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generation tycoon YouTuber RAW novel - Chapter (207)
“솔직히 나도 직장 구하려고 하는 학생들한테는 대학원 얘기 꺼낼 생각 없어. 미안해서 어떻게 그래? 요즘 교수 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용만 당하고 굶어죽기 딱 좋지.”
“네….”
“그런데 자네들은 다르단 말이지? 이미 장래 직업 걱정은 안 해도 돼. 게다가 대학원 학비는 별로 부담 안 느낄 거 같고. 그리고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입대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고.”
“그러네요.”
우리는 어느새 청산유수 같은 김상현 교수의 말빨에 휘말려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교수이기 이전에 학자야. 대학원 권할 때는 실제로 학문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해야 양심에 안 찔리지.”
“학문적인 관점이요?”
“응. 사실 이게 그 결정적인 근거야.”
“음?”
김상현 교수가 손에 들고 흔든 ‘근거’는 다른 게 아니고 바로 우리가 제출한 과제물이었다.
“이게 지금 학부생의 수준의 성과가 아니야. 자네들이 사용한 데이터가 이게 일반 대학원생이라도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건 줄 알아? 이건 교수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야. 돈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
“솔직히 세 명이 낸 과제, 문제 많지. 셋 다 글 쓰는 훈련이 안 돼 있으니까. 완벽하다는 건 절대 아니야.”
김상현 교수가 완급을 조절하며 말했다.
“…”
“그런데 우리 ‘미컴(미디어커뮤니케이션)’도 어디까지나 사회학의 한 분야라 얘기가 달라지지. 글을 잘 못 써도, 이렇게 질 높고 양 많은 데이터를 갖고 논문을 쓰면 이건 그냥 깡패라고. 어디에 내놔도 인정받아.”
“그렇겠네요.”
우리 셋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대학원 오면, 실제로 학계에 기여할 수 있고, 또 학자로서 개인적인 명성도 쌓을 수 있을 거야. 교수로서 오히려 안 권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까?”
“으음.”
“대학원 진학을 아무한테가 권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건 맞지. 그런데 이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나’가 아니거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모든 교수가 똑똑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가끔 똑똑한 교수들 만나면 ‘이 인간, 천잰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김상현 교수가 그런 사람이다.
괜히 학생들한테 존경받고 인기 끄는 게 아니라니까.
“사실 저는 대학원 생각이 있긴 해요.”
“어머?”
범수의 말에 희연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벌써 설득당한 건가?
나도 희연과 비슷한 표정으로 범수를 보았다.
“사실 교수님 말씀 듣기 전에도, 얼마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저 촬영하고 편집에 관심 많잖아요.”
“그건 나도 알지. 채널에서 그쪽 일은 주로 범수가 하는 거지?”
김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채널 영상 보면서 자기 학생 중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대충은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네. 범수가 진짜 손도 빠르고, 그쪽으로 감각이 좋아요.”
내가 범수를 칭찬했다.
“그건 저도 인정.”
희연도 내 말에 맞장구쳤다.
“뭐야. 훈훈하구만?”
김 교수가 씨익 웃었다.
“어쨌든, 근데 정말 대학생은 꿈꾸지도 못할 장비들 만지는 기회를 얻었잖아요. 이거 저거 실험해 보면서 논문 같은 거 쓰고, 촬영이나 편집 이론 같은 거 내보면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거 평생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범수가 머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오호. 아주 훌륭한 대학원생의 마인드로군?”
“허걱.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다시 생각을…”
범수가 놀라서 머리를 저었다.
“하하하. 그만큼 요즘 대학원생 이미지가 바닥이긴 하지.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대학원 갈 수 있는 형편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어. 정말 공부할 수 있는 사람만 오니까.”
“음. 그렇군요.”
“어쨌든 정리하자고. 일단 세 명은 대학원에 오면 남들보다 훨씬 연구 잘할 수 있고, 연구자가 되든 교수가 되든 어쨌든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오케이?”
김상현 교수가 정리를 시작했다. 그의 교수로서의 특기기도 하다.
“네.”
“그리고 남학생 2명에게는 군입대를 미룰 수 있는 아주 좋은, 사실상 유일한 경로다. 오케이?”
“오케…이.”
“그리고, 이미 우리 학교와 학과에서 주목하는 학생들이니, 만약 들어오면 상당히 환영받을 거고, 장학금 등 특혜도 있을 거다. 오케이?”
“네. 오케이.”
“그래. 정리하면 그 정도야. 어쨌든 이번 과제 아주 잘했어! 다음 학기에도 기대할게. 그리고, 우리 학교 홍보는, 내가 섣불리 이런 게 좋겠다 저런 게 좋겠다 맡기지 않겠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 있으면 다음 학기 개강할 때 알려줘.”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하자고. 나는 다음 스케줄 있어서.”
엄청 카리스마 있게 김 교수가 미팅을 끝냈다.
* * *
“휴우. 정신없어.”
연구실에서 나온 희연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지금 영업 당한 거냐?”
범수가 물었다.
“네가 그런 소리 할 상황이냐? 자기가 넙죽 ‘대학원 갈 생각이 있어요’라고 해 놓고서.”
희연이 범수의 팔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아니. 들어 보니까 진짜 우리한테 유리할 거 같긴 해.”
범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래. 군대 때문에라도 안 갈 이유가 없긴 하다.”
나도 수긍했다.
“어쨌든 교수님 말 잘한다.”
희연이 말했다.
“그러게.”
나와 범수도 인정했다.
“교수님 우리 채널에 한번 출연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희연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
“무슨 생각?”
“사실 나는 그런 생각도 했거든.”
희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꽤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평소 희연의 말투와 달랐다.
“어떤 거?”
“나는 우리 채널이 이렇게 판타지처럼 성장한 게, 솔직히 현준이가 ‘출생의 비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뭐,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응. 그리고 범수하고 나는 현준하고 친구인 덕에 덩달아서 그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음.”
“조금 전에 교수님 보니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
“무슨 생각?”
“우리 전공이 생판 다른 거고, 저런 교수님한테 이것저것 배워놓은 게 아니었으면 기회가 와도 못 잡았겠구나.”
“오.”
희연의 그 말에는 범수가 강하게 반응했다.
“맞아. 나도 그 생각 들었어.”
범수가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현준이가 미컴 전공 아니었으면, 상속받은 돈으로 비트코인 사지 않았을까? 주식장에 뛰어들었거나.”
“어우. 그러게. 진짜 끔찍하다.”
희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운도 운이지만, 우리 전공이나 현준이 능력도 분명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 겸손한 것도 좋지만, 확실히 현준이가 잘한 것도 있지.”
“으. 갑자기 분위기 왜 이러지.”
내가 얼굴이 살짝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머리를 긁었다.
“어쨌든 내가 말하기는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 같다, 뭐 이거지.”
희연이 이렇게 말하고, 자신도 낯간지러운지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교수님 대단하다. 워낙 말빨이 좋아서, 뭐든 시켜 놓으면 될 거 같은데.”
“어?”
내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아. 뭔가 생각났어. 교수님이 학교 홍보 방법은 우리한테 아이디어 맡긴다고 했지?”
“응.”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오. 뭔데?”
– 디리링~
그때, 타이밍 좋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야.”
현민이었다.
“오, 현민. 오랜만.”
“너, 유튜브 봤어?”
“응? 무슨 유튜브. 보긴 맨날 보지.”
“내가 톡으로 링크 보내줄 테니까 한 번 봐. 풉.”
현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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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상이길래?”
“일단 처음 링크 하나 보고, 또 그다음 링크 순서로 봐.”
내 질문에 대한 현민의 답이었다.
“응.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범수와 희연에게 제안했다.
“오래간만에 학과실에 좀 가 볼까?”
“아무도 없을 텐데. 겨울방학이고, 코로나고.”
범수와 희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서 시간 좀 보내자고. 그리고 현민이가 뭔가 보내준 게 있어. 같이 보자.”
“오케이. 말 나온 김에 가 보자. 어떻게 돼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
“응. 가자.”
다행히, 학과실이 잠겨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어휴. 거의 몇 달 동안 아무도 안 온 것 같아.”
“그러게. 좀 씁쓸하다.”
“코로나 터진 직후에는 어떻게라도 기를 쓰고 학과실에 오려고 했었는데.”
“그치. 근데 2년 가까이 안 오게 되니까, 이 공간에 오고 싶어 할 정도로 애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진 거지.”
“좀 씁쓸하네.”
“영상 찍어서 올릴까? 이런 제목으로?”
“그것도 괜찮네. 그런데 우리 학교를 너무 대놓고 올리면, 역효과도 있을 거 같아.”
“그래. 우리 신분도 그렇고. 또 남들한테 보여주기 좋은 모습도 아니다.”
“일단, 현민이 보내준 링크나 보자. 녀석이 보내준 거면, 아마 뭔가 볼만한 게 있겠지.”
내가 학과실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응.”
하지만, 현민이 보여준 건, ‘볼만한 것’의 정반대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아이패드 프로를 꺼내서, 현민이 보내준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
“푸하하. 이게 뭐냐?”
범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머.”
희연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K그룹 4세, 정호찬이라고 합니다.
우리 또래의 남자 녀석이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뭔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 저는 K그룹에서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룹의 주주들, 또 소비자분들과 눈높이 소통하는 게 그룹 경영자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어, 음….”
내가 못 참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두피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 그래서 제가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보고 판단해주세요. 재벌 가문의 일상에 대해 제가 최대한 소탈하게 전달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짧은 영상이었다.
아마 영상이 끝난 후 우리 사이에 흐른 침묵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이거,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하냐?”
희연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2020년대에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구림이 다 묻어 있는데.”
“일단 영상의 구도부터가 심각한데.”
범수가 중얼거렸다.
그럴만하다.
바스트업 샷(얼굴과 가슴이 나오는 샷)으로 촬영했다.
증명사진이냐고.
2000년대 초반의 젊은 CEO가 자기소개할 때 쓰였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구도였다.
근데 이게 유튜브용으로 만든 영상이니 문제다.
“게다가 ‘최대한 소탈하게’라고? 저렇게 말하면 너무 재수 없지 않아?”
희연이 말했다.
사실 구도는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영상 저변에 깔려 있는 마인드가 더 무섭다.
거의 ‘나는 재벌가 직계인데 너네 우리 사는 거 보고 싶어하는구나? 그럼 최대한 눈높이 맞춰서 찍어줄게.’라고 하고 있는 듯한 태도와 멘트.
K그룹이면 재계 서열 5~10위권에 있는 그룹이다.
L그룹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얘 얼굴 본 적 있어? 재벌 4세라는데 영 모르겠는데.”
희연이 나와 범수에게 물었다.
“아니. 본 적은 없는 거 같아. 그런데 K그룹 가문 사람들 얼굴이 대체로 이런 스타일이었던 거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