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53)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53화(53/210)
053화. 마운드 위의 심판자 (2)
부산 원더스와 서울 드래곤스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
그 경기를 간절한 마음이 한가득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제기랄.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할 텐데···.”
그 사내는 서울 드래곤스의 단장, 박원재.
앞선 두 경기에서 철썩 믿고 있던 도끼, 정민혁에게 발등을 연달아 찍힌 후 자신을 향한 원성이 더욱이 짙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해볼 수 있었던 건, 서울 드래곤스의 공식 인별 계정에 올라오는 무수한 악성 댓글의 향연.
ㄴ드래곤스의 승리를 위해 박원재 단장을 잘라주세요! 좋아요 297 싫어요 3
ㄴ원재야! 네가 그렇게 자랑하는 민혁이 맛 간 거 같다 ㅋㅋ 좋아요 203 싫어요 21
ㄴ무능한 박원재 잘릴 때까지 숨 참는다! 흐읍! 좋아요 190 싫어요 2
ㄴ오늘 이태준한테 시원하게 털릴 것 같으면 좋아요! 좋아요 177 싫어요 4
경기가 시작되기 전 잠시 인별 계정에 달린 댓글을 스윽 훑어본 박원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 원 참. 내가 잘리긴 왜 잘려? 야구라는 게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거지.”
그러고선 외려 큰 소리를 냈다. 물론, 단장실에 덩그러니 혼자 있었기에 듣는 이 아무도 없었지만.
다만, 그렇게 큰소리를 쳤음에도 동공에 서린 불안감까지는 지워낼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닿는 곳.
그곳은 사직 야구장의 마운드 위.
그리고 그 위에 지금, 이태준이 서 있었다.
***
박원재가 불안에 떨고 있을 즈음, 같은 시각의 사직 야구장.
1회 초, 태준은 그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서 마운드 위로 올랐다.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마운드.’
사실 태준이 선발 투수로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2군에서 뛰고 있던 때,
서울 드래곤스 2군 팀을 상대로 선발 투수로 마운드 위를 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의 경기는 1회 말.
그리고 맡은 역할도 완전한 선발 투수라고 할 수 없던 오프너.
게다가 2군 경기와 1군 경기의 무게감 또한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
지금 태준이 느끼고 있는 감각은 그날과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오늘 나는 확실한 선발 투수다.’
선발 투수.
사전적 의미로는 팀에서 나서는 첫 번째 투수.
그런 기준으로 여긴다면 사실 선발 투수라는 자리는 별거 없는 자리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첫 번째로 오르는 투수.
그건 오프너와도 다를 것이 없을 테니.
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선발 투수’가 갖는 의미는 ‘첫 번째 투수’의 의미를 분명히 넘어선다.
일단 역사의 길이부터가 다르다.
당장에 현대 야구에 ‘마무리 투수’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이라 해봐야 고작 1988년, 셋업맨이니 스윙맨이니 하는 개념은 그보다도 한참 뒤의 일이었으니까.
또한, 마무리 투수의 가치가 아무리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한들, 여전히 선발 투수가 인정받는 가치의 절반 수준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
그러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국, 1회부터 9회까지 한 게임을 완벽하게 지배할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은 선발 투수뿐.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오로지 그들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완봉승’. 오늘 경기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간 달성해보고 싶은 기록.’
그 기록을 가리켜 사람들은 ‘완봉승’, 미국식 표현으로는 ‘Complete Game Shutout’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기록은 선발 투수로서 이룩할 수 있는 영예 중 하나.
태준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 기록을 손에 거머쥐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의 경기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첫 등판이기에 한계 투구 수는 50구.
평범한 투수라면 한 3이닝 정도 던지는 것이 보통이었겠지만,
태준의 오늘 경기의 목표는 5이닝.
선발 투수가 승리 투수가 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런 오늘을 위해 태준이 새롭게 준비한 무기가 있었다.
“하진이가 던지는 걸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것은 바로 커터.
바로 직전의 경기에서 20레벨을 달성한 뒤 얻어낸 특전. 그것에서 태준은 컷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원래라면, 구속을 조금 더 올린 뒤에 꺼내려 했지만, 선발 투수로, 그리고 한계 투구 수가 정해진 이상, 투구 수를 줄일 수 있어야 했으니.’
[흐흐, 그렇지. 커터만큼 타자에게 범타를 유도하기 좋은 구종은 없을 테니.]속도와 무브먼트를 동시에 챙겨냈다는 점에서 현재 MLB의 수많은 투수에게 서클 체인지업과 더불어 가장 각광을 받는 구종으로,
포심패스트볼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데다가 거의 타자의 타격존 앞에서 살짝 휘어나가는 특징 덕분에 싱커와 투심과 함께 범타의 유도에 특화된 구종으로서 분류될 수 있었으며,
같은 손 타자, 그리고 반대 손 타자 모두에게 강한, 소위 약점이 없는 구종이기도 했다.
특히 반대 손 타자들의 몸쪽으로 꺾여 들어가 방망이를 쪼개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컷 패스트볼이 ‘커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유.
【컷 패스트볼 LV.1】
그리고 그 커터는 그냥 커터가 아닌 로건 라이트가 구사했던 커터.
그리고 로건 라이트 또한 최고의 커터를 던지기 위해 MLB를 풍미했던 투수가 구사했던 커터를 연구한 적 있었다.
[사실, 커터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따로 있긴 하지. 리베라. 그리고 잰슨. 그 두 명의 선수는 던지는 공의 거의 90%가 커터였으니까. 하지만, 난 그들만큼의 구속이 나오지 않는 투수였고. 게다가 역할도 달랐지. 그래서, 또 다른 투수가 던지는 커터를 연구했었지. 바로, 로이 할러데이의 커터를 말이야.]DOC ‘로이 할러데이’.
16시즌 동안 무려 67번의 완투와 20번의 완봉승을 기록한 위대한 선발 투수가 구사했던 커터였다.
[잰슨은 삼진을 잡기 위해 커터를 구위로 찍어누르듯 던졌다면, 할러데이는 빼어난 제구, 그리고 다른 구종, 특히 속구 계열의 구종과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서 커터의 위력을 끌어내는 투수였어. 그게 할러데이라는 투수가 무식할 정도로 많은 완투를 기록할 수 있던 이유였지.]21세기에 접어든 이후, 야구계에 ‘완투’ 경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추세였다. 하지만, 할러데이는 그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여 사람들에게 완투형 투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커터의 영리한 활용이 있었다.
[로케이션이 이뤄지는 커터만큼 타자를 유린하기 좋은 구종은 없지. 만약, 제대로 노려서 휘두르는 게 아니라면, 그 아까운 방망이 하나. 날려 먹게 될 테니까 말이지.]제구되는 커터.
그것은 분명 선발 투수를 준비하는 이에게 최고의 무기가 되어줄 수 있었을 터.
[흐흐, 자 그러면. 라인업을 한번 살펴보자고. 상대가 너라고 1번부터 9번까지 오른손 타자를 7명이나 배치했네? 이제 막 선발 투수로 나서는 녀석에게 이 무슨 장난질이야. 안 그래?]특히 오늘과도 같은 경기.
타선에 등록된 9명의 타자 중 7명을 우타자로 채운, 우타 일색의 라인업.
좌완 투수인 자신을 상대로 갖춘 저격 성이 짙은 라인업이었다.
그 라인업을 상대로 투수는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그 질문에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일단 태준은 이러한 답을 내렸다.
“그러게요. 오늘 드래곤스 타자들 방망이. 몇 개 좀 부숴 뜨려 줘야겠어요.”
오늘 경기의 적, 드래곤스 타자들의 방망이를 부숴버리겠다고.
[바로 그거야. 커터는 과감하게 몸쪽으로 찔러 넣어 타자의 방망이를 쪼개낼 수 있어야 해. 그래야만,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그런 태준의 각오는.
빠각-!
‘아, 씨발! 내 방망이!’
오늘 경기의 선두 타자와의 승부부터 드러날 수 있었다.
***
좌타자는 우완 투수에게 강하고,
우타자는 좌완 투수에게 강하다.
그것은 진리.
하지만 지금 이 그라운드에서 그 진리는 완벽히 부정당하고 말았다.
이태준의 커터. 그것이 드러난 이후부터 말이다.
“하, 쟤 저런 공도 던질 줄 알았어?”
“방금 커터 맞지? 와···. 저게 몸쪽으로 절묘하게 코너워크 돼서 들어오니까. 그냥 답이 없네.”
컷 패스트볼은 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 타자는 자신과 반대 손 투수에게 강하다는 논리를 철저히 배반하는 구종.
과거, 역사상 최강의 커터 스페셜리스트 ‘샌드맨’, 마리아노 리베라의 전성기 시절, 그가 마운드 위로 올랐을 때, 스위치 히터들이 우완 투수인 그를 상대로 좌타석이 아닌 우타석에 섰다는 이야기는 야구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즉, 오늘 경기 이태준이 좌완 투수라는 이유 하나로 준비한 우타 일색의 라인업은 처참한 실패라는 이야기.
팔짱을 낀 채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구강혁의 낯빛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이태준의 커터에 아연실색한 반응을 보이는 중,
정민혁은 여전히 경기에 제대로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손가락, 그리고 초점 잃은 눈동자. 마치 공황 장애에 빠진 듯한 모습.
오늘 경기에서 정민혁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어쩌면 자신의 선수 생활이 조만간에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모든 사고를 잠식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이틀 전에 나타난 폭로 뉴스.
수도권의 A 선수라는 것 이외의 별다른 단서가 추가로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이상, 그 A 선수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인지해버린 이상, 감정의 변화가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에야 떳떳할 수 없는 노릇일 테니.
그것이 그가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던 이유.
그리고 그러한 상태는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정민혁을 상대로 마운드 위에 선 투수는 선물 하나를 던져주고 시작했다.
퍼어엉-!
“스트라이크!”
정민혁이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일말의 주저함 없이 곧바로 와인드업을 잡아 던진 투구.
그것은 구태여 확인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너무도 명백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갔다.
바로 한복판.
[131.0Km/h]구속도 빠르지 않았다. 현재 태준이 기록할 수 있는 최고 구속보다 거의 10Km/h 정도 느린 포심패스트볼.
마치 그냥 치라고 던진 듯한 공. 정민혁은 지금 그런 공을 그저 멀뚱멀뚱 지켜만 봤던 것.
정민혁은 멍한 눈으로 마운드 위의 투수, 이태준의 얼굴을 흘긋 바라봤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이태준이 얼굴에 그리고 있던 아주 섬뜩한 조소를.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같은 녀석에겐 커터건 슬라이더건 던질 가치도 없어···.’ 라고.
[ 서울 드래곤스 VS 부산 원더스]ㄴ정민혁 정신 안 차리냐? 복판에 꽂는 공도 그냥 바라만 보네;
ㄴㅋㅋ 리얼; 망부석인 줄 알았자너~
ㄴ야 이쯤 되니까 진짜 의심 되지 않냐? 수도권 A 그 새끼 진짜 정민혁 아님?
ㄴ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 쌉가능이다
***
정민혁이 지금 뇌리에 그리던 생각. ‘너 같은 녀석에겐 다른 구종을 던질 가치도 없다.’
실제로 지금 태준은 그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집중을 하나도 못하고 있어. 이런 공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정민혁이라는 타자가 지금 승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의 행동거지만 보더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던 부분.
다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까지는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심증만이 남아있을 뿐.
‘사실 경험이 부족한 신인 선수가 이따금 부침을 겪는 건, 흔한 일. 정민혁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다만, 이건 좀 정도가 심하게 지나쳐. 내가 지금껏 봐온 정민혁은 잠깐의 부진을 겪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긴장을 내비칠 선수는 아니었으니까.’
선수가 슬럼프를 겪을 때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지만, 정민혁이라는 선수가 그간 보인 행적을 떠올려본다면,
지금의 이 모습은 너무도 어색했으니까.
‘설마···.’
태준은 거기서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왜, 저 녀석이 저런 꼴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 생각나는 게 있어.]‘흠···. 사실 확증할 수 없습니다. 그저 비약적인 의심 정도 있을 뿐이에요.’
선수들도 사람인 만큼 야구와 관련된 뉴스는 살핀다.
태준도 다를 건 없었다. 그 역시 최근 수도권 A 선수를 향한 폭로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정민혁의 평소 행실, 그리고 지금의 다소 의심스러운 행태는 곧 하나의 심증을 낳을 수 있었다.
‘그 수도권의 A 선수. 설마 저 녀석 아닐까 하는 의심이요.’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심증, 섣불리 확신해선 아니 될 일.
다만 그런 생각까지 닿게 되니, 태준은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에요. 정민혁이 그 A 선수라면, 지금 이 승부. 사람들의 이목이 꽤 끌릴 승부가 되지 않을까요?’
<로건 라이트의 후계자>, 그것의 성장 조건 중 하나인 인지도의 획득.
만약 정민혁이 그 뉴스로부터 언급된 파렴치한 범죄자라고 한다면,
지금 이 승부. 정의 구현의 한순간으로써 기억될 수 있을 테니.
‘정민혁, 저 녀석.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무너뜨려 보겠습니다.’
태준은 그 순간, 섬뜩한 미소를 얼굴에 그려 넣었다.
그리고 타자와 포수의 미트를 응시했다.
그 순간, 그라운드 위에는 아주 싸늘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