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71
071. 와카마쓰 토벌(6)
주위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연병장에 메아리치듯 울렸다.
“헉.”
태영의 입에서도 바람 소리가 나왔고 몸이 벼락같이 튀어 나갔지만, 너무 늦었다.
이런 상황이라니.
북쪽을 향해 절하고 꿇어앉았던 권소연이 칼을 들어 자신의 왼쪽 목에 대고 당겨 버린 것이다.
“아아악, 아씨, 안 돼요!”
권소연의 옆에 있던 여인, 월이라 불렸던 여인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아무도, 그 누구도 말릴 틈 없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으로 칼을 들어 올리자마자 찰나 지간에 당겨 버렸다.
“안 돼!”
정하연이 고함을 지르며 권소연에게로 달려갔다.
“아, 안 돼!”
고함을 지르며 잔디도 달려갔고, 주위의 다른 여군들 일부는 털썩 주저앉았다.
여군들 중에서도 주저앉을 듯이 비틀거리다가 권소연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권소연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올랐지만, 권소연은 칼을 떨구고 쓰러지려는 몸을 두 팔로 지탱한 채 그대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씨이, 안 돼, 안 돼요, 안 돼요, 아씨이 흐으으흥.”
월이의 울음소리는 심장을 후벼 팔 정도로 처절하고 애절했다.
“아씨,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왜, 도대체 왜 이러셨어요. 이렇게 돌아가시려고, 등을 바닥에 눕히지 않으면서 그토록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단 말입니까?”
“아씨이, 왜 그랬어요, 왜애!”
권소연의 가까이 있던 또 다른 여인이 주저앉아 악을 바락바락 쓰며 권소연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힘껏 눌렀지만, 목에서 솟구쳐 오른 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의무병, 의무병 없나?”
김웅겸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뒤이어 병사들이 달리는 발자국 소리와 의무병을 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의 눈에도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이러려고, 이러려고, 그랬던 것이냐?”
자신도 모르게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왜, 왜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
달려가도 권소연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태영은 안다.
머리로 올라가는 동맥과 정맥이 한꺼번에 잘렸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현대의 의학 기술로도 살리기가 쉽지 않은 극심한 상처인데, 이 시대에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월아.”
권소연이 모깃소리만 하게 이름을 불렀다.
그 부름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네, 아씨. 흐으으응.”
“네가 울면, 내가 말을 못 하니 이제 울음을 멈추거라.”
정말 소름이 끼칠 만큼 냉정하고 침착한 여자였다.
자신이 죽어 가고 있으면서, 월이에게 당부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네, 아씨.”
월이라 불린 여인이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고, 멈추지 않는 울음소리를 내뱉는 자신의 입을 그 여린 손으로 막았다.
“내 죽더라도 왜국에 몸을 누이고 죽지 않도록 이대로 잘 붙들고 있어라.”
“네? 네. 아씨이. 흐흐흑.”
새어 나오는 울음을 막는다고 막아지나.
흐느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비명을 질러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억지로 멈추어야 하는 울음소리가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는 대신 목구멍 속으로 삭여 든다.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하여 가루를 내어 고향집 뒷산에 뿌려다오.”
“아씨, 아씨이…… 으흐흐흑.”
“나는 이만 가마. 다만, 너를 면천시켜 주지 못하고 떠나서 정말 미안하구나.”
“아니옵니다. 흐으윽, 아니옵니다. 아씨.”
면천이라…….
태영의 짐작대로 몸종이었던 모양인데, 함께 왜구들에게 잡혀 와 함께 모진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월이는 권소연을 부르며 통곡하면서도, 그녀의 당부대로 권소연의 몸이 넘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작은 몸으로 안은 채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의무병들이 상처를 보기 위해 몸을 눕히려 하는 것을 안 된다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권소연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을 밀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면 자신과 권소연의 몸이 한꺼번에 넘어질 것 같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짜내어 부르짖었다.
“흐으윽,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아씨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년에게 한 당부이옵니다. 흐윽, 왜국에 잡혀 와 아씨의 의지로는 한 번도 등을 바닥에 대고 몸을 눕히지 아니하였고, 돌아가시면서도 왜국에는 몸을 눕히지 않겠다는 뜻을 저버릴 순 없사옵니다.”
그 주인에 그 몸종인가?
참으로 대단하다.
그리고 죽어 가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의연할 수도 있나 싶다.
태영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훔쳐 내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애써 태연한 척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기어이 또다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권소연의 목에서 흐른 피가 권소연과 월이를 적시고 바닥으로 흥건하게 흘렀다.
권소연의 곁에서 엉거주춤 피가 솟아나는 목을 손으로 눌렀던 정하연이 일어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 옆을 잔디와 다른 여군들이 입을 손으로 막고, 울음을 참느라 꺽꺽거리며 서 있었다.
권소연이 얕은 숨을 쉬느라 낮게 오르내리던 어깨의 움직임이 천천히 잦아들었고, 마침내 힘이 다하며 몸이 힘없이 쳐지자, 쓰러지려는 몸을 월이가 받치며 바로 앉혔다.
그리고 월이는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을 토해 냈다.
“으아아아앙. 으앙.”
저리도 슬피 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월이는 통곡을 했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아무도 위로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서서 그 울음소리에 가슴을 부여잡고,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삼킬 뿐이었다.
이곳이 고려 땅이었다면, 이 참극에 하늘이 울고 땅이 울었을 것이다.
한없이 안타까운 최후였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월이의 울음은 목이 잠겨 울음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권소연의 목에 손을 대보고, 코에 손을 대어보던 의무병이 태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정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분노로 치가 떨려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모조리 죽일 것이야!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야!”
태영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연병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포의 병사들은 권소연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울고, 왜구들은 왜구들대로 자신들의 상관이 눈앞에서 여인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에 대한 분노로 울었다.
“죽어서도 왜국에 몸을 눕히고 싶지 않다고 소원한 여인이다. 그 뜻을 지켜 주도록 하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영의 지시에 김웅겸이 대답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부목으로 쓸 것을 구해 와서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도록 해라. 그리고 그대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화장을 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김웅겸의 지시에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
슬픔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여인들은 악몽에서 벗어나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은 모양이었다.
일부의 사람들이 언제 돌아갈 것이냐고 물어오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것이리라.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겠지만, 반겨 줄지 아닐지는 몰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 사람들이 가자고 한다고 바로 떠날 수가 없다.
전투에서 죽은 왜구들은 연병장에 판 구덩이에 모두 묻었다.
연병장의 3할은 무덤으로 바뀌었지만, 구덩이를 파낸 흙이 쌓여 있어서 연병장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고도 비어 있는 커다란 구덩이가 다섯 개는 더 있었다.
그 구덩이는 뭐할 것이냐고 물어오는 병사는 아무도 없지만,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구덩이를 파는 것부터 시작하여 파묻는 것까지 모두 왜구들이 했으니 사포의 병사들이 그 노역을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감시는 해야 하기에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근무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나머지 12시간 중에, 식사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합쳐 10시간 정도나 걸리니 실제로 개인별 자유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피곤해 보였지만, 얼굴에는 왜국을 토벌했다는 자부심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대대장, 준비해.”
“네, 준비하고 대기 중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소탕하는지 알지?”
“네, 10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자는 모두 대상입니다.”
왜구들의 마을을 토벌할 때는 14세를 기준으로 잡았지만, 다른 곳에서 보다 나이를 더 낮추었다.
이번 섬멸 작전의 대상은 왜병이 아닌 민간인이다.
군인도 아닌 민간인을 소탕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민간인이 훈련받아 병사가 되고, 그렇게 하여 병사가 된 왜구들이 고려를 약탈하여 힘없는 처자들을 잡아다가 저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왜구들이 약탈한 대상은 고려의 병사들이 아닌, 고려의 민간인들이다.
그러니 왜국의 민간인이라고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다.
앞으로 30년 이상을 이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네가 10세냐 하고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
눈대중으로 봐서 대충 10세가 넘겠다 하면 모조리 대상이 될 것이다.
잔인한 방법이지만, 쉴 새 없이 고려 해안을 약탈하러 오는 놈들을 막으려면 방법이 없다.
그래야 권소연 같은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시작해!”
“와카마쓰 토벌 작전 2차, 섬멸 작전 개시합니다. 충~성~”
“충성!”
“모두 보았느냐?”
태영이 경례를 받고 난 뒤, 김웅겸이 돌아서서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보았습니다.”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병사들이 모인 가운데, 조총을 쏘고 곧바로 화장 절차를 진행했고, 그들이 그 과정을 지켰기 때문이다.
권소연을 화장한 불길이 이제는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고,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주위로, 함께 잡혀 왔던 여인들이 불씨가 사라지고 땅이 식어 주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기상을 가진 여인이었지만, 불행한 우리의 누이였고, 지켜 주지 못한 우리의 형제였다. 그러한 불행이 또 생겨서야 되겠느냐?”
김웅겸은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화장한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안 되겠습니다~
병사들의 대답 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김웅겸도 병사들을 감동시키는 말이 자꾸만 늘어간다.
방금 그 말에 태영도 감동받았을 정도였다.
불행한 우리의 누이였고, 지켜 주지 못한 우리의 형제라니, 가슴이 지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지금부터 섬멸 작전을 개시한다. 10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자는 모두 잡아라, 그리고 저 구덩이에 처넣어라, 만일 반항하면 현장에서 사살하되 가능하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고,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라. 알았나?”
알겠습니다~
우렁찬 고함 소리가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아마도 권소연의 일을 보았기에 더 그러리라.
여인들이 우렁찬 소리를 지르는 병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게 김웅겸이 인솔하고 40여 명의 병사들이 병영을 벗어났다.
태영은 연병장의 말뚝에 묶여 있는 왜군의 지휘관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저들을 처리할 시간이다.
사형을 시키자니 총알이 아깝다.
그냥 묶어 둔 상태로 모조리 굶겨 죽이고 태워 죽일 것이다. 아니, 굶어 죽기 전에 일사병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8월 말이어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도, 한낮의 태양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러니 저렇게 묶어 놓고 물 한 모금, 음식 한 톨 주지 않으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 갈 것이다.
“해룡호에 가서 다이고 료마를 데려와서 여기 함께 묶어라.”
“넵, 대장님.”
병사 한 명이 태영의 명령을 받고 힘차게 대답하고는 달려갔다.
다이고 료마, 돌개몰과 달구곶에 쳐들어왔던 왜군의 최고위 지휘관이다.
***
부우우웅~
해룡호의 뱃고동이 길게 울렸다.
“모두 다 가두었나?”
“네. 빠짐없이 가두었습니다.”
권소연을 화장한 지 사흘이 흐르는 동안, 왜인 남자들 4천 명이 잡혀 왔고, 모두 군막과 창고에 가두었다.
창고에 있던 군수품과 식량들을 들어내어 해룡호에 싣고, 그 빈자리에 수갑과 족 갑을 채워 두었던 왜구들도 노끈으로 묶어서 가두고, 연병장에 꿇어앉았던 왜구들도 모두 가두었다.
기둥에 묶어 두었던 장군 급들인 지휘관들 중에 세 명만 가족까지 붙잡아 와 해룡호에 태웠다.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고 가족까지 있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지휘관들은 모두 기둥에 묶어 두고 기둥 아래 충분한 불쏘시개를 놓고, 기름을 뿌렸다.
이미 사흘 이상을 굶겨서 눈을 뜰 기력조차 제대로 없는 상태이지만, 그대로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의 집에는 여자를 제외하고 남자는 모두 나이를 불문하고 잡아 오게 해서 함께 묶어 두었다.
붙잡아 온 왜인들 중에 신체 건강하고 젊은 놈들로 1천 명을 골라서 해룡호의 화물칸에 가두고 출항 준비를 완료했다.
“승선하라.”
마무리 정리를 한 병사들이 전마선에 오르고, 태영도 또 다른 전마선을 타고 해룡호에 올랐다.
태영이 해룡호에 오르자 뱃전에는 병사들이 철궁을 준비해 두고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영이 철궁대의 뒤에 서 있는 김웅겸과 신도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철궁 사수 준비!”
신도익이 뱃전에서 일렬로 서 있는 열 대의 철궁대에게 소리쳤다.
그 뒤쪽으로 김웅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1대 장전 완료.”
그렇게 1대부터 10대까지 장전이 완료되었다는 복창 소리가 함교의 옆쪽 통로에서 내려다보는 태영의 귀에 들려왔다.
선미의 갑판에는 왜구들에게 잡혀 왔던 여인들이 대부분 다 나와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김웅겸은 그 여인들에게 왜구의 주둔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일 필요가 있다면서, 모두 불러내어 보여 줄 것이라고 했었다.
선실은 충분하기에 권소연의 화장이 끝난 후에 이미 그들은 해룡호에 탑승하여 몇 명이 선실 하나로 모두 선실을 배정받아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다.
왜군의 병영에 있는 것보다 해룡호로 옮기는 것이 심신의 안정에 좋을 것이라는 정하연의 생각에 섬멸 작전이 시작된 이후에 모두 해룡호로 옮겨 두었었다.
선미 쪽을 돌아보자 선미 갑판에 모여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해룡호의 길이가 무려 2백 미터 가까운 길이이니 선미 갑판에 서 있으면 사람의 형체만 보인다.
“모두 점화!”
신도익의 명령에 따라 철궁 한 기에 열 발씩 장전된 불화살에 불이 붙여졌다.
“1대부터 발사!”
“발사!”
복창 소리와 함께 왜군의 주둔지에 30개의 불화살이 날아갔다.
불이 붙은 화살이 허공으로 솟구쳐서는 병영으로 산개되어 떨어졌다.
병영에 이미 부어진 기름 때문에 화살이 떨어지자 곧바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병영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김웅겸도 신도익도, 다른 중대장이나 소대장들도, 아무 말 없이 타오르는 왜군의 병영을 지켜보았고, 병사들도 말을 잊었다.
태영도 침울한 표정으로 병영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정하연은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말없이 함교로 들어가 버렸다.
어찌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까?
지금 왜군의 병영에는 왜구들과 민간인들이 합쳐서 거의 5천1백 명이 감방과 창고에 갇혀 있다.
이미 초반의 철궁 공격부터 시작해서 전투 중에 죽은 왜구들이 2천이 넘는데, 방금 화형에 처한 왜인들이 5천이다.
저 와중에도 운이 좋은 사람이 있어서 누군가는 살아날는지 모른다.
상관 없다.
가능하면 모조리 죽이기로 했으니, 절대로 연연하지 말자.
지금 저들은, 모두 묶여 있는 데다 사흘이 넘도록 한 끼 식사는 물론이고 물도 한 모금 주지 않았으니, 움직일 기력도 없을 것이고, 줄을 끊고 나갈 수 없으니 아마도 거의 다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