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1화(11/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1화
팬사인회를 마지막으로 <내 우주로 와> 활동이 드디어 끝났다.
하지만 마냥 속 시원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경험 많다고 마음 놓고 있던 팬사인회가 복병일 줄이야.
“망했어! 망했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트리스 위를 뒹굴었다. 방으로 들어온 서예현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뭐, 팬싸에서 말실수라도 했어?”
“아니.”
“그런데 왜 누가 보면 태도 불량으로 커뮤에 박제되어서 첫 팬싸부터 동태눈깔로 아진짜요 메들리나 부른 글러먹은 신인으로 조리돌림 당하고 있는 것처럼 그래?”
댁이 뭘 알아. 그것보다 더 최악이라고. 초심도가 그 하루에 20점이 넘게 훅 깎였단 말이다!
이제 정신줄 꽉 안 붙들고 살면 다시 데뷔일로 회귀할 날이 머지않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팬사인회 당시를 회상했다.
건성으로 “아, 진짜요?”만 남발했던 팬싸의 기억만이 남아 있던 나에게 ‘아직 눈빛이 살아 있는 신인돌’ 역할은 참으로 험난했다.
최대한 성의 있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일단 대답 시작 부분에 ‘아, 진짜요?’를 붙인 것부터 글러먹었던 모양이다.
이미 입에 붙어 버려서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걸 어쩌라고. 그래도 ‘아 진짜요’ 뒤에 문장 길게 더 붙였는데 정상 참작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업데이트 안 해?
50명 넘게 상대했는데, 초심도가 대략 20점밖에 안 깎인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주간 퀘스트 다 완수하면, 이번에 까인 초심도는 어느 정도 복구될 거 같은데…….’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자, 아직도 내가 땅굴 파고 들어가는 거로 오해했는지 서예현이 어색한 위로를 건넸다.
“어차피 팬들도 많이 안 왔는데 잊어버려.”
가 역주행하기 전에 추첨해서 그랬는지 팬사인회 인원은 50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회귀 전의 나는 미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풍경을 그리워했다니.
게다가 그중 홈마는 두 명.
그들이 들고 있는 대포 카메라가 모두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아아, 또 회귀 전 팬부격차의 악몽이 반복되는 것인가.
[초심도: 64] [※초심도는 아이돌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정도에 따라 수치가 깎입니다.] [※초심도가 0이 되면 다시 시작합니다!]처음으로 70점 아래로 내려간 초심도를 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장 내일 갱신될 위클리 퀘스트를 모두 완수해야 겨우 초심도를 70 위로 회복할까 말까 할 수준이다.
‘젠장, 다음 주에는 스케줄도 없는데.’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질렀다. 스케줄이 없으면 위클리 퀘스트 목록도 줄어들 게 뻔했다.
일단, ‘아, 진짜요’의 대체어를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팬싸에서 초심도를 20점씩 깎이고 있을 수는 없다.
“아, 리얼요, 어때?”
“형, 무슨 유학파 컨셉 잡아요?”
소파 옆에 앉아서 감자 칩을 입에 넣고 있던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무리수 컨셉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꼭 매를 벌었고 말이다.
“아, 레알요는?”
“유행어 남발하는 초딩 같아여.”
꾹꾹 눌린 정수리를 문지르며 뚱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막내 녀석의 머리를 한 번 더 콱콱 눌러주며 신경질을 부렸다.
“아오, 진짜!”
“아, 따가! 아 진짜가 아니라 아오, 진짜라고!”
[금지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저 뭐라고 안 했어요, 형!”
시스템에게 부린 성질을 저한테 부린 것으로 오해한 류재희가 후다닥 제 방으로 도망갔다.
순식간에 3점이나 깎인 초심도를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또 회귀해서 <내 우주로 와> 같은 망곡을 다시 불러야 하는 거?
“진짜 돌겠네.”
시스템 고객센터 없냐? 1:1 문의사항 넣을 테니까 수리 좀 해 봐. ‘아, 진짜’가 금지어인 게 말이 되냐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파에 늘어지듯 기대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휙휙 넘기고 있던 서예현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 정말요로 하던가.”
“아, 정말요?”
나지막하게 따라 해 보자, 놀랍게도 초심도가 깎이지 않았다!
시발, 그렇구나! 진짜요 대신 정말요라는 아주 좋은 단어가 있었구나!
“빡대가리냐…….”
몸부림치며 온몸으로 기뻐하는 나를 보며 서예현이 혀를 찼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아서 봐 준다.
그러면 아 진짜요 금지어 문제는 대충 해결됐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볼까.
[From. 이든]데이드림,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 오늘 드디어 우리 레브가 첫 팬싸인회를 가졌는데요, 우리 데이드림 분들이랑 이렇게 가까이서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첫 팬싸라 많이 긴장했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약간 서투른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우리 데이드림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네요.
다음 팬싸 때는 더 열심히 준비해서 오늘보다 더 발전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진)
혹여라도 팬싸 태도 관련하여 욕을 먹을까 걱정되어 제일 잘 나온 셀카 한 장까지 첨부하여 팬카페와 공식 SNS에 글을 올렸다.
서투른 거로 밑밥 깔아놨으니까 오늘의 그 따끔한 고통으로 인한 움찔거림과 습관적인 아진짜요는 제발 스무스하게 넘어갑시다.
-아니야! 오늘 이든이 너무너무너무 잘했어!!! 너무 능숙해서 갓 데뷔한 신인이 아니라 아이돌 7년 차인 줄 알았잖아☺☺
From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보자 등줄기에 싸악 소름이 돋았다.
오, 오우…… 진짜 7년 차는 맞긴 맞는데…… 우연이겠지……?
* * *
“여기서 허리를 더 꺾으면 어떠냐?”
“그러면 보기엔 괜찮긴 한데 난이도가 더 높아질 거 같아서.”
“에이, 무조건 보기 좋은 게 1순위지. 난이도는 그다음이고.”
낡아빠지고 곰팡이까지 여기저기 핀, 통풍도 안 되는 지하 연습실에서 우리는 안무를 뜯어고치는 데에 한창이었다.
돈 주고 사 왔다는 안무가 너무 노답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우리 김노답 대표님은 눈탱이를 맞는 게 취미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견하준과 이것저것 의견을 내며 안무를 갈아엎었다. 목표는 무대 위에서 쪽팔리지 않을 수준.
원래도 춤은 곧잘 추는 편이었고, 아이돌 7년 짬밥 또한 어디 가지 않았기에 어렵진 않았다.
메인댄서인 김도빈이 있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 테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막내라인은 출석 일수 채우러 등교했다.
거울 앞에서 몇몇 동작을 해 보는 나와 견하준을 연습실 바닥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서예현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쉽게쉽게 만들어. 나는 무대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거든?”
이렇게 나오시면 안무에 단체 댄브라도 확 넣어 버리고 싶잖아. 심술궂게 씩 웃자 거울로 내 미소를 본 서예현이 한마디 했다.
“내가 충고 하나 하는데, 그거 나한테 가르쳐야 하는 건 너다.”
그 즉시 고난이도 안무로 무대를 짜겠다는 계획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가르치다가 속 터져서 각혈하면서 쓰러질지도 몰라.
“저희 왔어요.”
딱 막힌 부분에서 고전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타이밍 좋게도 막내라인이 하교했다.
교복 입은 채로 책가방을 달랑달랑 들고 온 김도빈과 책가방도 없이 학교를 간 류재희를 보며 견하준이 한소리 했다.
“숙소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와.”
“그럴 줄 알고 트레이닝복 챙겨 왔죠!”
가방에서 트레이닝복을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는 김도빈을 힐끔대던 류재희가 김도빈의 옷을 잡아당겼다.
“형, 나 트레이닝복 바지 좀.”
“아, 싫어. 넌 숙소 가서 갈아입고 와.”
김도빈이 단칼에 거절하자 입을 댓 발 내민 류재희가 터덜터덜 연습실 출입구로 향했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김도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순순히 다가오는 김도빈에게 미션을 던져 주었다.
“야, 도비. 네게 주어진 One Chance 일생일대의 기회- 이 부분 포인트 안무 좀 만들어 봐. 인상 깊고,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총 쏘는 손동작은 어때요? 빵야빵야.”
“너, 커버 영상 봤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묻자, 움찔한 김도빈이 내 눈을 피했다.
아무튼 김도빈과 옷 갈아입고 온 류재희까지 끼자 안무를 짜는 속도가 훅 붙었다.
역시 예고 실무과 재학생과 대형 기획사 연습생 출신다웠다.
우리가 이렇게 땀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인간이 얄밉긴 했지만, 도움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잔심부름이나 실컷 시켰다.
“이 속도면 안무 갈아엎기는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류재희가 설레발을 쳤다.
국내 3대 대형 기획사 연습생 출신인 류재희는 노래 실력으로 들어간 거라고 겸손을 떨곤 했지만, 춤 역시 삐꺽거리는 뚝딱이인 누구누구와는 다르게 곧잘 췄다.
왜 대체 그 좋은 기획사 두고 이런 신생 좆소로 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텃세가 너무 심해서 나왔다는 이야기만 했었지.
여기는 꼰대들은 있어도 텃세는 없어서 좋다고.
서예현이랑 견하준이 꼰대 끼가 있긴 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막내 녀석이 나를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안무 짜는 건 문제가 아니야.”
심드렁하니 대꾸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예현이 형이 익히는 게 문제지.”
“어떻게든 오늘 안에는 익힐 테니까 그렇게 대놓고 저격 안 해도 괜찮거든?”
이 깍 깨물고 말하는 서예현을 향해 히죽 웃으며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그래, 기대할게? 열심히 해서 오늘 안에는 꼬옥 안무 익히자.”
“으, 끈적거리니까 좀 떨어져.”
그로부터 30분 후.
시발, 내가 무슨 영광을 얻겠다고 저 인간 전담을 자처했는지. 1군 가기 전에 스트레스로 저세상 가게 생겼네.
여기서 초심도 더 깎이면 진짜 회귀할라.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 빈정거림을 애써 꾹 내리누르고 불화를 일으키지 않을 만할 말을 고르고 골랐다.
“오, 이걸 못해? 빡대가리야?”
최대한 순화한 물음에 평소처럼 인상을 구기는 대신 활짝 웃은 서예현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네.
그런데 잘생겼으면 뭐해, 시발. 무대에서 외모가 아니라 최악의 실력으로 커뮤에 박제되는 미래가 먼저 같은데.
녹음 파일을 연 서예현이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나 윤이든은 막말하는 즉시 서예현에게 그 자리에서 10만 원을 입금할 것을 약속합니다.
서예현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누가 들어도 내 목소리였다.
‘맞다, 저 인간이 그때 녹음했었지.’
떠오르는 술자리에서의 기억에 머리를 짚었다.
“10만 원 입금해라.”
“어라, 이건 막말이 아닌데? 최대한 순화시키고 순화시킨 나의 감정표현인데?”
“내가 들었을 때 기분 더러우면 막말이야.”
그때 막말의 기준까지 제대로 짚었어야 했는데. 술기운이 돌아 그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내 머리를 뒤늦게 원망했다.
“형도 나한테 빡대가리냐 했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냐?”
“뭐가 다른데, 뭐가!”
“그때는 네가 빡대가리 짓을 했잖아!”
“안무 못 익히는 건 빡대가리 짓이 아니고?”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오늘도 초심도가 또 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