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29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29화
극한을 향하는 남자(2)
명예란 참으로 오묘한 개념이었다.
누구는 별것 아닌 걸로 여기면서도, 또 누군가에겐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하고,
누군 쉽게 얻고 쉽게 잃으면서도 다른 이는 무사히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젊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길이 창창한 이들보다는 나이 든 이들이 바라 마지않는다는 점일까.
요즘 게임으로 따지자면, ‘엔드 콘텐츠’라고나 할까?
서울음대 양광수는 그런 엔드 콘텐츠에 고군분투하는 인간이었다.
열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하여, 수많은 우여곡절을 걸쳐 지금 딱 쉰.
이제부터 서서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 땅에서, 노년에도 자신을 찾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들어 두려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한, 뭔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수많은 수를 두어왔다.
돈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금전적으로는 괘나 여유가 있었고, 그렇기에 ‘기부 활동’ 같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도 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문화 활동을 잘 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리사이틀 나눔도 하고.
‘다른 의미로 채워지는 느낌이었지.’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부족하군.”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머릿속에 떠오르던 의문.
손쉽게 인지도를 쌓을 수 있으면서, 존경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뭔… 진짜 어린애 같은 욕구구먼.”
부정해 봐야 어쩌겠는가.
그게 자신의 ‘기저’에 자리 잡은 진짜 욕망인데.
물론 욕망을 인정 하나 안 하나 바뀌는 것 따위 없기는 했지만.
“후우.”
양광수 교수의 하루는, 오늘도 그렇게 저물어가는 듯싶었다.
그저 욕망의 발현처를 찾지 못한 채, 가슴속 납골당에 안치시키듯 억누를 뿐이라 생각했었다.
어느 한 이메일이 도착할 때까지는.
-[급구] (전국, 전 세계 음악대학 교수) 저를 가르칠 기회를 드립니다. 분야별 각 2명.
보수 : 명예.
“…?”
솔직히 말해, 아주 찐득하기 그지없는 당황감이 들었다.
“가르칠 기회… 를 준다고?”
자신은 서울음대의 교수다.
누군가는 타고난 실력을 뼈를 깎으며 증명해야 자신 앞에 설 수 있을 정도로, 권위 있는 직종에 있는 인간이다.
당연하게도 당황감 뒤에 든 감정은 ‘불쾌감’이었고, 양광수는 문자를 보낸 발신지에 주목했다.
어이없게도, 학교의 사무행정처였다.
“뭔….”
해킹이라도 당한 걸까?
발걸음은 주차장 대신 본관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것은,
“유재호 군?”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아닌, 학교의 유명인, 유재호 군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메일은 잘 받으셨습니까?”
“아… 예? 그걸 유재호 군이 보냈어요?”
“물론입니다 교수님. 사실 제가 조작에 익숙지가 않아서. 발신인을 제대로 안 적었습니다. 다시 보내겠습니다.”
그는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였다.
‘아직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사건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조치.
다만,
티링-!
다시금 교내용 이메일 알람이 울리고,
저 ‘구인’ 공고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특정이 되었을 때,
“…헉!”
양광수는 그 진의랄 것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확인하지 못한 교수님들도 계실 것 같으니, 널리 널리 퍼뜨려 주십시오.”
“….”
양광수는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사무처에 잠입하여 개인 정보를 털어낸 것에 대한 처벌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기에.
그보다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 그래요.”
양광수는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곧바로, 약속 장소였던 횟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타 과 교수들이 그렇듯,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같이 의기투합하는 자리를 가지곤 한다.
마침 오늘은 그날이었고, 설마설마했던 대로,
좌식 테이블을 가리고 있는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열기’랄 것이 전해져 왔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막장스러운 제안을 할 수가 있답니까?! 아무리 지가 잘나간다고 해도!”
“윤 교수님 진정하십….”
몇몇 교수들이 발광하듯 소리를 치고, 다른 교수들은 그것을 말리는 모양새.
“진정할 일입니까 이게?!”
“자, 자, 양 교수님도 오시지 않았습니까. 목소리 좀 낮춥시다.”
“마, 맞습니다.”
“허… 드디어 왔구만! 양 교수, 이리 와서 같이 얘기 좀 합시다.”
“….”
다만, 자신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볼륨이 줄어드는 건, 이른바 ‘이름값’의 효과라고나 할까.
명예를 위해 벌인 선행으로 ‘저 인간은 진짜 착한 인간’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박힌 덕이었다.
어쨌든 간에,
서울음대 교수 중 가장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관악과의 윤정환 교수는 든든한 아군을 만난 양, 곧바로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이었다.
“나 참, 이런 경우는 못 봤습니다. 김도일이란 놈이 잘난 건 잘 알아요. 퀸 엘리자베스 우승하고, 그리고 또 뭐냐. ‘잊고 있던 손’인가? 그 요상한 기술도 만들지 않았습니까?”
윤교수는 버럭버럭 얼굴을 붉히면서도 칭찬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다만,
“근데, 암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날 때부터 나 교수요 하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존중을 보여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존중을!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
내뿜고 있는 분노는 진짜였으며,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맞는 말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취한 행동은 그저 잠시 그를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자자, 우선 회 한 점씩 하시고 화 좀 가라앉히시지요.”
“하… 예. 우선 그러죠.”
신선한 회와 청주가 나왔다.
이런 미식을 앞에 두고 괴성을 듣기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년 남녀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회를 집어 입에 옮기기 시작했으며,
얼핏 보기에는 얌전히 미식을 즐기는 모양새였다.
그렇다.
‘얼핏’ 보기엔 말이다.
“나참, 이런 건방진 태도는 널리 알려야 됩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 콧대를 꺾어줘야 해요. 그 뭐냐, 인터넷에 커뮤니티? 같은 거 잘 아시는 분은 저희가 받은 문자 한번 올려주시겠습니까?”
윤 교수는 미처 분노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직접적으로 재재할 방안을 모색하는 듯한 운을 띄웠다.
다만,
다만…….
왜일까.
“…여러분?”
그와, 그에게 동조하는 관악과의 다른 세 교수 외에는.
이상하리만치 분위기가 조용했다.
착 가라앉아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착 가라앉아 있어 보이려고 한달까.
‘남의 생각을 내가 읽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양광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다들,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미식’을!
“다들 회가 아주 입에 맞으시나 봅니다? 다 드시고서 커뮤니티 좀 아시는 분은….”
“윤 교수님. 제가 유머 글 같은 거 자주 찾아보거든요. 방금 올렸습니다.”
“오! 반응이 어떱니까?”
“확인해 보시겠어요?”
언제나 무테 사각 안경만을 고집하는, 왜인지 모르게 학생들 사이에서 ‘변태’라는 악명이 붙어 있던 이호재 교수는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리고서 글자 폰트를 키웠다.
윤교수는 아주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쭉 빼 내밀었지만,
ㅇㅇ : 와 음주님 되게 겸손하시네
ㅇㅇ : 그래도 우리나라 교수라고 체면 살려주는 거 보소 ㄷㄷ
ㅇㅇ : 솔직히 말해 ‘가르침’에 ‘발 마사지’까지 추가해 놨어도 할 사람 넘침 ㅋㅋ
└ㅇㅅㅇ : ㄹㅇ ㅋㅋㅋ
“응…?”
기대하고 있던 반응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인지, 그저 당혹스러운 탄성만을 토할 뿐이었다.
“그런 겁니다.”
“예?”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겁니다. 음주님께서 더욱 굴욕적인 요구를 하실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으셨다.”
“당신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겨우 열아홉 살짜리 꼬마한테 사람 ‘님’자를 붙이는 겁니까!”
“이 교수님 사케를 너무 빨리 자신 것 아닙니까?”
윤 교수와 그 주변인들이 마치 발광하듯 말을 쏟아내었다.
그들은 힐끗힐끗, 주변을 살피며 마치 빨리 자신들에게 말을 더하라 하는 듯싶었지만,
“….”
기다리고 있는 것은, 꽤나 뼈아픈 침묵뿐.
“당신들 지금 뭔 생각을….”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마구마구 짱구를 굴릴 뿐.
“볼륨이 가라앉았으니 이제 얘기들 나누실까요.”
이호재 교수는 정적을 틈타 입을 열었다.
“분야당 각 두 명입니다. 이 메시지가 우리 학교에만 돌았을 리도 없는데, 경쟁이 꽤 치열하지 않겠습니까? 입 다물고 계신 분들은 전부 저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봅니다만, 실제로 어떻습니까?”
“…메시지 넣으려구요.”
“저도 지원할 생각이었어요.”
모인 인물의 8할이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윤 교수는 그 모습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자신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일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양광수 또한 부정하지 않았다.
“오…!”
“양 교수님까지!”
이제야 저울의 기울기 제대로 정해졌다.
사실 그런 것이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눈앞에 거저 굴러들어 올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다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젠 무의미한 분노 표출이 아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눠야 했다.
양광수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다만, 이왕이면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최대한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수를 써야 합니다.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첫 제안은 1년 채 안 된 신임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그… 혹시, 입학 시에 유리하게 봐주겠다거나….”
“멍청한 소리!”
“…죄송합니다. 제,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당연히 해서도 안 되고, 의미도 없는 말입니다.”
“무, 물론이죠…. 근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은….”
이호재 교수는 특유의 변태 같은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무게를 잡았다.
그러고서,
“믿을 만한 정보통한테서 얻은 정보입니다만, 해외에서 음주님에게 ‘교수’직을 제안하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매우 충격적인 정보를 내뱉었다.
“예…?!”
“교, 교수요?! 그 나이에요?!”
공기를 타고 흐르는 묵직하기 그지없는 혼란.
그것은 당연하게도 양광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입을 쩍 벌린 채 그냥 그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 이공계 쪽에서는 10대에 교수직을 역임한 위인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음악계라고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드, 듣고 보니….”
“음주님은 자신이 만든 기술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학위를 인정받으실 겁니다.”
“….”
“그러니까, 뭐 학교 입학할 때 특혜를 주겠다느니, 그런 걸로는 구미가 당길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
이호재 교수는 평소 괴짜 같은 기행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말에 수시로 거짓을 담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가져온 정보는, 신빙성이 높을 것이다.
뜻은 즉….
“지금이… ‘그’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입니까?”
“예.”
“아….”
순식간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들… 미친 거 아닙니까?”
물론 그럼에도 사태의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은 있었고,
양광수는 참다 참다못해 입을 열고야 말았다.
“거 X바 좀 조용히 합시다! 지금 역사책에 이름 올릴 방법 생각하는 중이니까.”
목소리에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던,
진실된 욕망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