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23)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23화(23/210)
023화. 위기를 기회로 (2)
야구는 사방에 단서가 펼쳐져 있는 스포츠다. 물론, 매번 명쾌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없겠지만, 꿋꿋이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무언가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지금이 그러했다.
‘김상길, 이번 시즌, 0.271의 타율, 홈런 15개. 타격감이 제법 괜찮다. 특히, 노림수가 상당히 강해졌다.’
과거부터 태준은 프로 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1군으로 올라서기 위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해왔다. 그날의 컨디션, 마음가짐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생겨나는지, 그 차이점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그 꾸준한 관찰은 태준에게 남다른 통찰력을 안겨줬다.
‘노림수가 강한 선수들이 자주 나타내는 실수. 김상길은 속구를 노리고 있을 때 지금처럼 방망이를 아주 살짝 앞으로 눕히는 습관이 있다.’
태준은 김상길이 타석에 서서 자세를 취하는 순간, 그가 무슨 공을 노리고 있는지를 단번에 읽어냈다.
그리고 낚아챘다.
딱-!
태준의 예상대로 김상길의 방망이는 곧바로 반응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겨버렸고,
“아웃!”
그대로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초구 2루수 땅볼. 그리고 태준이 구사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느린 구종,
[112.3Km/h]체인지업이었다.
태준은 지금 느린 공을 1군 데뷔 첫 투구의 초구로 던졌던 것.
심지어 그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안팎으로 들어왔었다.
「허허, 초구로 체인지업, 그리고 타격감이 좋은 타자, 김상길을 상대로 2루수 땅볼을 끌어냈습니다.」
투수 출신의 해설 위원도 이를 언급했다.
「체인지업이라는 구종은 직구와 섞으면서 혼선을 주는 구종인데, 그 구종을 직구 하나 보여주지 않고서 초구로 꽂는다. 그것도 스트라이크 존 안에? 정말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도 좋았고요, 이런 투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좀 되는데요?」
이태준이 초구로 체인지업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 집어넣은 것은 절대로 실투가 아닌 노림수라는 것을. 물론 그 노림수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까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 태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 로건 라이트만이 그의 본색을 인지하고 있었다.
[통찰력은 단순히 배우려고 해서 익혀지는 게 아니야. 끝없이 반복되는 단순 노동, 그리고 훈련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다.]그라운드 위에서의 통찰력, 즉 디테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그리고 타고난 재능에 따른 깊이가 생기지.]또한, 그것은 누구나 갖출 수 없다.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능력,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과 같이 타고나야 하는 것.
그리고 태준은 그것을 타고난 선수였다.
타자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 너머의 경지에서 꿰뚫었다.
그것이 태준이 타자와의 승부에서 확고한 자신감을 지니고서 공을 던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딱-!
동시에 140Km/h도 채 넘지 못하는 느린 구종들로 1군의 타자들을 수월하게 잡아내는 이유였다.
선두 타자 김상길을 체인지업으로 잡아낸 태준은 뒤이어 빼어난 상승 무브먼트를 지닌 포심패스트볼로 2구 만에 3루수 쪽 평범한 뜬공 아웃. 공 3개로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아낼 수 있었다.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였습니다!】
【경험치 + 57】
그것으로 얻어낸 전리품. 확실히 1군에서의 성과인 만큼, 돌아오는 보상 역시 확실했다.
하나 그 순간에 태준의 시선은 시스템의 메시지에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닿아 있던 곳은 더그아웃. 오늘 경기 자신에게 주어졌던 좌타자 2명을 잡아내는 임무가 막 끝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그아웃은 그 어떤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류남선 감독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라운드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 오늘 제 임무가 늘어난 듯싶네요.’
이닝의 세 번째 타자, 우타자 장도혁까지 상대해야 했음을.
이태준은 잠시 옆에 내려놨던 로진백을 들어 손안으로 굴렸다.
그리고 응시했다.
타석에 들어선 장도혁을.자신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을 때, 그것까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누군가 그 질문을 던질 때 뛰어난 명장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리더라면 자고로 팀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활로를 뚫어낼 의지를 보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같은 판단을 내리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면, 말 그대로 허수아비와 다를 게 없겠죠. 그리고 요즘 AI 기능 좋던데, 그거 갖다 놓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늘 하던 대로만. 순리에 변주를 두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인공 지능과 다를 것이 없다고. 아니, 그보다 못할 것이라고.
류남선 감독도 이에 동조했다. 팀이 위태로울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심정으로 경기를 관망하는 감독은 자격 미달이라고.
지금 원더스는 분명 좋지 않은 흐름 속에서 시즌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주전 마무리 투수의 부상, 기존 선수들의 부진 등. 여러 악재 속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류남선 감독은 지금 원더스에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 류남선의 시야에 이태준이 들어왔다.
‘슬라이더를 던질 줄 아는 좌완 투수가 좌타자들을 상대로 슬라이더를 하나도 던지지 않는다라···.’
이태준의 슬라이더는 현역 시절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었던 진민우 코치에게도 인정받은 슬라이더. 즉, 좌타자를 상대로 최고의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 무기였다.
하지만 태준은 1군 타자들에게 그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타자를 상대할 때와 비슷한 볼 배합으로 승부를 이어갔다.
류남선에게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은 우타자를 상대로도 지금과 같은 투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무언의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감독님, 투수 교체 진행하겠습니다.”
“잠깐.”
류남선은 지금 마운드 위의 투수로부터 변화의 바람, 원더스에게 필요할 것만 같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태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1점 차의 절체절명의 기로. 포커로 치면 풀 하우스 이상 가는 패의 완성을 목도에 두고서 마지막 패를 드로우하기 직전과도 같은 상황.
“한 타자만 더 지켜보자고.”
류남선은 기꺼이 도박 수를 던졌다.
***
아무리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라도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 공을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대 0.5초. 타자는 그 0.5초 안에 구종의 궤적, 상하좌우의 코스, 그리고 정확한 타격 타이밍을 파악하고서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
그것이 타자들이 아직 공이 눈에 익지 않은, 낯선 투수를 까다로이 여기는 이유.
같은 구속, 같은 구종이라 할지라도 던지는 투수가 누구냐에 따라 느껴지는 것은 천차만별로 갈리기 마련인데 아직 눈에 익지 않은 투수의 공은 오로지 반사 신경으로 승부를 봐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자들은 낯선 투수를 상대할 때 평소보다 공을 더 오래 보려 했고,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었다.
“흐, 미안하다. 공 좀 봐줬어야 했던 건데···.”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낯선 투수의 공은 최대한 오래 볼수록 팀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생각은 타자의 본능까지 억제할 수 없었다.
딱 치기 좋은 코스에 딱 치기 좋은 구속의 공이 날아든다. 타자의 방망이는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그라운드 위에 펼쳐져 있었다.
“괜찮습니다. 구속은 느리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겠죠.”
“그래도 조심해라. 체인지업은 보는 것보다 브레이크가 심하게 걸리니까.”
“넵! 명심하겠습니다!”
문제는 태준의 공은 그 결과를 눈으로 보고서도 부정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 구속 150Km/h의 빠른 속구도 곧잘 건드리는 자신들이 135Km/h 정도에 그치는 느린 공을 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쉽게 상정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지금 타자도 그러했다.
‘저 굼벵이 같은 공이 까다로워 봤자지. 내가 너네처럼 멍청하게 당할 것 같냐? 직구에 타이밍을 맞춰 놓고 있어도 충분히 대처 가능한 공들 뿐.’
앞선 두 명의 타자가 무력하게 아웃을 당한 것을 가까운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투수를 향한 큰 경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공을 던지더라도 전부 공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충만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태준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번에도 타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이나?]또한, 로건 라이트에게도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앞선 타자들이랑 크게 다를 건 없겠죠. 왜 저런 공을 못 치고 있을까. 나였더라면 일발에 공략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생각?’
타자의 심리를 읽었으면, 그다음은 곧바로 계획의 단계.
‘오늘 상대 팀의 타자들은 너무도 명료하다.’
그 과정까지 다다랐다면 더 이상의 지체는 없다.
딱-!
포심을 염두 하고 있던 타자에게 들어가는 까다로운 디셉션, 그리고 브레이킹이 강하게 걸리는 체인지업.
“이런 씨발!”
외마디 욕설과 함께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딱 잡기 좋게 배송됐다. 이후 유격수의 정확한 송구와 함께.
“아웃!”
순식간에 이닝 종료. 태준은 데뷔 첫 이닝을 단 4구 만에 종료시킬 수 있었다.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였습니다!】
【경험치 + 58】
【이닝을 삼자 범퇴로 종료합니다! 경험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추가 경험치 + 30】
그 즉시 모습을 보이는 전리품.
“뭐, 뭐야? 이닝이 벌써 끝난다고?”
“와 씨 뭐야? 공은 느린데 투구는 존나 시원한데?”
그리고 매 이닝 꼬박꼬박 20구 이상씩 던지던 투수들만 보다가 갑작스레 등장한 태준에게 원더스의 관중들은 진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 좋았다! 바로 그거지!”
“나이스! 나이스! 이··· 태준? 오케이! 너 딱 봐 놨어!”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준 것에 대한 보상, 관중들의 맹렬한 찬사를 맞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로건 라이트는 이렇게 물었다.
[널 의심하던 팬들에게 믿음을 선사한 기분이 어때?]그 말에 태준은 이렇게 답했다.
“야구를 이제야 제대로 시작한 기분이 드네요.”
야구. 자신의 야구는 이제 시작점을 지났을 뿐이라고.
***
이태준의 데뷔 경기 성적은 단 4개의 투구 수로 1이닝 무실점. 더그아웃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두 노장 선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봤지? 내가 말했던 딱 그대로지? 엄청 영리한 녀석이라니까?”
그중 한 선수, 정준이 먼저 소감을 표했다.
“공도 엄청 느린 놈이 프로 1군을 상대로 초구로 스트라이크 존에 체인지업을 꽂아 넣어? 이거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공을 던져? 안 그래?”
그 말에 정준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소 험상궂은 인상의 선수가 답했다.
“그러네. 제법이네.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
그 사내의 답변에 정준은 피식하고 웃었다.
“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원해솔이 남 칭찬이 다 하고?”
그 사내의 이름은 원해솔. 장장 18년간 원더스의 홈 플레이트를 지켜온 레전드 포수였다.
그리고 지금도 잦은 잔부상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우긴 해도 여전히 원더스의 주전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나라고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닌데···.”
“아니긴, 개뿔 아니지. 내가 너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18년인데 니가 투수 칭찬하는 꼴은 내 본 적이 없다. 맨 잔소리만 할 줄 알지.”
“··· 다 투수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거야 내가 제일 잘 알지. 그 덕을 제일 많이 본 게 나였는데.”
그 둘은 신인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었던 배터리. 그렇기에 서로의 생각을 곧잘 읽어낼 수 있었다.
원해솔의 눈에 비친 정준은 지금
“정준, 넌 이태준이 꽤 맘에 드나 보네.”
이태준에게 상당히 큰 관심을 보이는 중.
“그야 당연하지. 던지는 것 봐. 저렇게 던질 줄 아는 투수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냐?”
그리고 그 추측은 역시나 정확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야구공을 쥔 후 원해솔에게 그립을 보여줬다.
“그나저나 이태준, 저 녀석이 이거 던질 수 있게 되면 어떨 것 같냐?”
그 구종은 ‘정준’이라는 투수를 상징하는 구종. 원해솔은 정준의 그립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만약 네가 던지던 거랑 똑같이 던질 수 있으면···.”
그리고 그 말에는 한 치의 거짓과 과장을 섞지 않았다.
“널 넘어설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