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66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66화
오디션의 무법자(6)
오후 7시 30분.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탑 싱어를 감상했다.
당연하게도 첫 방송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우르르 떨어지는 게 목적인 회차니까.
완곡도 제대로 못 하는 환경이니까.
블랙 벨트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두 번째 방송.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두 번째 방송!
‘…성공적이군.’
결국 둘 다 붙었다.
블랙 벨트 쪽은 미리 계획해 둔 대로 조용하게 실력을 과시하며,
호식이 쪽은 엄청난 어그로와 주목을 모으며 합격.
‘…시키는 대로 잘 했구만.’
호식이는 원래 저리 튀는 성격이 아니다.
딱히 남 눈치를 안 보지도 않고.
탑 싱어 붙었다고 학교에서 실컷 떠들고 다녔다지만 딱 거기까지.
관종력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든 자신만만한 모습을 연기하라 요구했다.
우리의 목적은 권민석이란 놈한테 최대한 타격을 넣는 것이었으니까.
그 결과는….
-아니… 뭐야?! 왜 잘 부르는 거야?!
아주 야무지더라.
호식이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권민석이 꽥꽥 소리를 지르더라.
그리고,
익명 : 현실부정 ㅋㅋㅋㅋ
익명 : 동창생을 바로 찢어버리네 ㅋㅋㅋㅋㅋㅋ
익명 : 목소리 진짜 좋아요
익명 : 처형 ㄷㄷ 비교 대상 급이 아니라 더 슬픔 ㅠ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 또한, 매우 예사롭지 않았다.
똑같은 1차 통과자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호식이 쪽이 압도적으로 좋은 무대였다는 것을.
“내일 반응 한번 엄청나겠네.”
아니나 다를까,
-우와아아아아아아앙아악!
호식이가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애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더라.
“와 목소리 미쳤다 진짜.”
“이호식 맞아? 다른 사람이랑 얼굴 가죽만 바꾼 거 아니야!?”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참 뭐랄까.
금의환향의 정석이라고나 할까,
호식이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다 못해 이번에는 우주를 뚫을 기세였다.
“곡 김도일이 만져준 거랬지?”
“와 역시 프로는 달라.”
“에헴.”
물론 나한테 쏟아지는 관심 또한 즐겼다.
1교시 2교시,
나는 슬슬 관심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고, 여전히 실실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호식이에게 접근했다.
“성공?”
“성공.”
“기분 좋아?”
“기모띠 흐흐.”
전생에 이런 기억이 없는 걸 보아하니 1차 때 광탈을 했었나 보다.
위로해준 기억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새끼 반응 어땠냐?”
“와… 말도 마라.”
호식이는 눈을 땡그랗게 뜨더니 촬영이 끝난 후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반응은 감탄.
원래 그렇게 노래를 잘 불렀느냐면서 접근했다더라.
곧바로 이어진 반응은 부정.
MR를 직접 만들어 오는 것은 반칙 아니냐면서 따졌다더라.
“…그리고?”
“운빨로 올라왔으니 다음엔 떨어질 거라면서 꽥꽥 소리지르더라고.”
“오케이.”
뭐, 1차전은 이 정도로 족하다.
어쨌든 자기도 붙기는 붙었으니 아직 마음에 여유가 있는 거겠지.
“다음엔 너만 올라가라. 곡 써줄게.”
“…고맙다!”
자신이 얕보고 괴롭히던 아이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느끼는 절망.
그것이 바로 내가 양아치에게 선사해줄 고통이었다.
“…물론 어디까지 올라가느냐는 너 실력에 달렸어.”
“최대한 노력할게. 죽기 살기로.”
“좋아하는 노래 모아서 나한테 보내. 멜로디 샘플 몇 개 만들어뒀는데, 최대한 비슷한 걸로 꼽아서 완성할게.”
“…대충은 만들지 마라?”
“내가 솔직히 똥 싸면서 곡 써도 사간다는 사람 있을걸?”
“진짜?”
…확신할 수는 없는데.
사실 래퍼 ‘변기’의 탄생을 생각해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데….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잡념을 떨쳐내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올라온 탑 싱어의 하이라이트 영상의 댓글창을 확인했다.
여러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어그로 대장 권민석과 그를 곧바로 처단한 이호식.
그리고…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연주와 노래만 했는데도 주목을 받고 있는 ‘블랙 벨트’
대충 흐름은 이렇다.
-이호식이 눈에 띄었고, 곡이 좋다 -> 작곡가 김도일이 누구지? -> 어? 블랙 벨트 곡도 만들었네? 뭐 하는 새끼지?
바로 내가 화제의 매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코코릴리랑 전대현이 독주할 거 같아서 노잼삘 났는데 아니넹
-의외로 일반인 참가자들이 크게 선방했음. 이호식 고딩 실력 ㅇㅈ
└쉬즈곤 맨날 듣는데 저 편곡 버전은 ㄹㅇ 역대급임. 누가 만든거임?
└페어리스라고 이번에 뜬 아이돌 그룹 곡 만든 사람. 이호식이랑 같은 반이라네. 우튜브 채널도 있음. https://www.yutube.com/watch?v=yCMLxooOJMJMkjsdaaa
└미친놈아 거실 tv로 틀었는데 ㅅㅂㅅㅂㅅㅂ 보라색 나체가 나오네
└아 눈깔테러 ㅡㅡ
└육체가 아름답네요.
-솔직히 밴드 나온다고 해서 마이너장르 쿼터제인줄 알았는데
└ㄹㅇ… 순수하게 노래 좋음
└곡 왜 3개밖에 없냐. 김도일이란새끼 대체 뭐하는 거냐?
…심지어 욕도 먹고 있었다.
지금껏 관심도 안 주던 이들이, 빨리 곡 내놓으라고 말이다!
“…괜찮게 흘러가네.”
뭐, 어찌 되었건 간에.
블랙 벨트를 띄우기 위한 사전 작업은 잘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화제를 모으는 것.
온 힘을 쏟아부어 다음 방송에 폭탄을 투척하는 것.
그다음부터는?
솔직히 말하자.
알바 아니다!
‘…우승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물론 탑 싱어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큰 상징성이 있기는 하다.
앞으로의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할 거다.
다만, 그 밖에도 블랙 벨트의 가능성은 아주 많았다.
탑 싱어는 그저 위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일 뿐.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EL엔터로 향했다.
연습실에 모여 있는 것은 한껏 고양된 표정의 블랙 벨트 멤버들.
“작곡가님.”
“예.”
“준비 다 됐습니다.”
박민수는 구석에 놓여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그 속에 담긴 것은… 다음 무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품들.
끄덕.
끄덕.
이미 한 차례의 승리를 맛본 상태.
아마 블랙 벨트 멤버들도 지금 인터넷에서 자신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다만, 그들은 역시나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완벽하군요.”
“갑시다!”
“예!”
우리는 비닐 봉다리와 악기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신문지를 깐 다음 일을 저질러버렸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악-!
기타와 베이스, 두 개 합쳐 1,000만 원이 넘는 고액의 악기에 투명 내열 스프레이가 뿌려진다.
그리고, ‘가열경화’를 위해 토치로 다시 한번 달구어진다.
“…으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 돼애애!”
울려 퍼지는 절규.
흘러넘치는 눈물들.
미친놈들을 보는 듯한 행인들의 시선.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저 기타와 베이스 고유의 소리는 영영 변할 것이며, 명품 악기로서의 생이 끝났을 것이다.
악기를 손에 쥐며 만들었던 추억은 이제 추억으로밖에 회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이 모든 것은… 밴드 계의 초신성 ‘블랙 벨트’를 위해…!
“…끝났습니다.”
30분.
완전한 사형선고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넥 변형은 없네요… 소리는 나겠어요.”
“…그래, 소리는 날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두 사람은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고서 기타를 어깨에 멨다.
그리고,
“…죽여 버리겠어.”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그래, 다 죽여버려야지.”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순수하면서도 저돌적인,
이제껏 한국에 나왔던 그 어떤 락밴드보다도 강렬한 눈빛.
‘…질 수 없는걸.’
괜히 나한테까지 광기가 전염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순간,
불타오르는 저 눈빛들을 보고 있자,
나의 머릿속에도 같이,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
그것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그리고 불에 지지 않을 만큼 간지가 나는 것.
…생각해 보니, 번개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지금 몸으로 어느 정도까지 전압을 버틸 수 있지?’
순수한,
아주 순수하기 그지없는 의문이 들었다.
* * *
예상이 벗어나는 걸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특히 ‘성공’이 확정된 미래가 어그러진다면 더더욱.
손현지,
활동명 코코릴리를 쓰고 있는, 대형 우튜버의 경우에도 다를 바는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원래도 제품 광고니, 커버 영상이니, 행사니. 가수는 아니지만, 가수만큼 바쁜 스케줄이 들어차 있었다.
그걸 모두 뿌리치고 일부러 ‘탑 싱어’에 참가한 것이란 말이다.
왜?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서.
우튜브나 잉스타에서만 이름을 날리는 지역대장이 아닌, 그야말로 ‘메이저’ 바닥에 발을 걸치기 위해서.
100만에 달하는 구독자는 누군가에게 있어서 선망의 숫자이기도 했지만, 당사자에게는 족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손현지, 본인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꼬였네요.”
“아… 진짜.”
전대현, 그리고 자신.
이번 ‘탑 싱어’에서 1위를 차지할 것이리라 예상되던 인물들은, 오손도손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뭐, 사실 그렇지 않은가.
방송 기획이 뭐가 어떻든 간에, 참가자들 서로가 뭉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압력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자발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방송을 이름값을 높일 기회로 삼으려 했으며,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리고, 예선을 거치며 계획은 절반쯤 성공한 상태였다.
커버 가수 둘.
다만,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결국 결승에 올라오는 둘.
마지막을 앞두고 펼쳐지는, 서로를 향한 리스펙.
물론 두 사람은 구면이었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서로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고 있었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다만, 첫 생방부터 본격적인 갈등을 끼워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여 2회차 방송까지 기다린 건데….
“…애매하네요.”
“하아….”
어그러지고 있었다.
예선 방영까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블랙 벨트’와 ‘이호식’ 때문이었다.
“중학교 동창 둘에… 밴드에… 뭐 아직까지는 경계할 수준은 아닌 거 같긴 한데.”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요.”
“그렇죠….”
“왤까요?”
“네?”
“저 둘이 갑자기 주목받은 이유.”
“…어려운 이유는 아니죠.”
…사실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다름이 아닌 ‘실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실력의 원천을 만들어낸 인물은….
“김도일….”
“예. 그 사람 탓이네요.”
갑자기 나타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신인 작곡가, 김도일.
“하아… 어찌 됐든 간에 관심을 빼앗길 수는 없어요. 다음 방송 때 서로에 대한 비난을 좀 높이죠.”
“그렇게 해요.”
방해꾼이 나타났으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손현지와 전대현은, 가짜 진흙탕 싸움을 해보기로 서로 합의를 했다.
더더욱, 관심을 받기 위해서.
“혹시 모르니 잉스타도 좀 둘러보죠.”
특이사항은 미리미리 확인해 둬야 하는 법.
전대현은 핸드폰을 들고, 참가자들의 잉스타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뭐, 대개의 사람들이 올린 스토리나 게시글은 평범했다.
생방송을 캡쳐한 사진, 멋들어진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 등등.
다만, 단 한 곳.
특이한 계정이 있었는데, 바로 ‘블랙 벨트’의 것이었다.
“누구예요?”
“김… 도일. 그 작곡가 같은데요.”
사진속의 남자는, 해녀라도 된 양 검은색 다이버 슈트를 입고 있었다.
다만 그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근데 왜 몸에 전기가 흐르고 있는 거죠?”
도저히 ‘CG’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모습.
온몸을 감싼 거무튀튀한 고무 섬유 위로, 번개를 내뿜고 있는 모습.
“그냥 컨셉샷 아닐까요?”
“…역시 그렇겠죠?”
원래 락을 하는 인간들은 머리가 이상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저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를 리가 없으니까.
걸어 다니는 전기 뱀장어… 그딴 게 실존할 리가 없으니까.
“그럴 거예요.”
두 사람은 이어서 작전을 세웠다.
머릿속에 한껏 힘을 준 컨셉샷이 계속해서 아른거렸지만,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