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99
099. 월이의 귀환(6)
“관에서 왜병들을 막지 못해서 무고한 양민들이 죽었으니, 관은 당연히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박추서 맞는가?”
“……?”
눈만 껌벅거린다.
세상에 그런 의무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이곳에는 관의 의무에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태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향촌의 사람들에게 조세는 받았는가?”
“바, 받았습니다.”
“조세를 받았으면 지켜 주어야 할 의무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아, 마, 맞습니다.”
맞기는 개뿔을,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는 거지.
향촌의 평민들과 노비들은 크게 표정이 없는 것 같지만 얼굴에 화색이 돈다.
권택중을 바라보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인데, 분위기상 말을 못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박추서는 왜병이 쳐들어왔을 때 권택중과 저기 있는 양반들을 지키기 위해 저들을 뒤쫓는 왜병들을 막았다고?”
“네, 네, 그렇습니다. 대장님.”
그런데 권소연은 왜, 어떻게 왜병들에게 납치되어 간 것일까?
분명히 결혼식 때였다고 했는데.
아무튼, 지나간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의 진상을 파악하러 온 것은 아니니 그대로 묻어 둘 수밖에.
“관병들이 권택중과 저기 있는 양반들을 지키기 위해 양민들이 죽는 것을 방치했으니,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 책임은 권택중과 양반들에게 있다. 맞느냐?”
“…….”
태영이 박추서에게 물었지만, 박추서로서는 당연히 대답을 못 할 것이다.
“네 이놈, 나라에 법도가 있거늘, 양반에게 이 무슨 행패이며 그 무슨 말 도 안 되는 망발이냐?”
한쪽에 서 있는 양반 중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법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법도가 어디에 쓰여 있는지 내 앞에 한번 보여 봐라.”
태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멈칫.
못 가져오지?
그런 것이 만들어져 있는지 없는지 태영도 잘 모르겠지만, 당연히 없을 것이다. 설사 있다고 해도 이런 촌구석에 있을 리가 없다.
“가지고 올 수 없으면, 까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 그리고 중대장은 저따위 돼먹지 못한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놈이 있으면 이후부터는 책임을 묻도록.”
“네.”
김중겸이 그 양반을 바라보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지만 얼굴에는 엄청나게 화가 났음을 보여 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영은 왜병들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가족당 은병 하나와 은자 10냥씩을 지급하라.”
아~
탄성과 부러움의 한숨이 들려왔고, 눈물을 흘리면서 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저 쓰레기 같은 권택중이라도 주인이라고 저놈을 지키다가 죽은 가병의 가족에게는 은병 한 개와 은자 스무 냥을 추가로 지급하라.”
태영의 말에 권 영감을 지키다 죽었다는 가병 아내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태영은 말을 이었다.
“나이 든 노모의 아들이자, 한 여인의 남편이며, 두 아이 아버지의 목숨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보상을 하여 가족들이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도록 함이 마땅하다.”
아이를 업은 여인이, 태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혹시 무슨 말인지 알면 제게 설명 좀 해 주세요, 하는 표정이던 여인에게 잔디가 다가가 귓가에 입을 대고 설명을 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태영을 한번 쳐다보고 권택중을 쳐다보았다.
권택중을 쳐다보는 것을 본 잔디는 아마도 걱정하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태영을 향한 두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던 그 가병의 아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앙!”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사내아이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무너져 내리는 엄마의 어깨를 안았고, 등에 업힌 딸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며느리의 등에 업힌 채 우는 손녀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며 달래던 노모가 노구를 이끌고 어렵게 몸을 일으키더니 태영을 향해 아무 말 없이 큰절을 했다.
노모는 한참 동안이나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온몸을 떨고 있는 것이 태영의 눈에도 보였다.
마음이 짠했다.
이런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야 한다.
“권택중의 노비들은 소연 낭자의 유언으로 오늘부로 모두 면천한다. 그리고 노비였던 가족들에게는 가족 단위당 은병 1개와 은자 10냥을 지급하고, 식구 한 명당 은자 다섯 냥을 추가로 지급한다.”
아~
역시 비슷한 감탄사와 부러움의 탄성이 들려왔다.
“오늘부로 권택중이 소유한 모든 농지와 재산은 몰수하고, 권택중의 노비로 살던 이들과 권택중의 땅에서 소작을 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한다.”
와아~
이번에는 함성이었다.
“네 이놈, 감히 네놈이 무엇이길래 내 재산을 마음대로 몰수하고, 노비들을 네 마음대로 풀어 주겠다는 소리냐?”
권택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에서도 태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래, 맞아. 따지고 보면 태영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내가 그런 말 참 좋아하는 거, 너는 모르지?”
“무어라?”
“힘이 있잖아? 너도 네가 데리고 있는 가병들의 힘으로 이따위 짓들을 했잖아. 그치?”
“뭐? 뭐라?”
“중대장, 이놈이 제가 힘으로 누르면 당연한 거고, 다른 사람이 힘으로 누르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져다 댈 모양인데, 입 좀 다물게 만들어.”
지시를 받은 김중겸이 꿇어앉아 있는 권택중의 앞으로 가더니 다시 구둣발로 배를 냅다 차 버렸다.
“허윽.”
권택중의 비명 소리보다 먼저 몸이 몇 바퀴를 구르며 수 미터를 밀려났다.
그 모습을 본 아들과 딸이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도 같이 구타를 당했다.
태영은 가족들에 대한 노비 문서를 보고 있었다.
월이의 어머니와 열 살쯤으로 보이는 남동생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알려, 무고한 사람들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희생한 월이의 뜻에 대한 보상으로 월이의 가족에게는 은병 다섯 개와 은자 쉰 냥을 지급하라.”
그것까지 지시하고, 태영은 바로 옆에서 불타고 있는 장작불을 바라보았다. 비서실의 병사가 만든 장작불이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노비 문서이다.”
태영은 노비 문서를 높이 들어 불 속에 집어넣었다. 불꽃은 노비 문서를 삼키면서 더욱더 기세 좋게 타올랐다.
“그리고, 저기 있는 양반들의 전답은 몰수하지 않겠다. 그러나 노비들은 역시 마찬가지로 면천한다. 아울러 저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들을 몰수하여 노비로 있었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무어라?”
“네 이놈 뭐라 했느냐?”
태영의 말을 끊고 양반들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양반이란 것들은 학습 능력이 형편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양민들을 수탈하는 것은 정상이고, 양민들이 자신들을 수탈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지극히 아전인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아, 맞아. 그게 내로남불이지.
권택중이 당할 때는 자신들이 당하는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가만있었는지 모르겠다.
태영이 이미 지시한 바가 있었으니 병사들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슬슬 피하는 사람, 그리고 어디 해 보라는 듯이 배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퍼억~
병사 중 한 명이 배를 내민 양반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돌려 당기며 니킥을 날렸다.
“컥!”
니킥, 이거 무지 안픈데, 아마도 거의 죽을 것 같을걸.
다른 병사 한 명은 또 다른 양반에게 개머리판으로 귀 쪽을 후려쳤다.
퍽~
“악!”
니킥에 맞은 사람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땅을 짚고는 침을 질질 흘렸고, 개머리판에 가격당한 사람은 피를 흘리며 옆으로 쓰러진 채 몸을 경련하듯이 파닥거렸다.
폭력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지 깽깽이 같은 말을 하는 놈이 혹시 없나? 작살을 내 줄 텐데.
이놈들에게는 항거할 수 없는 폭력은 가장 진실 된 가르침이다.
“또 할 말 있는 사람?”
태영이 그들을 바라보며 해 보라는 듯이 말하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우리가 구해 온 여인들을 자진하게 하고, 바다로 내몰아 죽을 수밖에 없도록 한 권 영감과 저기 서 있는 양반들에게 그에 대한 죄를 묻겠다.”
***
2시간 동안 심문과 증언 형식을 빌린 일종의 청문회이며, 일종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미 권택중이나 다른 양반들이 태영에게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향촌의 사람들은 와카마쓰에서 구해 온 여인들이 가혹하게 괴롭힌 사람들을 지목하고 그 죄를 밝히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권택중과 그의 처를 포함한 양반들이 벌였던 참극의 비밀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대부분 밝혀졌다.
이들이 그 여인들을 죽음으로 내 몰 때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늘 하던 것처럼,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권력과 가병의 힘으로 찍어 누르고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모든 일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여기 있는 향촌의 모든 사람들이 들은 바, 그 모든 죄가 드러났으니 지금부터 형을 선고하고 판결하겠다. 권택중과 그의 뜻에 동의하여 여인들을 자진하도록 손을 쓴 권택중, 권택상, 권택현, 권택균 네 명은 사형에 처한다.”
이곳은 권씨 일가의 아성이다. 양반이라고 이름을 올린 자들은 대부분이 권씨다.
권씨가 아닌 양반가 일부가 더 있긴 했지만, 그들도 권씨 일가의 친인척이었다.
태영의 선고에 곳곳에서 탄식의 목소리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네 이놈은 욕도 아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지만 태영은 태연스레 눈짓을 했고, 김중겸이 병사들을 불러서 네 명을 한쪽으로 끌어내었다.
“권택중의 아내는 관노로 삼고, 그 세 아들과 딸에게는 애비와 어미의 죄를 연대하여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에 따라 현재의 가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권택중의 농토 중에 일부를 지급하여, 그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할 수 있도록 선처 한다.”
선처는 개뿔.
그런데, 집안일을 해 줄 노비가 없네.
그럼 직접 농사도 짓고, 밥하고 빨래하고 해야 할 테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니 이제 편하게 살며 호령하던 시절은 끝이 난 셈이다.
향촌을 떠나 사포로 가려는 사람들이 살던 집을 면천시킨 노비들에게 배정했다.
“형을 집행하라.”
탕, 타다당~
태영의 명령에 병사들의 총구에서 총성이 울렸고, 이에 따라 비명과 아우성, 그리고 혼절하여 바닥에 쓰러지는 양반가의 여인들이 나왔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총성과 함께 쓰러졌는데, 그리고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호장과 거기 있는 양반들에게 경고한다. 오늘 이후에 내가 집행한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들에게 지급된 재산과 농지를 부당하게 갈취하거나, 사기 또는 허위로 가로채거나,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그들을 핍박하면 내가 다시 향촌에 오는 날 모조리 사형에 처할 것이다. 알아들었는가?”
“예.”
제법 큰 소리로 대답한 호장과 달리 양반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거기 있는 양반들. 대답하지 않은 것은 내 말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
“그런가, 아닌가의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라.”
“…….”
여전히 서로의 눈치만 보면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중대장.”
태영이 김중겸을 불렀다.
“넵.”
“내 말을 거부하는 모양이다. 모조리 사형시킬 준비를 하라.”
“전체 사격 준비.”
김중겸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의 총구가 올라갔고, 노리쇠가 당겨지며 양반들을 겨냥했다.
병사들은 서로 간에 자신은 누구를 겨누었다는 신호를 주며 중첩되지 않도록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네 이놈, 네놈이 무엇이기에 감히 우리에게 하라 마라 하는 것이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삿갓을 쓴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젊은 혈기에 끝까지 한마디 해 보겠다는 이런 놈이 있다.
그의 말에 호장이 큰일 났다는 듯 행동을 취하는 사이.
탕~
총소리와 함께 미간에 새겨지는 점.
그리고 주르르 피가 흐르고 짚단처럼 쓰러졌다.
아악~
비명 소리가 울렸지만, 그것은 죽은 사람의 비명이 아닌, 바로 옆에 있던 여인의 비명이었다.
태영이 한번만 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이미 내려진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저리도 젊은 놈이 사소한 자존심으로 오기를 이겨 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그렇지만, 저런 성격이라면 양반의 위세로 양민들을 많이 괴롭힐 것 같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말았다.
“또, 거부하는 사람은 의사 표시를 하라.”
태영은 마음속과는 상관없이 냉랭하게 다시 말했다.
“그,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화가 잔뜩 난 억양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답을 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는 것인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이, 한 명이 대표로 했는데 또 뭘 하느냐는 느낌이었지만, 태영은 이쯤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런 것은 시작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시작한 이상 뿌리를 뽑아야 한다.
“대답한 사람은 저쪽으로 서라.”
이 말이 신호였다.
모두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인들은 그냥 서 있다.
“여인들도 마찬가지. 알겠는가?”
태영의 입에서 여자들에 대한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대답을 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권택중의 아들들과 어린 딸 역시 제 오빠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태영은 권택중과 그 가족들을 모조리 지워 버리려 했는데, 소연의 어린 동생들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용서하는 중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한 약속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약속이 지켜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자주 오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와서 확인했을 때 단 한 가지라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거나 농토를 분배해 준 사람들에게 피해가 있다면, 오늘 약속한 양반들 모두에게 연대하여 책임을 물을 것이다.”
모두들 눈치를 보는 표정들이 제발 빨리 좀 사라져 주면 좋겠다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그 말은 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책임은 모두에게 묻겠다는 말이다. 반드시 명심하라.”
태영은 일부러 한 번 더 강조했다.
“호장.”
“네, 대장님.”
“내가 떠난 뒤, 호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그 역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현령이 향촌에 오거든 내 말을 전해라. 내가 오늘 처리한 일을 부정하고 돌려놓으려고 한다면, 현령과 그 명을 받아서 수행한 관군들과 그 가족들은 내가 그것을 아는 순간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알겠는가?”
“명심하겠사옵니다.”
비서실 직원들이 가족 단위로 지급하기 시작했던 은병과 은자의 지급이 모두 끝난 모양이다.
“모두, 돌아간다.”
***
사포로 돌아가는 해룡호의 갑판에 서서 바람을 맞으니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이 시대로 날아와서 성격이 포악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왜 목숨을 쉽게 취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21세기 현대 같으면 절대로 이런 일로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많이 참고, 많이 양보하며 살았을 것이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다. 아니, 순한 양처럼 살아왔다.
소시민에 지나지 않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법으로 정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와서는 그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무기를 품에 넣고 있다는 것 때문인지 기본에 어긋나는 상대를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송나라나 왜국에만 한한다면 별문제가 없을 테지만, 고려 땅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해요?”
“음. 별거 아니야.”
정하연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오늘 죽은 사람들 때문에 그렇지요?”
“…….”
태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요, 당신 마음. 아프겠지요.”
“그래. 조금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