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4)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4화(4/210)
004화. 새출발 (1)
‘The Artist’
더 아티스트.
투구의 예술가.
로건 라이트는 그렇게 기억되는 선수였다.
너클볼을 포함한 현존하는 모든 구종을 마운드 위에서 던졌고,
선수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로건 라이트일지라도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정상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왜소한 체격,
그리고 남들보다 느린 구속은 분명 커다란 둔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둔덕을 넘어 정상에 올라섰다.
로건 라이트는 그런 선수였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녀석이
남들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녀석이
정상에 오를 방법을.
[초심자 시절에 가장 중요한 건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거든. 자, 그러면. 지금 구속 느린 포심이 전부인 너에게 가장 필요한 구종은 뭘까?]그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현 위치를 깨닫는 것.
지금의 태준은 탁월한 신체적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던질 수 있는 구종은 느린 포심패스트볼 하나뿐인 투수. 그런 투수에게 필요한 것. 그 결론을 내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체인지업이죠.”
태준의 선택은 체인지업.
로건 라이트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정답!]체인지업.
패스트볼처럼 들어오다가 급격히 줄어드는 구속을 통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내는 오프스피드 구종.
즉, 구속이 느리기에 타자와의 정면 승부가 까다로운 투수들은 반드시 함양해야만 하는 구종.
그리고 로건 라이트의 체인지업은 가히 독보적인 경지로써 분류됐다.
비교 대상은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 오로지 그뿐이었다.
“사실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죠. 만약 그 시절의 로건 라이트, 당신의 투구를 본 사람이라면 십중십 같은 선택을 내릴 겁니다.”
현존하는 모든 구종을 던질 수 있었던 로건 라이트에게도 특별함을 가질 수 있던 구종.
완벽한 디셉션, 뚜렷한 브레이킹, 확연한 낙폭까지.
MLB 역사상 가장 빼어났던 체인지업.
【<로건 라이트>가 구사했던 체인지업을 터득했습니다】
마침내 닿았다.
MLB 역사에 길이 새겨진 마구(魔球).
그것은 지금 태준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로건 라이트의 후계자>의 가호를 받습니다.】
【※터득하는 모든 구종이 <로건 라이트>가 실제로 구사했던 구종으로 변환됩니다.】
【획득 구종 : 체인지업】
그 이름부터 찬란한 로건 라이트의 체인지업.
태준은 야구공을 체인지업의 그립으로 쥐어봤다. 그것으로 더욱이 뚜렷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그는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었다.
【<체인지업> 숙련치 : LV 1】
【구종의 랭크는 포인트 소모를 통해 향상됩니다.】
물론 아직 완전한 로건 라이트의 체인지업에는 도달할 수는 없었다.
LV 1.
아직은 낮은 레벨.
하지만 불평 같은 것을 피워낼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 이름 앞에 ‘로건 라이트가 실제로 구사했던’이라는 수식어 하나 붙는 것만으로도 잠재된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마운드에 오를 최소한의 준비는 끝.
남은 건 마운드에 어떻게 올라갈 것이냐.
그리고 어떤 마운드에 오를 것이냐.
준비가 끝난 이상 고심이 길어져선 안 됐다.
[혹시 생각해둔 팀은 있어?]“네, 정했습니다.”
서울 드래곤스, 광주 위너스와 더불어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팀.
가장 극성인 팬을 두고 있지만,
야구만 잘 할 수 있다면 다른 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팀.
게다가 몇 년 동안 고질적인 투수의 기근을 겪고 있던 터라 어느 정도 두각만 드러낼 수 있다면 분명 주전 자리를 꿰찰 수도 있을 팀.
마침 연줄도 닿아있던 팀.
그리고 자신과 아무런 악연도 없던 팀.
“부산 원더스로 가겠습니다. 인기도 많고, 투수진도 약한 편이고, 특히 좌완 투수들이 부족한 팀이거든요. 그리고 때마침 그쪽에 아는 분도 한 분 계시고.”
[그런 팀이라면 나쁘지 않겠네. 그러면 더 기다릴 것도 없고. 바로 연락해봐. 입단 테스트 봐야지.]부산 원더스.
태준은 자신의 첫 목표를 그곳으로 잡았다.
***
“어, 태준이 왔구나?”
“넵,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향긋한 고기 냄새가 퍼져오는 이천의 숨은 목살 맛집. ‘길목 식당’. 그곳에서 90도로 깍듯이 인사하자 다소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성이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 참. 그렇게까지 공손할 필요 없다니까. 괜히 부담시려워.”
약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맞이해준 이 남성의 이름은 장민영. 올해로 38살. KBO에서 무려 통산 206세이브와 109홀드를 기록한 바 있는 베테랑 좌완 불펜 투수. 그리고 드래곤스에서 뛰던 시절 태준을 색안경 쓰지 않고 바라봐준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고 지금은 태준과 함께 드래곤스에서 지명 할당된 선수였다
“에이, 나이 차이가 얼만데요. 게다가 다른 분도 아니고 제 존경하는 장민영 선배님인데 당연히 공손하게 해드려야죠.”
“으, 오글거리니까 그러지 마라. 나한테 그리 아양 떤다고 해도 뭐 떨어지는 건 없으니까.”
말로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살짝 상기된 관자놀이에 티 안 나게 말아 올려진 입꼬리까지. 장민영은 칭찬을 싫어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흠흠. 그나저나 너 식단 관리한다고 이런 데 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
“하루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민영 선배님이랑 진솔하게 얘기할 기회 한번 마련해보고 싶었고요. 아 오늘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인마. 내 어떻게 너한테 얻어먹겠냐?”
“에이, 그래도 제가 먼저 보자고 했잖습니까.”
“나도 너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여주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된 거지. 거, 정 부담시려우면 고기나 좀 잘 구워 주던가.”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대로 구워보겠습니다.”
비록 앞머리는 좀 까졌지만(?), 절대로 속물은 아닌 장민영은 후배 선수들에게 기강을 잡는다거나 하는 것 없이 살갑게 대해주시는 분이었고, 그 대상이 열심히 하는 것이 보이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드래곤스에 오게 된 지는 고작 1년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비록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태준이 1년 반 동안 지켜봐 온 장민영은 정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조금 주고받으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식사 자리가 슬슬 끝이 나려는 무렵.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선배님. 드래곤스에서 코치 제안받으신 거 이번에도 거절하셨다면서요?”
“응, 아무래도.”
장민영이 드래곤스로부터 지명 할당되기 전부터 꾸준히 코치 제안을 받아왔다는 사실은 선수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애초에 드래곤스가 2년 전 하락세가 뚜렷한 노장 불펜 투수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해온 이유에는 장민영이 만약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투수 코치로 활용하고자 했던 계산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다만 장민영은 작년부터 이어온 드래곤스의 코치 제안을 계속해서 고사해왔고 끝내 결별했다. 이후의 행보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원더스 코치로 가시는 거죠?”
장민영이 드래곤스에 입단하기 전 무려 16년을 뛰어온 친정팀, 부산 원더스.
아마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원더스의 유니폼을 벗어야 했을 때 원더스로부터 무언가 약조를 받았고 이 때문에 드래곤스의 코치 제안을 계속 거절해왔던 것일 테고. 무엇보다도.
“하하하, 알고 있었구나? 후우, 그렇지. 드래곤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가족들도 다 부산에 있으니. 내려가야지.”
민영 선배는 가족을 모두 부산에 둔 채 서울에 올라온,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였기 때문. 그런 상황 속에 원더스의 코치 제안이 있었더라면 장민영은 그들의 제안을 고민 없이 받아들였으리라. 여기까지가 태준의 추측이었고. 아무래도 적중한 모양인 듯했다.
그리고 장민영도 딱히 숨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죠··· 그러면 언제 내려가실 생각인가요?”
“이미 짐은 다 싸놨고 아마 내일 바로 출발하지 않을까 싶어.”
“아, 잘됐네요! 그러면 혹시···”
그렇기에 붙들어야 했다.
원더스에서 무려 16년을 보직을 안 가리며 헌신했고 현장 내에서 선수 보는 눈이 탁월하다고 평가를 받는 장민영이라는 동아줄을.
“내려가시기 전에 저 공 던지는 것 좀 잠깐 봐주실 수 있을까요?”
자타가 공인하는 KBO 최고의 인기팀.
부산 원더스로 향할 수 있을 동아줄을 말이다.
***
“그러면,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천 야구장 근처에 있는 한 야구 아카데미. 태준은 그곳에 마련된 마운드 위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태준의 투구를 지켜봐 주는 이가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이번 건 진짜 너니까 봐주는 거야? 알지? 진짜 가능성 안 보이면 얄짤없어.”
장민영.
지금 태준의 가치를 제법 심도 있게 봐줄 수 있을 인물인 동시에 부산 원더스로 향하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 인물. 그는 평소 아끼던 후배인 태준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워낙에 피지컬은 좋다만··· 투구라는 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절대로 아니거든.’
그는 이태준의 투구를 진솔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장민영이 봐온 이태준은 자신이 그간 봐온 그 어떤 선수보다 노력의 역치가 압도적으로 높은 선수. 하지만 동반되어야 할 재능이 한참을 뒤처진 선수. 그런 선수에게 입에 발린 말은 외려 독이 될 테니.
“네, 선배님이 보신 그대로의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는 태준 쪽에서도 바라는 바였다.
장민영이 진솔하게 평가를 봐 줄수록. 더욱이 신열하게 봐 줄수록. 태준의 왼팔에 깃들어 있는 천재 투수의 재능은 더욱이 강렬한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마운드에 섰고. 낯선 감각이 발밑으로 느껴졌다.
‘여기가 마운드···’
물론 그곳의 마운드는 천연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피어나 있던 것도 아니고,
질 좋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홈 플레이트에는 포수 대신 그물망이 있었다. 여러모로 조악했다.
‘지금 제 위치에 걸맞은 마운드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익숙해져야겠는데요?’
[넌 이제야 첫걸음을 뗀 초심자일 뿐이야.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은 신경 쓸 거 없어. 앞으로 네가 신경 써야 할 곳은 마운드 위가 아니라. 홈 플레이트, 그리고 타자. 그것뿐이다.]마지막으로 공을 던졌던 게 고교 1학년 때였던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아스라하다.
자신의 자리는 늘 배터 박스. 눈앞에 보이는 저곳.
그곳에서 마운드를 바라봤고,
그곳에 선 투수를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
자신은 마운드 위에서 홈플레이트, 그리고 배터 박스를 바라보고 있었고,
앞으로 배터 박스에 선 수많은 타자를 상대해야 한다.
이제 나는 투수니까.
눈을 감고서 뇌리를 떠도는 상념을 전부 걷어낸다.
“후우-!”
눈을 뜬 후 한 차례 심호흡을 내쉰다.
태준은 한 차례 심호흡을 내쉰 뒤,
와인드업과 함께 골반을 돌려 몸을 비틀며 키킹을 강하게 박찼다.
순간 엉덩이와 무릎에 힘이 강하게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뒤이어 하체를 강하게 회전시켜 스트라이드를 쭉 뻗었다.
하체의 활용으로 만들어낸 강한 회전력은 고스란히 상체로 전달된다.
이 순간 투수의 몸은 마치 활과 같은 형태, 마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활과 같은 형태를 띤다.
그리고 팔, 등, 엉덩이, 발끝이 사선으로 일직선을 이루는 순간.
일련의 투구 동작을 통해 만들어진 힘은 그대로 손끝으로 전달됐고,
마지막으로 쥐고 있던 손가락으로 공을 채며 강한 회전력을 담아낸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자아내는 탄력. 화살은 공간을 꿰뚫어내기 시작한다.
파앗-!
그렇게 로건 라이트. 그의 후계자로서의 첫 투구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