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1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11화(11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11화
응, 사실 아니야.
누가 봐도 어그로인 데다가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넘기려고 했지만, 문제는 그 채팅이 위로 올라가기 전에 류재희가 그걸 봐 버렸다는 것.
채팅창을 내려다보는 류재희의 얼굴에서 잠시간 표정이 사라졌다. 아주 찰나여서 나조차도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다.
[저 위에 폭행 어쩌고 뭐임?] [어그로 상대하지 맙시다~] [옛날에 카더라로 들은 적 있긴 한데 저거 찐이었어?] [데뷔 1주년에 분탕질 뭔데]일단 그 악성 어그로 채팅은 휙휙 올라오는 다른 채팅들에 밀려 위로 올라갔다.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류재희는 다시 웃으며 채팅창의 질문을 읽었다.
“이든이 형한테 질문 들어왔네요! 무인도에 멤버 한 명을 꼭 데려가야 한다면 누구를 데려갈 거예요?라고 질문 주셨어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번에 대답했다.
“당연히 하준이지.”
“이유는요?”
“이유? 너네도 솔직히 멤버 한 명 데려가야 한다고 하면 다 준이 선택할 거잖아.”
서예현과 김도빈이 동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그렇죠. 요리도 잘하시고 생활력도 만렙이시고, 항상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저한테 불안감을 안겨 주지도 않으실 테고.”
일단 김도빈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 대면 누구나 다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이지 않을까.
다들 순탄히 동의하는 도중, 류재희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든이 형 데려갈 건데요.”
갑자기 류재희 무인도픽이 되어 버린 나는 머리만 긁적였다.
“너, 나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하다 하다 이젠 무인도까지 데려가려 하네.”
“우리 이전에 조난 특집 쓰레받기 삽질만 봐도 이든이 형이 힘쓰는 일은 독보적일 것 같아서?”
“아, 나를 일꾼으로 데려가시겠다?”
삐딱하게 웃으니 류재희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형이 하준이 형 데려가려는 것도 그 일종 아니에요?”
“야, 나는 내가 다 해 줄 수 있어. 그저 준이랑 있으면 심신이 제일 안정적일 게 분명해서 준이 선택한 거야.”
“저희랑 있으면요?”
“시끄럽겠지.”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김도빈이 그 말이 진실임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옆에서 시끄럽게 질문해 왔다.
“먹을 거는? 이든이 형 회오리오믈렛이랑 라면밖에 못 만드는데 무인도에는 없잖아.”
“어차피 무인도에는 조리기구도 양념도 없는데 요리는 상관없지 않아? 물고기 구워 먹고 과일 따 먹고, 이 정도밖에 못하는데. 물고기를 얼마나 잘 낚냐와 나무 열매를 얼마나 잘 따오냐, 이게 문제지.”
류재희가 진지하게 대답하며 손가락을 양옆으로 까딱거렸다.
“그리고 우리 경험상, 이 형이 조난 상황에는 진짜 무덤덤해. 완전 믿을 만해.”
“에이, 무덤덤한 건 하준이 형이 더 갑이지. 그리고 물고기 구워 먹는 것도 요리 스킬이 필요한 법!”
“물고기를 낚아 와야지 먹지. 제주도에서 이든이 형이 낚시로 물고기 다 잡아 온 거 기억 안 나?”
“그렇게 치면 이든이 형이 과일 구해 와도 못 깎아서 껍질 채 먹어야 할걸?”
시발, 과일 깎을 수 있는 사람 여기서 견하준이랑 서예현밖에 없잖아. 니들도 못 깎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사랑하는 막내 라인아, 우리가 포켓몬이냐? 전투력, 아니 생존력 측정하고 있게?”
최대한 활짝 웃는 얼굴로 꼽 주는 말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너희들이 과일 깎는 법이랑 물고기 굽는 법을 배워 와서 형들을 봉양하지는 못할망정, 우리를 부려 먹으려고 해?”
“아니, 그런데 보통 무인도에 데려갈 사람을 픽할 때 봉양할 생각을 하고 고르지는 않잖아요! 그거 생각하고 골랐으면 양 적게 먹고 풀이나 과일만 드실 예현이 형 골랐죠!”
형들 부려 먹을 생각만 하는 모옷된 동생들 프레임이 씌워지자 류재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채팅창을 읽고 있던 견하준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 대체 어쩌다가 1주년 기념 토크에서 무인도 멤버픽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를 선택해서.”
내 심플한 대답에 김도빈이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여.”
그 후로도 토크를 진행하는 멤버들의 말에 적당히 대꾸해 주며 채팅창을 계속 확인했다.
다행히 류재희를 겨냥한 어그로성 채팅은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되자 류재희가 채팅창을 보지 못하게 교묘히 가리고 있던 몸을 쓱 치웠다.
“아,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 즐거우셨나요, 데이드림?”
“1주년 축하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데이드림과 10주년, 20주년까지 함께하는 레브가 되겠습니다!”
난 7주년에서 끝이었는데. 양심 찔리네, 하하.
“Dream of me! 지금까지 레브였습니다!”
“또 만나요, 일몽이들!”
그렇게 데뷔 1주년 기념 라이브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1,500원짜리 테이크 아웃 아이스 아메키라노의 빨대를 물고, 어느새 어둑해진 저녁이 되어 있는 하늘을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베란다에 앉아 초코라떼 한 컵 들고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류재희를 발견했다.
그냥 둘까, 아니면 이야기라도 붙여볼까 고민하다가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척에 고개를 돌린 류재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 줄까? 혼자 있게 해 줄까, 아님 옆에 있어 줄까?”
“옆에 있어 주시면 고맙죠.”
유난히 동글한 눈초리를 누그러뜨리며 류재희가 대답했다.
옆에 털썩 앉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목이 탈 때마다 들이키던 아메리카노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고요한 침묵을 먼저 깬 건 류재희였다.
“제가 말했었어요? 여기는 꼰대는 있어도 텃세는 없어서 좋았다고.”
회귀 전에 한 번 하긴 했지. 펑펑 울다가 웃으면서.
“예현 형이 좀 꼰대 끼가 있긴 하지. 그 꼰대질 뭐 같아서 일방적으로 말 놨잖아, 내가.”
정확히 말하면 좆 같다기보단 같잖아서 놓은 거지만.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눈을 가느다랗게 뜬 류재희가 말했다.
“그거 알아요, 형? 꼰대는 자기가 꼰대인 줄 모른대요.”
“어어, 서예현도 모르는 것 같긴 하더라. 오, 그거 보니까 맞는 말이긴 하네.”
대충 대꾸하며 고개를 까딱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흘린 류재희가 입을 연신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전 소속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하다가 멈칫한 류재희가 푹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에서 힘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죄송해요, 형. 지금은 말 못 하겠어요. 떠올리면 숨이 막혀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끊었던 담배가 당겼다. 아쉬운 대로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죄송할 일이 뭐 있냐?”
죄송할 건 그 쓰레기 새끼들이지.
이번에는 또 어떻게 조져 줄지 고민하며 빨대를 씹다가 류재희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김도빈 때야 내가 모르는 일이라 그랬지, 류재희는 회귀 전에 한 번 터진 덕분에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당사자 입으로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같은 멤버인 너를 믿지 익명 악성 어그로 말을 믿겠냐?”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류재희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 그게 만약 진짜라고 해도 네 주먹, 맞아 봐야 아프지도 않고. 기껏해야 입가 터지는 정도겠지.”
“엥, 저는 형을 때린 적도 없는데 형이 어떻게 알아요?”
그야 네 펀치 기계 점수 700대잖아.
회귀 전에 오락실 자컨 찍었을 때 다들 펀치 머신 한 번씩 쳐 본 터라 알았다.
참고로 내 점수가 제일 높았다. 그 오락실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한 번 더 기회도 받았다.
물론 그때의 팀 분위기는 지금처럼 화기애애하지 않았기에 호응은 별로 못 받았다.
“얌마, 난 딱 봐도 알아.”
류재희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평소였으면 머리를 도리도리 저어 내 손에서 벗어났을 류재희는 순순히 내 손길을 받고 있었다.
“막내야.”
내 부름에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았다.
성장기 전의 류재희는 내 기억 속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모습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필연적으로 류재희에게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나를 놓지 않았던 스물넷의 류재희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외면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그 과거랑 대면해야 할 날이 올 거다.”
“알아요…… 곧 데뷔하겠죠, 그 인간들도.”
중얼거린 류재희가 세운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니까, 하…….”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으려니 입이 영 떼어지질 않았다. 물고 있던 빨대를 휙 던지고 뒷머리를 벅벅 헤집다가 툭 내뱉었다.
“난 그때 네가 많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내 생채기 살피기에 급급해 남의 상처를 살펴 줄 여유도 없는 놈이었지만, 지금은 그 상처를 치유해 줄 순 없더라도 옆에서 쓰라림 정도는 버티라 손 정도는 잡아 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때 가서, 힘들면 형한테 말하고.”
그 말에 잠시간 나를 멍하니 보던 류재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형이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네요. 진짜 의외다.”
“연륜이지, 뭐.”
“저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시꺼, 인마.”
괜히 투덜거리자 류재희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내가 내던졌던 빨대를 가리켰다.
“형, 그런데 하준이 형한테 한 소리 듣기 전에 저 빨대는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좋겠어요.”
그 말에 순순히 빨대를 주워들었다. 으, 먼지 묻었어. 베란다 청소 당번 누구야?
아, 나구나.
* * *
“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김도빈이 펜을 마이크처럼 잡고 거실 한복판에 서서 외쳤다.
“바로바로…… 방 바꾸는 날!”
그토록 원하는 독방을 손에 넣었던 놈치고는 방 바꾸는 걸 너무 반겼다.
“언제는 독방 쓰고 싶다며. 내가 그렇게 딜을 해도 절대 안 바꿔 주더니만.”
소파에 앉아 혀를 차며 말하자 김도빈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한 일주일은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 지나니까 너무 외로웠어요.”
“너 만약 이번에도 독방 걸리면 꼭 형이랑 바꿔 주기다.”
“아니, 나랑 바꿔 주라, 도빈아.”
내가 말하자마자 냉큼 말을 받아 뻔뻔하게 주장하는 서예현을 팔짱 끼고 노려보다가 쓰윽, 김도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선예약 걸었다, 도빈아. 인생은 선착순인 거 알지?”
“인생은 인맥이지. 이 형은 도빈이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연을 쉽게 저버리지 않을 거라 믿어.”
“스승의 날에 애한테 카네이션 한 송이 안 달아 준 인간이 말이 많다? 야, 도빈아! 나는 빈말로 안 한다! 10만 원이랑 솔로곡 준다!”
“그럼 나는 20만 원!”
질세라 판돈을 올리는 서예현의 모습에 나는 지지 않고 10만 원 더 올렸다.
“아니, 무슨 경매해요?”
행복한지 입이 찢어지라 웃고 있는 김도빈의 옆에서 류재희가 혀를 차며 물었다.
판돈이 10만 원씩 훅훅 오르는 치열한 경매를 제지한 건 견하준이었다.
“아직 방 정해지지도 않았어. 경매는 방 정해지고 나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