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20)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20화(20/210)
020화. 최종 관문 (2)
지저분하다는 말은 어감이 썩 좋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투수에게만큼은 그 지저분하다는 말은 칭찬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던지는 공이 지저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따져볼 것도 없는 칭찬이다.
가령 깨끗하게 일직선으로 뻗는 포심패스트볼,
회전력이 가미되어 공의 경로가 휘거나 흔들리면서 들어와 착시가 이는 포심패스트볼,
타자가 둘 중 어느 쪽을 더 까다롭게 느낄지는 굳이 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확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태준이 구사하는 포심패스트볼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유예강은 분명 태준의 공을 눈으로 추격하며 방망이를 돌렸다.
하지만 공은 스치지도 않고서 그대로 미트 속에 안착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제대로 쫓았고. 타이밍도 맞았다. 그렇다는 건···.’
아무리 곱씹어도 방금의 플레이에서 과실은 없었다.
그 상황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태준이 구사하는 포심패스트볼의 볼 끝이 아주 지저분하다는 것뿐.
‘그 느린 포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건가.’
유예강의 태준을 향한 경계심은 더욱이 짙어졌다.
그리고 집중을 다시금 높이기 시작했다.
‘타점도 높고 수직 무브먼트도 강하게 걸려서 생각했던 것보다 공이 더 뜨는 느낌.’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은 실력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두 번째 투구. 직전과 비슷한 높은 코스, 그리고 구종은 이번에도 포심패스트볼. 유예강도 이에 맞춰서 자신이 보던 것보다 히팅 포인트를 조금 높였다.
딱-!
이번에는 방망이를 헛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타는 맞출 수 없었다. 방망이에 밑동을 맞은 공은 살벌한 속도로 후퇴했다.
‘유예강. 역시 감이 좋은 타자다. 포심의 구위가 좋다는 걸 단번에 느끼곤 히팅 포인트를 살짝 높였다.’
태준 또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낯선 투수가 던지는 공에 맞춰 언제든지 타격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타자. 유예강은 그런 타자였으니까.
따악-!
제 3구. 바깥쪽 높은 코스의 포심패스트볼. 이번에도 유예강은 그 공을 커트해냈다. 그리고 방금보다 조금 더 정타에 가까운 타구가 나왔다.
“파울!”
능숙한 대처. 지금 승부에서 보이는 유예강의 재빠른 감각은 왜 그가 1군에서도 통했던 타자였는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확실히 좋은 타자야. 이런 타자에겐 승부가 길어질수록 불리한 건 내 쪽이다.’
그리고 태준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를 명확히 아는 투수.
타자의 실력, 성향, 그리고 타석에서의 추이까지. 그 모든 것을 정교하고 영민하게 읽어낸다. 연산 속도를 높인다. 머릿속의 퍼즐 조각이 착착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인다.
‘그걸 던질 때가 됐다.’
포수의 신호를 받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5초에 불과했다.
또한, 와인드업 이후 투구까지 이뤄지는 시간 역시 길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이윽고 손끝을 떠난 공은 공기를 찢어내는 듯한 굉음을 내지르며 비행했다.
구종은 포심패스트볼.
코스는 스트라이크 존 안팎의 바깥쪽, 낮은 코스.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로 제대로 로케이션이 이뤄진 투구는 곧 유예강의 방망이를 끌어냈다.
부웅-!
뚜렷한 레그 킥과 함께 이뤄지는 호쾌한 어퍼 스윙. 그 스윙을 본 투수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걸리면 넘어가겠구나.’
정석적인 연결 동작에서 이어지는 매서운 어퍼 스윙.
유예강이라는 타자가 왜 1군에서도 먹힐 수 있는 타자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스윙.
하지만 아무리 위력적인 스윙이라 할지라도.
‘······!’
타격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 의미는 퇴색된다. 유예강의 방망이가 돌아가는 그 순간, 태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퍼어억-!
그대로 송정근의 미트 속에 안착한 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단 4구 만에. 오로지 포심패스트볼만으로 꺾을 수 있었다.
【경험치 + 67】
2군에서 만날 수 있는 최강의 상대, 유예강을. 얻어낸 경험치만 하더라도 보통의 2군 타자들의 3배에 달하는 수치.
그리고 그 볼 배합은 누군가에게 향수를 이끌었다.
[일부러 높은 코스의 포심패스트볼을 연달아 보여준 다음에 결정구로 낮은 코스의 덜 뜨는 포심패스트볼이라.]‘형님 신인 시절에 자주 쓰시던 볼 배합이었죠?’
바로 로건 라이트가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올라섰을 무렵에 자주 활용했던 볼 배합.
[흐흐흐, 그래. 그 포심에 익숙지 않은 녀석들은 당할 수밖에 없지. 특히 감이 좋은 녀석일수록 더더욱.]하나의 구종으로 자아낼 수 있는 다채로움. 로건 라이트가 보였었고, 지금 태준이 선보였다.
‘오로지 직구만으로 삼진.’
1루와 3루, 양 팀의 더그아웃. 그곳에서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걸로 어필로 좀 됐겠는데요?’
그것으로 목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
상대는 유예강이었다.
지난 시즌 1군 무대에서 0.320의 높은 타율을 기록한 타자,
올 시즌 2군에서도 4할대의 고타율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던 타자,
그리고 직전까지 16타수 12안타.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던 타자.
그리고 그 타자를 평균 구속 135Km/h의 포심패스트볼만으로 삼진을 잡아냈다.
어쩌면 그 한 타석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절대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따악-!
유예강이 이태준에게 4구 삼진을 내어준 뒤 이틀이 지나고서 다시 치러진 승부. 그 승부는 조금 더 허무한 상황으로써 막을 내렸다.
“아웃!”
지저분한 포심패스트볼에 온갖 정신이 쏠려 있을 때 섞이는 체인지업. 유예강은 그것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결과는 3구 승부 끝에 평범한 2루수 땅볼 아웃.
태준은 유예강과의 두 번의 승부에서 깔끔한 승리를 거둬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두 명의 투수 코치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민영아.”
“네, 형.”
“유예강. 소싯적 우리였더라도 이렇게 깔끔하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에이, 이길 수 있었겠죠. 유예강보다 더 잘하는 타자들도 여럿 이겨 왔는데.”
현역 시절 국내 최고의 좌완 불펜 요원이었던 장민영,
마찬가지로 그리 길진 못했지만, 전성기 시절 A급 마무리 투수였던 진민우.
두 사람 모두 코치이기 이전에 한때 이름 좀 날려봤던 선수 출신.
“그런데···.”
그렇기에 조금 더 명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태준이가 한 것처럼은 못해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겨야 했겠죠. 만약, 저였다면 바깥쪽에 체인지업을 주야장천 꽂으면서 승부를 봤겠죠.”
“톰 글래빈이 그랬던 것처럼?”
“흐흐, 그렇죠. 그런데 태준이는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요? 그 시절의 저보다 더 많은 무기를 들고 있고 더 다채롭게 승부를 끌어갈 수 있을 테니까.”
“맞아. 나도 그냥 내 슬라이더만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볼 배합 짜는 건 어려웠을 거야. 그런데 태준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까지 전부 할 수 있겠지.”
투수로서 이태준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죠. 공 던지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저 정도 퍼포먼스라면.”
그리고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를. 물론 그것조차 정확한 계산은 아니었다.
그 둘은 지금 이태준 뒤에 누가 서 있는지 볼 수 없었으니까.
이태준이 어떤 투수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있는지를 말이다.
***
이태준이 2군에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해낸 한편,
자타가 공인하는 KBO 최고의 인기 팀, 부산 원더스의 홈 그라운드, 사직 야구장.
그곳은 지금 원더스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관중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야이 개새끼야! 4번 타자가 병살타?”
“니 오늘 병살타 몇 개 쳤게? 오늘 병살타 마이 치니 배 부르나?”
전반기가 곧 끝나가는 시점, 하위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원더스의 경기력에 대한 맹렬한(?) 화답.
「아, 높아요! 볼! 결국, 타자 유진성. 볼넷으로 걸어나가면서 주자 만루가 채워집니다.」
「이러면 안 돼요. 타자가 자신의 공을 칠 것 같다는 걱정, 그런 걱정에 빠져 있으면 안 되거든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어야 해요.」
원더스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던 투수, 홍지호는 마운드에 오른 뒤 두 타자를 연달아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윽고 마운드 위로 투수 코치가 올라왔고, 그렇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 스트라이크를 던지라꼬! 그러고도 니 투수 맞나?”
“마! 고 따구로 할 거면 고마 때리 치아라!”
관중들은 투수의 뒤통수에 야유를 신명나게 꽂아 넣었다.
그렇게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홍지호는 자신의 실수를 크게 자책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 검은색의 선글라스 뒤로 남성미가 느껴지는 듯한 중년의 사내는 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지호.”
“네.”
“좌완 투수가 좌타자를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면, 나는 널 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는 부산 원더스의 1군 지휘봉을 맡은, 류남선 감독. 홍지호는 류남선 감독의 묵직한 꾸중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1군은 사과하는 자리가 아니야. 증명하는 자리지. 너는 총 열 번의 기회를 받았고, 그중 다섯 번이 실망스러웠어. 그러면 내가 널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뭔지 설득할 수 있나?”
적막하게 내려앉은 어조. 홍지호는 착잡한 숨결을 내쉬었다.
“··· 죄송합니다.
이윽고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글라스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류남선의 눈매가 맹금처럼 좁혀졌다. 그 매서운 눈빛에 홍지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네 성적이 아무리 좋아져도 스트라이크 볼 비율이 8 대 2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부르지 않겠다. 알겠나?”
“··· 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상동으로 출근해라.”
서늘한 축객령. 홍지호는 그 즉시 짐을 챙기기 위해 라커룸으로 향했다.
***
원더스의 감독, 류남선은 철저한 실력주의를 표방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무한정으로 주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기준을 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베테랑, 유망주 너나 할 것 없이 가차 없이 2군으로 내렸다.
1군은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닌 증명하는 자리. 그의 오랜 지론이었다.
“윤원호 감독님. 홍지호, 김종상. 내일부터 2군으로 보냅니다.”
경기가 끝난 뒤 2군 감독 윤원호에게 연락을 취한 류남선 감독이 건넨 첫 마디였다.
“아, 네, 감독님. 혹시 요청 사안 있으십니까?”
류남선과 윤원호 둘 모두 1군과 2군 사이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감독. 늘 하던 대로 2군으로 내려가게 된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네, 지호랑 종상이 내려오는 대로 세게 말해놓겠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선수는 1군에 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듯, 2군에 내려가는 것 역시 끝이 아니다. 본인의 기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기회는 올 수 있다.
윤원호도 류남선이 그런 감독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수들의 그 기준을 넘을 수 있도록 일조한다. 그것이 2군의 사령탑. 자신의 역할이니까.
“윤 감독님 혹시 2군에 괜찮은 녀석 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누구를 1군으로 올리느냐. 사실 두 감독 모두 어느 정도 결정을 내놓은 상태였다.
“이태준 아시죠? 이찬열 선배님 아들. 요즘 폼 정말 좋습니다.”
“네, 성적은 봤습니다. 7경기 8이닝 무실점. 삼진 14개. 사사구 제로. 얼마 전에 상무 유예강 상대로도 좋은 성과 냈었고.”
“하하하, 바쁘셨을 텐데 다 보고 계셨나 보네요.”
“마침 필요했던 포지션의 선수가 좋은 성적 내고 있는데.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죠. 경기는 직접 못 보더라도. 성적이랑 스카우팅 리포트 정도는 챙겨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윤 감독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올라올 만합니까?”
물론 걸리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태준은 분명 좋은 성적을 내곤 있었겠지만, 너무 표본이 적다는 점, 투수로 전환한 지 엄연히 1달도 채 되지 않은 신인 투수라는 점, 마지막으로 직구의 구속이 너무 느리다는 점. 그 요소들은 분명한 걸림돌이었다.
“장담하건대요.”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지금 우리 팀 좌완 투수 중에서 태준이보다 잘할 수 있을 녀석 없을 겁니다. 아마 진민우 코치, 장민영 코치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일 겁니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엔 너무 커버렸기에. 이태준은 그들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윤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믿어볼 수밖에 없겠네요. 저도 이태준이 어느 정도로 던질 수 있을지 전반기 끝나기 전에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 이태준 내일 경기 끝으로. 바로 올려주세요.”
그것으로 결정될 수 있었다. 이태준은 내일부터 2군 선수가 아닌 1군 선수. 데뷔 이후 첫 1군행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는 투수로 전환한 지 단 7경기 만에 거둔 쾌거.
“아, 그리고 이태준 올릴 때 송정근도 같이 올려 보내주세요. 2군 가기 전에 내줬던 과제. 전부 수행한 것 같으니까.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었다. 류남선은 추가로 송정근까지 콜업 했다.
“네, 그러면 얘기해 놓겠습니다.”
그것으로 두 감독 간의 통화는 종료.
류남선 1군 감독의 선택은 송정근, 그리고 이태준.
그렇게 두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