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88)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88화(88/210)
088화. 또 한 계절이 지나며 (3)
현재와 과거의 야구를 통찰하는 눈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과거엔 평균자책점과 다승이 선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겠지만,
평균자책점(ERA)은 ERA+, FIP, FIP+, WHIP 등 온갖 세이버 지표 등에 밀려 그 가치를 과거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추세였으며,
다승은 구태여 설명을 덧붙일 것도 없었다. 극단적인 경우에선 다승은 아예 쓸모가 없는 스탯으로도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이어진 원인은 결국 하나. ‘운’의 요소 때문이었다.
다승이 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만약 다승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기록할 수 있는 스탯이었다면,
과거 ‘디그로미네이터’ 제이콥 디그롬이 고작 10승 9패라는 초라한 스탯으로 만장일치에 단 한 표가 모자란 사이 영 위너에 등극할 일 따위는 없었을 테고.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13승 12패라는 성적으로 당시 19승을 기록한 존 레스터와 21승을 기록한 C.C. 사바시아를 제치고 사이 영 위너가 등극할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평균자책점도 마찬가지. 물론, 다승만큼이나 그 명예가 실추된 건 아니었을 테지만, 평균자책점 역시 ‘운’의 요소에 영향을 적잖이 받는 스탯.
수비수의 보이지 않는 실책이라던가 기분 나쁜 코스로 뻗는 안타가 나오면서 평균자책점이 솟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같은 팀 수비수의 호수비가 나온다던가 실투를 던져 정타를 맞았지만, 운 좋게 정면 타구가 만들어지는 경우엔 평균자책점이 내려갈 수 있었을 테니.
이러한 ‘운’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여 선수의 진정한 가치를 판가름하고자 온갖 데이터 전문가들로부터 착안 된 것이 바로 ‘세이버메트릭스’.
그리고 그런 ‘세이버메트릭스’의 시대에서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는 스탯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탈삼진’이었다.
삼진이야말로 야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수를 원천에 차단한 채로 타자를 제압해냈을 때 얻어낼 수 있는 기록.
즉, 운의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스탯.
그 ‘탈삼진’의 가치는 세이버메트릭스의 시대가 도입되면서 다른 스탯들과 달리 오히려 그 가치가 치솟을 수 있었다.
그것이 전 세계 온갖 선수를 분석하고 그 가치를 판가름하는 메이저리그의 팀들이 탈삼진을 제대로 잡아 올릴 수 있는 투수에게 수천만, 수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턱턱 던지는 이유.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경기.
태준은 자신의 가치를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끌어 올리고 있었다.
1회부터 이어진 탈삼진의 행진.
이태준은 오늘 자신이 잡아 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있었다.
「삼진! 이번에도 삼진입니다! 이태준 선수가 세인츠 타자들을 연속된 삼진으로 제압해내고 있습니다!」
4.1이닝을 던지는 동안 총 13개의 아웃 카운트. 그 13개의 아웃 카운트 중 무려 10번이 삼진이었다.
「탈삼진이라는 건 투수에게 있어서 타자를 상대로 완벽하게 이겨냈다는 것을 증명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투수들은, 특히 선발 투수들은 본인의 등판을 앞두고 상대하는 모든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강구해 둡니다. 물론, 모든 타자를 상대로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요.]
삼진이야말로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승리.
오늘 세인츠의 타자들은 태준에게 가장 처참한 형태로 패배하고 있었던 것.
물론 이태준이라는 투수가 어떤 투수인지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저항할 수는 없었다.
‘하, 슬라이더가 이렇게 꽂히면 어떻게 치라고···.’
‘와 저 커브는 뭔데? 타이밍을 대체 어디에 두고 쳐야 하는 거야?’
‘커터건 스플리터건 체인지업이건 포심이랑 도무지 구별이 안 되니··· 진짜 돌아버리겠다!’
어떻게든 태준을 이겨내기 위해 악착같은 꼼수보다는 정면 승부를 택한 그들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처참한 패배를 머릿속에 상정해 놓고 승부를 펼친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상대 투수가 이태준’.
그것은 타자에겐 마치 피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았다.
‘볼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아마 타자의 뇌리엔 체인지업이 박혀있을 거야. 지난 타석에서 그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으니까. 지금쯤 체인지업을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겠지. 방금 두 번의 속구에 타이밍이 살짝 늦는 게 그 이유일 테고. 그렇다면 허를 찌른다. 몸쪽 깊숙한 코스의 포심패스트볼로.’
부우웅-!
퍼어엉-!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타자의 심리를 거의 90% 가까이 꿰뚫어낸 뒤 그 타자를 잡아낼 수 있을 가장 효율적이면서 완벽한 볼 배합.
‘스트라이크 존에 몸을 깊숙이 붙이고. 그립을 짧게 쥔 타자. 이런 타자와의 승부에선 인 코스 제구가 키 포인트. 몸쪽 깊은 코스로 제구된 공으로 윽박지르듯 카운트를 빼앗고.’
퍼어엉-!
“스트라이크!”
‘그렇게 투 스트라이크를 쌓은 다음엔 또다시 몸쪽에 떨어지는 오프스피드로 타이밍을 완벽하게 뒤흔든다.’
부우웅-!
퍼어엉-!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태준은 지금 인천 세인츠의 타자에게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를 선명하게. 다시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 투구는 역설하는 듯했다.
자신을 이겨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5이닝 무실점 1피안타 12K
이닝 당 무려 2개 이상의 탈삼진. 이태준은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스퍼트를 늦추기는커녕 최고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와, 이태준 선수 아직 5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삼진이 12개···. 페이스 장난 없는데요?”
그런 태준의 모습을 관중석 관계자 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젊은 기자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저렇게 많은 삼진을 잡아 올리면서도···. 전혀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지.”
그런 젊은 기자의 말을 받은 이는 야구판에서의 경력이 상당한 베테랑 기자인 민찬수. 두꺼운 외투 안으로 감춰진 그의 팔뚝은 어느새 닭살이 오소소 돋아나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삼진의 중요성을 모르는 투수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투수가 타자를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 삼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해내기 위해선 투구 수를 관리할 필요가 있기에 많은 투수가 삼진만을 잡는 투구는 포기하고 적절히 맞혀서 잡는 투구를 펼치곤 한다.
맞혀서 잡는 것이 더 나은 상황에서도, 심지어 상대하는 타자들이 ‘아 저 투수가 지금 날 삼진으로 잡으려 드는구나!’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을 때조차도 탈삼진에 집착하여 오로지 삼진만을 잡기 위해 거침없이 들이대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방식.
그것은 스스로에게 무거운 리스크를 걸고 공을 던지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방식일 테니.
그렇기에 투수는 삼진을 잡아내는 볼 배합 속에 적절히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볼 배합을 섞을 줄 알아야 하며,
이태준은 그것을 그 누구보다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투수임을 수차례 증명해온 투수였다.
하지만 그런 투수가 지금 마운드 위에서 오로지 삼진만을 잡기 위한 볼 배합을 펼치고 있었다.
분명 그 의도를 타자들에게 어느 정도 간파되었음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고스란히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태준은 그 볼 배합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미쳤어. 이건 완전히 미친 거라고···.”
그리고 마운드 위에 선 투수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데엔 다른 이유를 추측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이태준은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잔인한 방식으로 투구하면서···. 자신과 가을 야구에서 맞붙게 될 팀에게 공포를 각인시키려 하는 거야.”
모든 프로 스포츠가 으레 그렇듯. 선수가 지니는 이미지, 아우라(Aura)는 굉장히 중요하다.
마치 외모는 한량 거지인 것처럼 볼품없게 생긴 사람도 고풍스러운 정장을 입고 롤스로이스 팬텀 뒷좌석에 앉아 있게 된다면 무언가 굉장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처럼.
야구에서도 노쇠화가 찾아와 현재의 실력이 예전 같지 못한 타자일지라도 그 타자가 전성기 시절 메이저리그에서 끝내주는 활약을 펼쳤던 적 있는 타자라면 투수는 승부 전부터 지레 겁을 먹고 제대로 된 승부를 펼칠 수가 없다.
그리고 태준은 지금, 자신을 상대하는 팀들에게 공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아주 섬뜩한 아우라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 있었던 것.
‘하, 이태준···. 쟨 정면 승부로는 절대로 못 이길 것 같은데···?’
어느새 세인츠 타자들의 눈빛에는 공포심이 서려 들기 시작했으니.
‘하, 씨발···. 야구 진짜 좆같이 잘하네···.’
태준의 오늘 경기에서의 전략은 아주 성공적으로 먹혀들고 있었다.
***
그렇게 현 리그 2위 팀, 세인츠의 선수들이 도저히 넘어설 엄두도 내지 못할 벽을 체감하고 있었을 때.
관계자 석. 그곳에선 꽤 많은 수의 전력 분석원이 집결해 있었다.
물론 모든 팀의 전력 분석원이 모인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네 팀의 전력 분석원.
오늘 경기의 상대 팀이자 현 리그 2위 팀인 인천 세인츠는 물론,
직전의 경기로부터 와일드카드 진출을 확정 지은 수원 록스와 현 리그 4위 잠실 바이킹스도 꽤 많은 수의 전력 분석원을 파견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기다리고 있을 1위 팀, 광주 위너스는 내부의 전력 분석원뿐만 아니라 추가 인력까지 고용했을 정도.
평소 경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의 전력 분석원이 지금 이곳 사직 야구장을 방문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굳이 한반도 거의 최남단 즈음에 자리를 잡은 부산까지 찾아온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태준.
그 투수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아주 면밀하게 분석해내기 위함이었다.
‘부산 원더스를 이기기 위해선 이태준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생각은 비단 한 팀만의 생각이 아니었기에.
‘오늘 이태준의 모든 것을 파악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그들은 이태준의 투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아주 끈덕진 시선으로 응시했다.
하지만 이태준의 투구가 거듭될수록. 전력 분석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깊은 탄식이 자아내지기 시작했으니.
이태준이 선수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작업은 곧 그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칠 수 있었다.
“그 투수의 구위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욱여넣는 공의 헛스윙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이태준이 오늘 스트라이크 존 안에 집어넣은 공은 61개의 공 중 무려 49개. 그리고 그중 그냥 흘려보낸 횟수는 15번. 파울 타구가 만들어진 건 5번. 인 플레이 타구가 만들어진 건 고작 3번. 그리고 헛스윙은···. 26번.”
이태준은 오늘 절대로 도망가는 투구를 펼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공격적인 투구, 오늘 경기에서 던진 61개의 공 중 무려 49개의 공을, 약 80%에 달하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안팎으로 욱여넣었다.
즉,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공을 던졌지만, 타자들은 그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
그것이 이태준이 그토록 많은 삼진을 잡아 올렸음에도 투구 수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진 이유였고.
나아가 오늘 사직 야구장을 방문한 모든 분석원이 경악을 금할 수 없던 이유였다.
거기까지 사고가 이어진 이상.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결론.
‘하, 이거. 이태준을 분석할 게 아니었네. 저 괴물은 분석해 봐야 답도 없어.’
이태준은 분석할 필요가 없는 선수라는 사실.
분석해 봐야 답을 도출할 수 없는 선수라는 사실.
KBO의 레벨에서는 이제 태준은 적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선수라는 사실.
‘이태준 말고 다른 투수들이나 분석해야겠네. 차라리 그게 낫겠어.’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투수를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이태준은 오늘 그들에게 그 사실을 아주 뚜렷하게 일깨워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