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12)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12화(12/210)
012화. 경력직 신인 투수 (5)
정준의 뜻밖의 제안.
【대상을 튜터로 적용 시 일부 구종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튜터에게서 전수받는 구종은 <로건 라이트의 후계자>와 별도로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의 등장까지. 첫 등판에서 의외의 수확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 튜터는 한 번 등록 시 3개월간 변경할 수 없습니다.】
【※ 등록 가능한 튜터는 현재 1명입니다.】
물론 시스템을 통해 조력을 받는 것에는 일정 제약이 걸려있었다. 3개월간 변경 불가. 그리고 등록 가능한 튜터는 오로지 1명뿐. 그리고 지금 눈앞에는 정준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바로 그 정준.
“저한테 구종을 가르쳐 주겠다고요?”
“왜. 생각 없니?”
아뇨. 아뇨. 그럴 리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정준인데. 한국에 어느 미친 투수가 그런 제안을 거절하겠습니까?
“생각 없을 리가요. 그냥 왜 저인가 하는 생각에···.”
“너라면 뭔가 금방 배우고 써먹을 거 같아서. 너 혹시 기억하니? 내가 너랑 2군에서 딱 한 번 붙어본 적 있는데.”
아, 그 승부. 한 작년 초쯤이었나? 어떻게 기억을 못 할 수 있겠나. 다른 누구도 아닌 정준과의 대결이었는데.
“네, 기억하죠. 아마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끝났었죠?”
“그전까지 내가 던진 공의 개수는?”
“··· 13구였죠.”
“내가 마지막으로 던진 구종은?”
“몸쪽으로 붙는 너클 커브였을 거에요. 살짝 걷어내려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공이 더 빠르게 가라앉아서 제대로 맞추지 못했었습니다”
그 대답에 정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었니?”
“다른 선수도 아니고 정준 선배님과의 대결이었는데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던 승부였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기억에 좀 더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힘 대 힘 싸움이기 이전에 심리전. 자신보다 몇 수는 앞서 있을 선수와의 승부는 자주 오지 않는다. 태준은 그 승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고, 그렇기에 다른 승부들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말이야. 너 그 승부에서 내가 던진 공 전부 예측하면서 타격했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정준이 물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태준의 대답이 돌아온 순간 정준의 입꼬리는 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르쳐주고 싶은 거야. 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어때? 생각 있어?”
확신의 단계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준이라면, 눈앞의 이 녀석이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고.
“선배님의 투구를 보고 자란 선수라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대답은 처음부터 같았다. 정준의 제안을 거절할 한국의 야구 선수는 없다.
【대상 <정준>을 튜터로 등록합니다!】
【등록된 튜터로부터 새로운 구종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이상의 고민은 사치였다. 한국에서 정준 이상으로 뽑아먹을(?) 것이 투수는 없을 테니.
정준이 떠난 후 곧바로 그를 튜터로 등록했고 이를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로건 라이트는 괜히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내 재능에 정준의 구종까지 배울 수 있다고? 이거 너무 퍼주는 거 아냐? 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자고 이렇게 퍼주는 거야.]그만큼 시스템에 새로이 편성된 ‘튜터’ 제도는 가히 사기적인 버프.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과정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그러한 능력이었으니까.
이미 공을 잡은 지 일주일 된 투수라고 상정할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올라 서 있는 태준에게 날개 하나가 더 부여된 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랑 정준이라는 녀석은 정말 다른 유형의 투수야. 주력으로 활용하는 구종도 달랐고, 볼 배합을 구성하는 방식도 달랐지.]다양한 구종을 실전에서 구사했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한 두 명의 투수였지만, 깊게 파고들면 확연하게 구별됐다.
로건 라이트는 빼어난 제구력과 위력적인 구종들로 카운트를 빠르게 잡는 유형의 투수였다면,
정준은 스트라이크 존 주변으로 타자의 방망이를 살살 꿰어 잡는 유형의 투수였으니까.
[몇몇 구종은 나보다 나은 것도 있었지. 좋은 투수야. 만약 정준의 구종까지 익힐 수 있다면, 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여기서 누구의 스타일이 더 정답에 가깝냐를 따지는 건 쓸모없는 논쟁. 알아야 할 건 두 투수 모두 MLB에서 족적을 남긴 투수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투수의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
“하하, 제가 이렇게까지 행복을 누려도 되는 선수인지 싶을 정도네요.”
부족한 재능을 극복하고자 버텼던 짧지 않은 시간. 그 고된 시간을 전부 돌려받는 듯한 기분. 아니, 복리에 복리를 잔뜩 붙여서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마 정준이라는 녀석도 너에게서 뭔가를 봤던 거지. 너 생각보다 야구 감각이 엄청 좋은 편이거든. 볼 배합 짜는 것만 봐도 알지. 너도 알고 있잖아? 너 심리전 잘한다는 거.]“실력 없는 놈이 살아남으려면 눈치라도 빨라야 했으니까요. 언제부턴가 상대가 가장 싫어할 만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그냥 몸에 배어 있더라고요.”
[허허, 말은 잘해요. 여하튼. 내가 제일 먼저 눈여겨보고 있던 놈인데. 다른 놈이 눈독을 들이네?]‘··· 네?’
[아냐 아냐. 흘려들어.]어떻게 흘려듣습니까 그걸···. 뭐, 그러거나 말거나. 로건 라이트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넌 앞으로 열심히만 하면 될 수 있는 놈이야. 천부적인 신체에 로건 라이트의 재능에 정준의 재능? 야 이건 어떤 괴물이 될지 나도 궁금하네.]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이제는 핑계가 없다. 과거의 내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무의미한 노력에 갇혀 있던 시시포스였더라면, 지금의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을 받은 야구 선수였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보상은 따라온다. 꽤 강한 동력이었다.
그쯤. 정준이 떠나기 전 남긴 말이 떠올랐다.
“그래. 열심히 하다 보면 꼭 좋은 결과 나올 거야. 조만간 1군에서 보자.”
1군. 프로 생활 5년간 근처도 도달하지 못한 곳.
그곳이 머지않은 느낌이었다.
***
태준이 한창 훈련을 진행하고 있을 때쯤. 다른 곳에서 배터리 코치와 포수 송정근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네가 리드한 게 아니었구나.”
“네. 첫 타자만 제가 리드했고. 남은 세 타자 때는 전부 태준이가 리드했었습니다.”
태준이 공을 던졌던 6회 초. 일부러 노리는 공을 던져서 타자의 방망이를 끄집어내 카운트를 잡고서 노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한복판에 꽂는 느린 직구.
“아마 저였더라면 그때로 돌아가도 그런 볼 배합을 요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송정근의 기준과는 너무도 다른 볼 배합이었다. 태준이 볼 배합의 주도권을 가져간 공은 고작 7구. 하지만 그 7구 전부 한 번에 사인이 맞은 적이 없었다. 모든 투구는 고개를 최소 3~4번은 돌린 뒤에야 비로소 합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면 네 생각은 어떻지? 태준이가 주도했던 볼 배합이 틀린 방식인 것 같아?”
“··· 전혀요.”
하지만 그 볼 배합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로 인한 결과가 너무 좋았으니까.
과연 자신이 주도한 볼 배합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자신은 분명 상대가 노리는 공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압도적으로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존 안으로 공을 찔러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석에서 어긋나 있는 방식이니까.’
송정근의 볼 배합은 지극히 정석적인 방식. 상대 타자의 약점을 지독할 정도로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데이터를 신봉하여 효율을 가장 우선시하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은 절대로 틀린 방식이라 할 수 없었다. 데이터가 괜히 데이터인가? 데이터대로만 공을 던질 수 있다면, 막말로 엇나갔다고 욕먹게 되는 일은 없다.
“정근아. 늘 말해온 거지만. 넌 가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정직할 때가 있어.”
하지만, 경직되어있는 사고는 절대로 최선의 수를 끄집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태준의 공을 받았을 때, 그리고 태준이 타석에 설 때를 떠올리면서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었다.
‘태준이가 타석에 서 있을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들었었다. 마치 내 생각이 전부 읽히고 있다는 그런 느낌.’
과거 자신이 홈 플레이트를 지키고 있을 때. 타석에 선 태준과 몇 번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한 6타석 정도 만나서 1볼넷 1안타쯤? 전적 자체는 평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하나 확실했던 건.
‘태준이는 나와의 승부에서 단 한 번도 방망이를 헛돌리지 않았다.’
그 6번쯤 되는 승부. 한 40개쯤 되는 투구 중 태준은 헛스윙을 켠 적이 없었다. 전부 컨택을 했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었고, 수비수의 글러브에 막혔을 뿐···. 마치 생각을 읽히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 느낌을 확인해보고자 볼 배합의 주도권을 맡겼고,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태준은 분명 투수와 타자 간의 심리전을 자신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서 이해하고 있는 선수였다.
“네가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는지 모두가 다 알아. 아마 너만큼 전력 분석지를 달달 외우는 놈은 또 없을 거야. 건데. 데이터라는 게 만능은 아니잖냐. 너도 알다시피 투수와 타자의 싸움에서 변수라는 게 너무 많거든.”
배터리 코치의 말마따나 데이터는 절대로 만능열쇠가 될 수 없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답해주지 않는다.
데이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때는 어떠한 답을 도출해야 할 것인가.
투수의 컨디션, 그리고 타자의 컨디션이라는 것이 144경기 전부 같을 수는 없을 노릇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는 또 어떠한 답을 도출해야 할 것인가.
포수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는 타자를 상대할 때는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데이터가 답해주지 않는 영역에서 어떠한 답을 도출해야 할 것인가.
송정근은 아직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있었다.
태준에게 볼 배합 주도권을 건네준 이유 역시 그 답을 찾는 과정의 하나였다.
“한 번 태준이한테 계속 주도권을 맡겨 봐. 너한테도 그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비로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준과 볼 배합을 맞출 때만큼은.
그때만큼은 주도권을 태준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송정근과 배터리 코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
태준의 첫 등판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볼 배합에 대한 주도권. 그것을 송정근으로부터 온전히 건네받을 수 있었다.
“네 볼 배합 보고 느낀 게 좀 있었거든. 나도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송정근이 학구파 포수임은 그가 리드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포수가 투수에게 볼 배합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분명했을 터.
[저 포수도 느낀 거지. 네 심리전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걸. 그렇다고 해도 포수로서 고집을 쉽게 내려놓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저 송정근이라는 녀석도 마인드는 될 놈이네.]‘네, 앞으로도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있어야겠죠.’
동료가 자신을 신뢰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 신뢰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리고 코칭 스태프들의 평가 역시 빠른 속도로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첫 등판 이후 이틀이 지난 두 번째 등판 경기. 창원 바이킹스와의 시리즈.
7회 초. 6대4로 지난 등판과 달리 2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의 등판.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이닝 무실점 1피안타 2K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이어지는 세 타자 연속 아웃.
비록 2군 기록이지만, 생애 첫 홀드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 경기에서 또 한 번 이틀이 지난 세 번째 등판 경기. 똑같이 창원 바이킹스와의 시리즈.
8회 초. 3대2로 1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의 등판. 실점 하나로 게임의 승패가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의 등판.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이닝 무실점 퍼펙트 2K
단 한 번의 출루조차 허용하지 않고서 이닝을 끝마칠 수 있었다.
생애 두 번째 홀드 기록.
세 경기 성적 3이닝 무실점 1피안타 6K
0승 0패 2홀드
비록 2군의 기록이고 아직 세 경기밖에 등판하지 않았을 뿐이지만 성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첫 등판에서의 퍼포먼스가 그저 우연으로 이뤄낸 결과가 아님을 연달아 증명해내는 그 모습을 2군 코칭 스태프 모두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싸울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네. 당장에 이 정도로 잘해줄 거라곤 솔직히 기대 안 했었거든요?”
“그러게요. 시간이 조금 필요할 줄 알았는데. 끝내주네요. 팀이 아슬하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투구를 잃지를 않아요. 이거 보통 강심장이 아닌데요?”
사실 태준에게 두 번째 등판 만에 필승조 역할을 맡긴 것은 너무 이른 시점에 둔 무리수였다. 하지만 태준은 그 무리수를 묘수로 바꿔낼 능력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기대치는 자연스레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다음 시리즈. 태준이 한 번 세이브 상황에 올려보는 거 어떨까요?”
거기서 장민영 코치는 한 수 더 나아갔다. 바로 태준을 세이브 요건에 투입 시켜 보자는 것. 하지만 그 상황에서 태준을 마무리 상황에 올려보자는데 만류하는 의견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네, 저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지금 마무리가 공석인데. 당장에 태준이보다 폼 좋은 불펜 투수 없습니다.”
진민우 투수 코치도 이에 동의했다. 현재 원더스의 2군의 마무리는 공석. 집단 마무리 시스템이었다. 불펜 투수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마무리 상황에 등판할 수 있던 상황. 태준은 그 자격을 충분히 갖춘 선수였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 주신다면, 다음 시리즈부터 바로 준비시켜봐도 괜찮겠네요.”
윤원호 감독은 두 투수 코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으로 태준은 잠정적으로 2군 마무리 투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 이천 원정. 태준이한테는 꽤 의미 있는 시리즈가 될 것 같네요.”
다음 원정 시리즈. 서울 드래곤스와의 시리즈 경기.
태준을 처음으로 품은 팀이자.
끝내 미련도 없이 버린 그 팀.
태준은 드래곤스와의 시리즈에서 마무리 투수로 대기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