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seball genius through talent absorption! RAW novel - Chapter (89)
재능 흡수로 야구 천재-89화(89/210)
089화. 또 한 계절이 지나며 (4)
이태준에 대한 분석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는 이태준이 처음으로 마운드 위에 모습을 보인 이후로 줄곧 이어져 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시작된 데엔 워낙에 실력이 특출나고 이렇다 할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 꽤 다방면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것이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랑 느낌이 또 완전히 달라. 그냥 다른 선수라고 봐야 할 정도로.”
바로 이태준의 불가사의한 수준의 성장 속도.
이태준을 상대하는 모든 팀은 그를 분석한다.
이태준이 던지는 공을 연구하고, 분석한 뒤 이미지화를 시켜 그것에 맞는 타격을 준비한다.
다만 문제는 이태준은 늘 상대 팀의 전력 분석 자료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선수라는 것.
6회에 들어선 지금, 이태준이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공은 그들이 예상한 범주에 속해있지 않는 공이었다.
「방금 이태준 선수가 삼진을 잡아낸 구종. 그립을 보시면, 이태준 선수가 일전에 던졌던 적이 없는 구종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태준 선수가 결정구로 던진 구종의 그립을 보시면 커브와 비슷한 듯하면서 검지가 살짝 구부러진 걸 볼 수 있습니다.」
엄지와 검지의 힘으로 던지는 일반적인 커브볼과 달리 검지를 구부려 엄지와 중지의 힘으로 던지는 구종.
「너클 커브네요!」
기본적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그립을 잡는 너클볼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너클 커브.
오늘 태준이 새로운 무기로써 선보이는 구종이었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많은 투수가 구사하고 있고 또 KBO에서도 유행을 타는 구종이죠? 커브와 궤적은 비슷한 듯하지만, 구별이 확실히 되는 구종으로 각이 좀 작고 더 빠르며 브레이킹이 강하게 걸려서 공에 회전도 더 많이 걸립니다.」
변형 커브 구종 중 하나인 슬러브와 비슷한 느낌으로 커브보다 낙폭이 얕은 대신 구속이 더 빠른 구종으로 실제로 몇몇 전력 분석 통계 사이트에서는 그 구종을 커브볼과 완전히 다른 구종으로서 분류하기도 했다.
그렇게 분류된 가장 큰 이유.
너무 올드 스쿨한 구종으로 인식되는 탓에 서서히 사장되어 가는 기존의 커브볼과 너클 커브가 달리 메이저리그 수많은 투수의 간택을 받는 가장 큰 이유.
「그리고 이 너클 커브라는 구종은 커브볼과 달리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에 떠오르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즉, 디셉션의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는 구종이라는 거죠. 그게 너클 커브가 갖는 진짜 강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커브와 달리 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에 떠오르는 궤적이 없다는 점. 그로 인해 타자들은 그 공이 타격 존까지 제대로 도달하기 전까지 그 공이 너클 커브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
「이태준 선수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커브를 다루잖습니까? 거기에 저 너클 커브까지 섞인다? 상대하는 타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아마 지금은 자기들이 무슨 공이 당한 건지 파악도 제대로 안 됐을 겁니다.」
그런 전혀 예상할 수 없던 공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들어온다? 상대하는 타자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타자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여유를 챙길 리는 만무했을 터.
“방금 구종 뭐였어? 혹시 슬라이더였냐? 하, 아닌데. 슬라이더 느낌은 또 아니었는데···.”
“혹시···. 너클 커브 아니야?”
“뭐? 너클 커브? 자료에 이태준이 너클 커브 던진다는 내용은 없었잖··· 하, 씨발 그러네···. 쟤 이태준이지···?”
이태준의 새로운 구종, 너클 커브는 세인츠 타자들의 허를 아주 깊숙하게 꿰뚫어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정준 선수가 저한테 이태준 선수의 구종 습득 능력에 관해 이야기해줬던 일이 떠오르네요. 정준 선수의 커브는 배우는 게 어려운 것으로 야구인들 사이에 꽤 유명하거든요? 실제로 정준 선수 한국에 처음 복귀했을 때 원더스의 꽤 많은 투수가 커브 던지는 법을 물어보고 배워보려 했었거든요. 그런데 한 명도 제대로 익힌 투수가 없었어요. 그만큼 제대로 구현해내는 게 어려운 커브인데. 그걸 그냥 딱 보더니 한 번에 던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던지기 시작했고요.」
「허, 정말요?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저도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정준 선수가 자기 후배 선수 챙기겠다고 너무 띄워주려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태준 선수 투수로 전환한 지 기껏해야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선수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던질 수 있는 구종들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면. 포심, 커터, 스플리터, 두 종류의 커브. 슬라이더와 스위퍼. 체인지업까지. 온갖 구종들을 다채롭고 능숙하게 던질 줄 알아요. 아, 이제 너클 커브까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정준 선수가 했던 말이 허풍이 아니었구나 싶게 되는 거죠.」
이태준의 구종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저런 이태준 선수를 보면 이제 과거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그 투수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 이태준으로부터 야구인들은 과거 전설 속의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로건 라이트 선수. 그 투수가 떠오르는 듯싶습니다.」
로건 라이트. 이태준의 뒤를 지켜주는 그 유령을.
「그러고 보니 같은 팀의 정준 선수가 한때 한국의 로건 라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 별명을 이태준 선수에게 물려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허허, 그렇네요. 그래도 이태준 선수와 로건 라이트 선수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태준 선수는 이제 구속도 제법 나온다는 점이 있겠네요.」
로건 라이트의 후계자.
넘어서 공까지 빠른 로건 라이트가 될 수도 있는 투수.
그리고 그 투수, 이태준의 삼진 행진은 경기의 후반에 접어드는 시점까지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삼진! 헛스윙 삼진! 이태준 선수가 오늘 경기 16개째 삼진을 올립니다!」
6회를 넘어 7회까지 던지는 동안 이룩한 삼진의 개수는 무려 16개.
이닝이 거듭될수록 삼진 페이스는 떨어지기는커녕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다.
TEAM 1 2 3 4 5 6 7 8 9 R
세인츠 0 0 0 0 0 0 0 – – 0
원더스 0 1 0 1 0 0 1 – – 3
정규 이닝의 종료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6개.
정준의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인 19K를 넘어서기까지 남은 삼진은 4개.
어쩌면 쉽지 않을 상황이었겠지만.
[ 인천 세인츠 VS 부산 원더스]ㄴ이태준! 정준 기록까지 넘어보자!
ㄴ기록 깨면서 미스터 제로도 지키자!
ㄴ리그 2위도 지키자!
팬들의 이태준을 향한 믿음.
정준 기록마저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굳건했다.
***
그렇게 이태준의 삼진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중, 사직 야구장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진 곳, 서울. 그곳의 한 대학 병원, 정형외과.
어제의 등판을 끝으로 잠시 부산 원더스 1군 로스터에 이름이 빠졌던 한 선수. 정준은 지금 그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사로부터 상부 관절와순의 파열, 슬랩 병변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거기에 만약 수술하지 않고 공을 계속 던지려 한다면, 아마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소견까지.
데드 암 증후군.
정준은 오늘 투수에겐 사망 선고나 다름이 없는 소견을 받아 들어야 했다.
“정말 후회 없겠어? 만약 수술만 제때 받았더라면 몇 년 정도 더 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리고 그것은 소견을 받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던 부분이었으니.
정준은 병원에 동행했던 개인 트레이너와 그 사실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뛰어 봐야 몇 년 더 뛸 수 있겠어? 그리고 그렇게 수술하고 재활하고 돌아온다고 해서 예전처럼 던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딱히 욕심나는 개인 기록도 없겠다. 올해가 선수 생활 딱 마무리가 좋겠더라고.”
이번 시즌, 25게임에 나와 152이닝을 던져 2.55의 평균자책점. 130개의 탈삼진. 12승 5패를 기록한, KBO 레벨에서는 여전히 A급 선발 투수였던 정준.
그는 이미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 상태였다.
“네 선택이 그렇다면야. 내가 뭐 더 할 말이 있겠냐.”
정준의 개인 트레이너로 10년 넘게 함께 해온 서동근 트레이너는 그의 확고한 의지를 다시금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이거 미안해서 어째. 나 은퇴하면 형도 백수 되는 건데.”
“야, 내 능력에 어디 할 일을 못 찾겠냐? 아직도 나 찾는 곳 많다? 어디 가서 ‘정준 개인 트레이너였습니다!’ 하면 안 뽑아줄 곳이 어딨겠다고.”
“하하하. 그러면 다행이고.”
꽤 오래전부터 ‘은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담아 왔었기에 그럴 수 있던 걸까.
지금 정준의 표정은 선수 생활의 끝을 종용받은 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외려 어딘가 홀가분함이 느껴지는, 그러한 표정을 얼굴 위에 그려 넣고 있었다.
“맞다. 준아. 너 지금 경기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지?”
그런 정준이 은퇴를 결심하게 된 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
“맞네. 오늘 태준이 나오는 날이었지? 하 걔 참, 오늘 미첼도 나올 수 있는 날이니 그냥 쉬라 했는데도 꿋꿋이 나가겠다고 했었는데. 걔 평자 0 유지되고 있어?”
그 인물은 바로 이태준.
그리고 그 투수가 지금 정준의 프로 마지막 해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마운드 위에서 공을 힘차게 흩뿌리고 있었다.
“8회까지 무실점! 79이닝 연속 무실점 중이시다.”
“허? 그래? 이야···. 그걸 또 나와서 지켜내네. 난 놈은 난 놈이라니까.”
또한, 그 투수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으니, 오늘 경기가 끝난다면 더 이상 기록에 영향을 주는 경기는 없었을지니.
만약 오늘 경기만 실점 없이 마무리 짓게 된다면, 이태준은 2040시즌의 완전한 ‘미스터 제로’로서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된다.
“야 그뿐이냐? 지금 이태준이 8회까지 잡은 삼진 개수가 몇 개인 줄 알아?”
마지막으로 그 투수는 지금 정준이 이룩했던 불멸의 기록.
2위인 대전 나이츠의 유주환이 기록했던 17K보다 2개 더 많은 9이닝 19K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그 고지 앞에 섰으니.
“18K다.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그 기록 잘하면 이태준이 깰 수도 있겠던데?”
8이닝 무실점 18K
만약 태준이 남겨진 세 개의 아웃 카운트 중 두 번의 삼진을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기록의 주인공은 바뀐다.
정준에서 이태준으로.
그런 상황 속, 정준은 지금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었는가?
“오, 진짜? 아, 안 되겠다. 형 태블릿 PC 챙겼지? 그거로 보자. 이왕이면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그는 지금 진심으로 응원하고 염원했다.
자신의 기록이 그 투수에 손에 의해 깨지는 순간을.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당연히 챙겨 놨지.”
“흐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이래서 좋다니까.”
그렇게 그들은 이태준의 2040시즌 정규 시즌 마지막 이닝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스코어는 어느덧 4 대 0.
4점 차로 앞서 있었다.
빠바바바바바밤-! 빰빰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그 순간 사직 야구장의 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환희에 차 있었다.
무려 3000일 만에 오르게 될 리그 2위의 등극.
그 순간이 눈앞까지 다가왔기에.
지금 이 순간에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는 원더스의 팬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9회 초, 마운드 위로 오르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기에.
“이태준 가자!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가보자!”
이태준.
4점 차의 상황에 그 투수가 이 게임을 패배하게 할 리 없을 것이라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믿음.
원더스 팬들에겐 그 믿음이 있었다.
이윽고 마운드 위에 도착한 태준은 그들의 확고한 믿음을 지키고자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결국, 올라섰네요. 여기 이 마운드 위에.”
정규 시즌의 마지막.
그 순간, 태준의 뇌리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그간의 기억들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그런 태준에게 로건 라이트는 단 한마디의 말로 화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고생하게 될 거야. 그게 프로 야구 선수니까.]이윽고 한마디 말을 덧붙였고.
[그렇지. 그게 프로지. 야구가 쉽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그거 프로 아니야. 자격 없는 아마추어지.]거기에 테드 윌리엄스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프로.
프로란 무엇인가.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그 책임감을 위해 각기삭골(刻肌削骨)의 노력을 덧붙일 줄 알아야 하는 이들.
“네,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테지만. 계속 나아가야죠.”
태준은 ‘프로 선수’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선수였다.
그리고 선수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오늘 20K 잡아 올리고. 제대로 나아가겠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저 지금 자신을 발을 뻗어야 할 곳을 탐색할 뿐.
그곳은 9이닝 20K.
KBO의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발을 뻗어야 할 곳을 찾았다면, 이제 남은 일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발을 뻗는 일.
태준은 그곳으로 발을 뻗고자 했다.
와인드 업 자세를 다잡으면서.
태준의 정규 시즌 마지막 이닝이 바야흐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