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generation tycoon YouTuber RAW novel - Chapter (93)
범수도 나를 따라서 와인잔을 치켜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희연도 웃으며 와인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아니야. 아까 그래도 자연스럽게 잘 하던걸. 마스크만 안 벗으면 괜찮아. 그러니까 잘해 보자고.”
“어라?”
범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크만 안 벗으면 된다는 거… 신분 드러나는 거 걱정해주는 거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우리 채널 외모 평균 낮추지 않도록 신경 쓰자 이거야. 마스크 안 흘러내리도록 항상 조심해.”
희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어휴… 서럽다. 진짜로.”
범수가 울상을 지었다.
“하하하.”
내가 웃음을 터뜨리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부라더?”
“엇.”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고장혁의 아들 고현세의 전화였다.
“형. 웬일이세요.”
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갔어? 여행 떠났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쯤되면 슬슬 소름끼친다.
고현욱이고 고현세고 내가 스튜디오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거잖아.
‘어떻게 알아내는 거야… 심부름 센터라도 붙였나.’
“어떻게 아셨어요?”
“응. 어떤 유튜버가 너네 여행간 거 같다고 영상 올렸어.”
“푸웁.”
뿜었다.
“아니, 여행 장면을 찍는 게 아니라 여행간 거 같다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고요?”
“응. 그냥 너네 스튜디오 앞에 유튜버 많이 모인 것도 뉴스 거리라고 올렸어!”
“어휴… 환장하겠네.”
뉴스거리가 아닌 건 아니다.
하루종일 스튜디오에서 나를 취재하려고 기다리다 허탕치고 돌아가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그래서 아예 취재하러 몰려든 유튜버를 찍어서 올린 것이다.
일종의 틈새 공략이랄까.
“여행 좋지. 우리 아버지도 여행 갔어.”
“어, 그래요?”
“응. 몬테카를로. 너넨 어디로 갔어?”
“모, 몬테카를로?”
“응. 아버지가 거기 자주 가. 이번에 포커 치면서 우리 L그룹 운 좀 점쳐 보겠대.”
“허.”
스케일이 다르군. 언제 또 몬테카를로로 날아갔대.
“이제 본격적으로 선거가 다가오고 있잖아.”
“네.”
“이제는 내가 이사 후보야. 그래서 주주들한테 인사도 하고, 공약도 좀 전하려고 전화 돌리고 있어. 사실 이 전화도 그래서 한 거야.”
“아.”
그래. 이게 정석이지.
이렇게 전화를 공식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훨씬 속이 편하다.
‘확실히 미국인은 미국인이군.’
가만. 그런데 고현욱 국적은 어디지? 거기도 미국 아닌가? 어쨌든.
“지금 L자동차 어떻게 생각해?”
고현세가 물었다. 새삼 그의 미국식 억양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글쎄요. 재미 없죠.”
“그렇지? 나도 그래.”
어라? 분위기가…
“내가 이번에 L자동차 경영 맡으면, 자동차 회사 전략을 확 바꿔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
어라라. 나 이번 주주총회에서 고현세 찍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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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응. 지금 만년 2위잖아. 게다가 점유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수입차들한테 치어서. 요즘엔 벤츠가 몇 만 대씩 팔리는 세상이니 말야.”
고현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죠. 맞아요.”
이 인간 고현욱과 조금 전에 나눈 대화 도청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L자동차 경영권 확보하면 신차 개발에 주력할 거야. 어떻게 생각해?”
“좋죠… 저도 사실 그 생각을 했었는데.”
“그리고, 요즘에는 그런 신제품 만들면 TV광고보다 바이럴마케팅이 더 효과가 있거든. 그러니까 부라더 현준의 유튜브도 활용할 여지가 많을 거 같고.”
“부라더 현준이라니…”
실소가 터지는 호칭이었지만, 밉지는 않았다.
“하하.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 생각하고 무릎 탁 쳤는데.”
“꽤 괜찮긴 하네요.”
“오. 역시. 부라더 현준한테 전화하길 잘했어. 그럼 구체적으로 자료 만들어서 보낼 테니까 검토해 줘!”
“네, 네. 알겠어요.”
고현세와의 전화는 매우 깔끔하게 끝났다.
“흐음…”
나는 잠깐이지만 생각에 잠겼다.
둘 중 누구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물론 없다.
그런데 고현세는 쳐들어오는 쪽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제대로 준비해서 움직이는걸?
이대로 가면 L자동차 경영권 선거에서는 고현세 쪽 손을 들어주게 될 거 같다.
‘이러다간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와 생명에서도 계 다 밀어주게 되는 거 아냐?’
그렇게 되면 힘의 균형도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내가 한쪽 편만 들어준 게 된다.
“아,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 탁! 탁!
“이제 조개 다 익은 거 같아.”
범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는 소리 내면서 익고 있는 조개들을 하나씩 불 위에서 꺼냈고 있었다.
“응. 응.”
나도 씨익 웃으며, 희연과 범수 옆에 가서 앉았다.
– 팅~
셋이서 와인을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
“야. 조개 진짜 맛있다.”
희연이 기뻐했다.
“그치. 서해바다는 조개구이라고.”
범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바다도 진짜 예쁘고. 동해랑은 또 다르네.”
“그러게 수심이 덜 깊어서 그런가. 뭔가 조용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있다.”
희연의 말에 이번에는 내가 맞장구쳤다.
“근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
“응? 왜.”
희연이 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작은 캠핑카 끌고 왔잖아.”
“응.”
“큰 캠핑카 가져왔으면 차 위에서 테라스 펴 놓고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단 말야.”
“아, 하하.”
“지금 이것도 너무너무 좋은데, 더 좋은 걸 알아버리니 또 욕심이 나네.”
이렇게 말하는 희연의 얼굴이 와인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술 들어가니까 속에 있는 얘기를 많이 하네.”
“이게 무슨 속에 있는 소리야.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렇긴 해. 이거 2층 높이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진짜 죽이긴 하겠다.”
마침 석양이 아주 조금 남아서 수평선에 붉게 걸려 있었다.
“진짜 좋다. 유튜버 하기를 잘했어.”
희연이 말했다.
“응.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튜브를 해서가 아니라 현준이를 만나서 좋은 거 아냐? 혼자서 유튜버 했으면 이렇게 캠핑카 몰고 올 수 없었을 거 아냐?”
범수가 말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야. 고마워.”
희연이 와인잔을 살짝 내 쪽으로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나도 고맙다. 현준아.”
범수도 말했다.
“어휴. 왜 그래. 쑥스럽게.”
나는 남은 와인을 홀짝 입에 넣었다.
* * *
“어… 잘 잤어?”
아침이 되어 일어나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범수는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나는 캠핑카 트렁크 쪽의 침실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거실로 나왔다.
범수와 희연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어. 너네 일찍 일어났네.”
내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와인으로 취해서인지, 꽤 두통이 올라왔다.
“일찍은 무슨. 지금 10시 다 됐어.”
희연이 말했다.
“어, 그렇군.”
“너, 어제 좀 취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안 깨웠어. 속 괜찮아?”
“으. 사실 속 좀 안 좋다. 머리도 아프네.”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해장해. 다 됐어.”
“오. 뭐했는데?”
“어제 사 온 조개 잔뜩 넣은 라면.”
“우왓.”
저절로 입에서 침이 고였다.
“조개가 7가지 들어갔어. 끓이고 보니까 진짜 침 넘어간다.”
범수가 말했다.
“죽이네.”
내가 씨익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라면 냄비가 잘 찍히도록 액션캠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차. 좁은 데다가 수납공간 만드느라고 카메라 설치할 곳이 너무 많아. 진짜 여러모로 유튜브로 딱이야.”
범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좋네. 이제는 찍으란 말 안 해도 바로 촬영하는군. 믿음직하다.”
내가 말하자, 희연이 픽, 웃었다.
“너 자는 동안 아침 바다 영상으로 한참 찍고 왔거든?”
“오오. 그랬어?”
내가 반색을 했다.
“응. 서해바다라서 일출은 없을 거라고 기대 안 했는데, 햇살이 물에 반짝반짝 비치는 게 너무 예뻐더라고.”
희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야.”
내가 뭔가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응?”
“너네 왜 이렇게 갑자기 성격들이 친절하고 밝아졌냐.”
“어머.”
“크크크. 그러냐?”
내 말에 희연은 놀랐고, 범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응. 어제 희연이가 침대 양보한 것만 봐도 그렇고.”
“그게 뭐가 착해. 여자가 나 혼자니까 내가 1인용 침대에서 자는 거지.”
희연이 항변했다.
“불편하진 않았어?”
희연이가 잔 침대는 운전석 위의 짜투리 공간에 만들어 놓은 간이침대였다.
“솔직히 편하지는 않았는데, 어쩌겠어. 내가 몸집도 제일 작은데.”
“이거 봐. 희연이가 이렇게 착해지다니.”
내가 범수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맞아. 희연이 이번에 신경질 하나도 안 냈어.”
범수도 맞장구쳤다.
“그러는 너도 표정 밝기는 마찬가지거든?”
범수에게도 말했다.
“솔직히 팔자가 좋아서 그렇지, 뭐. 그러는 현준이 너도 얼굴 되게 좋아.”
“그런가.”
“응. 진짜 이번 여행은 힐링인 것 같다.”
을왕리 해수욕장의 일박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무엇보다, 대주주들한테 전화 돌리며 연신 굽신거려야 하는 고현욱, 고현세와 대비가 돼서 더욱 팔자 좋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우리는 점심까지 느긋하게 차려 먹고, 두 번째 목적지인 안산으로 향했다.
* * *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안산으로 가는 길 위에서, 조수석에 타고 있던 범수가 외쳤다.
“응? 무슨 소리야?”
“희연이 운전 살살하는 거 봐. 확실히 힐링 여행을 하니까 운전 습관도 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