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0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02화(10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02화
대표님의 취향에 맞춰서 만든 무지개색 굴림 폰트 보노보노 PPT를 넘기며 발표를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만든 건 아니었다.
이전에 의도치 않게 대표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던 김도빈에게 또 한 번 외주를 맡겼고, 김도빈은 그 맛을 그대로 재연해 주었다.
“노래 주제에 맞게, 그리고 퍼포먼스적으로도 컨셉을 살릴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바로 탐정과 괴도입니다.”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현란한 애니메이션 효과와 함께 사진이 툭툭 나왔다.
“19세기에 나온 소설인 아르센 뤼팽 대 셜록 홈즈, 그리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 나온 괴도 키드와 코난의 추리 추격전만 보더라도 탐정과 괴도의 대결은 꽤 메이저 장르라고 할 수 있죠.”
김도빈이 굳이 우겨서 넣은 명탐정 코난과 괴도 키드를 입 밖으로 발음하니 왜인지 모를 현타가 밀려왔다. 홈즈 대 뤼팽만 넣었어도 충분했다니까.
대충 어떤 퍼포먼스를 생각하고 있는지, 컨셉 포토와 뮤비 콘셉트는 어떻게 갈 것인지 대략적인 큰 틀의 발표가 쭉 이어졌다.
이 정도로 떠먹여 줬으면 나머지는 소속사에서 알아서 채우겠지.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까 본 아이템 선택권에서 나온 ‘논쟁에서 이기는 100가지 방법’은 그냥 말해도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로 필터링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다중우주는 머릿속에서 싹 지운 얼굴로 무아지경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니 아주 뿌듯했다. 사랑해요, 시스템.
“이상입니다.”
발표를 마치자 대표님이 만족한다는 얼굴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놈의 다중우주를 더는 고집할 것 같지 않아서 이제 안심이었다.
“음, 그런데 다음부터는 보노보노는 빼는 게 낫겠다. 너무 시퍼레서 PPT 내용에 집중이 안 된다.”
아니, 언제는 감각적이라서 마음에 든다고 하셔 놓고선. 왜 그놈의 우주 취향만 안 바뀌시는 건지 모르겠네.
PPT가 든 USB를 기획팀장한테 넘기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에서 나왔다. 김도빈이 입을 댓 발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와, 대표님 너무하시다. 밤새워서 만들었는데.”
그거를? 아마 사진이랑 본문에 넣을 애니메이션 효과 고르는 데에 시간을 다 허비하지 않았을까.
“전에 만든 거에서 내용만 바꾸지 그랬냐.”
“아, 아……! 그런 방법이……!”
쟤는 왜 그 풍부한 상상력을 이런 곳에다가는 안 쓰는 걸까.
* * *
5월 26일.
‘오늘은 내 생일!’
잔뜩 쏟아지는 생일 축하 메시지를 쓱쓱 내리며 김도빈은 한껏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지막 십 대를 축하한다는 글과 함께 짹 실트에도 그의 생일 해시태그가 올라갔다.
#언제나_빛날_도빈이의_열아홉
#Shining_Dobin_Day
새벽 일찍이 류재희와 함께 지하철 생일 전광판도 다녀왔다.
<내 우주로 와>를 무대에서 부를 때까지만 해도 망돌길을 걸을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지하철에 생일 전광판까지 걸리는 아이돌이 되었다니, 스스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감상을 류재희에게 말했더니 류재희는 공감 대신 코웃음을 쳤다.
“형은 그때 예현이 형이랑 같이 원찬스 반대파였잖아. 형 의견처럼 계속 내우주로 활동했으면 지금쯤 지광은커녕 망돌길 걷고 있었겠지. 이든이 형한테 큰절이나 해.”
“에이, 그건 그냥 투정이었고.”
“투정도 분위기 봐서 부릴 때 부려야지. 나는 그때 형이 미친 줄 알았어. 내가 봤을 때 당시에 이든이 형이 예현이 형만큼 형을 갈구지 않았던 이유는 형이 안무에 기여라도 해서야. 형은 형의 춤 재능에 정말 감사해야 해.”
“그 형은 진짜…… 진짜 아직도 어렵긴 해. 덕분에 이든이 형이랑 대화만 하면 나도 모르게 헛소리 작렬하는 듯. 재희 넌 안 그래?”
“딱히. 이든이 형은 선호 유형이 확실해서 그 기준만 맞추면 선 안에 들어가긴 쉽거든. 나는 오히려 하준이 형이 더 어려운걸. 그 형은 뭐랄까…… 기준이 딱히 없는 느낌이랄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음. 그런 캐릭터 하나씩 있지.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한데 속은 싸한 캐릭터.”
“기준이 없다 했지 싸하다고는 안 했어.”
투덕거리며 숙소로 돌아오자 아침 식사로 닭가슴살 미역국이 차려져 있었다.
“우와, 이거 혹시 서프라이즈인가요?”
“형, 서프라이즈의 의미를 몰라……? 어제부터 하준이 형이 미역 불려 놨잖아.”
김도빈의 호들갑에 류재희가 한숨을 내쉬며 가벼운 타박을 던졌다. 견하준이 손부터 씻고 오라고 둘을 화장실로 보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후드 집업을 뒤집어써 가린 채 어슬렁어슬렁 방에서 걸어 나온 윤이든이 아침부터 목청도 좋다고 얼굴 찌푸리며 한 소리 하고는 식탁에 앉았다.
레브 멤버 다섯이 모두 모이고, 윤이든이 수저를 들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이로 따지자면 최연장자는 서예현이었지만, 왜 윤이든이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리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립되었는지 김도빈은 궁금했다. 나이보다는 리더라는 자리를 더 높게 쳐 주는 건가?
다섯 명 다 식사를 할 때는 딱히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라 식사 자리는 조용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말이라 등교를 하지 않는 김도빈이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비타민 및 영양제 섭취를 완료하고는 옆자리에 털썩 앉아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가져간 윤이든이 휙휙 채널을 내렸다.
막내 라인인 김도빈에게 티비 채널 선택권 따윈 없었다.
채널은 한참을 쭉쭉 내려가다가 ‘Drop The Beat’ 시즌2를 방영하는 채널에서 멈췄다.
한창 2차 예선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심사위원 앞에서 오디션을 치르는 래퍼가 아는 지인인 건지 키득거리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윤이든의 모습을 보며 김도빈은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형은 역시 웃는 얼굴이 덜 무서운 것 같아요.”
그 말에 윤이든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웃는 얼굴 버프로 조금 덜 무서웠던 형이 다시 무서워졌다.
잽싸게 눈을 깔자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에 용기를 얻어, 티비 화면에 다시 시선을 고정한 윤이든의 옆모습을 힐긋거렸다. 눈 밑에 찍힌 눈물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면을 빤히 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그리움, 부러움 등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형이 언더 출신이라는 걸 새삼 다시 실감했다.
“형도 내년에 한 번 나가 봐요. 형 국힙원탑이잖아요.”
“안 그래도 고민 중이다. 시즌3을 나갈까, 시즌4를 나갈까.”
제 말을 받아주며 윤이든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국힙원탑은 무슨. 나보다 잘하는 래퍼들, 많진 않지만 있긴 있어.”
많다는 소리는 안 하시는군. 그래도 있긴 있다고 인정한 건 좀 의외였다.
당연히 자기가 국힙원탑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힙합에 진지한 모양이었다.
“오, 꽤 치는데? 쟤는 합격 받겠다.”
“헐, 진짜 합격이다. 형, 그럼 저 사람은 탈락? 합격?”
“랩하는 걸 들어 봐야 알지, 인마. 좀 있어 봐. 음…… 탈락.”
“와씨, 진짜 탈락! 형 심사위원 해도 될 듯요.”
류재희는 어느새 윤이든의 옆에 붙어 탈락인지 합격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가늠하는 게 대략 95%는 맞아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프로그램 방영이 끝나자 슬슬 연습실로 갈 시간이 되었다.
형들이 준비했을 서프라이즈 파티를 잔뜩 기대하며 그는 멤버들과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해 봤자 이든이 형이랑 예현이 형이 싸우는 깜짝카메라나 하겠지.’
형들이 아무리 싸우는 척해 봤자 이제는 무섭지도 않다고요. 살벌한 분위기에 덜덜 떨던 예전의 김도빈이 아니란 말씀!
‘그런데 이든이 형이랑 하준이 형이 싸우면 연기인 거 알아도 좀 무서울지도,’
그건 상상이 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더 공포스러웠다.
외주로 받아 온 안무는 탐정 넷과 괴도 하나의 추격전을 형상화한 콘셉트였다.
김도빈은 메인댄서라는 포지션 덕에 센터인 괴도 역할을 맡았다. 독무도 있어 제일 까다로운 파트였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확실히 안무 디렉터를 두니 김도빈의 부담은 줄어들었고, 안무 퀄리티 또한 한층 높아졌다.
아무리 그가 춤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는 아직 졸업도 못 한 열아홉 살이었다.
회귀 전의 도빈이 계속 안무 디렉팅을 도맡다가 웬만한 안무가 뺨칠 수준의 실력이 된 건 오직 윤이든만이 기억할 사실이었다.
김도빈과 열심히 해 왔던 연습 덕분인지, 안무 디렉터의 집중 트레이닝 덕분인지 서예현은 이제 연습 초반에 항상 겪어 왔던 몸부림 단계를 겪지 않고 제법 안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동작을 행하고 있었다.
“와, 진짜…… 이건 인간 승리다, 인간 승리.”
연습실 거울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서예현의 안무 연습을 지켜보던 윤이든이 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흠, 슬슬 깜짝카메라를 위해서 싸움 시동을 걸고 계시는군.’
생수를 마시며 김도빈이 훗,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인간 승리이긴 해, 정말로…….”
“이야, 다음 활동에 군무를 하겠단 말이 빈말은 아니었네?”
“나는 공수표는 함부로 안 던져.”
의외로 언성을 높이지 않은 멀쩡한 대화가 오갔다. 둘의 표정 역시 평온-했다.
‘안 싸우네……?’
아무래도 깜짝 카메라로 서프라이즈 파티를 유도한다는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틀린 모양이었다.
“저희는 이만 보컬 레슨 갑니다.”
서예현의 팔짱을 불쑥 낀 류재희가 손을 흔들고는 연습실을 나섰다.
굳이 제 생일날에 저 빼고 둘이 보컬 레슨을 잡았다? 이건 누가 봐도 서프라이즈 파티를 위한 밑밥이었다.
‘하준이 형은 의심 안 받으려고 남았나 보다.’
한 10분 후면 케이크를 들고 등장할 터였다.
하지만 김도빈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3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작업실 간다. 둘 다 적당히 연습하고 들어가.”
그다음으로는 윤이든이 연습실을 나섰다.
‘이든이 형이랑 셋이 오겠지.’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윤이든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슨 간다던 서예현과 류재희 역시 마찬가지.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견하준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이든이가 지금 작업실로 와 달라네. 혼자 있기 그러면 도빈이 너도 같이 갈래?”
“아니요, 저는 연습실에 있을게여.”
혼자 남기고 넷이 서프라이즈로 연습실에 케이크 들고 들어오는 전개인가.
그리고 그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습실에 혼자 남은 지 30분째. 드디어 윤이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야, 도빈아. 숙소 좀 가서, 형 책상에 USB 있거든? 그것 좀 챙겨서 형 작업실로 가져다주라.
“네에에.”
숙소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군. 풍선 붙이고 잔뜩 꾸며 놓느라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
그리고 그가 한껏 기대감 어린 발걸음으로 숙소에 도착하자, 서프라이즈 파티는 개뿔. 텅 빈 숙소가 그를 맞이했다.
몰려오는 서러움에 김도빈은 현관에서 발을 탕, 굴렸다.
이쯤 되면 내 생일인 거 다들 잊은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