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0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05화(10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05화
신청곡으로 올라온 곡 중 가볍게 한 다섯 곡 정도를 골라 가사를 쓱쓱 훑었다.
“가사에 뭔 놈의 욕이 없는 게 없냐.”
“비속어를 묵음 처리해요.”
“중간에 끊기면 부를 맛이 안 나.”
아니, 잠깐. 그러면 나는 이제 욕 없는 바른 언어 힙합을 해야 하는 거야? 이런 미친.
이제는 흥얼거리지도 못하게 된 노래들이 대체 몇 곡인가. 무의식적으로 가사 흥얼거리다가 초심도 100이 모두 깎여 회귀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언젠가의 USB에 들어 있던 내 솔로곡들도 안녕이구나. 아니, 비트는 괜찮으니까 가사만 싹 뜯어고치면 쓸 수 있을지도.
‘아오, 라임이랑 펀치 라인 다 맞춰서 작사해 놓은 건데.’
역시 아깝긴 했다.
다섯 곡 중 그나마 F-word가 없는 두 곡을 택했다.
그 두 곡이 마감을 알리는 내 댓글 위에 나란히 올라와 있는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곡 하나는 2절에 motherfucker가 한 번 들어가긴 했지만, 어차피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1절씩만 짧게 부르는 메들리 형식으로 진행할 터라 상관없었다.
실력 하나는 좋아 제약이 없던 류재희가 제일 먼저 신청곡 선정을 마쳤고, 그다음으로 곡을 고른 내게 물었다.
“MR을 미리 편집해 놔야 할까요?”
“MR 그대로 쓰려면 그렇게 해. 그런데 아마 예현이 형이나 도빈이처럼 키를 좀 조절해야 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즉석에서 반주를 따는 게 낫지.”
“그러면 팬라이브를 연습실 말고 형 작업실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괜찮겠네.”
고개를 까딱이며 내 신청곡 MR을 찾다가 류재희를 휙 돌아보았다.
“너는 반주 필요 없어?”
“저는 한 곡은 록 할 거라서 MR 필요해요. 형이 베이스+일렉+드럼+키보드를 한 번에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견하준이야 기교 있는 발라드 계열을 선택할 게 분명했다. 견하준 노래 취향이야 내가 꿰뚫고 있지.
진지하게 노래를 선별해 내고 있는 견하준을 구경하고 있자, 그가 내게 노래 목록을 보여 주며 물었다.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오, 내 신청곡 불러 주게?”
장난식으로 키득거리며 묻자 견하준이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너도 내 팬이잖아. 내 음색 팬.”
“부정할 수가 없군.”
혀를 차며 리스트를 쭉 훑었다. 몇 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는 곡이었다. 낯선 곡들만 이어폰을 끼고 한 번 들어 보았다.
잠시간 고민하다가 두 곡을 골랐다.
“이거, 랑 <이대로 그대로 안녕>.”
는 견하준의 음색을 살리기에 제일 적합한 팝송.
<이대로 그대로 안녕>은 고음부의 가성이 인상적인 인디밴드의 발라드곡이었다.
내 선택에 견하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MR 쓸 거야? 아님 반주 따 줘?”
“반주 부탁해.”
견하준도 순탄하게 신청곡을 결정한 것과 달리 김도빈과 서예현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다.
“부를 만한 게 없다!”
“노래방 갔다고 생각하든가. 너 노래방에서 보통 뭐 부르는데?”
“알면 다쳐여.”
나도 딱히 알고 싶진 않았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김도빈이 당당히 말했다.
“차라리 전 노래 안 부르고 신청곡에 맞춰서 춤출래요.”
“그래라.”
“그래도 한 곡은 불러, 형. 댓글 단 팬분들은 형 목소리로 그 노래 커버 듣고 싶어서 신청하셨을 텐데.”
류재희의 타박에 김도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빈처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선택지도 없는 서예현은 거의 휴대폰 화면 안으로 들어갈 기세로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신청곡 중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일단 한 곡은 이거 어때? It’s not a love song.”
처음 들어 본다는 듯한 표정에 너튜브로 노래를 재생시켜 들려주었다.
고음이 없고 음정만 잘 맞추면 무난하게 들릴 만한 팝송이었다.
“여자 노래 아니야?”
“키를 낮추면 되지. 막말로 형 음색은 특색이 없어. 그러니까 차라리 그 특색 없는 음색을 무난하게 살릴 만한 노래로 가는 편이 나아.”
나를 빤히 보는 서예현과 시선을 마주했다.
설마 이 정도 말로 기분 상해서 저러는 거면 인간이 아니라 개복치지.
나는 서예현이 제발 개복치까지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왜?”
내 물음에 잠시간 주춤거리던 서예현이 물었다.
“내가 만약 네 취향 음색이었으면 녹음할 때 좀 수월했을까?”
“그럼 실력으로 욕을 먹었겠지. 아니, 설마 준이가 녹음 제일 단시간에 끝내는 게 그저 음색 때문이라고 생각한 거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서예현이 슬쩍 내 눈을 피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나머지 한 곡 선정은 서예현 본인에게 맡겼다.
“류재, 선곡 뭐야?”
“라방 때까지 비밀.”
우리 사이에 치사하게 그러기냐는 김도빈의 징징거림에도 류재희는 굳건히 비밀을 지켰다.
김도빈도 아니고 류재희인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 * *
윤이든이 팬카페에 깜짝 라이브 음악 방송 예고 글을 올린 지 사흘 후.
[On Air] 레브가 들려주는 Dream playlistOA앱 라이브 알림이 팬들의 휴대폰 상단에 떴다.
“Dream of me!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우리 일몽이들!”
윤이든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다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제의 해맑고 힘찬 인사를 시작으로 나머지 멤버들도 하나둘 인사말을 건넸다.
“오늘의 콘텐츠는 데이드림의 추천곡 커버 라이브입니다!”
“네, 생각보다 더 많이 신청해 주셔서 저희도 조금 놀랐습니다.”
유제의 오프닝 멘트를 신디사이저 앞에 앉아 있던 윤이든이 가볍게 받았다.
“다들 찰떡같은 곡들로 신청해 주셔서 고르기 어려웠어요. 다 불러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네여.”
기타를 들고 있던 김도빈이 익살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넉살을 부렸다.
“반주가 따로 필요한 곡은 이든이 형이 맡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신디사이저로 현란한 연주음을 짧게 친 윤이든이 한 손으로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의자에 앉아 기타에 상체를 올리고 있는 김도빈을 본 한 팬이 물었다.
[도빈이도 기타 치는 거야?]“저는 기타 안 치고요, 이든이 형 기타 받침대 및 임시 보관함으로 활약 중입니다.”
[그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런 거에 활약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되는 것이며……]첫 순서는 서예현이었다. 실력 낮은 순으로 가느냐는 어그로도 나왔지만, 데이드림의 일사불란한 몰매를 맞아 즉시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원곡보다 키를 훨씬 낮춘, 부드럽고도 잔잔한 신디사이저 반주가 흘러나오자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서예현이 발끝을 까딱이며 박자를 맞추었다.
[예현이 음색이 이렇게 깔끔했나?] [이든아 옆에서 듣고 있으면 우리 애 파트 좀 늘려 주라] [지금 노래 뭐예용? 완전 좋아서 원곡 버전으로도 듣고 싶은데] [It’s not a love song이에요] [?그냥 사랑 노래 아니라고 하면 될 걸 왜 영어로 말하세요? 그리고 전 노래 제목 물어봤지 이 노래 사랑 노래냐고 물어본 적은 없는데요] [아니 노래 제목이 It’s not a love song……] [아…… 아앗……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 층씩 높아지는 음정과 기교 없는 깔끔한 음색은 그의 노래 실력을 제법 평타 이상 정도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선곡의 중요성이었다.
1절을 마치자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단조롭고 느릿했던 이전 곡과는 달리 통통 튀는 경쾌한 멜로디가 울렸다.
다음 곡은 동요였는데,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물론 성인이 부르기에 유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익광고에도 쓰였고, 다른 가수들이 커버한 이력도 꽤 있는 곡이었으니까.
[와 하늘구름 완전 오랜만] [저거 중학교 수행평가였는데ㅋㅋㅋ 오랜만에 들어도 띵곡이다] [이게 동요라니 노래 완전 좋은데]그렇다. 서예현은 추억 보정을 노렸다. 고음 부분에서 살짝 음정이 흔들렸음에도 동년배 팬들은 학창 시절 수행평가를 떠올리며 그저 웃으며 넘어갔다.
[음정 흔들림]물론 추억이 없는 나이 어린 팬들은 그의 실수를 지적했다.
어쨌든, 서예현이 무사히 노래를 마치자 다음으로는 김도빈이 차례를 물려받았다.
의자에 앉지 않고 벌떡 일어나는 김도빈의 모습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물들었다.
준비한 MR이 스피커에서 울리고 김도빈이 즉석 프리스타일 댄스를 시작하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채팅창이 ㅋ으로 도배되었다.
[도빈아 분명 다 불러드리고 싶다 하지 않았니] [그래도 도빈이가 제일 많은 곡을 수용하긴 한 듯]물론 좋은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커버곡이라 했으면 노래를 해야지 왜 춤을 춰?] [백타 실력 자신 없어서ㅋㅋㅋ]세 곡을 짧게 짧게 편곡해서 내리 춘 김도빈은 숨을 고르며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가 고른 곡은 노래방 인기차트 TOP100 붙박이인 한국 발라드였다.
분명 고음을 열창하는데도 어쩐지 커버보다는 노래방에 온 것 같은 모습에 다시 한번 채팅창이 ㅋ으로 도배되었다.
[왜 춤만 추냐던 놈들이랑 실력무새들 다 어디갔냐?ㅋㅋㅋ]하지만 덕분에 부정적이었던 반응들은 싹 들어갔다.
다음으로 견하준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방금까지 정석적인 발라드였던 윤이든의 연주가 끈적하고도 어두운 멜로디로 변했다.
견하준이 내뱉은 첫 소절에 모두 채팅창에서 감탄을 터트리기에 바빴다. 음색에 정말로 잘 들어맞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씨 윤이든 표정 봐] [비견하준 차별을 멈춰 주세요] [나보다 이든이가 더 이 커버를 만족스러워 하는 듯] [예현이랑 도빈이가 하준이 앞순서여서 다행이다……] [이 노래 원곡 아는데 하준이 커버 버전이 극락이다 진심]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음과 저음, 흔들림 없는 음정은 견하준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해 보였다.
1절을 마치고 신디사이저에서 손가락을 뗀 윤이든이 기타를 건네받았다. 코드를 잡은 윤이든의 기타 반주 음이 원곡 그대로 울렸다.
[아니 이든이 진짜 못하는 게 뭐임?] [본업존잘 얼굴존잘 성격존잘] [사실 성격은 존잘이 아닐 수도] [윤이든 밴드부였다더니] [드럼이었다던데 기타도 잘 치네 ㄷㄷ]가성 고음이 인상적인 원곡은 견하준의 음색 버프까지 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와 내 신청곡! 이거 노래 원곡도 진짜 좋아요! 꼭 들어 보세요!] [윤리다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런데 하준이 목소리로 들으니까 노래 진짜 너무 좋음]견하준의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 레브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타도 바닥에 내려놓고 기립박수를 치는 윤이든이 제일 열정적이었다.
견하준의 신청곡(사실상 윤이든이 픽한)이 끝나자, 계속해서 반주만 도맡아 하던 윤이든의 차례가 다가왔다.
[아 제발 가사 멀쩡한 거 가져왔길 빌고 있음] [이든아 제발 한국 힙합만은…… ] [fxxk 몇 번 내뱉는지 한 번 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