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10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10화
망령을 부리는 여인(4)
갈등을 맞닥뜨린 상태에서 관점 자체를 비틀어 버리는 행위는, 매우 빈번히 일어난다.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은 바로 연인끼리의 말싸움.
1의 주제를 가지고 싸우다가, 갑자기 2를 꺼내고, 3을 꺼내고.
결국 원래 주제였던 1에 관한 내용이 희석되고.
지양해야 할 대화 자세이기는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배척할 필요는 또 없고.
지금은 ‘배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뱉어버렸으니까….’
세계 정상급의 콩쿠르를 ‘콘서트’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선포해 버렸으니까.
뭐라도 해야 했다.
고심 끝에 꺼낸 칼은 바로 여론전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앙리의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다.
└김도일 : ㅋㅋ 근데 내가 호루미츠보다 잘침 ㅋㅋ
솔직히 말하자.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그것도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고인을 건드리는 건 평시 전략으로서 그닥이다.
어그로는 끌리겠지만, ‘호의적’이지 않은 비판, 비난적 관심이 쏠린다. 어그로의 질 자체가 나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다만.
지금은 괜찮다.
나는 관점 비틀기를 시전해야 하니까.
└jam^s : ?
└mieeieiki : what the fucking about?
아니나 다를까, 대체 뭔 소리를 지껄이냐는 댓글들이 우수수 달렸다.
팔로워 수가 한 17만 가까이 되니 갱신 속도가 어마어마하더라.
-Umbum : (번역) 지옥에나 처박히십시오.
당연하게도, 나에게 호의적인 댓글 따위는 달리지 않았다.
번역까지 돌려서 욕을 적어 내려가는 이들이 대다수.
나는 그걸 쭉 읽다가.
댓글들을 다시 캡처하여 내 계정에 올렸다.
우튜브에 잉스타 사운드클라이머 등등
나와바리 전체에 그냥 총동원령을 내려 버린 것이다!
-kimrubber : 콘서트다!!!!
-Oooohminu : ㄹㅇ? 진짜 첫 콘서트 여는 거임?! 퀸 엘리자베스에서?!
-momori : 근데 저새기들은 감히 ‘음주’께서 콘서트 여신다면 그런갑다~ 하고 받아들이면 될 것인지 꼬투리를 잡네? ㅋㅋ
-박대리 : 드가죠? 링크 : https://www.ingstargram.com/aaaaanlllliiyl0y
-ㅈㅃㅉ : X바 자 드가자!!
나의 행보를 이해하고 있는 팬들은 내가 ‘콘서트’를 연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저들을 좌시할 생각 또한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개싸움판이 벌어졌다.
‘…앙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회귀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화력은 내가 더 위다.
숫자는 물론이요, 낼 수 있는 사기와 ‘질’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Wwite : 한국 애들 뭔가 이상해. 어떻게 퀸 엘리자베스를 향해 저런 망언을 내뱉은 놈을 좋아할 수가 있는 거지?
└신화맨 : ‘그’니까.
└신화맨 : 음주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이자 세상의 이치다.
-Jack aniel: 단단히 미쳤군. 십수 년 동안 피아노만 연습한 달인이랑 그냥 관심 끌기 좋아하는 엔터테이너랑 비교하는 꼴이라니.
└parkpark : 느금마
사람들의 관점은, 점점 변화해 나갔다
고귀한 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진짜 내 ‘콘서트’가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에 대한 궁금증으로!
‘좋아….’
판이 제대로 키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했던 대로 실력을 내비치는 것뿐.
나는 지긋이, 손에 쥐고 있는 악보를 내려다보았다.
세미 파이널에서는 반드시 미공개 곡 하나를 쳐야 한다.
윈스턴 암스타인이라는, 클래식계에서 이름빨이 꽤 날리는 양반이 작곡한 건데, 그 양반이 만든 곡 두 개 중 한 개가 랜덤으로 배정되는 것이다.
-under the clouds?
-special day outing-
내가 받은 곡은 후자다.
그리고 후자가 조금 더 불리한 곡이다.
‘지시문도 간단하고… 기교도 더 적네.’
한마디로 말해, 쉽다.
아무리 날고 기는 프로 작곡가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난이도가 똑같은 곡 두 개를 준비하기는 불가능한 법.
여기까지 와서 쉬운 곡을 선택했다고 해서 좋아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별 상관없지만.
어려운 테크닉이 적다면 끼워 넣으면 그만이다.
“흠….”
나는 오늘도 성을 다해 연습하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금 인터넷 상황을 확인했다.
붙여놓은 불씨는 삽시간에 번져 아주 활활 잘 타오르고 있었으며, 그리고…
-Melon ask : (번역) 아주 기대되는데?
뭐지.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어그로꾼 또한, 떡밥을 문 거 같다?
“…이 양반 예전부터 나한테 관심이 많네.”
찾아보니 강선자동차의 신작 광고가 공개되었을 날짜에, ‘noooooo!’라는 귀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니슬라를 절벽으로 밀어버렸는데.
아주 다행히도 삐치지 않은 모양이다.
‘좋아.’
모든 기회의 바람은 내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상납자답게 비누로 얼굴만 씻고서 보자르 홀로 향했다.
입구 쪽에 몰려 있는 기자들의 수는, 첫날의 세 배 이상이었다.
* * *
스코틀랜드 출신의 헤리 리드는 올해 퀸 엘리자베스의 ‘흐름’이 예년과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유는 아주 간결하다.
눈치가 빠르니까.
올해로 쉰. 심사 위원 중에서는 나이도 젊은 편이고, 커리어 자체가 고도의 눈치 싸움으로 쌓아 올린 것이니까.
‘…연주에도 유행이 있지.’
한 인물이 독특한 스타일의 주법을 정립하면, 그게 유행처럼 퍼져 나가곤 했다.
물론 매우 보수적인 판인 만큼 그걸 ‘의도적’으로 습득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헤리 리드는 달랐다.
유행하는 주법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 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체화시켰다.
그 덕에 줏대가 없다는 평이 항상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적어도 리사이틀을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는 호평 일색.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부정적 평은 옅어졌으며,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항상 진화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변화하기가 쉽지 않겠군.’
당연하다.
미친 인간 둘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명은 자신이 블라디미르 호루미츠의 연주를 그대로 구현한다는 여자.
나머지 한 명은…
“[시발! 저걸 또 입고 왔어!]”
“[돈이 없는 건가…?! 금시계는 잘 차고 다니는데?]”
“[중요 부위를 가릴 생각은 아예 없구만.]”
….
거의 6할 이상이 손실된 양복을 입고 브리쉘 거리를 활보하는, ‘그냥’ 미친 인간.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퀸 엘리자베스에서 우승을 거머쥘 것은 그녀 하나뿐이라,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다르다.
김도일.
일명 Lord of Music.
그가, 새로운 주법을 개발하여,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에게 동화되는 연주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퀸 엘리자베스 세미 파이널 라운드의 2일 차가 시작됩니다. 각 참가자는…]
이러나저러나, 오늘도 지체 없이 대회는 시작되었고, 헤리는 볼펜을 매만질 뿐이었다.
“[…꽉 찼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권위 있는 콩쿠르이니만큼 매번 관객석의 점유율은 높았지만, 오늘은 단 한 자리도 빈 곳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남은 공간에 사람들이 서 있기까지.
그 모습은, 말마따나 누군가의 콘서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우웅-!
수많은 잡생각이 꽉 들어차 있는 상태에서, 참가자들이 차례로 연주를 시작했다.
심사 위원 모두가 진지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으며, 자신만의 체크리스트에 연주에 대한 평가를 적어 내려갔다.
……역시나 온전히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4번 순번인 앙리와 5번 순번인 김도일이 너무나 신경 쓰였기 때문에.
아무리 음악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 다음은….
순번은 빠르게 흘러갔다.
심사 위원인 자신도 정신 상태가 이 지경인데, 참가자들이 느끼고 있는 혼란은 오죽하랴.
그저 이틀 차에 선정됐다는 현실에, 운명의 신을 원망할 뿐일 것이다.
그리고….
앙리가 등장했다.
그녀는 무대 위에 올라 간단하게 손을 흔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들려오는 것은, 리스트의 ‘위안’
곧바로 느껴졌던 것은.
“[어.]”
마치.
정말로.
블라디미르 호루미츠가 눈앞에 있다는 ‘착각’
‘…이게 무슨.’
헤리는 여러 주법을 습득하는 데 대부분의 노력을 쏟아왔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패러다임에 올라타 강화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앙리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고.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유행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과, 남의 능력을 카피하는 능력.
본질은 다르긴 하지만, 여러 주법을 구사한다는 면을 봤을 때는 같았다.
하지만,
“[…마치 피아노의 신이, 여기 있는 것 같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을 줄은 몰랐다.
본래 현실에서 ‘카피’를 한다는 것은, 원본보다 열화가 있게 마련인데.
저건 진짜….
“[아, 아니, 이게 ….]”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심사 위원 모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연주 중임에도, 이게 예법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입을 떼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리스트의 위안은, 생전 호루미츠가 자주 연주하던 곡이다.
침울한 날에 잔잔하고 진지한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멜로디가 특징이고,
보통은 이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데.
호루미츠의 연주는 조금 다른 계열이다.
마치 누가 옆에서 어깨와 등을 마구 두드리는 듯한 위로.
뭘 그런 걸로 꽁해 있냐며, 맥주나 들이켜고 잊으라고 팔을 잡아끄는 듯한, 든든한 친구를 두고 있는 듯한 위로.
그 느낌이, ‘지금’ 나고 있다.
“…말도 안 되는군.”
모두가 중얼거림에 동의했다.
특히 연배가 있는, 호루미츠의 리사이틀에 ‘직접’ 가본 적 있는 이들의 표정은 충격의 도가니 그 자체.
‘…너무 좋다.’
장난스러운 기교도, 건반에 딱밤을 때리듯 강약에 포인트를 주는 것도.
완벽하다.
“아….”
탄성과 함께, 연주가 끝났다.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진득한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에 응하듯, 앙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참가자 한 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연주자가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진다.
분명 작은 규정 위반이었지만, 제지하는 심사 위원은 없었다.
앙리는 침묵을 곧 동의로 받아들였다.
“[김도일 씨. 나와주세요.]”
그녀가 조용히 부르자, 김도일.
“[Lord of Music이다.]”
아니, Lord of music이 등장했다.
진짜 몇 번이고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속된 말로 X창 난 복장이었다.
“[…방금 제 연주를 똑바로 잘 들으셨으리라 믿어요. 제 잉스타 게시글에 ‘호루미츠보다 잘 친다’라고 댓글을 다셨던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사건이 있었나?
자신도 심사 위원 중에서는 젊은 편이기는 하지만, 진짜 10, 20대들보다는 인터넷 물정에 밝지는 않았다.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흥미진진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몰? 라?]”
그는 진짜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기 전까지는.
“[예?! 당신 분명 댓글로… 자기가 호루미츠보다 잘 친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증명을 못 하잖아. 그 양반은 죽었으니까.]”
“[제가 그와 같은 연주를 하는데요?]”
“[진짜?]”
“….”
앙리는 턱짓하며 자신들 쪽을 가리켰고, 김도일은 스윽, 표정을 한 번씩 훑었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근데?]”
“[아니… 근데라뇨. 피아노의 ‘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라고요!]”
“[넌 아니잖아.]”
“[…전 피아노의 신과 같은 연주를 하고 있어요. 그의 영혼을 손끝으로 품고 있다는 말이에요.]”
…규수 같은 성격의 앙리의 입에서 나왔다기에는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다만 이 역시,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영혼이라….]”
김도일은 다 찢어진 양복을 펄럭이며 턱을 괴었다.
그리고 한 20초 정도, 고민하는 듯한 시늉을 하더니.
“[그래서, 뭐 할 건데?]”
“[…네?]”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그리 물었다.
“[아니, 뭐 영혼을 담았다며. 그래서 앞으로 뭘 어떤 식으로 연습해서 어떻게 되겠다, 이런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렇다.
그런 것이다.
앙리는 주법은 완벽했다.
호루미츠가 노년까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스킬을 스물이라는 나이에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주법을 발전시켜 나갈지 궁금증을 품을 수밖에 없을 터.
근데…
“[그….]”
왜.
“[그건 …!]”
왜 앙리는.
…대답을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할 수가 없겠지.]”
“….”
“[따라 하기만 한 너는, 방법을 모르니까.]”
씨익.
김도일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영혼은 진화하는 법이다.]”
읊조렸다.
“[연습으로, 성공을 거머쥐는 것으로, 생각보다 자주 개X되기도 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
“[반대로 말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영혼이 아니지.]”
뚜벅뚜벅.
그가 앙리 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갔다.
이제까지 깨닫지 못했던, 확연한 체구의 차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네가 손끝에 담은 건, 호루미츠의 영혼이 아니야]”
다만, 지금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체구뿐만이 아닌….
“[망령이지.]”
‘영혼’의 크기 차이처럼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