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72
072. 귀향(1)
태영도 이곳 와카마쓰를 토벌하러 출발할 때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대마도에 왜구를 정벌하러 갔을 때처럼,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에 수백 명, 아니면 1천 명 전후의 왜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둔한 왜구가 너무 많았다.
또한 기근이 들어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약탈을 왔다는 왜구의 말과는 달리, 농토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농사는 잘 되고 있었다.
민간인들을 심문해 본 결과 지난해에도 기근은 없었다고 했다.
종합하여 정리를 해 보자면, 왜구들이 고려 땅으로 약탈을 온 것은, 오직 자신들의 광폭성과 살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고려의 여인들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게 목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더 화가 났다.
거기다가 잡혀 온 고려 여인들을 보면서 치를 떨었고,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요바이 문화를 가지고 있어 여자를 겁탈하는 것이 정당화된, 개 같은 놈들일지라도 남의 나라 여인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그러하다면, 자국의 여자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하면 될 일이지, 왜 고려 땅으로 와서 고려의 여인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하는 것인지, 그것이 더 화를 치밀게 했다.
권소연의 행동이 잔인했지만, 잔인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깊이 쌓인 한을 채 풀어내지도 않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렸기에 더더욱 화가 났다.
그러한 일련의 일을 보면서, 이곳의 씨를 말려 버리려 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고, 대신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보복을 해 주었다.
“정 실장, 잠깐 나와 같이 저 사람들을 만나러 가지.”
태영이 함교의 난간에서 함교의 문을 열고 정하연을 불렀다.
“네.”
태영은 함교를 내려와 선미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선미에 있던 여인들이 태영에게 몸을 깊이 숙이며 인사를 했다.
“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태영은 석양이 넘어가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동트기 전에 우리가 왔던 사포라는 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테니, 새벽이면 도착한다.
“여러분들은 얼마간 그곳에서 기거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에, 각자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정붙이고 살 것인지를 정하면 된다.”
태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구석에 힘없이 서 있는 월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석양빛에 얼굴이 비쳐서 그나마 환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얼굴에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월이의 가슴에는 권소연이 이제 편안하게 등을 붙이고 누워 있을 작은 나무 상자가 보자기에 싸여 줄에 매달린 채 목에 걸려 있었다.
“그간, 마음고생도 몸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저기 타오르는 불길 속에 그 고생의 흔적들은 모두 던져서 깨끗이 태워 버려라.”
그렇게 말하고 태영은 돌아섰지만, 여인들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정하연이 따라오는 느낌이 없어 돌아보니, 여인들의 손을 한 명 한 명 잡아 주면서 어깨를 다독거리기도 하고,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래, 저 여인들에게 태영이 해 줄 수 있는 것과 정하연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정하연은 마음으로 저 여인들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하마터면 자신도 당할 뻔했던 일이기에, 그래서 더욱더 공감이 되는 것이기에.
***
“어서 오시게.”
권승찬이 연구소의 책임자들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오고, 뒤이어 정현이 정평을 비롯한 철장들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왔다.
사포의 중요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연락병이 온정 철소에 가서 정현을 불러와야 하기에 하루가 걸렸다.
아무래도 전기를 만들고 전화기를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연락을 빠르게 취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것이 오랜 고민거리였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벨이 전화를 처음 발명한 것은 1876년이다.
그때는 반도체는 물론이거니와 구시대의 유물이면서도 현대 사회에 꽤 인기 제품으로 알려진 진공관 앰프, 거기서 사용되고 있는 진공관 같은 것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져서 상용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것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발전을 할 수 있기만 하다면, 전화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대식 기술이 아닌 구형의 전화기는 구리 선과 구리 선으로 만든 코일, 진동판과 영구 자석, 그리고 탄소 알갱이 정도가 필수적인 재료인, 비교적 간단한 원리로 작동을 한다.
송나라에서 마저 가져와야 하지만, 이미 구리는 충분히 확보해 두었으니, 구리 선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기는 해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구리 선을 만들어서 피복을 입히는 것은 아직 멀었지만, 코팅을 하는 것은 권승찬이 어느 정도 해결할 것이라 생각이 된다.
나머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때는 기계 설계과가 아닌 전기 공학이나 전자 공학을 전공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하지만, 이 시대에는 전기나 전자 공학보다는 기계 설계나 기계 공학과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관심과 흥미가 생기는 것은 한 번씩 뒤적거려 보는 태영의 대학 시절 취미 생활이 이 시대에 와서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우와, 이게 다 무기입니까?”
정현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기들을 보고 탄성을 발했다.
“맞아요. 왜국의 군사 주둔지를 토벌하고 거기 있던 무기들을 모조리 쓸어 왔지.”
“이놈들 칼 만드는 솜씨가 상당히 좋은데요.”
칼을 면밀히 살펴보던 정평이 태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중국은 창, 한국은 궁, 일본은 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아서 빙그레 웃었다.
“난, 잘 모르지. 그런 것은 철장들이 잘 알지 않나?”
“제가 늦었습니다. 대장님.”
그때, 윤점돌이 몇 사람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왔다.
“어서 와. 윤 반장.”
“네, 대장님.”
“공사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어때 일은 힘들지 않아?”
“대장님 은혜로 요새는 세상사는 맛이 절로 나는데, 그깟 고생이 고생인감요? 그리고 요 왜놈의 새끼들을 부리면서 우리 동네를 잘 살게 만드는 재미는 기가 막히게 찰집니다.”
윤점돌은 정말 신 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이제 왔습니다.”
김하석이 한 사람을 거느리고 창고로 들어왔다.
와카마쓰를 토벌하러 갔던 태영이 돌아와서 오늘 아침을 먹고 창고로 오라고 하자 다들 부지런히 달려왔을 것이다.
윤점돌이 부리는 일꾼들을 동원하여 와카마쓰에서 탈취해 온 무기와 식량, 군수품들을 창고로 다 옮겼으니 윤점돌은 이것들을 모두 다 보아서 알고 있다.
김웅겸과 각 중대장 몇 사람도 있고, 비서실 직원들도 다 있으니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다.
“자, 이제 대충 다 온 것 같으니, 간단하게 말하겠소. 우리는 무기로 칼을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이 무기들 중에 좋은 것들은 골라내서 별도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녹여서 농기구를 만들든, 공사용으로 사용하든, 아니면 우리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든 여기 있는 책임자들이 의논하여 적당하게 배분하시오.”
“병사들이 총 외에 칼도 필요할 텐데, 그건 남겨 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정현의 말이다.
“부대에서 사용할 무기는 이미 병사들이 와서 둘러보고 각자 한두 가지씩 챙겨 갔고, 날이 예리하고 소리가 좋은 놈으로 2천 개 정도의 무기들을 따로 빼 두었으니, 여기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면 됩니다.”
1만이 넘는 왜구가 주둔한 병영을 탈탈 털어 왔으니 무기의 양이 상당했다.
무기 외에도 군에는 자질구레한 장비들이 필요한데, 갑옷과 군장들을 포함하여 이것저것 대단히 많은 물건들이다.
그 외의 군수품들과 식량들도 모두 창고에 보관해 두었지만, 그것은 여기서 풀 것이 아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시고, 우린 갑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잠깐 놀랐다가 다들 대답을 한다.
“아, 대장님.”
“응? 왜?”
태영은 정평의 부름에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지난번에 만들라고 하신 밀 분쇄기 만들어서 어제 최종적인 시험 분쇄를 했습니다.”
“아, 그래 어때?”
“이중 거름 장치까지 해서 분쇄가 잘 이루어지고 한두 사람의 힘으로도 잘 됩니다. 바람개비 연결 시험도 했는데, 바람개비는 집 밖에 설치해야 해서 그것은 못 했습니다만, 설치한 곳에서 바람만 적당하게 불면 힘들이지 않고 자동 분쇄가 가능합니다.”
밀가루를 만드는 분쇄기는 기술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기계이지만, 태영도 본 적이 없으니 대충대충 그려 주고 설명해 주었더니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몇 단계 분쇄까지 해 봤는가?”
“4단계까지 해 봤는데, 4단계를 거쳐 나온 밀가루는 너무나 부드러워서 가루로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4단계까지 분쇄하도록 한 것은 나중에 고급 빵을 만들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럼, 내일 10포대는 2단계 분쇄, 3포대만 3단계 분쇄를 해서 모레 학당으로 가져와 보도록 해. 내가 밀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밀 분쇄기를 어디에 설치할지는 모레 정하자고.”
2단계 분쇄를 하면, 국수나 만두피를 만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시험은 좀 해 봐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아직 밀가루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개경에는 많겠지만, 사포와 율촌에는 밀가루 음식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정 실장은, 모레 아침에 밀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포의 여인들 20명을 불러 모으는데, 식칼하고 야채 한 바구니씩하고, 양념들 준비해서 가져오라고 해, 대대장은 전성이 조합장에게 연락해서 멸치 세 포대와 다시마 한 포대 가져오라고 하고, 학당 식당에 있는 거 제외하고 가마솥 네 개나 다섯 개 정도 준비시켜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성이는 원래 사포 출신으로 제법 똑똑하여, 사포 어업 협동조합을 만들어 조합장을 시키고 어부들을 통합 관리하게 한 사람이다.
“김 대목장님.”
“네, 대장님.”
“도마로 쓸 수 있게, 가로 1미터에 세로 40센티 정도 되는 것으로, 그것보다 조금 더 큰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거 매끈하게 다듬어서 다섯 개 준비해 주시고, 다듬이 방망이를 앞에서 뒤까지 굵기가 똑같은 거로 역시 다섯 개하고, 조선소 주방에서 요리사 두셋을 보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도 아주머니들 서넛 데리고 오겠습니다.”
윤점돌이다.
“그렇게 해. 그리고 철소에서도 관심 있는 아주머니 두셋 같이 오면 좋고. 그리고 농장에 연락해서 돼지고기 갈아서 백 근, 닭 오십 마리쯤 잡고, 계란 5백 개 가져오라고 하고, 아주머니들 올 때, 대나무 쟁반 큰 것하고, 쟁반 덮을 삼베 포를 몇 개씩 준비해 오라고 하고.”
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만두를 만드는데, 그 외에 또 필요한 것이 있나?
아무리 텔레비전에서 먹방을 많이 봐도, 먹방은 레시피일 뿐이다.
실제 요리는 실전이기에 레시피의 기억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떠오르는 것이 그 정도뿐이다.
“밀가루 음식을 떠먹을 국그릇과 쟁반, 수저는 여유 있게 준비해 주시고.”
잠시 생각한 태영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고 김웅겸과 비서실 일행을 데리고 학당으로 향했다.
각각의 연락을 누가 할지, 준비물을 누가 준비할지는 알아서 할 것이다.
개경에 쌍화점이라는 만두 가게가 언제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그곳의 만두가 상당히 맛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남녀가 연애를 하는 대표적인 데이트 장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죽하면 쌍화점이라는 고려 가요까지 만들어져서 전해졌겠는가?
쌍화점이라는 영화가 나왔었다고 들었는데, 아주 오래된 과거의 영화인 탓에 태영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만두가게 쌍화점과는 전혀 다른, 제법 야한 영화라고 했었나?
빵을 만드는 레시피는 머릿속에 제법 들어 있지만, 그건 오븐도 있어야 하고 준비가 조금 번거롭다.
빵은 다음에 준비를 제대로 해 놓고 만들어야지.
***
태영은 학당으로 갔다.
학당에는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61명의 여인들이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당에 학생들하고 같이 있어서 공부에 방해되지 않았나?”
“학당이 충분히 커서, 애들 공부하는 교실과는 많이 떨어져 있기에 방해는 안 되었습니다.”
뒤따르던 여군 소대장 현아루의 대답이다.
현아루는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여인들에 대한 관리를 맡겼다.
학당은 나중을 생각해서 무척이나 넓은 부지에 여러 동의 건물을 지은 곳이라 빈 교실이 많았기에 그 정도 인원을 수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다들 어떤 것 같아?”
“일단 대부분 몸은 꽤 회복되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먹는 것은 어때?”
“의원들이 처음 사흘은 닭죽을 먹이고 그다음부터는 밥을 먹여도 좋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밥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습니다.”
“다행이네. 충분히 구경은 시켰지?”
태영이 보고서를 통해서 모두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지금 학당으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어서 이것저것 다시 물어보았다.
“네, 학당에 특별반을 편성해서, 오전에는 고려 글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매일 한두 곳씩 순서를 정해서 구경을 시켰습니다.”
“반응은 어때?”
“많이 놀라워했습니다. 어제는 병아리 부화장에 갔었는데, 마침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천 마리가 있어서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야산을 깎아서 만든 넓은 양계장에는 이제 더 많이 부화시켜서 1만 마리가 넘는 닭이 방목으로 키워지며 하루에 수천 개의 알을 낳는다.
여인들은 그 많은 닭을 보고 놀랐고,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있는 것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사포와 율촌의 주민들에게 매일 계란 일정량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는 것도 전했다.
끼니마다 계란 프라이에, 생선 반찬과 닭고기가 밥상에 놓이는 것 또한 그들로서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바닷가 마을이었던 덕분에 생선은 자주 먹었지만, 왜구들에게 납치되기 전에 육 고기는 명절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일이었는데 끼니때마다 고기반찬이라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현아루는 유리 공장과 조선소에 가서 보였던 반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유리 공장을 비롯하여 사포에 있는 각 공장들, 흑룡호와 황룡호를 만들고 있는 조선소를 구경시켰고, 뽕나무를 대량으로 식재하여 어느 정도 자라기를 기다리느라, 아직까지 누에를 치지 못하지만, 내년부터는 누에를 치기 위해 기르는 뽕나무 밭에도 데려가 누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많은 관심을 가졌단다.
아직은 많이 자라지 않아 가슴 높이에 올라오는 감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과수원이나, 배나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지어 선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간, 왜국에 잡혀가서 당한 몸과 마음의 고생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와 상실감이 1주일 만에 치유되어 한꺼번에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의 평균 나이 겨우 열여덟.
현대로 치자면, 한참 꿈 많고 생기발랄할 여고 2학년 나이이다.
스물이 넘은 여인도 있지만, 겨우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아직은 소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감수성 예민한, 어쩌면 아직은 사춘기도 지나지 않았을 나이에 왜구에게 잡혀가, 벌집 같은 곳에 갇혀서 하룻밤에도 수십 명의 왜구들에게 강간당해 왔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평생을 두고도 치유되지 않을 아픔이다.
그들의 아픔을 다 치유해 줄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픔을 떨치고 일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지금 점심시간이지?”
“네, 대장님.”
“우리도 거기서 점심을 먹을 테니까 부지런히 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태영이 학당의 식당에 도착하자, 학생들과 구해 온 여인들이 식당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일부는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일부는 배식대 앞에서 배식을 받고 있었다.
태영은 정하연과 함께 그 줄의 뒤에 가서 말없이 섰다.
“충성!”
여인들의 식사 진행을 돕고 있던 여군 안여름이 요란한 구호를 외치면서 인사를 했다.
사포의 여자들은 계절의 이름이나 달의 명칭을 따온 이름이 많다.
안여름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가족의 성은 없었지만 태영이 지어 준 안씨 성이다.
그 구호 소리 때문에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영을 향했다.
“안여름 일병, 식당이나 화장실에서는 경례하지 않는 것 모르나?”
현아루가 목소리를 높였다.
식당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서 만났을 때는 목례만 하도록 시켰었다.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이들이 대장님 이야기를 많이 해서, 대장님이 보이자마자 저도 모르게 그만.”
“그만, 되었으니 식사하도록.”
현아루의 그 말과 상관없이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여인들은 모두 다 태영을 향해 인사를 했다.
“자, 인사는 나중에 하고, 밥이나 먹자고.”
태영의 그 말에 다들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야기는 태영과 정하연의 이야기, 사포의 놀라운 이야기들로 웅성거림이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