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7
067. 와카마쓰 토벌(2)
“무기를 든 자는 바로 사살한다. 몸에 쇠붙이는 한 조각도 들지 말라!”
“천천히 걸어 나온다. 실시!”
“모두 연병장 중앙으로 모인다!”
그런데 실시라는 말을 알아먹을까?
실시.
이 한 단어는 일상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지만, 사포에서 병사들을 교육할 때 사용되는 중요한 단어이다.
명령에 따라 무기를 버린 왜구들이 줄줄이 연병장으로 나왔다.
주둔군의 규모가 크고, 왜구의 숫자가 많아서 시간은 제법 걸리는 듯하다.
“거기, 시신을 이쪽으로 치워라!”
2개 소대 병력이 줄지어 서서 왜구들에게 죽은 왜구들을 한쪽으로 치우도록 시켰다.
태영이 이런 형태의 토벌 작전에서는 반드시 소대 단위로 움직이도록 훈련을 시켰고, 한두 명 단위로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희생자가 생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되, 가능하면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에 현대 군대의 분대 단위이면서, 이곳에서는 소대로 이름 붙여서 편성한 상태이고, 이렇게 움직여서 현재까지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자동 소총인 돌격 소총을 들고 진압과 토벌 작전을 진행하기에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정한 인원 규모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연병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시신이 한쪽으로 치워지고, 손을 머리 뒤로 붙이고 나온 포로들이 연병장에 줄지어 꿇어앉았다.
곧 뒤이어 나오는 왜구들은 마치 그렇게 하도록 훈련이라도 된 것처럼 꿇어앉은 뒤쪽으로 가서 말없이 꿇어앉았다.
갑옷을 입은 왜구는 없는데, 아무래도 전쟁 중이 아니어서 그런 듯하다.
“방탄모 안 쓰나? 죽고 싶어?”
한 명이 방탄모를 벗다가 태영의 고함 소리에 재빨리 뒤집어썼다.
현대식 방탄모와 동일하게 고강도로 만들 수가 없는 탓에, 삼베를 아교로 칠해 가며 한 겹 한 겹 붙여서 만든, 보기보다는 튼튼한 방탄모이다.
시험 결과 정면으로 총에 맞지 않으면 관통이 힘들 정도로 견고하고, 화살이나 칼로는 수십 번을 두드려도 잘 뚫리지 않는다.
아무리 예리한 칼이나 창으로 찌른다고 해도 한 방에 방탄모가 뚫리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다.
멋은 없지만, 전투 중에는 모든 병사들이 의무적으로 쓰도록 한 것인데, 아무리 잘 말랐다고 해도, 아교 냄새도 많이 나고 무게도 제법 나가다 보니 자꾸 벗고 싶어지는 것을 태영도 잘 안다. 그러나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대장님!”
왜구들을 연병장에 꿇어앉히면서 정리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막사들이 있는 한쪽에서 김웅겸이 큰 소리로 불렀다.
“왜?”
“이쪽의 이 상황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김웅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우리 쪽 병사 누군가가 다쳤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심각할 일은 없는데 별일이다 싶다.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가 보자고.”
이제는 집합이 마무리되어 가는 연병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김웅겸을 따라갔다.
병영의 뒤쪽 끝에 있는 좁은 길을 따라 30미터쯤 들어갔다.
좌우로는 정리되지 않은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로 난 흙길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질척거리기도 했다.
그 길의 끝에 작은 문이 보였다.
문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지고 자물쇠가 걸려 있었던 모양인데, 자물쇠가 있던 부분이 뜯겨 나간 것으로 보아 우리 병사들이 부순 모양이다.
담이라고 생각되는 나무들이 키 높이보다 더 높게 자라서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깨어진 문을 지나자, 백여 평 정도 되어 보이는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는 겨우 기어 다닐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어린아이 네 명이 발가벗은 모습으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태영 일행을 빤히 바라다보는데, 시선은 이쪽을 향하는데 손은 흙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입안으로 넣고 있었다.
애들의 몸은 피골이 상접한 것이 정말 사흘에 죽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한 듯 거의 뼈에 살가죽만 붙여 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그 모습을 본 정하연이 먼저 소리 질렀다.
정하연이 쪼그려 앉아 아이의 입안에 들어가 있는 지저분한 손을 빼내는데, 입안에 있는 것은 음식이 아니고 흙덩어리였다.
아이의 입은 침과 흙이 섞여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지만, 그보다도 얼굴과 몸이 더 지저분했다.
아마도 태어나서 한 번도 씻지 않고 흙바닥에서 뒹굴면 이런 모습일까 싶다.
“에비, 퉤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정하연이 애들에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잔디와 가림이도 애들의 손을 입안에서 빼내는데, 그 뒤쪽을 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아이들 뒤쪽으로는 지붕이 낮은 집이 마치 칸막이로 막아 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집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움막이라고 하기도 이상해 보이는 작은 집 수십 채가 마당을 바라보고 타원형의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평도 되어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집 안에는 여자들이 앉아 있고, 일부는 고개를 빼서 태영 일행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치 벌집 속에 벌의 애벌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여인들이 상반신에는 걸친 것인지 아닌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낡고 해진 옷을 입었는데, 척 보기에도 거의 빨아 입지 않은 듯했다.
문 너머로 하반신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치마를 입었다면 하반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빨래를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저게 옷인지 넝마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해지고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으니, 젖가슴조차 가리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절반은 되는 것 같은데, 할머니들의 젖가슴처럼 축 늘어지거나 쪼그라들었고, 거기다가 가슴뼈가 오돌토돌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문턱에 팔을 올려놓고 있는 모습의 여인들의 팔에 눈이 가는 순간 모조리 영양실조 상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군은 모두 여기서 나가요! 그리고 여군들 데려와!”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고, 태영과 같이 사방을 둘러보던 정하연은 이 상황이 이제야 제대로 인식이 되는지 뒤를 돌아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모두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땟국이 쪼르르 흐르고, 머리는 헝클어져서 한 번도 빗질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정하연의 고함 소리에 남자 병사들이 헛기침을 하면서 재빨리 문을 벗어나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태영은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여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모두 고려 여인입니다.”
여인들의 얼굴을 보던 태영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 말에 김웅겸을 쳐다보았다.
“뭐?”
“고려 여인이라구요?”
정하연의 목소리가 역시 하이 톤으로 김웅겸에게 물었다.
“네, 실장님. 왜어를 조금씩 하는 여인이 있기는 한데, 모두 고려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정말!”
태영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욕설과 함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개새끼들이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이게, 이게, 대체…….”
태영의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짐작이 간다. 고려 여인이라는 김웅겸의 말을 듣고 여인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삶의 의욕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에, 앙상한 팔다리와 바짝 말라붙은 입술, 창백하게 보이는 얼굴이다.
어떤 이는 보기에도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앙상한 팔뚝에 종기가 나서 곪아 있는데, 그곳에서 흐를 진물이 팔뚝에 흘러 엉켜 붙어 있고, 파리가 진물 위에 앉아 있는데 쫓아낼 기력도 없는 듯 다른 팔을 올려서 훠이 하는 손짓을 해 보였지만,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달려드는 파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
모두 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정신대, 위안부, 성 노예 등의 이름으로 불린, 가장 가슴 아픈 상처, 그리고 그 아픈 상처가 아직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잠시 동안 힘이 없었던 시절에 발생한 이 땅의 가장 불행한 여인들의 모습.
그 일이 9백 년 전인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 조정과 권문세족들의 무관심과 서로의 권력을 탐내는 정치 싸움 속에 방치된 채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누군가의 딸이었고, 한없이 사랑받는 누군가의 아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짓이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왜구들의 정액 받이가 되어 있었다.
“내, 이것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이야. 이. 개. 새. 끼. 들.”
***
“모두 몇 명인가?”
공동 막사처럼 보이는 넓은 군막 안에 긴 칸막이가 쳐져 있고, 그쪽에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예순두 명입니다.”
태영의 질문에,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정하연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모두 깨끗하게 씻기고, 병사들의 사복을 차출해서 1인당 한 벌씩 주기는 했는데, 대부분 남자들의 옷이라 조금 어색해 보입니다. 또한 즉시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 열둘에, 사소하지만 그래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절반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모두 영양실조 상태인데, 아이들 넷은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거의 뼈와 가죽만 남아 있습니다.”
아까 발가벗은 채 마당을 뒹굴며 흙을 주워 입에 넣던 아이들이다.
한참 잘 먹고 자라야 할 아이들인데 얼마나 굶겼으면 마당의 흙을 입에 주워 넣고 있었을까?
“여기서 낳은 애들인가?”
“불행하게도 그렇습니다.”
“왜놈의 새끼들이구만.”
“그게 맞는데, 여기 왜구들과 애들 엄마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긴, 비록 불행의 씨앗이긴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집단 윤간으로 태어난 아이이다.
그 씨가 왜놈이건 아니건 간에 애들 엄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뱃속에 열 달을 품고 있다가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낳은 자식이다.
그런데 역으로 왜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구의 애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하룻밤에도 여러 놈들이 집단으로 강간을 했을 테니, 당연히 누구 애인지 모를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니 그 누구도 관심을 쏟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일본의 요바이〔夜這い〕 문화라는 것이 생각났다.
아무나 밤에 담을 넘어 들어가서 여인을 겁탈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죄가 되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장려한, 아주 지랄맞은 혼음 장려 제도가 바로 요바이였다.
일본식 사고방식으로, 자기들이 불리한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피해 가는 방법으로 미화시켜서 문화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어찌 문화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 나름대로 매우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다고 합리화시키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21세기 현재에 들어서 후대들이 볼 땐, 조상들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를 미화시키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들이나 위정자들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나, 잘못된 역사들까지도 미화시키는 것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리라고 봐야 한다.
그런 일본인들이 요바이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제도는,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합리화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창 제도이면서 동시에 혼음 제도이다.
핑계는 전란으로 인한 인구 부족을 해결하고, 전란으로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되었다고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전란에 휩싸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던 고려 땅이나 송나라 같은 중국 대륙에서는 없었던 제도이다.
중세의 유럽 또한 계속되는 전쟁으로 지역에 따라 거의 전멸에 가까운 인적 피해를 입었던 곳에서조차 시행한 적이 없는, 전 세계의 역사 속의 그 어디에도 없는, 오직 개새끼들만 가능한, 개새끼가 되도록 한 제도이다.
말 그대로 성적으로는 개새끼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문란한 성관계를 하도록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장려했다.
아니, 개들이 그 말을 들으면 자신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하려나?
요바이의 역사는 서기 90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1950년대까지 거의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다.
오늘은 이 여자, 내일은 저 여자, 모레는 또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는 것이고, 정력이 차고 넘치는 젊은이 같으면 초저녁에는 이 여자, 밤중에는 저 여자, 새벽에는 또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낼 수 있는 셈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도 초저녁에는 남편, 한밤중에는 옆집 남자, 새벽에는 옆 동네 남자와 밤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들어가 나올 때도 들키면 안 된다고 하는 규정이 있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성적인 욕구만큼 빠르게 변하는 것은 없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남편에게 만족을 못 하는 여자는 자연스럽게 외간 남자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고, 남자 역시 아무리 다른 여자와 놀아나도 제도적으로 그것을 탓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보다 더 개 같은 제도를 지시했다.
여자는 기모노라는 복장을 하고, 팬티를 입지 말 것이며, 상대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남자가 원하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섹스를 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건 그 남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제 간통에 강제 혼음이었다.
사상 최악으로 비춰질 수 있는 여성 멸시와 여성 비하에 해당하는 도요토미의 그 명령에 비하면, 요바이는 상호 합의 간통이며 합의 혼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에는 보정 효과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이 당시에는 정확히 기록한다고 해도 조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록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후대의 사관들이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정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조금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이 된다.
이런 것이 보정 효과이지만, 일본인들은 아예 작정하고 뽀샵질을 한다.
21세기의 현대에서도 태연하게 뽀샵질을 했다.
보정 효과와 뽀샵질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보정 효과는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두고 해석을 유리하게 하거나, 불리한 부분은 조금 순하게 하는 정도이지만, 뽀샵질은 사실 자체를 완전히 왜곡해 버린다.
‘거짓말도 백 번을 우기면 진실이 된다.’라고 하는 일본 속담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처참했을 것이고, 기록 자체에 수십 종류의 노이즈 필터를 입힌 후에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 마을 안에서 이런 식의 합의 혼음이란 것이, 군바리들끼리 시시껄렁하게 하는 농담으로 온 동네 남녀가 다 구멍동서이다.
한마디로 이놈들에게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 요바이이니, 고려의 여자들을 강간하는 것이 당연히 이들에게는 죄가 아닌 것이다.
참,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데 1천 년을 내려온 전통이 ‘자, 이제부터 금지’ 이렇게 한다고 씻은 듯이 일거에 사라질 수 있을까?
21세기인 현시대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 않을까?
분명히 지금도 음지에서 여전히 그러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일본의 인구는 1900년이 되면서 5천만, 1960년에 1억을 돌파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1900년에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 되면 전란으로 인한 인구 부족이라는 말로 합리화할 수 있는 단계가 이미 아니다.
자기들 나라에서 장려하는, 담을 넘어 들어가서 강간하는 그런 방법으로 이들을 강간했다는 말인가 싶다.
“한 여인은 아니라고 하고, 아이는 엄마라고 하는 모녀가 있습니다.”
잠시 요바이가 떠오른 사이에 정하연이 태영에게 하는 말이다.
“부정하고 싶은 거겠지?”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왜인에게 끌려와 그들에게 겁탈당하여 낳은 아이이니,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인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는가?
아이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다만, 아이 엄마는 누군가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뿐이기에 부정하고 싶은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어찌하겠는가?
“열아홉이 태어났는데 모두 죽고, 그 중에 네 명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생존율이 겨우 2할?
하긴, 아이들의 상태로 봐서 지금 그 아이들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태영이 본 느낌으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어?”
“네, 두려움에 떨고 있어서 말도 잘 안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그래서 신상 확인이 다 안 되긴 했는데, 글공부를 제법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한탄처럼 한 말입니다.”
“누군지 알아 두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따로 불러서 이야기해 보자고.”
“네. 그리고 임산부도 있습니다.”
“그래? 몇이나 돼?”
“눈으로 봐서 임산부가 확실할 정도로 배가 부른 사람이 둘인데, 나머지도 진맥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태어난다고 해도 사산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신 테스트기 같은 것이 없으니 이 시대의 의료 기술로는 진맥이 최상의 방법이다.
의무병들은 모두 진맥하는 것을 배웠으니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모두 치료는 받고 있지?”
“네, 이제 막 흰죽을 쒀서 먹이기 시작했고, 의무병들이 한 명 한 명 상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해. 굶고 있다가 한꺼번에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날 거야.”
“네, 그렇게 하라고 시켰습니다. 지금 여군들과 의무병들이 보살피고 있고, 잔디가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태영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서 있는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칸막이 너머로 잔디와 여군들을 바라보았다.
저들도 가슴이 아프겠지.
“처참하구만.”
“그때, 당신이 구해 주지 않았으면, 저도 저렇게 되었겠지요?”
정하연이 그 말을 하는데 눈가에 습기가 촉촉했다.
그래, 아마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정하연이 얼마나 가슴 아파할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지금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태영은 일어서서 가만히 정하연을 안아 주었다.
어깨에 둘러맨 소총이 걸리고, 탄창이 걸리고, 허리에 찬 권총이 걸려서 철그덕거리는 소리를 내었지만 정하연은 태영에게 가만히 안겨 들었다.
“나, 당신에게 정말 잘할게요.”
물기 젖은 그 목소리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8월의 날씨인 데다 사포보다 훨씬 남쪽이라서 무척이나 더운데도 조금도 덥다고 느끼지를 못했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잘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