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generation tycoon YouTuber RAW novel - Chapter (81)
“흐음. 그랬군. 그건 나도 모르던 얘기네.”
고장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냥 내 아버지로서 상대하는 거지, 자기 남편이나 연인으로 상대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아무리 어렸어도 그건 느껴지죠.”
“그래…”
고장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바탕으로 추리를 해 보면…”
미리 생각해 놓은 거긴 하지만, 말로 꺼내려니 나도 목이 잠겼다.
“엄마와 아버지가 만나는 과정도 그렇게 로맨틱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
고장혁의 눈이 빛났다.
나는 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삼촌이 굳이 조카한테 해 주는 게 맞는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를 안 해 줘도 돼요. 제가 물어보죠.”
“응. 그렇게 해.”
내 표정이 심각했기 때문인지, 고장혁의 표정도 같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고장혁이라도, 이런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실실 쪼개며 ‘출생의 비밀’ 썰을 풀어 놓지는 못하겠지.
“좋아요. 물어보지요.”
내가 살짝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음.”
“아버지가 여성 연예인들하고 사고 많이 쳤다고 했죠? 그때 아버지가 재벌가 아들로서 본인의 권력을 남용했었겠지요?”
“그랬지.”
고장혁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하고 만날 때도, 그 권력을 이용했지요?”
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 맞아. 사실 너희 아버지가 사용하는 수법이 있었어. 나한테도 몇 번 얘기해준 적이 있지.”
“어떤 거요?”
“방송국 사람들 인맥 이용해서 자리 마련한 다음에 좀 친하게 지내지. 후원하겠다고 식사 자리도 가지고. 그러다가 때가 됐다고 판단해서 단 둘이 남게 되면…”
“음. 그렇군요. 일단 재벌가 아들에게는 그 당시로서는 식은 죽 먹기였겠죠. 엄마 도와줄 사람도 없었을 거고.”
“그래…”
“후우…”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미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제가 생기고. 엄마는 은퇴한 거죠? 본인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사실 강제로 은퇴당한 거겠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목이 잠겼다.
“20년 전이면 한국이 보수적일 때야. 지금도 많이 변했느냐 하면 솔직히 모르겠고.”
고장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가정 있는 재벌집 아들의 자식을 임신했어. 그게 자발적인 건지, 당해서 그런 건지는 별로 변수가 안 됐지. 아무 문제 없는 연인과의 사생활이 까발려지면 여성 연예인이 죄인처럼 은퇴해야 하던 시절이니까. 어차피 너네 엄마의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은 그때 끝난 거야.”
고장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본인이 피해자인데 죄인이 되어버렸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장혁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그래서 자기가 죄인인 것처럼 커리어 집어던지고 스스로 사회에서 격리되어 혼자 저를 키우다가, 그래도 저를 위한 마음에 아버지와 만나도록 해야겠다고 판단했겠죠.”
“…”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재벌집 가문이랑 다시 엮여 보니까 제 성장에 하나도 득 될 거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겠죠. 그래서 다시 아버지하고 갈라선 거고.”
재벌집 사람들이 나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대하는 걸 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고현욱과 고현석도 나를 괴롭혔지만, 아마 엄마 눈에 더 잘 보인 건 그 집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벌레처럼 취급하는 현실 아니었을까.
“그래. 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야. 나는 오히려 가문에서 쫓겨난 상태였기 때문에, 네 아버지 이야기를 가십처럼 전해 들었지. 너하고 너네 엄마는 거기서도 몹쓸 짓을 당했었어. 가문 사람들한테.”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생각대로다.
같이 철모르는 어린아이였던 현민을 제외하면, 나를 제대로 된 인격체로 대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게 다 사연이 있었던 거지.
“이거, 다 알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군. 내가 굳이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네.”
“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고장혁은 내가 다시 입을 열기를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고마워요.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물어도 확인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니나 외할아버지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버지한테 몹쓸 짓 당한 거예요?’라고 엄마한테 어떻게 물어보나. 외할아버지한테도 못 물어볼 질문인 건 마찬가지다.
“괜찮아?”
이렇게 물어봐 주는 고장혁이 순간 꽤 인간미 넘치게 느껴졌다.
‘풋.’
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고장혁은 지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다.
정말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에 저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오산이다.
어머니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까발려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력적으로 정복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다면?
그러면 내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무혁의 악행을 알리게 되겠지.
그럼 고무혁이 천하의 몹쓸 인간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그리고 그 아들인 고현욱은?
대한민국은 아버지의 허물과 자식의 허물을 철저히 구분하는 나라가 아니다.
고현욱도 심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겠지.
그러면 고장혁이 L그룹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고현석이 전화로 그 지랄을 한 것도, 단순히 ‘부끄러운 일이 알려질까봐’는 아닌 것이다.
이 계산에 의해, 지금 고장혁이 나를 걱정해주는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
아마 내가 그 사실을 몰랐으면 일부러 알려줬을 거다.
물론 그도 사람이니까 내 앞에서 순간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겠지.
지금 짓고 있는 인자한 표정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고장혁의 머릿속에서 찰칵찰칵 돌아가고 있는 계산기 소리도 분명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고장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나는 씨익 웃으며 답을 피했다.
순간 고장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궁금하겠지.
‘억울하게 20년을 빼앗긴 엄마를 다시 스타로 만들어야죠! 고현욱이 박살 나든 말든!’
내가 이렇게 대답하길 기대했겠지.
하지만 나도 그렇게까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줄 생각은 없다.
“이제 음식 시킬까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어… 조카님, 음식이 목에 넘어가려나 모르겠네.”
“그럼요. 넘어가죠. 진상을 확실하게 알고 나니까 20년 묵은 체증이 풀리네요. 이럴 때 그 맛있다는 갈비찜을 먹어 줘야죠.”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흐흐. 알았어.”
고장혁이 웃으면서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치자, 종업원이 천천히 걸어 왔다.
“부르셨습니까.”
“응. 이제 음식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원래 여기는 음식 달라는 얘기하기 전에는 안 주나 보죠?”
점원이 인사하고 사라지는 걸 보고 고장혁에게 물었다.
“이런 데는 음식 먹는 거보다 대화가 더 큰 목적일 때가 많으니까. 중요한 대화가 끝나고 음식 시키는 사람이 많지.”
“그렇군요. 확실히 일반 음식점하고는 완전히 다르네.”
내가 씨익 웃었다.
음식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흑임자와 마, 그리고 송이를 갈아 넣은 죽입니다.”
“오.”
내가 음식을 보고 FX9의 초점과 앵글을 맞추는 걸 말없이 바라보던 고장혁이 입을 열었다.
“조카도 진짜 신기한 사람이야. 나는 조금 전 대화 나누고는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데. 20대 초반 나이에 말야.”
“그런가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촬영하고 있네. 이런 거 보면 조카님이 진짜 독한 인간이라는 게 느껴져. 고현욱보다 더 큰 그릇일지도 몰라.”
“현욱 형은 그렇다치고… 현민이는요? 저는 형보다 현민이가 더 만만치 않은 인간인 거 같은데.”
내가 FX9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하하하. 조카는 사람 보는 눈도 있네. 현욱이가 사자 새끼라면 현민이는 불여우지.”
“후후. 그럼 현석 형은요?”
“그 자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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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석이. 그 자식은 늑대 새끼지. 아닌가. 사냥개인가.”
고장혁이 웃었다.
“호오.”
나는 그 대답에 흥미가 생겼다.
“왜?”
“좀 의외인데요. 왜 그냥 개가 아니라 사냥개죠?”
“그 삼 형제 중에 만만한 놈은 없어. 그놈도 바보는 아냐. 겉으로만 바보로 보일 뿐이지.”
“아…”
그 말에 눈이 가늘게 떠졌다.
“형은 누가 봐도 듬직한 장남 스타일이고, 동생은 천재. 그러면 가운데 낀 둘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겠어.”
“단순무식 행동대장이요.”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 그렇지. 아마 좀 겪다 보면 그 자식도 몇 가지 재밌는 짓을 할 거야.”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으로 나오는 음식에 집중했다.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당연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고장혁의 인물평, 그리고 계속해서 나오는 산해진미에 집중하니 표정을 간신히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도 그럴 거라 기대는 안 했지만, 꽤 유익한 식사였다.
음식도 맛있었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몇 가지 인물평과 부대 정보까지.
고장혁 정도 되는 인물과 한담을 나누는 건 여러 가지 뜻밖의 수확을 주는 일이었다.
“내 차 타고 갈까? 집에 데려다주지.”
“아, 저 차 타고 왔는데…”
“그렇군.”
고장혁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혹시 수행비서 있으면 제 차 몰고 따라와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저는 삼촌 차 같이 타고요.”
“크크크. 알았어.”
고장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시켰다.
“한 비서. 저 차 좀 몰고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
한 비서라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발렛 파킹 담당자가 가져다준 내 차에 올라탔다.
굳이 왜 내 차를 고장혁 비서에게 맡기고 고장혁 차를 타고 가냐고?
사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 잘 이해하는 눈치였다.
발렛 파킹 담당자가 몰고 온 고장혁 차가 롤스로이스 팬텀이었으니까.
롤스로이스는 못 참지. 게다가 고스트도 아니고 상위 모델 팬텀.
“흐흐흐. 내가 조카 마음을 잘 알아.”
“무슨 마음이요?”
내가 시치미 떼고 웃으며 되물었다.
“이 차 탄 걸로 또 영상 건지려고 하지?”
“어. 맞아요.”
“하하하. 그래. 내 얼굴 안 나오게 해서 마음껏 찍으라고.”
“네.”
“오늘 나 때문에 영상 두 개 건지는 거 아닌가?”
“네. 삼촌! 감사드립니다!”
나는 모처럼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하. 우리 조카 공손하게 만드는 법이 바로 여기 숨어 있었군.”
고장혁은 나에게 롤스로이스 팬텀의 ‘사장님 자리’를 양보하기까지 했다.
“갈비찜 진짜 맛있네요. 마지막에 나온 그 멸치국수도 저는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롤스로이스를 뒷좌석에서 앉아 잠깐 촬영에 집중한 다음, 고장혁에게 말했다.
그때까지 고장혁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기다려주고 있었다.
“하하. 조카도 우리 핏줄이라 음식 맛을 아는군. 멸치국수 그거 물건이지. 근데 재료가 특별할 게 없으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
“아니에요. 국물이 진짜… 전 그렇게 텁텁한 맛 안 나는 멸치국수 처음 먹어봤어요.”
“흐음. 그래. 맞아. 멸치국수 맛은 나이가 좀 들어야 아는데… 조카도 혀가 발달했군.”
고장혁이 말했다.
“제가 예약해도 받아주려나요? 여기, 엄마랑 한 번 와야겠네요.”
“오. 엄마한테 맛있는 거 대접하려고? 효자네.”
고장혁은 아까 나하고 나눈 대화가 생각나서인지,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응?”
“엄마가 음식 비평을 엄청나게 잘하거든요. 콘텐츠 뽑으려고요.”
“…”
고장혁이 잠깐 말을 잃었다.
“조카님.”
“네.”
“그거 젊은 사람들은 컨셉충이라고 한다던데, 조카님, 유튜버 컨셉충인가?”
“헉.”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장혁에게 이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하하하… 저도 관종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흐흐. 솔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