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155)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155화(155/210)
155화. 등정 (3)
쿠어스 필드는 역사 속 내로라하는 전설적인 투수들도 자신의 공을 던지지 못한 곳이다. 심지어 개중 몇 명은 의도적으로 쿠어스 필드에서의 등판을 피하기까지 했다.
해발 고도 1610m의 쿠어스 필드에서 공을 던지게 되면 메커니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염려가 그 이유였다.
실제로 그렇다. 쿠어스 필드에서 제대로 된 공을 던지기 위해선 산 밑에서 공을 던질 때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공을 던져야 했고, 그것은 투수에게 있어서 극약을 들이켜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물며 메커니즘의 변경을 시도한다 한들 성공 가능성이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고 애초에 난도 자체가 극악의 수준으로 높았다.
즉, 구현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의미 또한 불분명한 도박이라는 것.
투수들은 자신들의 메커니즘을 걸고 도박을 감행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산 밑에서 공을 던질 때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공을 던지고, 그것으로 뒤틀리는 투구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저 감내한다.
메이저리그 타자들과의 승부는 온 집중을 다 쏟아내어 최선의 투구를 펼치더라도 잡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그 계산을 종잡을 수 없을 승부다. 그런 상황에 투수의 의도와 다르게 뻗어 가는 공은 타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다. 하물며 인 플레이 타구만 만들어내면 공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쭉쭉 뻗어 간다.
‘하,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곳이야···.’
이번 시리즈에서는 운이 좋게 로테이션을 건너간 터라 쿠어스 필드에서 공을 던질 일이 없던 벤자민 마카키스.
그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한 채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25살의 어린 투수. 나이를 고려한다면 나름의 유망함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냉정히 평가하길 아직 에이스 투수들에겐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투수.
에이스 투수를 넘어서 메이저리그에 전설로 기억되는 투수들조차 쉬이 정복하지 못한 경기장, 쿠어스 필드. 아직 성장을 끝마치지 못한 평범한 투수가 그곳에서 공을 던지는 데 부담을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벤자민 마카키스의 목전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그의 상식으로는 불가해한 광경이었다.
몇 번을 공을 던져봐도. 아니, 십 수년간 수십 번 마운드를 오르더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이곳, 쿠어스 필드다.
그런데 눈앞에 선 같은 나이의 투수는 대체 무엇인가. 1회 때만 하더라도 분명 쿠어스 필드의 낯선 기류, 자연의 섭리 앞에 그 또한 부침을 겪었다.
그간 비범함의 연속을 보여주던 그 또한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2회, 3회, 4회··· 7회까지. 매 이닝 안정감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이에 휘둘리는 쪽은 이태준이 아닌 로키스의 타자들이었다.
“······.”
모골이 송연해진다. 정녕 같은 나이의 선수가 맞는 걸까? 은연중에 질투심과 열등감 엇비슷한 것이 차오르는 느낌도 드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기 시작한 경외심이라는 감정 앞에 갈무리된다.
퍼어엉-!!!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그런 이태준이 7회 말, 로키스의 공격을 또 한 번 삼자 범퇴.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낸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양 손뼉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윽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투수들도 아마 자신과 그리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진 않았다. 모두가 말없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이태준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그 시선엔 경외심이 서려 있는 듯했다.
다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산소 호흡기를 입에 가져다 댄채 천천히 호흡을 내쉬는 이태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는 수많은 불문율이 있고, 더그아웃의 모든 이들이 그저 그 불문율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었으니.
메츠 벤치의 모든 선수의 뇌리엔 같은 생각이 공유되고 있었을 테니까.
‘노히트 노런까지 앞으로 2이닝···.’
2회까지 세 개의 사사구를 헌납하며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이태준은 3회부터 7회까지 단 한 타자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즉, 이태준은 이 게임에서 로키스의 타자들에게 단 하나의 안타도 헌납하지 않았다.
노히트 노런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것도 다른 야구장도 아닌 쿠어스 필드에서.
***
노히트 노런.
투수에게 있어서 평생을 간직할 가치가 충분한, 아주 영광스러운 순간.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 노런은 말 그대로 ‘훈장’이었다.
하물며 이곳은 쿠어스 필드다.
1995년에 첫 개장을 알리고 무려 반 세기가량에 걸친 역사 속 쿠어스 필드에서의 노히트 노런 기록은 더욱이 값진 훈장이었다. 아마 그 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대로 은퇴해버리더라도 사람들에게 여러 세월에 걸쳐 회자될 수 있을 테니.
‘아, 그 쿠어스 필드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그 투수 말이야?’
라고···.
[<8회 말> 뉴욕 메츠 6 : 0 콜로라도 로키스]여기까지 온 이상, 경기의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메츠의 승리를 바라는 메츠의 팬들도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전광판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저 숨을 죽인 채 마운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 필드의 개장 이래 유일(唯一)한 기록이 유이(唯二)한 기록이 되는 순간이 머지않았기에.
그 순간만큼은 이태준의 표정도 사뭇 비장하다.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고양감. 복합적인 감정이 전신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태준의 다소 낯선 모습에 두 유령은 말했다.
[태준이도 결국 사람은 사람이야. 아무래도 지금은 다른 순간과 같을 수가 없지. 지금마저 평온하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겠지. 고도로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기계.] [아무렴. 만약 야구 선수가 ‘나는 기록 의식 안 해요’라고 말하는 건 99%가 거짓말이니까. 기록을 의식하지 않는 야구 선수가 세상에 어딨어? 그 기록이 다 본인 가치이자 돈이고 마지막까지 남아주는 건 기록뿐인데.] [흐흐, 아마 욕심날 거야. 욕심이 날 수밖에 없지.]이태준도 결국은 사람이고, 25살의 어린 투수다. 당연히 대기록 앞에 부담감을 느끼고 긴장한다. 그런 모습이 두 명의 유령에겐 꽤 기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태준을 향한 별다른 걱정도 없었다.
그 적당한 긴장감 속에 조급함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이태준은 언제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그런 이태준의 공을 받아주는 포수는 다름 아닌 리암 쿠퍼.
퍼어엉-!!!
“스트라이크!!!”
이태준이 짊어져야 할 심리전의 압박을 대신해서 짊어주는 존재. 언제나 믿음을 줄 수 있는 포수가 홈 플레이트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이태준이 타자와의 승부를 더욱 수월히 풀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부우웅-!!!
퍼어엉-!!!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8회 말, 로키스의 첫 타자가 거둔 결과는 4구 만에 삼진. 이제 쿠어스 필드의 노히트 노런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다섯 개.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방심은 금물이며. 공 하나하나에 진심을 쏟아 넣을 수 있어야 했다.
이태준은 그런 공을 던지고 있었다.
반면, 로키스의 타자들은 전력을 다해 공을 흩뿌리는 이태준을 반드시 막아설 수 있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기록은 영광스러운 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 그 기록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로키스의 타자들은 그 치욕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서고 싶었다.
이미 이태준으로부터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지만, 여기서 노히트 노런까지 헌납하는 것은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심장에 큼지막한 죽창이 제대로 꽂혀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테니까.
방망이를 짧게 쥐고, 먼 곳이 아닌 딱 내야수 키를 넘길 만큼, 외야수 앞에 떨어질 만큼. 그 정도의 타구를 노린다.
경기의 승리는 뒷전. 지금은 기록을 어떻게든 막아서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승부에서 불리한 쪽은 먼저 조급함을 드러내는 쪽.
로키스의 타자들은 알게 모르게 메츠의 배터리를 상대로 조급함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딱-!
부실한 타격음과 거의 제자리에서 높게 솟아오른 타구는 조급함의 대가였다. 그렇게 대가를 치른 타자는 허탈함을 동공에 띄운 채 솟아오른 타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Fuck···.”
8회다. 이미 이태준의 투구 수는 90구 부근에 도달해 있었다. 지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하물며 이곳은 호흡마저 버거운 쿠어스 필드가 아니던가?
아무리 적응이 되었다 한들 체력의 한계로 투구의 위력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건 아무리 곱씹어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여기서까지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야···?’
타자가 허탈함을 느끼는 것은 단지 이태준의 가공할만한 체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태준이 보이는 투구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투구였기 때문이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 적지 않은 공을 던졌을뿐더러 남은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를 내어줘선 아니 될, 마치 백척간두 위에 몸을 올려놓은 것과 같은 상황.
체력과 정신력, 모든 요소가 한계에 맞닥뜨려 손끝이 떨리고 사고가 긴장감에 저며지는 것이 너무도 마땅한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실투는 없었고, 본인이 원하는 코스, 타자가 가장 타격하게 까다로워하는 코스에 공을 꽂아 넣었으며, 몸쪽 코스, 바깥쪽 코스, 높은 코스, 낮은 코스를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넘나들었다.
마치 이태준, 자신은 지치지 않았고 긴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남은 것은 허탈함 뿐이었다.
딱-!
“아웃!!!”
8회 말. 세 개의 아웃 카운트를 빼앗기는 동안 로키스의 타자들은 이번에도 1루를 밟지 못했다.
경기는 그렇게 9회로 넘어갔다.
***
언제나 그러했듯 메이저리그는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을 격하게 반긴다.
이는 쿠어스 필드도 마찬가지다.
때는 1996년 9월 17일. 주위의 만류와 조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낯선 땅 미국에 도전하여 성공한 투수. 아시아 메이저리거의 첫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투수 노모 히데오는 그곳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새겨 넣었다.
9이닝 무실점 4사사구 8탈삼진. 그리고 무피안타.
노히트 노런.
비록 쿠어스 필드에서 통산 평균자책점이 8.05인 투수였지만, 노모 히데오는 그 한 경기에서 전설을 작성했고, 이후 40년 넘게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았다.
개장 이래 쿠어스 필드에서 총 35번의 완봉승이 있었지만, 그 노히트 노런 기록만큼은 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한 선수에 의해 그 기록이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8이닝 무실점 3사사구 11탈삼진. 그리고 무피안타.
투구 수는 94구. 점수 차이도 6점 차로 제법 벌어져 있었기에 투수 교체를 해도 될 법한 상황이었지만, 메츠 벤치의 움직임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운드를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는 그 투수는 지금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침묵.
침묵을 지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으로 응원과 격려를 대신했다.
“후우···.”
마운드에 도달한 이태준은 한 차례 숨을 내뱉었다.
툭-!
이윽고 수중으로 이리저리 굴리던 로진백을 밑으로 떨궜다.
자세를 다잡는다.
관중들의 모든 시선이 모인 곳. 중계방송을 통해 수많은 메이저리그의 팬들의 시선이 모여든 곳.
그곳 한가운데에 선 태준의 표정엔 싸늘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쿠어스 필드의 역사상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을 위한 투구.
타아앗-!!!
강하게 뻗어나가는 스트라이드.
슈우우우웅-!!!!!
이윽고 이태준의 손가락을 통해 회전력을 얻은 야구공이 강하게 뿜어져 나간다.
역사적인 기록을 앞둔 9회 말이 비로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