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3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33화
커져가는 불씨(4)
세 명이 같이 지낸 시간은 길었다. 코찔찔이 시절부터 붙어 다닌 건 아니라 불알친구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길었다.
우연히 같은 실용예술계 고등학교에 진학, 우연히 음악 취향이 맞았고, 그래서 몰려다녔고.
친했다.
그 표현 외에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합주도 많이 했었지.’
…주로 빈 교실에서, 운이 좋으면 교내 축제의 강당, 학교 대항 체육대회의 체육관에서.
인기도 꽤 있었다.
모르는 여자애가 휴대폰 번호를 물었을 때, 진심으로 음악의 힘을 실감했다.
물론 승현이는 왜 자신만 인기가 없는지 불만을 달고 살았는데, 차마 베이스라 그렇다는 말은 해줄 수가 없었다.
왜, 베이스는 잘 안 들리잖아?
어찌 됐든, 즐거운 추억이었다.
서로 실업 전선에 뛰어들며 밴드 놀이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접게 되었지만, 그래도 뿔뿔이 흩어지지는 않았고, 만나서 술은 많이 마셨다.
-나중에 우리가 한 3, 40대 되면… 막 다시 대 밴드의 시대가 열리는 거 아니야?
-또 개소리하네.
-왜, 유행은 돌고 돈다잖아.
-야, 그런 시대가 온다고 해도 우리는 그때쯤이면 아저씬데?
-아, 그러네.
-X벌.
실없는 소리.
그저, 실없는 소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밴드 명은 정해두자.
-굳이?
– 뭐 정해둔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레저렉션 어때?
-힐러 스킬 이름 같네.
-아니, X발 부활이잖아 그거.
-흐히히히힣.
여러 이름이 오르내렸다. 다만 다들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지 작명 센스가 심히 구렸다.
그러던 와중,
-블랙 벨트는?
민수가 의미심장한 단어를 꺼내더라.
-넘 구림.
-개구려.
본인 딴에는 회심의 밴드명이라 생각했는지, 폭력적인 비난에 얼굴이 시무룩해지더라.
그래서 일단 의미는 들어보기로 했었다.
-뜻이 뭔데?
-그건….
좌아아아아앙-!
머릿속을 뒤덮던 잡생각이 끝났다.
모니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의 예리한 파워코드 때문이었다.
‘잠시 정신이 팔렸군.’
김건우는 현재 자신의 처한 상황을 곱씹었다.
ST엔터에서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덥석 물으려고 했지만 김도일이라는 소년에 의해 가로막혔다.
알고 보니 그의 노림수는 EL엔터와 ST엔터의 경쟁이더라.
그리고 보기 좋게 그가 원하던 상황으로 흘러가더라….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오히려 그가 내놓은 녹음본이었다.
그것은 완벽했다.
정말 완벽하게, 90년대 신생 밴드의 향수를 재현해 냈다.
마치 자신들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며,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을 확인한 것 같이.
‘미쳤어.’
이미 메시지로 ‘무조건’ ST보다 좋은 계약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려온 상황.
다만 그럼에도 김도일은 곡을 틀었다.
계약 비율 조정을 위해?
아니라고 본다.
그의 행위는 그저, ‘상호 간의 신뢰’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미쳐버린 신곡 ‘a tiny flame’을 통해서.
김건우는 눈을 감았다.
묵묵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을, 받아들였다.
두웅-!
기타에 지지 않으려는 듯이 앞에 확 치고 나와 있는 험버커 베이스, 자신이 직접 녹음한 드럼.
그리고 민수의 목소리.
-별 내리는 여름밤, 우리는 새 별을 만들기로 했지.
가사와 함께, 밤거리를 누비는 세 소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사이좋게 도로를 박차는, 우유배달을 신청하며 받은 저가 MTB.
책가방에 쑤셔 넣은, 문방구에서 싹 털어온 폭죽.
눅진하면서도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고, 입은 반팔은 펄럭거린다.
힘차게 페달을 굴리며 그들은 여름밤을 갈랐다.
빛낼 곳을 찾아서.
-저기야!
앞서가던 소년은 버려진 한적한 공터를 발견했다.
무서운 형들의 아지트로 딱 어울리는 분위기.
다만 그럼에도 세 소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별난 짓에 도전하는 날이기 때문에.
-빨리빨리.
소년들은 가방을 풀었다.
잡스러운 폭죽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고, 입꼬리도 올라갔다.
막대기 끝에서 잔잔하게 타오르는 스파클링,
빙글빙글 돌며 빛을 흩뿌리는 팽이.
소리만 큰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매혹적인 냄새를 흘리는 작은 콩알탄.
-흐흐흐.
그들은 형형색색의 불꽃들을 보면서 순진한 웃음을 뱉었다.
누가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래 남자들은 이런 것에 환장을 한다.
나이를 먹어도, 사회의 풍파를 맞아도, 연소되는 불빛과 폭발음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찰나로 느껴질 만큼 짧다고 하더라도.
-끝났네.
-아쉽다.
땅바닥을 비추던 광원이 모두 사라졌다.
다만,
-위에 봐봐.
땅만 보던 소년들이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수많은 별빛들이 비로소 그들의 시야에 스며들었다.
폭죽이 흩뿌리던 빛보다 많고, 새하얀 광원.
세 소년은 압도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갖고 놀던 것이, 장난감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다만,
-…질 수 없지.
그들은 이상한 데서 경쟁심을 불태웠다.
자신들이 준비한 불꽃보다 화려하다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소심한 반격은, 15연발 파이어볼을 하나씩 손에 꼬나쥐고 하늘로 치켜드는 것이었다.
치잉-!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발사음,
파앙-!
작게 터지며, 흩뿌려지는 불꽃.
-와아!
제대로 된 불꽃놀이에 비해서 볼품은 없었다.
하지만,
치잉, 파앙-!
밝았다.
저 압도적이던 별빛보다, 아주 잠깐동안.
-더 큰 게 필요해.
가장 앞에 있던 소년의 중얼거림.
그들은 밤하늘에 별을 새로 놓을 수는 없었다.
다만 잠깐 동안, 저들보다 더 밝게, 화려하게 빛나는 광경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별이 아닌, 사람이니까.
사람은 더 밝게 빛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물이니까.
-가자!
자전거 페달이 묵직한 공기를 가른다.
출발한 위치는 달랐지만 도달하기 바라는 곳은 같았다.
더 거대한 폭죽.
더 화려하게 빛나는 찰나.
그들의 꿈.
좌아아아앙— !
코드 스트로크의 피치가 내려가며, 곡이 끝났다.
김건우는, 민수가 제안했던 밴드명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블랙 벨트면 무술 유단자 중에 최고잖아.
-음악도 똑같지 않을까? 이미 우린 프로이기도 하고. 미리 준비를 해뒀다는 걸 보여주는 밴드명인 거지.
‘그래… 준비돼 있었지.’
그렇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짝,
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크게, 점점 더 크게.
“좋다… 이거 진짜 좋아.”
감고 있었던 눈을 뜨니, 모두가 기립하여 손뼉을 마주치고 있었다.
“…먹힐 것 같네.”
음악을 시작하고서 십수 년,
줄곧 바라던 대답이 귀를 간질였다.
눈에 수분이 차올랐고, 시야가 흐려졌다.
그래서인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소년은,
마치 그들을 위해 거대한 폭죽을 준비해 준, 문방구 주인 같아 보였다.
* * *
난 밴드 곡을 좋아한다. 특히 90, 00년대의 밴드 곡을.
기타를 배우려 할 때도 꽤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애착이 있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곡을 써보고 싶었지.’
20초짜리 작곡만 하던 시절, 아주 지리는 밴드 인트로를 만든 적이 있었다.
인터넷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솔직히 그 뒤를 쓸 자신이 없었다.
인트로를 어떻게든 자극적이게는 만들 수 있었어도 뒷심을 더하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지옥에 가기 전까지는.
‘…난생처음으로 밴드를 해봤어.’
멀티트랙을 구현하고 싶은데 손이랑 다리가 부족하더라.
그래서 지옥의 괴물들을 생포해서 노예로 부렸다.
내 딴에는 생체 멀티트랙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밴드였네…?
뭐, 어쨌든 그렇다.
지성은 없는 괴물들이었지만, 그들과 함께한 경험들은 고스란히 양식이 되었다.
‘상호보완.’
밴드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짝짝짝짝짝짝-!
스튜디오에 모인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시작하기 전 표정이 좋았던 사람도, 좋지 않았던 사람도 모두다.
세 사람의 상호보완은 아주 좋았다.
처음 그들의 자작곡, 아스팔트 드림을 들었을 때는 서로 앞장서서 눈에 띄려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곡은 다르다.
모두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모두가 모두를 감싸 주었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불알친구 셋 같이 말이다.
“…연주는 흠잡을 데 없고, 보컬은 청량하고, 가사도 정말 괜찮습니다.”
“….”
“당장 앨범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말이에요.”
최 이사의 담담한 칭찬에, 세 명은 일시에 눈언저리를 비볐다. 본인들 딴에는 필사적으로 아닌 척하는 것 같지만, 누가 봐도 울기 직전 같았다.
최 이사는 뽑아두었던 공백의 계약서에 척척, 볼펜으로 숫자를 채워 넣었다.
“아직 인사밖에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때로는 대화보다 숫자가 중요한 법이니까요.”
서류를 받아 둔 세 명의 눈은 그야말로 휘둥그레졌다.
“……!”
“……!”
“이거… 이게 진짜입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무조건 ST보다는 좋게 쳐 드릴 거라고요.”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종이가 돌려졌다.
그리고 나도 눈을 크게 떴다.
‘꽤 센데…?’
페어리스의 실적이 있으니 꽤나 전보다 계약비가 오르지 않을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단위가 컸다.
‘4천…!’
물론 한 곡에 4천만 원이라는 건 아니다. 작업비로 4천을 땡기는 작곡가는 대한민국 땅에 없었다.
1년에 다섯 곡 제공 보장. 그 조건으로 4천만 원.
‘…충분히 좋아.’
작업비는 그야말로 작업비니까. 저작권 수입은 나중에 따로 들어오니까.
나는 흘러넘치려는 군침을 싸악 닦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희야말로.”
세 명은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마음을 정하고 계약서에 두 개의 도장을 찍었다.
“새 시장을 개척할 겁니다. 잘해봅시다.”
최 이사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 * *
한국예술대학교 클래식 작곡 강의를 맡는 교수이자, 음악 학원의 사장인 임재철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이미 한 시간째 같은 페이지. 그럼에도 눈은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야동이라도 보고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임재철은 그런 걸 보며 몰입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단순한 인터넷 기사였다.
-드라마 봄꽃에 핀 겨울, 극 중 삽입 OST에 대호평, 제작사 ‘천재 작곡가 임재철의 수완 덕’
친구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던 드라마 삽입곡이, 예상외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혼자 몰래 위스키라도 머금으며 기뻐해야 할만한 상황.
다만, 지금 그러지 못했다.
‘내 수완이라….’
기사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달 반 전이었지.’
딸아이의 공모전 곡을 재주 좋게 손봐준 소년이 찾아온 것은.
임재철은 그 소년에게 흥미를 느꼈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학원에 초대했다.
그리고 드라마 ‘봄꽃에 핀 겨울’의 OST는, 소년의 재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져진 결과물이었다.
‘내 힘만으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악평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기대 이상의 호평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임재철은 계속해서 아쉬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가 미디 작곡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만약 그가 클래식에 발을 디딘다면 어떨까.’
…결과는 예상할 수 없었다. 클래식 작곡을 시켜본 적이 없으니까.
만약 그가 지금 ‘가요’에서 내비치는 두각을 ‘클래식’에서도 똑같이 내비친다면,
그렇게 된다면.
‘클래식계의 경직이… 풀릴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생각에는 객관성이 없었다. 그리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다.
다만 그럼에도, 임재철은 끓어오르는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만약,
만약 한국에 제2의 베토벤이 나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