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41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41화
클래식의 난입자(4)
회귀한 나는 음악인의 흥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 미래에 나름대로 중간 이상은 갔다는 소리고, 없었다면 중간 이하로 갔거나 아예 음악계에서 사라졌다는 소리다.
그리고 ‘유재호’는 내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딱히 접점이랄 것은 없었지만, 유재호는 업계에서 크게 성공을 거머쥐었기에 정보가 좀 있었다. 인터넷에 기사도 자주 올라왔으니까.
서른 넘어서인가, 마약에도 손을 대던데….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으로도 만족을 못 하다니.’
나를 넘어서는 개 지리는 욕심쟁이인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아무튼 간에.
‘이런 놈이었구만.’
소년 시절 유재호와의 만남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뭐랄까, 되게 전형적인 재능충다웠다.
자기가 이 세상 최고고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다는, 거만하기 그지없는 마인드.
본인 딴에 그걸 잘 숨기고 있겠지만 장군감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1인자가 되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장군감은 봄이 같은 타입이지.’
비록 전생에는 ‘클래식’이라는 무대에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우튜브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며 커버 분야에서 1인자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지 않는가?
큐트 스프링은 대단했다. 얘보다 더.
“따까리… 내가 따까리라고?”
난생처음 그런 단어를 들은 건지, 유재호는 처음에는 그저 멍한 표정만을 얼굴에 떠올렸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황에서, 경악으로,
분노로.
‘표정 참 재밌네.’
그의 감정 표출은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그리고 아주 획일적이었다.
“모르는데?”
“그럼 알려줄게. 확실하게 밟아줄게.”
“그것 참 X나 기대되는 구만?”
“너 이새ㄲ…!”
말싸움은 이어지지 않았다.
벌컥-! 대기실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스태프가 들어와 시작을 알렸으니까.
“피아노 참가자분들, 순번표 나눠드리겠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내 바로 뒤가 저놈이었다.
* * *
유재호는 가슴이 부글거리는 느낌을 지우려 심호흡을 거듭했다.
다만 번호표를 받고, 홀까지 이동하는 와중에도 ‘분노’라는 감정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상상 이상으로 이상한 새끼군.’
미디 작곡과의 도망자 출신, 다만 피아노에 일정 재능 있음.
예선장에서 이상한 꼴을 하며 관심을 끌던 관종.
유재호가 간단히 파악한 김도일에 대한 신상은 그랬다.
다만 막상 맞부딪힌 남자는 달랐다.
‘문을 거의 부수질 않나, 드라이기를 바지 속에 넣질 않나.’
마치 야만인 같았다. 여린 학생들은 거친 모습에 공포심이 들겠다 싶을 정도로.
유재호는 그 모든 것이 계획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일부러 이상한 짓을 해서 참가자들의 주의를 흩뜨리길 유도하는….
‘너무 과한 망상인가.’
예상을 넘어선 만남. 기세는 팽팽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조금 밀리는 느낌이었다.
유재호는 그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위에 서는 인간이었는데. 뭔지도 모를 놈한테 당황해서는…!
‘젠장…!’
언제나 애들 앞에서는 성인군자처럼 행동을 했었는데, 아주 잠깐이지만 거친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자신의 이미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참사였다.
‘이렇게 된 이상….’
유재호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자신이 취할 행동은 단 하나뿐이다.
철저하게 짓밟는 것.
그 무엇도 아닌, ‘피아노’로.
‘자작곡이라고?’
김봄에게 자작곡을 써주었다고 한다.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온 함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작곡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연주력만큼은 내가 절대적으로 위다.’
실력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아마 김봄이 함성을 받은 것은 그 뛰어난 실력이 덕인 탓이 컸다. 그녀 또한 천재니까. 절대로 ‘곡’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래, 그렇다.
평소대로만 하면 된다.
-자, 이번 순서는 피아노 경연입니다. 관객 여러분께서는 박수로 연주자를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연대회가 시작됐다.
첫 번째 참가자가 연주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마치 물을 잔뜩 먹은 나무가 필사적으로 공명하는 것만 같이.
‘X됐다.’
피아노가 습기를 먹었다.
일반인은 몰라도, 악기 좀 만져본 자라면 바로 체감될 정도로.
물론 그 때문에 튜닝이 틀어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소리의 퀄리티가 떨어진 것일 뿐.
유재호의 미간이, 삼각주가 생길 만큼 아주 깊게 주름 잡혔다.
다만,
단 한 사람.
유난히 씨익, 상쾌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김도일이었다.
* * *
한상훈은 15년째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있었다.
서울 전국 음악 콩쿠르뿐만이 아니다.
인천 국제 콩쿠르와 부산 국제 콩쿠르까지.
한 사람이 뭘 저렇게 많이 해 먹느냐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 대단한 영향력이 없으면 해내기 어려운 일도 맞았다.
하지만 그의 직함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납득할 만했다.
‘서울 음악대학 교수.’
국내 최고 대학의 피아노과 원로 교수가 심사를 해준다는데, 과연 누가 토를 달겠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다른 대학의 교수들이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면, 한상훈은 정반대였다.
콩쿠르의 주최 측에서 심사위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처지.
그렇기에 이 공간에서 그의 행동거지는 왕의 행동거지였고, 그의 말은 곧 어명과 같았다.
그리고 방금 전,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모두가 왕의 행동거지에 놀랐다.
기립박수를 친 것이다.
‘천재가 음악을 접지 않았구나….’
클래식 업계는 좁다.
좁은 만큼, 업계의 어른들은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았다.
한상훈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의 관심사는 김봄과 유재호, 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유재호는 그야말로 천재의 정석과도 같은 행보를 보여주었다.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김봄이었는데….
‘클래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
신은 유재호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김봄에게는 반만 주었다.
음악계의 어른으로서 매우 통탄할 노릇.
거의 반쯤 포기하고 있었지만… 오늘 천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중들 앞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나온 곡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salt Swimming]도저히 클래식 곡처럼 들리지는 않는 제목.
그리고, 생전 처음 들어본 멜로디.
‘이건 대체 누가 쓴 곡이지?’
클래식이랑은 괴리감이 있었다.
ABA 구조를 제대로 답습하기는 했지만, 진행 방식은 전통적이기보다는 현대적이었다.
좀 더 직설적이고, 좀 더 화끈하게 주제를 제시한다.
숟갈 위에 밥이랑 반찬을 올려서 주제를 입안으로 쑤셔 넣는 듯한 느낌이랄까.
태양은 내리쬐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날씨,
출렁이는 파도, 그곳에 몸을 던져 한껏 바다를 가르는 여행객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무대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침투력이 깊어서 현재의 후덥지근하고 기분 나쁜 날씨를 망각해 버릴 것 같았다.
‘흠잡을 수 없는 곡이고, 연주였다.’
그렇기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곡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그리고 튀어나온 이름.
-김도일 작곡가의 곡입니다. 제… 친구예요.
‘김도일….’
타과 출신이 예선에서 빼어난 연주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건너건너 알아보니 미디 작곡을 하고 있다고 했고, 실제로 EL엔터테인먼트와 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흥미가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어디 잡스러운 대중음악 출신이 클래식을 넘보냐고 꼰대들은 생각할 수 있지만, 한상훈은 깨어 있는 인간이었다.
재능 있는 사람이 클래식에 손을 뻗어서 노력해 준다는데, 마다하는 게 병신인 것이다.
‘그래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이미 거리가 벌어질 대로 벌어졌으니까.
그래도 이번 기회에 흥미를 느껴서 꾸준히 노력해 주길 바랐는데….
이 정도의 곡을 써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한상훈은 바이올린 본선이 끝나자마자 다른 심사위원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내색을 안 하려 필사적으로 표정을 가다듬고 있었다.
“유재호 군이 ‘정열’을 준비했다죠. 다른 학생이면 내심 걱정했을 텐데, 기대되는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김강현 군의 소문도 심상치 않습니다. 날카롭게 칼을 갈았나 봐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 같은 대화를 잇는 꼰대들.
그를 보면서 한상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진짜 그게 궁금한 거냐?’
종이를 들었다.
참가번호 9번. 김도일.
연주 예정 곡에는 ‘자작곡’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궁금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괜히 자존심 부리는구만.’
클래식에 인생을 바친 만큼 자부심과 배타심이 생기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저들이 유치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명실상부 이번 바이올린부 1등의 곡을 쓴 자가, 피아노부에서 자기 곡을 연주하겠다는데.
그걸 미디 작곡 출신이라고 애써 무시하다니.
‘…결과가 알려주겠지.’
한상훈은 심호흡을 하며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피아노 본선이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상태가 별로 안 좋군.’
평소보다 더욱 먹먹했다.
스타인웨이 d-274.
연주회, 대회 가리지 않고 쓰이는 모델인 만큼 소리의 퀄리티가 떨어질 리는 없었지만, 문제는 저게 최근 년식이라는 것이다.
에이징이 되지 않은, 파릇한 악기는 오래된 악기보다 습도에 취약했다.
다만 그게 연주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거슬리는 정도.
미묘하게 신경이 거슬릴 정도.
두우웅-!
1번 참가자부터 연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연주되는 곡이 악기의 먹먹함에 미세한 안개가 낀 듯이 가려진 것이다.
“관리자들은 대체 뭘 한 거랍니까? 어제 에어컨도 안 틀어 놓았어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악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스태프들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악재는 영재 김강현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확신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저 먹먹한 소리를 개인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우고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 남자가 무대 위에 서기 전까지는.
“날씨가 참 개같습니다.”
인사를 할 줄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비속어였다.
“기분이 자연스레 나빠지는 날씨인데, 제 곡이 그걸 좀 더 증폭시킬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노여워하지는 마세요.”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자작곡 long rain입니다.”
그가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아주 천천히,
말의 뜻이 이해가 갔다.
‘어…?’
초반에는 느낀 것은 ‘이상함’이었다.
가장 먼저, 피아노의 상태가 걱정스러워졌다.
습기를 먹은 정도가 아니라, 물에 담갔다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는 에어컨이 고장 난 게 아닌가 싶었다.
갑자기 몸이 젖은 듯이 찜찜해지고, 기분 나쁜 땀이 솟아올랐다.
…착각을 깨닫는 데에는 30초면 충분했다.
두우웅-!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강렬하게 토해지는 저음과 함께,
저 모든 것이,
한 남자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게 자명해졌으니까.
“….”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그야말로 장마였다.
한없이 퍼붓는 비, 네온사인을 반사하는 물방울, 그 물방울을 한가득 맞으며 물이 들어가 질퍽거리는 장화를 신고 걷는 사내.
…찜찜함의 결정체, 목적 없는 방황 그 자체.
그 풍경은, 김봄의 연주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진했으며, 감정을 크게 뒤흔들었다.
말도 안 됐다.
아니, 애초에 피아노조차 멀쩡하지 않은데….
‘…설마, 멀쩡하지 않은 상태를 역으로 이용한 건가?’
습기 먹은 피아노의 먹먹함을, 즉석에서 적응하고 무기로 삼았다는 건가!?
“이럴 수가.”
약간의 원망이 들었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지금까지 뭘 했는지.
저 녀석이 다니는 고등학교 선생들은 대체 뭐 하는 인간들인지.
옆에서 누구 한 명만 길을 제대로 잡아줬다면 지금보다 더 빨리….
‘운이 너무 안 좋은 아이였군.’
어쩔 수 없나 보다.
음악에 우열은 없다지만, 자신도 곧 클래식 꼰대인 모양이다.
‘미디 작곡이 아니라 클래식을 시켜야 돼.’
연주가 시작된 지 단 1분 만에, 한상훈은 그리 확신했다.
그리고, 어떻게 전과를 권유할지 고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