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5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5화
천부적 재능(1)
집까지 돌아오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태어나서 거의 줄곧 살았던 집을 잊어버릴 리 없지.
아무렇게나 방치된 자전거, 낡은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복도가 매력적인 아파트.
우리 집.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라, 현관을 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날 맞아준 것은 바로 부글거리는 국 끓는 소리와 된장과 참기름 냄새.
그다음에는 수명이 다해가는 형광등 특유의 연하고 약한 조명, 빛바랜 하얀 꽃무늬 벽지.
하지만 내가 가장 그리웠던 것은….
“아들 왔니?”
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호강 한번 못 시켜 드린 엄마.
나는 흰머리 하나 없이 젊어진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금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100살 노인도 엄마란 단어 앞에서는 눈물이 난다더니.’
지옥에 다녀오고 나서도 100살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아마 여기서 나이를 더 먹어도 바뀌는 건 없을 것 같다.
“아들 괜찮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다며?”?
“아… 그게, 요.”
지옥에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침착한 사람이라도 아까 같은 상황에 던져놓는다면 나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환희가 너무 강한 탓에 아주 잠깐 기절하기는 했지만, 나는 딱 선생님이 구급차를 부르기 전 타이밍에 맞춰 깨어날 수 있었다.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래요. 죄송해요.
그리고 예고생에게 가장 그럴듯한 변명 또한 댔다.
실제로 많은 것이다. 대회 준비니 뭔 준비니 하면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수업시간에 곯아떨어지는 애들이.
“그냥 잠을 잘 못 잤어요. 죄송해요.”
그래서 나는 아까 했던 변명을 반복했다.
“진짜 괜찮니?”
“진짜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진짜 아니에요.”
다만 어머니는 쉽사리 나의 변명을 믿어주지 않으셨다.
아마 이유를 예상해 보건대, 1학년 때 있었던 일 때문일 것이다.
‘나 싫어하는 놈들이 있었지.’
학교를 거의 공짜로 다닌다며 나무라던 놈들.
비아냥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고, 결국 선생님을 거쳐 엄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며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정작 사과할 놈들은 따로 있었음에도.
“진짜 아무 일 없어요. 밥 먹어요!”
좁은 주방에 차려진 밥상에는 된장찌개와 김치, 돼지 뒷다리살 제육볶음이 호화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한때 우리 집의 트레이드 식단이었다.
“아싸 제육.”
나는 특히 제육을 좋아한다.
열 살 때부터 취향은 바뀌지 않았는데, 냉동 뒷다리살이랑 고추장 소스 핫딜 뜬 거 왕창 사뒀다가 냉동실에 처박아 두면 한 달 동안은 단백질 걱정 없이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아유, 질리지도 않아.”
“그럼요.”
알던 맛이었지만, 조금은 간이 삼삼했다. 젊은 엄마는 짠맛을 조금 더 잘 느끼셨던 모양이다.
“….”
“얘가… 밥 먹는데 갑자기 왜 울어? 역시 무슨 일 있었지!”
나는 가까스로 눈에 고인 수분을 자연건조시키며 우걱우걱 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내, 동생이 돌아왔다.
“아, 또 제육이야? 넌 또 왜 울어?”
사춘기 탓에 항상 반말을 찍찍 내뱉는 여동생 서연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틱틱거리는 주둥이를 숟가락으로 강타했다.
“아 왜 때려!”
“이게 만악의 근원이야 근원.”
“반찬이나 다 먹지 마! 그리고 여기 보지 마.”
동생은 곧바로 허물 벗듯이 거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익숙한 광경이었다. 우리 집은 거실과 방, 하나씩밖에 없었고 방은 내가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집에 서연이 방은 없다. 서연이가 처음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 고시원에 입성할 때일 것이다.
‘미안하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예고생이니 방 하나 정도 양보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서연이도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을 거고, 시험이 끝난 날에 친구랑 밤새도록 수다도 떨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도 날 위해 희생했다. 이제는 아주 잘 안다.
나는 제육 조금에 남은 밥을 전부 입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조금만 기다려.”
“…손 씻었는데?”
“그게 아니라. 너 방 갖게 해줄게.”
수저를 들다가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 동생.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마저 이었다.
“집 나간다는 거 아니야. 이사할 거야. 빨리 돈 벌어서.”
“아들…?”
“너 갑자기 왜 그래…?”
“앞으로 잘할게요.”
더욱 잘할 것이다. 결코 후회하는 일 없이.
두 사람은 뭔 상황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여기서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명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저 그럼 내일 공모전 준비하러 들어가 볼게요!”
“아… 그래. 오늘은 늦게 자면 안 된다?”
“괜찮아요. 아까 진짜 푹 잤어요.”
엄마의 표정을 보니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우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나만 소유한 개인 공간으로 돌아갔다.
* * *
내 방에 있는 물건들은 우리 집의 살림살이랑 비교해서 꽤나 호화스러웠다.
우선 막북이 있다. 그것뿐이랴, 무려 10만 원짜리 스피커랑 커다란 오픈형 헤드폰도 있다.
거기에 88키 마스터 키보드까지….
“다 합쳐서 50만 원도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예고에 합격한 중3 겨울방학, 나는 방학 때 전단지 알바를 다리 터져라 돌아다니며 100만 원을 벌었다.
40만 원은 엄마를 주고, 10만 원은 동생을 주고. 나머지 50만 원으로 당근마켓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 모았다.
판매자들은 전부 아저씨들이었는데, 나는 만나자마자 대가리부터 박았다.
-제발… 조금만 깎아주세요, 제발!
이판사판으로 깎아달라고 떼를 쓰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예고생에 대한 아저씨들의 시선은 나쁘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네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것들.
우리 집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이 장비들은, 어린 나의 노력의 결실임과 동시의 따뜻한 호의의 결과인 셈이다.
나는 막북을 열고, 로직프로도 열었다.
“X나 느려!”
X나 느리다.
아무리 전생의 내가 X신 같았다 하더라도 곧 죽어도 어른에다가 프로 전적도 있었던 몸이다. 렉이 걸릴지언정 화가 날 정도의 장비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50만 원도 안 되는 노트북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게 바보다.
나는 곧바로 가방에서 그려놓은 악보를 꺼내고, 듣지도 않고 모니터와 대조했다.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체육대회 행진곡 공모전이라는, 그리 경쟁이 세지 않은 교내대회에서 떨어지는 게 당연할 정도로.
“코드 베이스는 괜찮고.”
Am – G – F – E 파워코드를 반복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구성.
메탈, 하드락에 자주 사용하는 진행이니 문제 있을 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멜로디와 악기의 조화였다.
“뭔 스트링을 이렇게 때려 박았어….”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장비, 미천한 지식, 기본과 무료 가상 악기가 대부분인 빈약한 환경.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악기 하나가 돋보이지 않도록 나는 곡에 무수히 많은 트랙을 때려 박았다.
다만 지금에 와서 살펴보면 실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짓거리였을 뿐.
딸칵, 딸칵-
나는 곧바로 수정에 들어갔다.
뭉텅이로 들어가 있던 트랙을 걷어내고, 코드 사운드부터 손봤다.
방방 날리는 로직프로 기본 일렉기타. 날카로우라고 깎아놓은 미드대역대를 복구하고 하이를 약간 깎는다.
스트로크로 가득 찬 사운드 중간중간에 뮤트와 하모닉스를 넣어준다. 훨씬 더 들어줄 만하게 되었다.
“드럼이랑… 베이스랑… 멜로디 일렉이랑 피아노랑… 하아.”
하지만 그럼에도 수정할 것은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현재 시각 7시.
“…세 시간은 족히 걸리겠군.”
끝나면 11시. 12시까지 공모전 제출 기한이니 아슬아슬하게 시간은 맞출 수 있을 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지옥 귀환 기념 첫 작업에 들어갔다.
잠들어있던 심장이, 오랜만에 빠르게 박동 쳤다.
* * *
4월 26일의 연화예고는 평소와 같이 평화로웠다.
조금 흐리긴 하지만 기온과 습도가 매우 절묘한 4월.
있던 화도 사라질만한 날씨였지만 다만 유독 교무실, 그 구석에 있는 한 남자는 마음속에 밀려오는 파도를 억누르는 데 바빠 보였다.
“…으으.”
시창청음 과목의 김학선은 학교 홈페이지의 ‘공모전’ 탭을 살펴보며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게시판 페이지는 학생들이 업로드한 공모전 제출 파일로 꽉 차 있었는데, 순서대로 듣다가 일순간 마지막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서 감동을 받았나?
그건 결코 아니었다.
“어떤….”
다시금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 주변 선생들의 이목이 이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떤 놈이 대놓고 반칙을 쓰네…?”
진심으로 분노에 차오른 얼굴과 목소리. 일순간 김학선을 향한 주목은 주위뿐만이 아니라 교무실 전체로 퍼졌다.
“반칙이요?”
“체육대회 공모전 제출 기한 어제였지 않습니까? 바로 확인해 보고 있는데….”
교내 체육대회 행진곡 공모전.
늘 있던 교내 행사였다. ‘학교에서 사용할 음악은 학교에서 수급하자’는 것이 이사장의 학교를 설립하면서 세운 이념이고, 당장 교가만 봐도 이사장이 만든 것이었다.
물론 ‘자작곡’을 제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만큼, 미디 작곡 전공이나 클래식 작곡, 혹은 악기 전공자만의 놀이터지만, 나름 유서 깊은 행사 중 하나란 말이다.
김학선은 기가 찬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며 바탕화면에 내려받아 둔 음악 파일 하나를 재생시켰다.
두웅-!
프레시전 베이스의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가장 먼저 울려 퍼진다.
언뜻 리얼 악기인 듯한 느낌이 드는데 더 들어보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냥 가상 악기에 온갖 기교를 넣어 최대한 리얼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티잉-!
좌앙-!
이어서 들리는 일렉기타와 일렉 피아노의 코드, 멜로디.
구성은 단순하지만, 단순히 마스터 키보드로 띡띡 찍은 것처럼 어색하지 않다. 섬세하다는 수준을 넘어 치밀했다.
그래, 돈을 두둑하게 받은 프로듀서가 완성본을 넘긴 것처럼 말이다.
“…누가 돈 받고 해준 거네요.”
“참… 뭐 학원 선생들한테 조언받는 건 그러려니 하는데…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
“내 그냥은 안 넘어가요.”
대회에 대한 모독, 음악인으로서의 분노.
그 모든 것은 교무실 전체에 서서히 전염되어갔다.
“누가 보낸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의 질문에,
“2학년 2반 김도일….”
모두가 한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 불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