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0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07화(10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07화
아체대 녹화가 이루어지는 경기장 대기실에 도착하니 흰색 유니폼과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보라색이길 바랐는데…….”
김도빈이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며 트레이닝복을 집어 들었다.
흰색 트레이닝복 저지와 바지 세트는 그래도 무난한 디자인이었다.
“분홍색보단 낫잖아.”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입고 온 반팔티 위에 저지를 걸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에어컨이 없었으면 버티지 못할 복장이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나가니 벌써 화기애애한 친목의 장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레브도 안면 있는 아이돌 그룹은 있었다.
예를 들면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KICKS라든가, 김도빈이 원하던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알테어라든가.
알테어는 단 세 명만 출연했는데, 그중 참으로 반가운 얼굴이 두 명이나 보였다.
물론 반어법이었다.
KICKS 놈들은 우리랑 마주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팬들의 시선과 촬영 금지여도 몰래 숨긴 카메라가 사방에 있는 곳에서 굳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KICKS 낙하산이 제 멤버들에게 보이지 않게 슬쩍 손을 들어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고개를 까딱해 화답해 주고는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친분이 있는 듯한 타 아이돌 멤버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차연호와 눈이 마주쳤다.
비죽 웃으며 여상히 손을 흔들어 주자마자 차연호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내 인사에 화답했다.
녹음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김도빈이 내 귀에 속닥였다.
“형, 설마 녹음본으로 약점 잡아서 차연호 선배를 흔들고 있는 건 아니죠?”
“그런 쓸데없고 비생산적인 일을 왜 하냐? 거 상상력 한번 풍부하다, 진짜.”
설렁설렁 대꾸하며 레브 팬석의 위치를 확인했다. 팬 매니저가 팬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이미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류재희의 옆에 슬쩍 서서 손을 흔들었다.
개막식이 거행되고, 선수단 대표들이 단상 위에 올라 선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트레이닝복 상의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가볍게 하품했다. 저 개막식은 언제 끝나냐. 지루해 죽겠네.
[카메라 앞에서의 성의 없는 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형, 형. 카메라.”
초심통이 몰려옴과 동시에 류재희가 뒤에서 나를 쿡쿡 찔러 몸을 흠칫했다.
회귀 전의 나는 처음 참가한 한 번 빼고는 항상 이 스탠스였음에도. 굳이 개막식까지 각 잡고 서 있을 이유가 있냐고.
자세를 반듯하게 고치고 애써 생태눈깔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스케줄 도중에만 그놈의 동태눈깔 깎이는 거로 업데이트해 줘서 내가 참는다.
개막식이 끝나고 종목전이 하나둘씩 시작되었다. 내가 참가하는 농구는 끝에서 두 번째 순서였다.
“야, 그런데 씨름 정도면 선수끼리 체급은 좀 맞춰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제 말이요. 이러면 완전 우리가 악당처럼 보이잖아요.”
씨름판 위에서 상대와 샅바를 마주 잡고 선 견하준을 보며 혀를 찼다.
상대방의 체격은 류재희보다도 작았다. 덩치 차이만 봐도 이미 끝난 승부였다.
상대방은 힘보다 기술 어쩌고 하며 기합을 잔뜩 넣고 나오더니, 설마 첫판부터 182cm와 붙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뭐, 우리야 결승 프리패스권 따서 고맙긴 한데.”
“뭔가 자존심 상하는 승리? 찝찝한 승리? 아무튼 그럼요.”
덕분에 견하준은 손쉽게 상대를 넘기고 1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다음 상대는.
“야, 준아! 이겨라! 꼭 이겨!”
“하준이 형! 꼭 이겨야 해요!”
KICKS 리더 놈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쩌렁쩌렁 소리 질렀다. 저놈이 결승 진출하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김도빈은 아예 의자 위에 경건히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어 보니 자기가 알고 있는 온 종교 신들에게 분산투자를 하더라.
서예현은 우리 눈치를 보다가 의자에서 쓱 일어나 응원에 가세했다.
견하준과 KICKS 리더, 두 사람 다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지 서로를 불편해하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서로를 보는 눈빛만은 매서웠다.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견하준이면 몰라도 저 새끼는 왜 눈깔을 저렇게 뜨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어진 공방 끝의 승자는…….
“아, 당연히 이겨야지! 저기랑 대결은 절대 지면 안 되지!”
“와, 역시 하준이 형, KICKS하고만 붙으면 나오는 패왕색 패기!”
“야, 하준이한테 까불면 안 되겠다. 무슨 기술 하나 없이 힘으로만 넘겨?”
“그런 하준이 형을 팔씨름으로 이긴 이든이 형은 대체…….”
당연히 견하준이었다.
결승까지 진출해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견하준의 등을 마구 두드리며 신나게 웃었다.
패배해서 구겨진 KICKS 놈들의 얼굴을 보니 더욱 고소했다.
제 목에 걸려 있던 금메달을 계속 힐긋거리는 김도빈의 모습에 견하준이 픽 웃으며 김도빈의 목에 메달을 걸어 주었다.
그 금메달을 목에 당당히 걸고 김도빈은 류재희, 서예현과 함께 양궁 시합에 출전하러 떠났다.
“아, 애니에서 활 잘 쏘는 애가 누구 있었더라. 거기 몰입하면 좀 잘 쏠 수 있을 것 같기도.”
“이누야샤 가영이.”
막내 라인들의 대화가 점점 흐릿해졌다. 거기에 끼어 있어야 할 서예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내 주었다.
양궁 세트장은 우리 자리에서 좀 멀었기에 씨름처럼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우리도 구경이나 하러 갈까?”
내 물음에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던 견하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응원 겸 구경 명목으로 자리 잡고 앉은 이들 쪽으로 다가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참가자석에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굳어 앉아 있는 멤버들을 보고 픽,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봐도 1년 차 신인이었다. 심지어 김도빈은 금메달까지 걸고 앉아 있는 터라 눈에 더욱 잘 띄었다.
[양궁 A조, 알테어!]연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차연호가 제 멤버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앞선 팀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큰 함성이 쏟아졌다.
단정한 자세로 활을 잡고 시위를 당기는 차연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와, 밥 먹고 활만 쐈나.”
10점과 9점, 8점으로 도배된 점수에 혀를 찼다. 아무래도 양궁에서 금메달을 가져가긴 그른 것 같았다. 회귀 전에도 차연호는 양궁 신기록을 세운 바 있었다.
나머지 두 멤버도 제법 괜찮은 점수를 얻으며 알테어는 순탄히 예선전을 통과했다.
[양궁 B조, 레브!]“다른 건 몰라도 케이제이…… 선배…… 님 점수만 넘어라, 제에에발.”
혹여나 누가 들을까 봐 이름 뒤에 호칭을 붙이면서도 존나 붙이기 싫어 이가 다 갈렸다.
오우, 선배라고 부르기도 싫은 새끼.
간절히 빌고 있자 견하준이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차연호 선배님 점수가 아니라?”
“거기는 좀 많이 넘사벽이잖아.”
나는 우리 멤버들의 수준을 잘 알고 있으므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아체대 한두 번 와 보는 것도 아니고.
진지한 얼굴로 활을 잡은 서예현이 곧은 자세로 활시위를 당겼다. 일단 비주얼은 알테어를 뛰어넘은 1승이었다.
“와, 잘생겼다.”
내로라하는 놈들 모아 놓은 아이돌 무리 내에서도 서예현의 얼굴을 보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암, 잘생겼긴 잘생겼지. 열심히 관리하며 실력을 키워 놔서 이제는 가져가라는 소리도 못 하겠다.
잡아당긴 스트링을 신중하게 놓자 화살이 과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과녁 정중앙에 꽂혔다.
[엑스텐! 엑스텐이 나왔습니다!]그 엑스텐이 세 번이 되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견하준도 이 결과가 놀라운 듯 나를 제지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점수도 모두 9점. 오늘 서예현 폼 좀 미쳤는데?
물론 양궁에 재능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늘 운 좀 좋게 터진 거지.
만약 서예현이 양궁에 재능이 있었으면 회귀 전 아체대에서도 저 폼을 쭉 유지했어야지.
“이대로면 우리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
알테어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혜성 같은 신예 그룹이 되는 거다, 사랑하는 멤버들아.
그렇게 부풀어 올랐던 우승을 향한 우리의 꿈은…….
“미친 거 아니냐? 저놈 나 1점 나왔다고 그렇게 놀려 대더니 지는 0점에다가 쏴?”
0점에 화살을 박아 넣은 김도빈 덕분에 끝났다. 방금과의 동음이의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서예현 때는 감탄의 의미였다면 김도빈 때는 차마 쌍욕은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최대한 쌍욕을 순화한 의미였다.
그 후로 한 10점, 9점 쐈으면 몰라. 3점, 2점 이렇게 쏘고 있는데 속이 안 터지고 배기겠냐고.
차라리 내가 나갔으면 1점이라도 얻었겠다. 다시는 김도빈을 양궁 경기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결심만 섰다.
그럼 쟤는 뭐 하지? 달리기 느려서 계주도 못 해, 활을 못 쏴서 양궁도 못 해. 그냥 응원이나 시켜야 해? 레브 마스코트야?
류재희는 잘했다고는 못하겠고 그럭저럭했다. 무난하게 6~8점 내의 점수를 따 왔다.
김도빈의 거한 트롤링 덕분에 서예현이 엑스텐을 세 번이나 쏘며 그렇게 활약했음에도 레브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김도빈의 트레이닝복을 마구 잡아당기는 거로 화풀이를 하던 류재희가 진지하게 말했다.
“형, 이누야샤 가영이가 형처럼 활 쐈으면 걘 이미 요괴한테 끔살이었어.”
자꾸만 내 눈치를 보는 김도빈에게 최대한 따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KICKS도 예선 탈락해서 산 줄 알아라, 도빈아.”
양궁 시합까지 마치자 드디어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으로는 샌드위치 도시락 역조공이 나갔고, 점심 역조공 도시락은 지금부터 나갈 예정이었다.
역조공해야 한다고 회귀 전에도 류재희가 돈 걷어 가고 그랬었지.
소속사에서 역조공으로 음료수도 없이 밥버거 딸랑 하나 했다고 뒤로 넘어가려 했던 막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뒤부터는 꼬박꼬박 우리 사비까지 합쳐서 역조공 준비하더라.
덕분에 우리 레브는 회귀 전에 팬분들이 제법 역조공을 자랑할 만한 그룹이었다-고 류재희에게 전해 들었다.
[레브가 메달 싹쓸이할 일생일대의 기회]팬석 앞쪽으로 다가가자 우리를 응원하는 문구와 레브의 단체 사진이 박힌 커다란 현수막이 더욱 돋보였다.
멤버들의 이름과 레브를 연호하는 외침에 손을 흔들자 함성이 한결 더 커졌다.
손 흔들기가 최대치인 나와 달리 류재희는 김도빈과 함께 한창 애교 3종을 보여 주며 팬서비스를 하느라 바빴다.
“이번이 일생일대의 기회면 저희 설 아체대에서는 메달 싹쓸이 못 하는 거예요?”
현수막의 문구를 읽고 궁금한 점을 묻자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이든아,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자!”
“괜찮아! 그때 또 현수막 글씨 바뀌어!”
그렇군. 내가 또 너무 진지하게 해석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