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30)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30화(30/210)
030화. 구원자 (2)
클로저.
경기의 종료가 임박해오는 시점, 팀이 근소한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때, 승리를 확실하게 지키고자 마운드 위로 오르는 투수.
즉, 불펜의 에이스 투수.
팀 내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가 맞게 되는 자리였다.
자신이 잘 던지면 게임을 이길 수 있고 못 던지면 지게 되는 아주 명료하면서,
동시에 큰 부담을 짊어져야만 하는 자리.
그렇기에 경험이 부족한 신인 투수보다는 베테랑 투수에게 그 역할이 넘어가곤 한다.
“아직, 태준이한테 마무리는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그것이 원더스의 코치들이 이태준의 마무리 투수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였다.
분명 기대가 가는 투수인 건 맞지만 너무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다.
“저도 조금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2경기에서 꽤 좋았지만, 표본이 너무 적어요. 게다가 중심 타선과 붙어본 적도 거의 없고요.”
“게다가 태준이 빠지면 불펜에 좌완 투수도 없어요.”
그들이 항변하는 이유는 너무도 타당한 이유였다.
아마 정상적인 상황이었더라면 류남선도 이태준의 클로저 전환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박주형이 부상자 등록되고서 2달 동안 총 3명이 마무리 투수로 돌았어. 그리고 오늘 경기까지의 평균자책점은 6.23, 블론 세이브 6개.”
팀은 위기였다. 팀의 가을야구 행에는 짙은 적신호가 켜졌다.
여기서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팀은 그대로 도태되어 버릴 수 있다.
“조태직, 정수현, 강시우. 전부 실패했다. 그러면 대체 누구를 올려야 하지?”
“그, 그건···.”
“아니면 외부 영입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용병을 불펜 투수로 바꿔 오자고?”
“······.”
대안이 없다.
그 2달의 공백을 메우자고 웃돈 줘서 불펜을 메꾸는 것, 그리고 잘 돌아가는 선발 투수를 불펜 투수로 바꾸는 건 그저 아랫돌을 뽑아다가 윗돌에 괴는 미련한 운영일 뿐이다.
“1군에 올라오기까지의 성적, 그리고 1군으로 올라온 후의 성적. 그 두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태준보다 나은 대안이 있나?”
어떻게든 내부로부터 답을 찾아야만 했다.
“베테랑이 아니라서, 1군 불펜에 한 명밖에 없는 좌완 투수라서. 지금 우리는 그런 이유를 따질 때가 못 된다는 거 너희들도 잘 아는 사실이잖아?”
거기서 류남선의 결론은 이태준이었다. 거기엔 가타부타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이태준이 제일 잘할 수 있을 투수였으니까. 그것뿐이었다.
“다음 시리즈. 이태준은 클로저로 대기한다.”
팀의 마무리 투수. 이태준의 역할이 또 한 번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
창원 라이더스 파크에서 펼쳐지는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 그곳으로 향하는 투수조 원정 버스 속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시즌 초만 하더라도 리그 4위와 5위 정도, 가을야구의 진출을 두고 경쟁을 이어왔지만, 최근에 부쩍 늘어난 역전 패배에 팀은 순위는 어느새 7위까지 내려앉았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를 묻는다면 대답은 너무도 명료해졌다.
불펜 투수.
이는 선수들 본인이 더욱이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던 사실.
어제 경기 9회에 역전을 내어준 패전 투수 조태직을 비롯한 다른 불펜 투수들 모두의 낯빛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어제 경기의 패인은 조태직이었겠지만, 그 자리에 자신들이 있었다 한들 다를 건 없었으리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훑어보던 베테랑 투수, 정준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답이 없네. 답이 없어.’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다그친다고 해서 또 마냥 위로해준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스스로 극복을 해야 할 문제였고, 이를 위해선 불펜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 누군가, 박주형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의 역할을 도맡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 순간 정준의 시야에 이태준이 들어왔다.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는 사람이 태준이, 저 녀석뿐이라는 게 참···.’
갑작스럽게 팀에 합류하여 믿을 수 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던 어린 투수.
그를 향한 기대감 안팎에는 이제 공을 던지기 시작한 지 고작 1달밖에 되지 않은 선수에게 너무도 큰 부담감을 짊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가 근처에 한 사람 더 있었다.
[네 말대로 팀 꼬락서니가 영 아니네. 불펜이라는 놈들은 나름 베테랑 축에 속한 녀석들까지 다 저렇게 쳐졌으니.]로건 라이트.
그 또한 기운을 내지 못하는 다른 투수들을 못마땅하다는 시선으로 훑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가 자리 잡기 딱 좋은 곳이었네.]태준이 다른 팀보다 원더스를 선택했던 이유. 그것은 빠르게 팀의 중심에 스며들기 위함.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너 절대로 2군 못 내려. 팀 상황이 이 꼴인데 어떻게 내리겠냐? 안 그래?]‘······.’
로건 라이트가 농담조로 툭 던진 질문. 태준은 그 질문에 대답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입술을 잘근 깨물 뿐.
문득 떠오른 기억의 파편 하나.
그 파편에 새겨진 그림은 채건우의 홈런, 그리고 자신의 투구에 기꺼이 환호를 보내주던 관중들.
그 뒷면에는 9회 말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팬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승리를 선사하지 못한 책임. 물론 본인에게까지 그 책임을 물리는 이는 없겠지만, 태준은 기꺼이 그 책임을 안았다.
그 책임에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분개한 마음을 더했다.
‘제가 내려가도 좋으니. 팬들에게 승리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런 태준의 말에 로건 라이트는 그 이상의 말을 얹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안도했다. 태준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음에.
선수는 팀의 승리를 위해, 그리고 팬들을 위해. 그 강한 의지가 엿보였으니까.
***
경기가 시작되기 전. 태준은 감독실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전해들을 수 있었다.
“태준, 이번 시리즈부터 마무리 투수로 대기할 거야.”
1군에 올라온 지 고작 3경기밖에 나서지 못한 신인에게 마무리 투수. 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인사였다.
조금은 놀랄 수도 있었겠지만, 짙은 선글라스로 가려진 자신의 눈을 직시하는 태준의 눈빛은 무던하기 그지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조 또한 차분했다. 마치 그 말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부담되지 않나?”
마무리 투수. 다른 말로는 클로저. 자신의 투구에 따라 팀의 승패가 좌우되는 자리인 만큼 느껴지는 중압감이 상당한 자리.
팀 내의 다른 베테랑 투수들도 끝내 버텨내지 못한 자리인 만큼 부담되는 건 지극히도 당연한 반응이었을 터.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어떠한 역할이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태준은 그러한 내색을 조금도, 아주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잘 해보겠습니다.”
어떠한 역할이든 잘 해보겠다. 그 대답을 얼마나 오래도록 바라왔던가. 그 순간, 선수 앞에서 오래도록 지켜왔던 류남선의 포커페이스가 살짝 흐트러졌다.
“···. 그래 한 번 기대해보지.”
그 흐트러진 동공을 선수 앞에서 보일 수 없던 것이 류남선이 짙은 선글라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그렇게 태준을 떠나보내고서 류남선은 생각했다.
‘재능이 있는 녀석은 많다. 하지만 성공하는 녀석은 손에 꼽지.’
재능.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되는 그것.
하지만 재능은 그 자체로 선수를 완성 시키지 않는다. 그저 출발선을 조금 더 목적지에 가까운 쪽으로 옮겨줄 뿐.
선수에서 코치, 코치에서 감독이 되기까지. 정말 오래도록 야구인으로 지내온 류남선 수많은 재능있는 이를 목도했다.
그리고 그 재능을 믿고 나태라는 달콤한 독에 빠져 무너지는 선수,
가진 재능에 비해 욕망의 그릇이 작아 그만큼 성장해내지 못한 선수,
광오하고 이기적인 성격 탓에 이리저리 탈선을 일삼던 선수.
그런 선수들 역시 수없이 많이 봐왔다.
하지만 태준은 달랐다.
아직 그가 가진 잠재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태준만큼 노력하는 선수,
그리고 이태준만큼의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선수.
그런 선수는 정말로 손에 꼽는다고.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선수라 했던가···.’
윤원호 감독이 남겼던 그 말이 뇌리에 다시금 선명히 떠올랐다.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었네.’
그리고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태준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선수라는 사실을.
류남선 감독의 평가는 또 한 번 치솟을 수 있었다.
***
부산 원더스와 창원 라이더스 간의 매치 업.
사람들은 이를 두고 두 연고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강, 낙동강을 따서 ‘낙동강 더비’라 불렀다.
정작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 팀이라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둘 다 근거는 있다.
“그 역사 짧은 팀이 무슨 라이벌?”
원더스는 라이더스보다 30년은 일찍 출범한 팀이며,
동시에 원년 팀이라는 자부심으로
“아니, 라이벌이면 실력이 맞아야지. 우리가 매번 이기는데 무슨 라이벌?”
라이더스의 팬들은 상대 전적이 자신들이 한참 앞선다는 이유로 라이벌리를 부정해왔다.
라이더스는 창단 이래로 상대 전적이 거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원더스를 이겨온 팀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시즌도 그러한 양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시즌의 절반이 조금 넘게 흐른 시점.
이번 시리즈 전까지 상대 전적은 8승 4패.
라이더스가 한참 앞서고 있었다.
ㄴ아 원더스 호구 왔는가?
ㄴ오늘도 승리 낭낭하게 챙기고 가겠습니다! 행님덜 ^^7
ㄴ매 상대가 원더스면 우리도 늘 우승 후보였을 텐데 ㄲㄲ
ㄴㄹㅇ ㅋㅋ
라이더스의 팬들에게 원더스는 라이벌이기 보다는 승리를 헌납해주는 자판기와도 같은 팀.
그들은 전반기의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원더스를 만난 것에 제법 설레고 있었다.
또한, 라이더스의 선수들 사이에서도 은근하게 원더스를 얕보는 기조가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정준은 라커룸에서 투수조를 전부 집합시켰다.
“얘들아. 나 이렇게 너네들 모아놓고 잔소리하고 그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지?”
정준은 원더스의 명실상부 에이스 투수이자 올해로 38살. 투수조의 맏형이었다.
짬으로 봐도 말년 병장. 군기 반장을 도맡기엔 이젠 조금 늙었지만, 정준은 그 역할을 기꺼이 수행했다.
“너네도 어제 박찬수 그 자식이 인터뷰한 거 다 봤지? 그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우리는 대놓고 무시당했어.”
이유는 원더스와 라이더스의 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라이더스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 사람. 박찬수의 당돌하기 그지없는 인터뷰였다.
“전반전을 끝으로 원더스를 만나는 덕에 타격감 유지가 가능할 것 같다. 덕분에 올스타전에서 잘 칠 것 같다···. 이 자리에 이딴 개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녀석은 없어야 할 거야.”
선수 사이의 신경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선수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다른 문제다.
감히 도발을 걸었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정준은 그런 도발을 그냥 넘기는 선수가 아니었다.
“너희가 어디 가서 프로 선수라고 떵떵거리고 싶으면 단 한 점이라도 점수를 주면 죽어버린다는 생각으로 던져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원더스의 투수들도 프로 1군 선수. 상대 팀 타자의 도발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니었다.
이후 투수들은 해산했고, 정준은 태준과 남아 추가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시리즈로 마무리로 뛴다고?”
“네, 그렇게 됐습니다.”
“후, 그래.”
마무리 투수라는 자리는 경험이 부족한 투수가 맡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울 자리.
그런 자리를 팀 사정 때문에 맡게 된 셈. 부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당장 조태직, 정수현, 강시우 등 태준보다 1군 경험이 훨씬 많은 투수도 중압감을 버티지 못했으니까.
하나, 태준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그라면 조금 다른 소감을 꺼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그것이 지금 정준에게 있었다.
태준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
이윽고 어깨의 손을 얹은 뒤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라면 잘할 거야. 믿는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