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1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13화(11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13화
[Reve(레브) – ‘Escape’ Official Teaser]레브의 티저가 공식 너튜브 채널에 공개되었다.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끝도 없이 늘어지는 고풍스러운 복도가 영상의 서막을 열었다.
미끄러지는 듯한 카메라 워킹은 쭉 이어지더니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화려한 보석에서 멈췄다.
유리 상자 뒤로 누군가의 상체가 비쳤다.
쿵, 쿵.
주먹으로 가볍게 유리 상자를 두드리는 소리와 비트가 점차 섞여 들어갔다.
유리 상자 속 보석에 고정되어 있던 시점이 살짝 올라가더니 상자 뒤에 있던 이의 하관을 비추었다. 장갑을 낀 손이 검지를 들어 올려 호선을 그리는 입술 위로 가져다 댔다.
쉿-.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천이 펄럭였다. 잠시간 화면을 가린 검은 천이 치워지자 보이는 텅 빈 공간과 검은 천으로 덮인 유리 상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견하준이 유리 상자 앞으로 다가와 천을 치우자 텅 빈 유리 상자가 드러났다.
일렉트로닉 느낌이 강한 MR 멜로디와 함께 나머지 멤버들의 컷이 등장했다.
동선을 그려 놓고 사진과 메모 등의 자료를 이리저리 핀으로 꽂아 놓은 큰 종이 앞에서 턱을 괴고 서 있는 유제.
등 뒤에서 이든을 향해 권총을 겨눈 베레모와 블랙 트렌치코트 차림의 예현과 여유로운 얼굴로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린 이든.
[catch me if you can뻔한 추격전은 지겹잖아]
짧은 후렴구가 흘러나오며, 정장 위에 망토를 걸친 채로 보석을 가볍게 던졌다 받은 도빈이 씩 웃으며 복도 어딘가로 꺾어 들어갔다.
셔츠 위에 차콜그레이 컬러의 트렌치코트를 걸친 이든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도빈의 루트를 그대로 밟는 걸 마지막으로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흰색 볼드체 글자로 날짜와 시간이 공개되며 티저가 완전히 끝났다.
한 편의 영화 트레일러 같은 티저에 김 모 양은 그제야 안도했다.
“이번에도 노답이가 돈 좀 썼구나…….”
<내 우주로 와>의 악몽은 겨우 1년으로 치유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상흔이 하도 깊게 남은 나머지 그녀를 비롯한 레브의 오랜 팬들은 티저 혹은 뮤직비디오를 재생하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하는 게 습관이 된 지경이었다.
일단,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하이틴 콘셉트를 가져오지 않은 것도 안심이었다. 제일 무서운 게 매너리즘 아니던가.
-탐정과 괴도 컨셉?
-드디어 청량 벗어났구나!! 그래 레브는 솔직히 청량 하이틴보다는 빡센 컨셉이 어울림
-뮤비 나올 때까지 숨 참는다
-와 무슨 영화인 줄 제발 티저 사기 아니길
-뭐야 도빈이가 괴도야? 잘어울려ㅋㅋㅋㅋ
다른 팬들의 반응 역시 꽤 좋았다. 티저는 이후 공개될 뮤직비디오와 음원을 향한 기대감을 착실하게 높여 주는 것에 성공했다.
알테어의 컴백 소식을 이미 들었기에 김 모 양은 이번에는 트리플 크라운을 바라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우리 제발 알테어에 밀리지만 말자…….”
* * *
“오, 일단 티저 반응은 괜찮은데요?”
모니터링하던 류재희가 한숨 돌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머리와 기억을 쥐어 짜내다 못해 시스템에서 뽑은 아이템의 도움까지 받고 나서야 대상을 받은 알테어의 곡을 기억해 낸 나는 여전히 심란했다.
‘하필 활동 날짜에 이어서 컨셉까지 겹칠 줄이야.’
내 기억에 따르면 알테어가 이번에 들고나오는 곡도 괴도 콘셉트였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처럼 망토 펄럭이는 컨셉충 괴도는 아니고, 영화 ‘도둑들’처럼 팀 짜서 움직이는 여섯 명의 도둑.
개인적으로는 그쪽 리더한테 존나게 잘 어울리는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일단 알테어가 후발주자라 이 정도로는 별말이 나오지 않겠지만, 우리가 선발인 데다가 콘셉트까지 겹치는 이상 확실히 찍어 누를 필요가 있었다.
후발주자에게서 신선함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말이다.
곡과 뮤직비디오는 이미 나왔으니 고칠 수 없는 상태. 그러면 지금 당장 손댈 수 있는 건 퍼포먼스뿐인데…….
“안무를 여기에서 더 빡세게 할 순 없나…….”
충분히 촘촘하게 뽑혀 나왔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와서 보니 왜인지 널널해 보이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며 중얼거리자 류재희가 김도빈을 데려왔다.
“더 강렬한 느낌이 살게 고칠 수야 있죠. 여기랑, 우리 퍼포먼스에 소품 활용하잖아요. 네, 여기. 여기에서 한 템포 여유를 두었던 걸 좀 더 촉박하게 고치면 느낌은 더 살 거예요. 퍼포가 더 힘들어지긴 하겠지만?”
내 옆에 앉은 김도빈이 휴대폰 화면에 띄워 놓은 동영상 시간을 조절하여 파트를 직접 보여 주며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첫 음방이 일주일 후라는 걸 고려했을 때. 지금 고치면 다섯 명이 다 익히기는 좀 빠듯할걸요?”
머리를 긁적인 김도빈이 내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주어는 없지만 김도빈이 말한 ‘익히기 빠듯한 멤버’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서예현이 아무리 실력이 늘긴 했어도 이제는 실수만 거의 안 할 뿐이지 아직은 난이도를 한 단계 높여 수정되는 안무를 바로바로 따라 익힐 수준까진 아니었으니까.
“고쳐.”
방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서예현이 방안에서 나 대신 대답하며 걸어 나왔다.
오우, 저 결정권자라도 된 듯한 당당한 태도는 뭐지? 우리가 괜히 고민하고 있던 게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자마자 말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밤새워서라도 익힐 테니까.”
세 쌍의 눈동자가 저를 향하자 그가 미간을 움찔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서예현이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부딪혀 보자고 한 건 나니까 내 말에는 책임져야지. 이 정도 각오도 안 하고 부딪치자 했던 거 아니야.”
제가 한 말이 낯간지러웠는지 괜히 머리를 쓸어넘기던 서예현의 눈길이 감동 어린 눈빛을 한 채 입을 틀어막고 있던 내게 와닿았다.
“뭐야? 너는 또 왜 그렇게 봐?”
“나 지금 좀 감동받았어.”
“별것도 아닌 걸로…….”
떨떠름한 기색이 묻어 나오는 중얼거림에 진실하게 대꾸해 주었다.
“아니, 갑자기 원찬스 때가 생각나서. 그때는 형이 반대했는데 이제는 나서서 나 대신 찬성도 해 주고. 우리 팀 새삼 발전했구나…….”
“아, 그때는 내가 미안…… 하다고…….”
이를 악문 서예현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딱히 사과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또 건네진 사과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여 사과를 받아 주었다.
이미 끝난 일을 그쪽이 또 사과하겠다는데, 뭐. 내가 뭐라 하겠나.
견하준에게까지 동의를 받고, 멤버들을 죽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면 도빈이 네가 디렉터님께 말씀드리고 의논해서 안무 좀 고쳐 봐라. 우리는 수정 시안 나오면 바로 연습하자. 만약 일주일 연습하고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원래 안무로 가는 거고. 그러니까 예현이 형도 너무 부담가지진 말고. 알겠지?”
내 말에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졌잘싸, 그딴 거 없다. 무조건 이기자.”
“넵!”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야 다들 정신을 좀 차렸구먼?
* * *
“내가 말 한 건 확실하게 해결했지?”
“응…… 실망시켜서 미안해, 연호야…….”
제가 무엇 때문에 실망했는지 저 멍청이는 평생 모르겠지. 차연호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가 축 처진 케이제이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
이걸로 일단 급한 불 하나는 껐다. 시스템창을 힐긋 확인한 차연호는 70점대로 내려간 위험도에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시스템을 확인할 때마다 90점을 기록하며 빨갛게 물든 상태창에 눈과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으니.
축 처진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던 모습과 겹쳐져 그는 머리를 토닥이던 손에 힘을 살짝 가했다. 움찔한 케이제이가 그 손길에 몸을 폈다.
‘이걸 해결했는데도 아직도 위험도가 70점대면…… 역시 윤이든, 그 자식 때문인가.’
처음에는 윤이든의 회귀를 확신했다. 하지만 슬쩍 떠봤을 때 보이는 반응이…….
‘연기 쪽으로 갔던 건 분명 윤이든이 아니라 다른 멤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부러 헷갈리라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윤이든이 회귀자가 아니라 그의 재능을 그 소속사에서 펼칠 수 있게 돕는 조력자가 회귀자인 건지.
계속 90점을 유지하는 위험도에 마음이 급해서 되지도 않는 수작질을 하다가 보기 좋게 역공당했지.
회귀 전에 빈정거리며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던 윤이든의 모습이 떠올라 그는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제게 기대어 오는 케이제이(본명 권정준)도 편히 볼 수 있도록 휴대폰 화면 각도를 조정한 차연호는 공개된 레브의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또 처음 듣는 곡.’
레브라는 그룹에 관심을 가진 적은 딱히 없었지만, 이 곡을 회귀 전에 레브가 현시점에 들고나왔을 리가 없다는 걸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연도 대상을 확신하고 있던 차연호 그마저도 위기감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었으니.
이런 퀄의 노래였으면 그가 분명히 기억했을 터.
레브의 뮤직비디오는 마치 짧은 단편영화처럼 잘 뽑혔다.
전형적인 범죄 액션물 및 추리물처럼 흘러갈 스토리를 꽤 세련된 영상미와 치열한 액션 씬과 치밀한 반전까지 더하며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도빈과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이든이 제가 도빈에게 알려 준 탈출 루트로 가 도빈을 제압하고 보석을 손에 넣는 장면과 예현과 도빈이 한편이었단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은 그조차도 잠시간 견제를 잊고 꽤 흥미진진하게 볼 정도였다.
괴도 하나에 탐정 넷.
도둑들 여섯인 그들의 콘셉트와 딱히 겹친다고 하기도 그랬지만, 어쨌든 범죄 액션물이라는 범위 내에서는 겹친 상황.
하필 자본을 쏟아붓은 알테어의 뮤직비디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퀄리티였다.
아직 패배를 확신하기엔 이르긴 하다만……,
“아무래도 우리 쪽 승리를 확신하기도 어렵겠는데.”
차연호의 중얼거림에 케이제이가 언제나와 같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뭐야, 벌써 겁먹은 거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우리 노래도 꽤 좋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연호.”
“그래, 그렇긴 하지.”
피식 웃으며 차연호는 다음 동영상을 재생하려는 너튜브 앱을 껐다.
그는 기왕이면 이번에는 친구의 저 미소를 오랫동안 지켜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빌어먹을 위험도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이 빌어먹을 위험도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