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96
096. 월이의 귀환(3)
사포에 정착하여 살고 있으면서 오늘 따라온 네 명의 여인이 서로를 위로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태영의 귀에 들려왔다.
조금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김인창의 보고를 그 여인들도 들었을 것이다.
왜인들에게 함께 잡혀가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다가, 태영에게 구해진 후 돌아왔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돌아간 친구들의 죽음이 그들에겐 크나큰 슬픔일 것이다.
“아이들은 어찌 죽었어?”
“네, 목을 매어서 자살한 여인 둘이 아이를 먼저 죽이고 목을 매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는 난파선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아까 의도적인 난파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난파 이유를 조사했나?”
“답을 해 준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했지만, 정확하게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배를 훔쳐 사포로 가기 위해 바닷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나 추정을 해 봅니다만, 마을의 어느 누구도 진상을 아는 사람이 없고, 난파된 여인들 모두 사망하여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 여인들이 배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인창의 말대로 사포로 가기 위해 움직이다가 죽은 것이라면 정말 참담한 죽음이다.
육로로는 사포로 가기가 쉽지 않다. 지도도 없고, 방향 감각도 없는 그들이 육로로 사포를 향해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나마 돌아올 때 배를 타고 왔으니,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아이들도 모두 죽었다.
왜인들의 집단 강간으로 인해 환영받지 못한 생명으로 태어났던 아이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이 집단 가학이라면, 저희들도 지켜 주지 못했으면서 자신들이 먼저 살기 위해 어린 여자아이들이 왜인들에게 잡혀가든 말든 먼저 도망쳤을 것이면서,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살아서 돌아온 여인들에게 물은 것이리라.
물론, 자신들이라도 도망을 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 돌아온 이들을 왜 또 죽음으로 내몰았느냐 하??것이다.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자살한 사람의 주검을 의무병에게 보일 수는 없었겠지?”
“네. 이미 매장된 지 오래되었고, 일부는 화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긴, 그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망 당시 같으면, 현대 사회처럼 부검까지는 못하더라도 육안으로 검시만 해도 반항의 흔적이나 몸에 난 상흔 같은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밝힐 수 있지만, 매장된 지 오래되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조사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아도 짐작되는 것들이 있었지?”
“네.”
“생각을 말해 봐.”
“익사한 사람들도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대부분 자살로 위장한 타살로 생각됩니다.”
“이유가 뭐야?”
자살 당한거군.
21세기 현대에서도 자살 당한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 21세기에서도 자살 당한 것을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종합적으로 정리를 해 봐야겠지만, 향촌의 관아에서 이들에게 박해를 가했고, 마을 사람들이 관아의 박해에 동조해서 만들어진 결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그 박해의 뒤에 권 영감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김인창의 보고 중에 박추서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고함을 질렀다.
“그래, 무슨 소리인지 좀 들어 보자고. 박 호장.”
태영이 눈을 파랗게 빛내며 박추서를 향해 낮게 소리쳤다. 그 때문인지 박추서는 움찔거리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물러나는 박추서를 일별하고 김인창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김 중사, 계속해 봐.”
“네, 대장님. 관아에서 그렇게 조치한 데는 권 영감의 명령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권 영감의 이름은 권택중, 이곳을 관할하는 군의 현령 권택수가 권택중의 동생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네, 다만, 권 영감의 명령이라 짐작되는 부분에 대하여 권 영감을 상대로 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짐작되는 바야. 그래도 이유를 말해 봐.”
“일단, 권 영감은 스물네 명의 가병이 있고, 그 때문인지 위세가 대단하여 권 영감 집에 조사를 하러 갔지만,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 영감을 죽이지 말라고 내가 시켰으니.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말이 권 영감의 눈 밖에 나면 향촌에서는 살 수가 없다고 하면서 대답을 피하는 것으로 봐서 그렇게 짐작됩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데, 여기서 살지 못한다면 죽으란 소리군. 그리고 또?”
야반도주가 있긴 하겠지만, 그것도 결국 마지막에는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정해 보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권 영감의 위세 때문인지 여기 있는 박 호장을 포함하여 관병들이 권 영감의 가병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충헌 같은 놈이군.
“내, 그럴 줄 알았어. 벼슬 좀 했다는 놈들은 어딜 가나 변하질 않는다니까.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겠지?”
“네,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탕~ 타당~
그때, 총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워낙 작은 소리로 들려온 세 발 정도의 소리였지만, 총소리인 것은 분명했다.
향촌의 관병들은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사포에서 온 병사들은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알고 있으니 모두의 눈이 총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있는가 보군. 총소리 난 방향이 어디야?”
“네, 방향으로 봐서 안골입니다. 지금 그쪽에 중대장님이 윤서이 소대장 외 여군 소대원 셋을 데리고 선이라는 여인을 만나러 가 있습니다.”
“선이가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여인이지?”
“네, 그렇습니다.”
“거기 간 사람이 누구누구야?”
“중대장, 윤서이 하사, 연나리, 김솔희, 채민 이렇게 갔습니다.”
“알았어. 정 실장, 김 중사 시켜서 여기 박 호장 포함해서 관병들 잡아 두고 여길 지키라고 해.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고 하고. 그렇게 조치해 두고 애들 몇 명만 데리고 뒤따라와. 아, 관병들은 반항하지 않으면 데리고 와도 돼. 그리고 난 먼저 가 볼 테니.”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대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정규하, 너는 나를 좀 도와라.”
정하연이 정규하를 만류하며 병사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보고 태영은 텐트 뒤로 돌아갔다.
정현을 시켜서 만든 안경을 꺼내 끼자마자 안골을 향하여 바람처럼 달려갔다.
개경에서 화살을 손으로 잡은 후, 태영은 알 수 없는 이 신체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정하연과 단둘이서 수차례에 걸쳐 시험을 해 보았다.
장소가 개경인 탓에 이것이 대체 어떤 능력인지 충분히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달리는 속도가 음속보다 빠르다는 것은 확인했다.
명주에 외상값을 받으러 가기 전에 충분히 확인해서 추가로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인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확인해 볼 예정이었지만, 사포로 돌아오자마자 밀려 있는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바로 향촌으로 왔기에 아직은 미확인 상태다.
개경에서 음속보다 빠르게 10여 초 정도까지만 달려 보았다.
고속으로 달릴 때 눈을 보호해 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 일단 문제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경에서는 사람의 눈을 피해서 확인을 해 본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고 속도가 얼마나 나오는지도, 그 속도로 몇 분간이나 달릴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달리고 나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느껴지는 것은 15초 정도 힘껏 달리면, 조깅을 하기 위해 100미터 정도를 가볍게 달렸을 때 느껴지는 피로감 정도였다.
그 정도이면 사실상 피로감이라고 볼 수도 없다.
아침에 병사들과 보조를 맞추어 간단히 구보하는 정도가 2킬로 정도인데, 그런 때도 피로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편이어서 100미터 정도 조깅하듯 달린다는 것은 그저 아무런 영향이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주어진 능력이 나쁘지 않은데, 제대로 된 확인은 필요하다.
그리고 고속으로 달릴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경을 만들어 달라고 시켰었는데, 사포에 도착해서 간부 회의를 할 때 정현이 가지고 왔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기이한 현상이 왜 생긴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절대로 정상적인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만, 태영이 의심하고 있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온 이 기현상, 분명 지구가 맞는데 지구는 아닌 이상한 이곳으로 날아온 이 기현상, 그리고 개경으로 가기 며칠 전의 밤에 발생했던 그 현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총을 들고 서 있는 김중겸과 병사들이 눈에 보이자 태영은 바로 속도를 줄여서 달리는 정도의 속도로 낮추었다.
김중겸은 집 안에 있고, 아무래도 느낌상 권 영감의 가병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인원이 모두 칼을 뽑아 들고 있는데, 둘이 쓰러져 있었다.
마당 안에는 김중겸과 여군 두 명이 권 영감의 가병으로 보이는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태영은 뛰는 정도의 속도로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 김중겸의 앞에 섰다.
집 안에는 사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그 옆에 아내로 보이는 여인과 와카마쓰에서 구해 와서 얼굴이 익은 여인이 울음을 삼키면서, 쓰러져 있는 남자의 피가 흐르는 상처 부위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선이가 맞을 것이다.
그 옆쪽으로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 있는 사내아이가 서 있는데 나이가 열 살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 선이의 동생인 듯했다.
그런데 선이의 얼굴 한쪽에 피멍이 들어 있고, 옷자락이 찢어져 있다.
이것들이 정말.
이놈들 중에 한 명이 팬 모양이다.
“대장님.”
“무슨 일이야. 총소리 듣고 달려왔는데.”
태영이 김중겸에게 급하게 물었다.
“저들은 권 영감의 가병인데, 선이 낭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못 하도록 막고, 우리에게 즉시 향촌을 떠나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선이 낭자가 무슨 소리하느냐고 하자, 저놈들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고 그것을 막으려는 선이 아버지를 칼로 찔렀습니다.”
“그래?”
“저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는데, 주먹질을 한 놈과 칼질을 한 놈은 바로 사살했습니다.”
쓰러진 선이 아버지의 상처는 제법 깊어 보였는데, 의무병이 이번 조사단에 포함되어 함께 왔으니 곧 뒤따라올 것이고, 그러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윤 소대장과 김솔희는?”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이 김중겸과 연나리, 채민이었기에 물었다.
“잠깐 저쪽에 있는 집에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갔습니다. 총소리를 들었으니 곧 올 겁니다.”
그때, 대문간에 윤서이와 김솔희가 다른 여인 한 명과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익은 것으로 봐서 역시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사람이다.
선이가 피가 흥건한 아버지의 배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려 태영의 앞에 엎드렸다.
“대장님,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제발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흐으흑, 살려 주세요.”
태영은 몸을 쪼그려 앉으며 선이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선아.”
“흐으윽. 대장님, 죄송해요. 대장님. 흐으흑, 사포에 남으라고 할 때, 사포에 남을걸. 사포에 남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대장님, 죄송해요. 흐으윽, 우리 모두 너무 어리석었어요. 대장님.”
“…….”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우는 모습에 가슴이 쓰렸다.
“흐으윽, 고향으로 오면 더 좋을 줄 알았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대장님. 흐으응.”
태영이 자신을 위로해서인지 선이는 목이 터져 나갈 듯이 소리치며 울었다.
절규.
선이는 가슴속에 맺힌 한을 쏟아 내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는 마을에서 가해지는 압박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었겠지만, 태영을 보는 순간 그것을 터뜨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 여인들이 향촌으로 돌아와서 받은 서러움이 얼마나 크고 가슴이 아팠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절규다.
이런 모습은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 봐도, 태영이 김인창이 보고할 때 느꼈던 집단 왕따와 집단 가학 외에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태영은 턱짓으로 윤서이를 불렀다.
윤서이와 김솔희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걸어와서 선이를 일으켰다.
“선아, 울어라. 실컷 울어라. 실컷 울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다 풀고 나면, 이제 다시는 이런 일로 네가 울지 않도록 해 주마.”
윤서이가 선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다.
“선이 언니, 소대장님 말씀 들었지? 이제 대장님까지 오셨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 그리고 대장님이 이제 저들에게 벌을 내리실 거야.”
“고마워, 솔희야. 고마워요, 언니.”
김솔희가 선이를 다독거리자 선이는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쓰러진 아버지 앞으로 갔다.
태영은 그제야 가병들에게 눈을 주었다.
서 있는 사람은 여섯이었다.
쓰러진 사람까지 합치면 여덟 명이 이 집에 쳐들어왔다는 소리다.
쓰러져 있는 두 명 중에 한 명은 살아 있는 듯,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서 고개는 자신들의 동료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계속 입에서 피를 게워 내고 있었다.
가병들은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어이없어하는 표정도 있었다.
“이놈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우리를 막아?”
이 시대의 사람들은 감히, 라거나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 내가 누군 줄 아느냐 하는 대사를 참 즐겨 쓴다.
아니다, 현대의 권력자들도 많이 쓴다.
그렇게 보면 알량한 권력을 가진 놈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다.
“모두 사살하라.”
누군지 물을 필요도 없었고,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저들에게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을 할 시간도 줄 필요가 없었다.
탕. 타다당, 타당~
태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금의 의문점도 표하지 않고 바로 총소리가 울렸다.
“아악. 으아악.”
“아아악.”
총소리가 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잠깐, 지극히 짧은 시간에 울려 퍼진 총소리, 그리고 비명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선이 엄마인 듯한 이가 남편의 배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귀를 막았으며 선이의 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도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귀를 막았다.
“우리에게 칼을 뽑으면.”
총소리가 그치는 것을 보고 태영이 말을 시작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처단한다.”
김중겸을 포함한 여군들이 여전히 총을 조준한 채 말을 받았다.
“채민.”
태영은 자신이 쏜 총에 죽어 나간 가병들을 보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몸을 떨고 있는 여군 병사를 불렀다.
“……네, 넵, 대장님.”
잠시 동안 멈칫하던 채민이 총을 세워 가슴 앞에 세우고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두렵나?”
“…….”
“상대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처음 사람을 죽이면 두렵고 몸이 떨리는 것이 정상이다. 솔직히 대답해. 두렵나?”
“아, 아니. ……네, 그, 그렇습니다.”
“저들은 살아 있을 자격이 없는 놈들이다. 저놈들 때문에 우리가 구해 온 여인들 열다섯,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도 아이 넷이 죽었다. 저놈들은 연약한 여인들을 지켜 주지 못했으면서,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서 돌아온 여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살려고 발버둥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래도 저들의 죽음이 잘못되었는가?”
“아닙니다.”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지른 채민의 떨림이 멈추었다.
어린 녀석이다. 윤서이 소대에 편성된 것이 와카마쓰 토벌 이후였던 것 같은데, 태영이 기억하기로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하늘을 향해 고함 한번 질러라!”
“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채민이 바락바락 악을 쓰듯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 냈다.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채민은 태영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그래. 좋다.”
“대장님.”
정하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열 명 정도가 헐떡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정하연을 뒤따라 들어오던 의무병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선이의 아버지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또한 텐트 쪽에 있던 관병들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아마도 정하연 일행을 뒤따라온 모양이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박추서가 김중겸과 태영을 번갈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들이 왜 모두 죽어 있습니까?”
“우리에게 칼을 뽑으면, 우리는 용서치 않습니다.”
연나리의 대답이었다.
“뭐라? 네 이년. 너 뭐라 했느냐?”
박추서의 옆에 서 있던, 복장이 조금 다른 관병 하나가 연나리에게 호통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