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17)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17화(17/210)
017화. 어제를 넘어 내일로 (5)
민찬수 기자는 스포츠 기자, 그중 야구 기자로만 20년을 넘게 종사해온 인물, 지금은 한 신문사의 스포츠 부서의 부장급 기자에 올라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자 생활 동안 쌓인, 선수를 통찰하는 여러 지론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에 보이는 선발 투수의 자세, 특히 경험이 아직 부족한 선발 투수가 보이는 자세는 곧 선수의 그릇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
‘선발 투수 등판 직전이 딱 그날의 자신을 되돌아보기 좋은 순간이니까.’
선발 등판 직전의 순간은 자신이 오늘 경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 요소들이 제법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민찬수는 등판을 앞둔 신인 선발 투수를 조금 더 면밀하게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약간의 경탄이었다.
“긴장을 안 하는 거든 잘 감추는 거든. 긴장하는 내색이 전혀 보이질 않는데요? 신인이라고 보기가 어렵겠어요.”
취재를 위해 원더스의 더그아웃을 방문했던 민찬수는 원더스의 투수 코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대화의 화두는 단연 이태준.
“하하하, 그러니까요. 뭔 이제 4경기 던진 녀석이 베테랑처럼 던지더라니까요? 저희도 아직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그럽니다.”
진민우 코치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애저녁에 잘 돼야 했던 녀석인데. 이제라도 잘 돼서 다행이죠.”
장민영 코치 또한 말을 이어붙였다.
“그러고 보니 장민영 코치님이 이태준 선수 원더스로 데려오셨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태준이가 먼저 왔죠. 제가 한 건 딱히 없었어요. 저렇게 던질 수 있는 놈을 어떻게 외면해요.”
“그래도 장 코치님이 평소 이태준 선수를 좋게 봐왔던 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방금도 그러셨잖아요. 이태준 선수더러 잘 돼야 했던 녀석이라고.”
태준의 진면목. 장민영은 그것을 조금 더 일찍 보고 있었던 사람.
“그렇죠. 무조건 잘 돼야 했던 선수죠. 그간 정말 많은 선수를 봐왔어요. 저렇게 열심히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어요. 이게 열심히 하는 척만 하는 놈들은 어떻게든 티가 나기 마련이잖아요? 쟨 그런 거 없었어요. 매일 같이 가장 일찍 경기장에 출근해서 가장 늦게까지 훈련했어요. 그렇다고 훈련 강도가 약한 것도 아니고. 저 한창때와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선수였습니다.”
사실 장민영은 노력은 언젠가 재능을 이긴다는 말. 열 방울의 땀을 흘렸는데 열 한 방울 만큼 성장하고 발전하는 건 없으며, 마찬가지로 열 방울의 땀을 흘렸는데 아홉 방울만큼 발전하는 일은 없다는 말. 정확하게 노력하는 만큼 발전하고 이루며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라는 말. 그 말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다.
본인 역시 선수 시절 정말 열심히 했었고, 노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었기에 본인은 절대로 정준처럼 던질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노력’이 정말 어렵다는 것 또한 절대로 부정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는 선수라도 그들의 ‘노력’만큼은 절대로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보상 없는 노력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물론 노력 같지도 않은 노력을 노력이라 착각하는 놈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봐온 태준은 노력의 역치가 압도적으로 높은 선수였다.
진심으로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그 바람의 끝에 지금의 태준이 있었다.
“제가 장 코치님 알고 지낸 지도 거의 1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장 코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선수는 처음인 거 같네요.”
노력하는 이가 끝내 승리하는 순간. 민찬수 역시 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스포츠 팬으로서 그런 순간을 목도할 수 있기를 내심 바라왔다.
“야구만 잘 할 수 있다면, 팬들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할 선수겠네요.”
그리고 이는 민찬수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팬’이 좋아할 순간. 민찬수의 동공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관심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
7월의 첫날. 슬슬 한여름이 접어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던 뜨거운 햇살이 이천 야구장을 조명했다. 방금까지 가볍게 웜업하고 있던 선수들 전부 제 자리로 향했고. 그라운드 위로는 적막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한 선수가 서 있었다.
“확실히 선발 투수로 나올 때의 마운드는 조금 다르긴 하네요. 뭐.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첫 번째로 나온 투수 쪽이 더 맞는 말이겠지만요.”
이태준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더스 투수 중 가장 먼저 마운드 위로 올라서 있었다. 직책은 선발 투수,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프너. 이닝에 상관없이 약 20구에서 30구 사이의 투구 수를 팀으로부터 허락받을 수 있었다.
[선발 투수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 뭔 줄 알아?]“불펜 투수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죠. 특히 형님은 아마 연 4천만 달러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선발 투수와 불펜 투수의 가치는 천지 차이. 불펜 투수 중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클로저는 대체로 3선발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물론 에드윈 디아즈처럼 특출나게 뛰어난 마무리 투수는 연평균 2000만 달러까지 받아낼 수 있겠지만, 그조차도 정상급 선발 투수가 받는 연봉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규모였으니까.
프로의 가치는 돈으로 책정되기 마련. 정상을 목표로 하는 투수라면 응당 선발 투수를 노려야 한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였다.
[근데 그거 모르는 놈이 어디 있다고. 시시하게 그런 이야기나 하자는 건 아니었거든?]로건 라이트는 그런 당연한 말을 꺼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태준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윽고 로건 라이트는 손끝으로 마운드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그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오늘 경기에서 그 어떤 투수도 오르지 않은 깨끗한 마운드. 그건 선발 투수밖에 오를 수 없는 곳이거든.]아직 다른 투수가 다니지 않아 처음 그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깨끗한 마운드. 분명 이전의 등판 때와 다른 감각이 발밑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조금 퇴색됐겠지만, 과거 수많은 등산가가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정복하고자 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겠지. 아직 누구의 발도 닿지 않은 곳에 처음 발을 디딜 때의 정복감은 기분이 썩 괜찮은 일이거든. 너도 느껴지지 않아?]어쩌면 아주 미세할 뿐인, 변변찮을 뿐인 차이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투수가 직접 그 차이를 구별함으로써 의미는 새롭게 피어난다.
[그 감각을 잊지 마. 그리고 아로새겨 넣어 네 목표는 선발 투수라는 것을.]“네, 알겠습니다.”
투수라면 선발 투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 태준은 그 어떤 반문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그것은 너무도 마땅한 말이었으니까.
“물론, 시기는 팀에서 그 자리를 허락하도록 만든 후여야 하겠죠. 지금은 팀이 정해주는 대로. 원 포인트 릴리프를 요구하면 원 포인트 릴리프로 뛸 수 있어야 하고. 지금처럼 오프너를 요구하면 오프너로도 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프로니까요.”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것까지 망각하지 않는다.
오늘 팀이 자신에게 요구한 역할은 오프너.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는 그 역할을 위한 최선에 집중한다.
[그래, 자리는 요구가 아닌 쟁취로 얻어내는 것. 그게 프로의 자세지.]그 순간 태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보자.]드래곤스의 선두 타자가.
“네, 오늘도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자신이 잡아야 할 첫 사냥감이.
그리고 오늘 그들을 잡아낼 새로운 무기가 있었다.
그것으로 오늘의 승부는.
“오늘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
이천 야구장의 관중석, 그라운드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자리. 민찬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서 노트북을 펼쳤다.
칙-
그리고선 차갑게 식힌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이거지 이건 끊을 수가 없어.”
선수들의 숨소리가 닿는 듯한 가까운 곳에서 들이키는 차가운 에너지 드링크.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은 중독성이 너무도 강했다. 몸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윤원호 감독님은 이런 게 좋아. 게임을 지고 이기는 것보다 최대한 많은 선수한테 기회를 주고. 또 다양한 역할도 맡겨 보고. 퓨처스 리그는 이래야 하거든.”
그리고 펼쳐본 라인업. 원더스의 라인업을 살펴보던 민찬수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그런데. 김기철 감독님. 라인업이 도통 안 바뀌어. 지난 경기랑 똑같네.”
그러고선 확인한 드래곤스의 다소 경직되어있는 라인 업. 민찬수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프로 야구팀에게 ‘승리’는 가장 최우선시되어야 할 가치겠지만, 적어도 퓨처스 리그에서만큼은 승리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드래곤스가 당장엔 많은 게임을 이길 수 있겠지만···. 에이, 뭐 그래도 여러 감독마다 다 자기 생각이 있을 테니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자잘한 아쉬움에 젖어 있을 시간은 거기까지. 지금 막 경기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먼저 1회 초, 원더스의 공격. 드래곤스의 투수는 박지혁. 나이는 올해로 31살. 전반기가 채 끝나지 않은 시점 벌써 14게임의 선발 등판을 나서 70이닝을 던진 투수. 다른 퓨처스 리그 투수들보다 거의 2배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한 140 정도인가? 그나저나 지난 등판에서는 체인지업의 위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좀 다르려나?”
지난 경기 박지혁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3.2이닝 4실점.
단순히 컨디션 난조의 문제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민찬수는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았었다.
그리고 그 밋밋한 체인지업은 1회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따악-!
“그렇지! 그렇지! 제대로 갈랐다! 2루! 2루까지!”
“좋아! 좋아! 이대로 한 점 더!”
원더스의 타자들은 박지혁의 체인지업을 제대로 공략해냈다. 그 결과, 1회부터 대거 3득점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민찬수는 제법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호, 노골적으로 체인지업을 노려치고 있었잖아? 원더스도 알고 있었나 본데?”
박지혁의 볼 배합 상 구사할 수 있는 오프스피드는 체인지업 하나 뿐이기에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서는 한 번씩은 볼 배합에 섞어야 했다.
그리고 원더스 타자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원더스 2군이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움직이던 팀이었나? 오늘은 좀 색다른 느낌이네?”
평소 원더스에서 보지 못했던 동향. 기대감이 은연히 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1회 말, 원더스의 수비. 마운드에 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을 때 동공에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크, 화면으로 볼 때마다 더 커 보이네. 피지컬 장난 아니네.”
원더스는 분명 뭔가 변화가 있다. 물론 단순한 기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느껴진 변화에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중심에는 분명 저 사내가 있었을 터.
솔직히 처음 투수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관심 밖이었다. 타자로 실패한 선수가 이제야 투수로 바뀐다 한들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 생각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음을 지난 4경기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서서히 확신의 단계에 접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야···. 스터프 장난 아닌데? 서우철이 힘에서 밀리잖아?”
135Km/h의 느린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 하지만 이태준은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으로 타자들을 압박했다. 포심과 체인지업. 두 구종을 스트라이크 존 안팎에 자신 있게 꽂아 넣었고 카운트 싸움에서 뒤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선두 타자 서우철. 2번의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아낸 뒤 이어지는 2번의 체인지업으로 4구 삼진. 서우철은 삼진을 당한 직후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타석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도 서우철과 다른 결과를 내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자 이윤종, 4구 삼진.
드래곤스의 타자들은 오늘도 철저하게 공략당하는 흐름이었다.
“구속은 느리지만 엄청나게 묵직한 구위, 완성도 높은 체인지업이라, 거기에 공격적인 피칭 스타일까지. 이거 완전 트레버 호프만 보는 것 같네.”
민찬수는 그런 이태준에게서 MLB의 전설적인 투수 한 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MLB에서 601세이브를 기록한 그 투수와는 절대적인 비교를 할 수 없었겠지만. 투구 스타일만 보면 굉장히 유사했다.
타닥 타닥-
노트북을 두드리던 민찬수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선은 여전히 마운드 위의 투수를 향해 있었다.
“3번 타자 문민호, 좌타자. 성적은··· 오, 6월 타율이 4할대였어? 최근에 타격감이 꽤 좋았었네?”
그리고 3번 타자 문민호. 지난 6월 1달간 4할 타율을 기록했던 1군 레벨이라 여겨도 손색이 없는 타자. 하지만 그런 문민호 역시 이태준을 상대로는 무언가 석연찮은 모습을 보였다.
붕-!
“스트라이크!”
2번 연속으로 들어오는 몸쪽 체인지업. 문민호의 타이밍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문민호도 답답함을 느꼈는지 방망이로 자신의 헬멧을 툭툭 치고 있었다.
“좌타자를 상대로 몸쪽 승부도 자신 있게 펼칠 줄 알고. 진 코치님 장 코치님이 좋아할 만하네. 싸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어.”
제법 정교함을 지닌 제구. 이태준은 본인의 제구력을 믿고서 자신감 있게 인 코스를 공략할 줄 아는 투수였다. 좌완 투수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갖춘 투수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더 좋은 투수가 되려면 바깥쪽 승부도 유려하게 끌어갈 수 있어야겠지. 오늘 경기에서 그 모습도 나올 수 있으려나?”
그리고 여기서 더 좋은 투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웃 코스의 승부에서도 강점을 보여야 했을 터. 어느새 에너지 드링크 한 캔을 전부 비운 민찬수의 눈빛은 더욱이 반짝였다.
그쯤 투수도 사인 교환을 끝낸 뒤 자세를 다잡았다.
이윽고 일련의 투구 동작과 함께 공을 던졌다.
슈우우욱-!!!
투구의 방향은 스트라이크 존의 아웃 코스. 볼 카운트가 투스트라이크였던 만큼 타자의 방망이도 반응을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
“······!”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