 물론 부분적인 실패로 이 시대로 왔지만.”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몰랐을 때, 내가 붙인 이름이야.”
“혹시 Fifth Dimension Gate. 맞습니까?”
역시 김나은, 아니 한지아는 바로 추리해 낸다.
“맞아.”
“그건 중국과 상관없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사람이 있는 곳에서 피디지가 열리면, 그 위치에 있던 사람은 피디지 속으로 사라지지?”
“네, 그런 방법으로 저희도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피디지가 열린 것은 통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군부대가 실종된 사건이 꽤 많아. 그리고 통계도 있고.”
“그게 정말입니까?”
“최근 10년 동안 10차례가 넘어.”
이건 조셉이 말해 준 정보이니 거의 맞을 거다.
“중국에서 그런 현상이 생긴 거군요.”
“그래, 티베트였고.”
“네.”
김나은이 이제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피디지가 열린 모습이 미국의 위성에 사진으로 찍혔고, 거기에 어떤 흔적이 남았는지 조사하기로 했나 봐.”
“양국의 사이가 나빠 보이던데, 조사를 허락했나 보네요?”
“표면적으로는 허락, 내부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요?”
“미국 측에서는 NASA와 CIA 합동으로 조사팀을 꾸렸지.”
“조사팀이, NASA라고 하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현상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 중에 아무도 돌아온 사람이 없는데, 한 명이 있지.”
그러면서 태영은 자신을 가리켰다.
“네.”
“미국 정부 측에서 한국 정부 측에 나를 임무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을 했어.”
“그래서 가신 거구나.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왜 갔을까 했더니.”
“그래, 그래서 다른 2명과 같이 갔어.”
“공격해 왔나요?”
“용병을 앞세워서.”
“헐, 진짜요?”
그럴 수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놀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조사된 자료를 탈취할 목적이었던 것 같아.”
“아, 직접 조사해서는 찾아낼 수 없으니 조사된 것을 빼앗자?”
“맞아. 모두 죽일 작정이었을 테지만, 실패했고.”
“일단, 그들이 잘못 건드린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그림이 잡혀?”
“네, 충분히.”
태영도 말하고 나니 조금은 속이 풀리는 느낌이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이.
“결과가 어찌 되었는데요?”
“NASA와 CIA 요원 7명 중 5명 사망, 1명 중상, 세르파 8명 사망, 우리 일행은 돌아왔고.”
“사장님이 그쪽에 어떤 짓을 하더라도 모두 이해가 될 겁니다.”
“이거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장난스레 물었다.
“해킹 시도는요?”
원래 태영이 말했던 이유를 물어오며 말을 돌린다.
“그리고 수마트라에서도 피디지가 열렸고, 역시 조사를 갔는데, 미국 측 인원 15명 중에 14명이 죽었어.”
해킹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 전에 수마트라 이야기도 꺼냈다.
“하…… 거기도 공격자가 용병입니까?”
“중국어를 쓰는.”
“에잇, 정말.”
태영이 말하는 것들은 작전에 직접 참여한 담당과 그들이 소속된 조직의 일부를 제외한 외부인에게는 비밀 사항이다.
그렇지만, 김나은이나 켈시가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것은 아니니까.
태영이 생각하는, 반드시 되돌려 줘야 하는 것.
그것도 몇 배로 돌려 줘야 하기에 가슴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게 남아 있는 한, 계속 되돌려 줘야 하고.
“지금까지 그들이 우리 서버에 해킹 시도한 횟수가 30만 회가 넘어. 그중에 중국이 95% 이상이고.”
이제야 해킹 이야기로 돌아왔다.
“심하군요.”
“해킹 시도한 것을 되갚아 주려고 콜로니 작업을 시작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용도로 더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야.”
해킹 시도가 올해 3월까지만 해도 수만 건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급증하고 있다.
“제가 그 콜로니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해. 얼마든지.”
정보를 확인하려면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클라미를 조종하려 해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콜로니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된 거다.
“알겠습니다. 접근 방법만 말씀해 주십시오.”
“컴퓨터에 필요한 것 넣어서 보내 주지. 클라미도 함께.”
“감사합니다.”
***
사장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위니, 소재 도착했지?”
“그럼 소재 보내 달라고 해 줘.”
[생산 기술 본부에 요청하겠습니다.]“그래.”
누군가에게 시킬 수 없고, 직접 해야 하는 것들.
오늘은 해야 할 작업이 많다.
오후 시간의 대부분은 그 작업을 해야 한다.
현재 수준의 소재로 부분 출력해서 조립이 가능한 최상급 서버 제탄.
터니테크 계열의 각사에서 사용 중인 메타급 서버에 비해 9성배의 성능을 낸다.
제탄 서버는 이미 누나의 회사에 설치되어 인터넷 몰의 서버로 사용에 들어갔다.
차근차근 바꿔 줄 생각이다.
이 서버를 시장에 내놓으면 몇 년 안에 서버 시장의 독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손대지 않고 있다.
[마스터, 빌런이 출차 라인 절반을 가리고 다시 주차했습니다.]출력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위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난밤에 차를 빼서 오늘 아침 출근 시에 차가 없었는데, 또?
정말 머릿속이 어찌 생겨 먹었는지 열어 보고 싶다.
“아주 악질이네. 이건 진짜 끝까지 해 보자는 거 맞지?”
[…….]“그 정도면 아파트 입주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번 싸워 보자는 건데.”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그럼 제대로 싸워 봐?
“일단 문 고장, 그리고…….”
생각 좀 해 보자.
어젯밤에 야간 경비원 입회하에 문을 떼어 내서 들어갔고, 도어 록을 교체했다.
그자의 나이는 40대로 보였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워낙 싱글족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니 혼자 살 수도 있지만.
“가족이 없어?”
[아내와 딸이 있는데, 그 집에는 혼자 거주 중입니다.]그 성질머리라면 가족과도 매일 싸울 것 같다,
“직업이 뭐야?”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습니다.”독일산 최상위 프리미엄급 자동차와 국내산 최상위 프리미엄급의 차를 사용할 정도면 상당히 부유한 편이라고 봐도 된다.
부동산을 하면서 부유한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개업?
부동산 중개업은 서비스 직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아파트 입주자를 대상으로 싸움을 건다고?
지금까지 하는 행위로 봐서 성질도 아주 더러운 진상이다.
그런 자가 부동산 중개업이라.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조사해 봐. 그자의 폰, 회사와 집의 PC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탈탈 털고.”
[알겠습니다.]***
오늘 출력해야 할 것을 모두 끝냈다.
제품 창고에 초기 레벨의 2족 보행 휴머노이드 30기를 촘촘하게 세웠다.
각 사에 보낼 클라미와 서버 컴퓨터, 마스크류까지.
김나은은 자료를 주면 직접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러려면 공장으로 가야 한다.
그 이전에 미리 일부를 줘도 되니까.
“이름을 지어 줘야 하는데…….”
이름 짓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모델 번호 뒤에 순번을 넣어서 사용하면 쉬운데, 그러면 너무 길다.
“네 이름은 영일이다.”
다시 영이, 영삼, 영사, 영오까지 지어 주고, 수일부터 수오까지 다섯, 제일부터 제오까지 그런식으로 정했다.
물론 쌍둥이처럼 모습이 동일하기에 가슴과 등에 구분을 위한 번호가 붙어 있다.
반드시 해야 하는 명령권자 지정.
영일부터 영오까지 1번 명령권자로 태영 자신을 지정했다.
명령권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레티어에서 앱으로 지시해야 한다.
제니아와 얼굴 변경용 마스크 등은 드론에 실어 태영 전용 제품 창고에 보냈다.
그리고 10기의 휴머노이드를 앞세워 창고를 벗어났다.
“악.”
비서실 심다윤과 정아련의 비명이다.
“어, 놀라지 말아요.”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