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32)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32화(32/210)
032화. 구원자 (4)
야구는 숫자의 스포츠다.
선수의 기록뿐만 아니라 구속, 구위, 제구, 파워 등등 수많은 능력치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선수 한 명의 가치를 오롯이 숫자만으로 재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과연 전부일까?
이에 수많은 선수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만약 숫자가 전부였더라면 그냥 숫자상으로 뛰어난 놈들만 잔뜩 돈으로 지르는 팀이 늘 우승했겠지. 그런데 알다시피 우승은 돈으로 살 수 없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숫자만으로 볼 수 없을 무언가.
숫자 이상의 무언가.
그라운드 위엔 그것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사실 원해솔은 그가 받는 돈, 연 15억에 달하는 연봉에 비해 가치가 좋은 선수라고 말할 수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기록도 그러했고, 그 시절에 비해 컨택률, 배트 스피드 등 다른 지표들 역시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타자는 7회 초, 2사 2루의 상황에서 A급 불펜 투수, 임동훈을 상대로 대타로 나서 적시타를 기록했다.
떨어지는 포크볼을 기술적인 타격으로 퍼 올려 만들어낸 안타.
선수에게는 단지 숫자만으로는 재단해낼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원해솔은 베테랑으로서의 가치,
넘어서 승부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덕택에 원더스는 한 점 차의 리드를 잡아낼 수 있었고,
게임은 이제 9회 말.
경기를 끝내기 위한 단 한 이닝만이 남아 있었다.
그 상황 속에 마운드 위로 모습을 드러낸 투수는 이태준.
그 투수 또한 숫자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선수였다.
「9회 말, 원더스의 마운드를 지켜주기 위해 마운드를 오른 투수는, 아! 이태준! 이태준 선수입니다!」
「아무래도 류남선 감독님이 칼을 제대로 빼 드신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원더스의 마무리 투수로 오른 선수들이 전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잖아요? 당장 지난 경기에서도 9회, 게임을 막기 위해 올라온 조태직 선수가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었고요.」
최근 성적과 2군에서 거둔 성적은 제법 좋았지만,
1군 무대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본 횟수 단 0회.
당연하게도 1군 무대에서 기록한 세이브도 제로.
그리고 속구의 구속 135Km/h
숫자로 따지면 이태준이라는 선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투수.
9회, 1점 차로 앞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투수였다.
그런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섰고,
“오오, 이태준이다. 이태준. 오늘 장민영이 말한 그 투수 맞지?”
“응, 맞아. 걔야. 이찬열 아들, 이명준 형.”
“맞지 걔? 크, 장민영이 그렇게까지 말한 투수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팬들은 기대 반.
“아, 근데 신인이 이런 상황에 올라오는 게 맞나 싶은데.”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제 세 게임 던진 투수가 마무리라니···. 우리 팀 불펜 진짜 심각하구나···.”
그리고 걱정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이 모인 가운데 태준이 마운드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이태준의 이름.
팬들뿐만 아니라 타 팀 1군의 선수들에게도 조금씩 그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진짜 원더스가 갈 데까지 갔나 보네? 이태준이 9회?”
다만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선수라는 의식은 없었다.
그들의 시야에 비친 태준은 이제 1군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한 투수.
다른 신인 투수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투수였을 뿐이었다.
“야, 예강이가 했던 말 기억 안 나? 쟤 절대로 만만히 봐선 안 될 투수라고.”
물론, 개중 몇몇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최근 1군 무대에서 이태준이 보였던 모습, 불과 작년까지 라이더스에서 뛰었던 상무 야구단 소속의 유예강이 두 타석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걸 본 적이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 타석에 들어서 있던 타자,
이번 시즌 타율 0.291 출루율 0.370,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 중인 백창수도 그런 타자 중 한 사람이었다.
‘포심이 느리긴 해도 정타 맞추기가 엄청 어렵다고 했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투수지만, 유예강을 상대로 두 타석을 모두 압도했던 투수.
‘그리고 지난 경기에서 보여준 커브. 엔젤스 타자들이 꼼짝도 못 했을 정도였다. 타이밍 맞추는 게 어려웠다는 뜻.’
그리고 9회에 올라온 투수. 그런 투수는 함부로 얕잡아볼 수 없다는 것이 타자 백창수의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초구는 일단··· 타이밍을 본다.’
공이 느린 투수지만, 타자들이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데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 백창수는 그것을 크게 경계하며 승부에 임했다.
그때 들어오는 초구.
‘커브?’
공이 태준의 손끝을 떠나는 순간, 떠오르는 궤적을 통해 간파할 수 있었다.
그 공은 커브라고.
하지만 그뿐이었다.
퍼어엉-!
지켜보려고 했던 초구. 머리는 그 공이 커브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지만, 방망이는 움찔할 뿐 돌아가지 않았다.
덕분에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복판을 유유히 뚫고서 지나갈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감수하고 있었던 스트라이크. 하지만 지금 타자가 느끼는 심정은 그러지 못했다.
“타임!”
못내 삼켜야 했던 아쉬움. 타자 백창수는 잠시 타임을 요청한 뒤 타석을 빠져나와 방금의 공을 복기했다.
‘방금 공. 타이밍이 이상했던 것 같은데? 마치 가속이라도 붙었던 것처럼···.’
구속은 고작 109Km/h. 아무리 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도 그 공이 커브이며 동시에 복판을 뚫는다는 것을 인지했더라면 언제든지 반응을 보일 수 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 순간 태준에게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볼 수 있었다.
‘설마···. 정준 선배의 커브?’
방금 이태준이 구사한 커브. 그것은 같은 팀의 전설적인 투수, 정준의 커브였음을. 그 생각이 뇌리에 닿자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상황 속에 들어오는 두 번째 투구.
퍼어엉-!
“스트라이크!”
그 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이태준이 구사하는 커브. 그 커브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가속이 붙는 듯한 착시.
방금의 커브는 명백히 정준의 커브였다.
‘씨발, 역시 만만히 봐선 안 될 투수다.’
이태준의 커브를 향한 경계심을 더욱이 높여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치기가 까다로운 커브였으니까.
그 상황 속에서 들어오는 세 번째 공. 그 공도 직전 두 개의 공과 같이 손에서 살짝 떠올랐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타자는 생각했다.
‘씨발 아무리 어려운 커브라도 세 번은 안 통한다!’
공이 빠르지 못한 투수가 세 번의 투구 모두 같은 구종을 구사한다? 이건 타자로서 용납해줘 선 아니 될 상황.
타자는 그 공이 커브라는 걸 인지한 그 순간 뒷발은 안쪽으로 틀어 스윙을 준비했다.
부우웅-!
이윽고 거침없이 돌아가는 방망이.
‘어···?’
하지만 타이밍은 명백히 어긋났다. 이태준의 그 커브는 이번에도 타자의 방망이를 뚫어내며 포수의 미트로 안착했다.
퍼어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3구 삼진.
태준은 3개의 커브로 백창수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울 수 있었다.
「이태준 선수가 3개의 커브로 3구 삼진! 까다로운 타자 백창수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허허, 커브 3개를 연달아 스트라이크 존에 꽂습니다. 볼 배합 정말 대담한데요? 이게 신인 투수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이 맞나요?」
그리고 해설 위원은 그 사실을 언급했고,
ㄴ캬! 이태준 3연 커브 미쳤다!!!
ㄴ장민영 픽은 이번에도 옳았나?
ㄴ야! 이태진 마무리 고정시켜! 다른 조무사 새끼들보다 훨 낫다!
ㄴ이태진이 아니라 이태준···
ㄴ어떻게 부르던 뭔 상관이야! 그냥 닥치고 응원하면 그만이지!
그간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꽂지도 못하는 투수들이 9회에 올라오는 것에 고통받던 원더스 팬들에게 이태준의 등장은 신선한 바람과도 같았다.
한편 라이더스의 더그아웃, 3개의 커브에 속절없이 당한 백창수는 이태준의 커브에 대한 주의를 남겼다.
“조심해. 정준 선배님의 커브랑 느낌이 같아.”
“뭐? 정준 선배님 커브랑 같다고?”
“어. 타이밍 맞추기 엄청 까다롭다. 그런데···.”
“응?”
“아, 아니야. 그러니까 일단 주의해. 만만한 투수 절대 아니니까.”
거기서 백창수는 태준을 상대로 느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못한 것이 맞다.
‘두 종류의 커브···? 에이 설마. 신인 투수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것은 상식 바깥의 이야기였으니까.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에게 괜히 잘못된 정보를 흘릴 수는 없을 노릇이기에 말을 아꼈던 것.
어느새 이태준에 대한 그의 평가는 계산이 제대로 서지 않는 투수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명의 타자.
이닝의 두 번째 타자 송명섭. 타율 0.275 6개의 홈런을 때린 우타자.
딱-!
“아웃!”
공 3개째, 몸쪽 낮은 곳에 제대로 제구된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빼앗기며 평범한 2루수 땅볼 아웃.
그다음 이닝의 세 번째 타자 앤서니 갈랜드. 타율 0.309, 8개의 홈런, 그리고 21개의 도루를 기록한 실력 있는 좌타자.
그 까다로운 타자까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부우웅-!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5구째.
볼 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휘어 나가는 슬라이더로 끌어낸 헛스윙 삼진.
「삼진! 삼진입니다! 이태준 선수가 앤서니 갈랜드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삼자 범퇴 그리고 탈삼진 2개! 마무리 투수 데뷔전을 완벽하게 막아냅니다!」
「마지막 슬라이더 보셨어요?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듯하면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 좌타자들은 방망이를 참을 수가 없겠는데요?」
「그렇습니다! 선두 타자는 커브로 삼진! 그다음 타자는 체인지업! 그리고 마지막 타자는 슬라이더! 정말 다채로운 볼 배합! 이 선수 왜 그동안 투수를 안 했던 걸까요? 이렇게까지 잘 할 수 있는 선수가요!」
좋은 어린 투수가 나왔을 때 기쁜 건 비단 팬들뿐만이 아니다. 야구인들 또한 좋은 투수의 탄생을 환영한다. 지금 해설 위원들이 그러했다.
태준이 오늘 보인 투구. 해설 위원들은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이찬열의 아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이태준이라는 투수가 던지는 공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경험치 +71】
【1군 첫 세이브를 기록합니다!】
【첫 세이브 경험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추가 경험치 + 200】
첫 세이브. 태준이 오늘 경기에서 거둔 성과는 단순히 1세이브 이상의 무언가였다.
***
태준의 투구. 그 투구를 가까운 곳, 더그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베테랑 포수, 원해솔 또한 적잖은 감탄을 보였다.
“확실히 타자의 타이밍을 어떻게 뺏어야 할지 알아. 자기 공이 어디까지 먹힐지도 제대로 알고 있고.”
야구는 타자와 투수, 서로가 타이밍을 뺏고 빼앗는 게임이라는 본질.
마운드 위의 태준이 보이는 플레이에서 그 본질이 아주 뚜렷하게 느껴졌다.
“영리한 녀석이네.”
소위 말하는 ‘야구 지능’이 높은 선수. 원해솔의 눈에 비친 이태준은 그런 투수였다.
“내가 없는 말 지어냈던 적이 있었냐? 태준이 쟤는 확실하게 야구 할 줄 아는 놈이야. 진짜 볼 때마다 더 잘해지는 것 같아.”
또 한 명의 베테랑 선수, 정준 또한 그 말을 받았다.
원해솔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궁금하다는 거야.”
그때 정준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야 해솔아. 너 나한테 내기 진 거 안 잊었지?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한 거.”
“··· 갑자기?”
“그 소원 지금 말해도 괜찮나?”
“··· 뭔데?”
태준을 처음 봤을 때부터 들었던, 어쩌면 아주 근본적인 의문.
“난 진짜 쟤가 왜 타자로 성공 못 했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겠거든?”
타고난 피지컬도 좋고 야구 머리도 뛰어난 선수가 어째서 타자로 실패했는가.
“나중에 태준이 타격 좀 한 번 봐줄 수 있겠냐? 너라면 뭔가 좀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준은 아직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