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0화(10/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0화
“와, 미친!”
이거 실화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다급히 파일을 재생하자 헤드셋을 통해 기억 속에만 있었던 곡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막혔던 곳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뭐야? 곡 날아갔냐? 저장을 습관화하자, 몰라?”
“그런데 아까 그 곡이면 날아가도 딱히 뭐…… 차라리 리셋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작곡하는 게 더 나을지도?”
자기 일 아니라고 킬킬거리는 크루 형들을 뒤로한 채 의자에 다시 털썩 앉아 곡을 처음부터 재생시켰다.
‘시스템 네가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맨날 인생에 도움이라고는 좆도 안 되는 빌어먹을 시스템이라 욕해서 미안하다.’
속으로 감격 어린 감사와 사죄를 표하며 리듬에 맞춰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작곡 초기에 완성한 곡이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숙련된 지금 들으니 약간씩 손볼 곳이 느껴졌다.
폴더의 다른 곡들도 확인해 보니 수록곡 4개는 거뜬히 나왔다.
후속곡 준비와 활동 도중 철야 작업까지 각오했었기에 작업량이 훅 줄어든 지금,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에 들떠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과도한 음주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저기요, 겨우 맥주 세 캔인데? 도움 된다는 말은 취소다, 망할. 적당한 음주는 창작에 도움이 되는 거 몰라? 어?
그렇지 않아도 멤버들이랑 한바탕하고 와서 지금 초심도가 아슬아슬한 상태인데 이런 거로까지 깎지는 말자, 좀?
헤드셋을 벗고 다시 음악을 틀었다. 작업실을 가득 메우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1절이 끝나자 노래를 멈췄다.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자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던 형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이번엔 어때?”
“접신했냐? 뭔 10분도 안 돼서 이걸 그렇게 수정을 해?”
“야, 아까보다 훨씬 낫다, 훨씬.”
신의 은총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시스템의 축복? 물론 시스템이 직접 작사해 준 건 아니고 과거의 내가 한 걸 가져와 준 거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USB를 뽑아 겉옷 주머니에 넣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이제 술도 더 못 마시고 저 인간들이 작업실에 죽치고 있는 이상 작업도 못할 텐데 굳이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벌써 가게?”
“어, 형들도 잘 놀다 가.”
누가 들으면 네 작업실인지 알겠다는 용철 형의 헛웃음 섞인 타박을 들으며 작업실을 나왔다.
취한 수준은 아니지만 기분 좋을 정도로 알딸딸하게 올라온 술기운, 며칠간을 막혀서 고생하게 만들다가 드디어 해결된 벌스, 오랜만에 만난, 사이가 틀어지지 않은 친한 형들.
이것들이 합쳐진 덕에 숙소를 나갈 때의 더러운 기분은 싹 날아간 지 오래였다. 지금이라면 서예현의 시비도 관대하게 용서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 왔다.”
숙소로 들어와 인사했지만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회귀 전에 모두가 나를 쌩 깠던 마지막이 생각나는 건 왜지.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아, 대화 좀 하게 나와 봐! 당장 내일도 스케줄 있는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누가 들으면 저 자식 잘못은 하나도 없는 줄 알겠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들으란 듯 중얼거리는 서예현에게 반사적으로 튀어 나갈 뻔한 빡침을 겨우 내리눌렀다.
그래, 저 인간을 대할 때는 갓 태어난 새끼 고라니 대하듯이 하자.
존나게 조심하자고. 저 유리 심장과 유리 멘탈에 스크래치 안 나게끔.
막내라인까지 비척비척 방에서 나와 다섯 명이 좁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여전히 내가 숙소를 나가기 전처럼 무거운 분위기에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자, 우리 대화라는 걸 좀 해 볼까?”
“분위기 망쳐 놓고 숙소 뛰쳐나간 게 누군데.”
참자, 참아야 한다. 여전히 삐딱하기 그지없는 서예현의 말에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겨우 내리눌렀다.
“둘 다 그만 싸우고. 대화하자며.”
“아직 안 싸웠어.”
나와 서예현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견하준에게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그러고는 숙소에 오기 전 편의점에 들려 사 온 소주가 든 봉투를 턱 내려놓았다.
“막내야, 컵 좀 가져와라.”
이런 이야기는 역시 술을 곁들어야지. 류재희가 나와 견하준의 눈치를 번갈아 가며 살폈다.
지금 누구 눈치를 보냐고 내가 한마디 하기 전에 한숨을 쉰 견하준이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곧 매니저 형 몰래 꽁쳐 놨던 과자를 안주 삼아 술자리가 싹 세팅됐다. 미성년자인 막내라인 둘은 소주 대신 기분이나 내라고 논알콜 칵테일 음료를 쥐여 주었다.
건배도 대화도 없이 술잔만 기울이는, 세상 개노잼 술자리였다. 방금 작업실에서 가졌던 떠들썩한 술자리와 더욱 비교돼서 더 숨이 막혔다.
이 와중에 서예현은 과자는 하나도 집어 먹지 않고 깡소주만 들이켜는 독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컵에 따른 소주를 한 모금 마시기가 무섭게 시스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초심도를 깎았다.
[과도한 음주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어이, 이 음주는 그룹의 팀워크와 관계 회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거거든?
우리 융통성을 좀 가져 보자, 시스템아. 랜덤 티켓 돌릴 때까지만 해도 빠릿빠릿했잖아.
내 주장이 먹혔는지 다시 한 모금을 마셔 봐도 초심도는 깎이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 놓고 술을 쭉쭉 들이켰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발갛게 달아오른 견하준과 서예현의 얼굴을 쓰윽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혹시 오늘 내부 회의에서 나 때문에 기분 상한 사람?”
서예현만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모두가 손을 들었다.
흠, 그렇다면 분란 어쩌고로 초심도 깎는 건 내게 기분 상한 사람 수가 아니라 그 행위만으로 깎이는 건가.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그거 아니었으면 이미 골백번도 회귀했겠어.
눈살을 팍 찌푸린 서예현이 빈정거리듯 물었다.
“우리가 뭐 때문에 네게 기분 상한 건지는 알고?”
“날 뭐로 보냐? 당연히 알지.”
바닥에 앉은 채로 소파에 등을 기대며 여유롭게 웃었다. 이미 나는 답지를 보고 왔다는 말씀.
“내가 너희들 의견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후속곡 활동 밀어붙인 거에 기분 상한 거 아니야?”
내 말이 끝나자 그렇지 않아도 조용했던 숙소에 더욱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야, 오답인가……? 그래, 우리 멤버들이 설마 이런 거로 기분 상할 만큼 속이 좁은 놈들이겠어?
“알고 있었어……?”
매우 의외라는 티가 팍팍 묻어 나오는 견하준의 중얼거림에 컵을 기울이다가 사레들려 기침을 내뱉었다.
정답을 맞추긴 했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다.
이 유리 멘탈 놈들을 이끌고 어떻게 1군까지 가냐.
마른세수하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알고 있었는데도 괜히 숙소 분위기 망치고 뛰쳐나간 눈치 있는 인성 나가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는 눈치 없지만 참된 리더가 될 것인가.
[기왕이면 후자를 추천드립니다.]전자로 기울고 있는 내 마음을 보다 못했는지 시스템이 끼어들었다. 마치 미연시에서 배드엔딩 루트만 골라서 찍는 플레이어를 구제해 주는 치트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 말 내뱉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바람 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독선적이었더라고. 너희들 의견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물론 물어봤어도 무조건 로 활동하는 게 됐을 테지만, 설마 <내 우주로 와> 같은 망곡으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 하는 등신이 있었겠어?
손을 번쩍 든 김도빈이 입을 열었다.
“저는 <내 우주로 와>로 계속 활동하고 싶었는데요.”
미래가 없는 곡으로 활동하고 싶어 하는 등신이 진짜 있었다니.
너 인마, 네 파트 ‘별은 반짝 눈동자도 반짝.’ 이거잖아. 이거를 계속 부르고 싶다고? 진심이냐?
벙 쪄서 김도빈을 바라보고 있자 탁! 컵을 소리 나게 바닥에 내려놓은 김도빈이 한숨 쉬며 말했다.
“솔직히 일주일 만에 안무 새로 짜고 무대 연습하는 건 무리 같아요.”
“뭐가 무린데?”
“안무 제가 다 짜야 하잖아여! 데뷔곡도 내가 다 뜯어고쳤는데! 유명 안무가 고용해 달라!”
저 철없고 생각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겨우 안무 짜는 게 귀찮아서 가라앉는 배에 남는다고 해? 그리고 대체 언제 마신 거야?
숫제 바닥을 뒹굴며 떼를 쓰는 녀석의 얼굴이 불콰했다.
슬금슬금 소주가 담긴 컵으로 향하는 류재희의 손을 턱 잡아 제지하고 그 컵을 단번에 원샷했다. 너는 저 지랄 나지 말고 성인 되고 나서 마셔, 인마.
“몸 한 번 편하자고 계속 그 망할 곡 밀고 나가면 유명 안무가 고용은 개뿔, 계속 네가 안무 짜야 해.”
미래 스포가 담긴 충고에도 여전히 사지를 버둥거리며 시위하고 있는 녀석을 보며 진지하게 목소리 내리깔고 말했다.
“그러니까 같이 밤새워서 도와줄 테니 이번 한 번만 고생하자.”
어차피 곡 담긴 USB 얻어서 시간은 충분히 남아도니까. 내 말에 버둥거리던 김도빈의 몸이 뚝 멈췄다.
“……방금 형이 처음으로 리더 같아 보였어요.”
“뭐, 이 자식아?”
평소엔 리더같이 안 보였다는 소리 아니야. 울컥한 윽박에 김도빈이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대답은?”
“죄송여, 그냥 투정 한 번 부려 봤어요. 저도 내우주보다는 원찬스가 좋아요.”
투정치곤 존나 진심이 담겨 있던데.
미간을 문지르고는 여전히 호시탐탐 술을 노리고 있는 막내에게 물었다.
“류재희, 의견 없냐?”
“저야 <내 우주로 와>만 아니면 어느 곡이든 ok죠.”
“준, 너는? 로 활동하는 거 괜찮아?”
“아무래도…… 우리 타이틀곡보다는 낫지.”
내 시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는 두 사람을 지나 서예현에게로 가 닿았다. 컵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서예현이 냉소했다.
“어쩌냐, 난 안 괜찮은데.”
시발, 팀에 등신이 둘. 앞길이 험난하다, 진짜.
내 참담한 심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비소를 거둔 서예현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 너도 알잖아. 내가 <내 우주로 와> 안무도 겨우 외운 거.”
그랬던가……? 데뷔 전은 내 기준으로 7년 전이라 기억이 영 안 나서 말이지.
하지만 저 인간의 참담했던 실력을 복기해 보자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가 연습 도와줄게. 그럼 됐지?”
“너한테 꼭두각시 인형도 나보다 관절 잘 움직일 거라는 급의 막말을 다시 들으면서 연습하라고?”
절대로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에 서예현을 잡고 다급히 흔들었다.
“아, 알았다고! 막말 절대 안 한다고! 아주 칭찬만 쏟아부어 주면서 연습 도와줄게!”
“진짜지?”
“어, 진짜! 내가 막말하면 형한테 10만 원씩 준다.”
나를 못 믿는지 녹음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나서야 서예현은 고개를 끄덕여 로 후속곡 활동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건 참 힘들구나.
겨우 모두의 동의를 받아 낸 나는 술기운을 빌어 꼭 해야 하는 말을 꺼냈다.
“다들 알다시피 내가 좀 무심하잖아?”
“그게 무심한 거냐? 눈치 더럽게 안 보고 사는 거지.”
꼬인 발음으로 끼어드는 서예현을 보며 애써 웃었다.
참자. 참을 인(忍) 세 개면 초심도 1점 감점을 면한다.
좋든 싫든 한배를 탄 멤버들을 쭉 돌아보고는 씩 웃었다.
“그러니까, 혹시 나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 있으면 바로바로 이유 말해 주라고. 최대한 고치도록 노력해 볼 테니까.”
그래야지 초심도가 더 안 깎이지. 나는 겨우 차트인 한 상태에서 회귀하고 싶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