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1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18화(11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18화
직계 가족들이 절을 모두 마치고, 조카들까지 절을 마치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축하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초대가수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트로트 가수와 발라드 가수를 섭외했다고 들었다.
미리 사회자에게 말해 내 순서도 끼워 놓았다. 손자가 아이돌이라니까 어우, 모양새가 너무 좋다고 바로 순서 조정해서 넣어 주더라.
제일 첫 무대가 끝나자, 다음 순서로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내게로 쏠리는 시선을 받으며 태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기왕 온 김에 다 같이 노래나 한 곡 뽑고 가.”
라고 171cm가 류재희와 서예현까지 싸잡으며 말했다.
“뭐 하러. 나 혼자로도 충분한데.”
픽 웃으며 대꾸하고는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마이크 헤드그릴을 손바닥으로 감싸 마이크를 가볍게 쥐었다.
아, 아. 두어 번 마이크테스트를 마치고 할아버지를 향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할아버지 팔순인데 이 손자가 또 한 곡 뽑아 드려야죠. 아-티스트 손자 좋은 게 뭡니까?”
부러 아티스트에 강세를 두어 길게 늘여 말하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또 못마땅하게 변했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것처럼 팔짱 끼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해 드리기 위해 휴대폰을 연결해서 비트 깔고 랩을 시작했다.
힙합은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도 베스트였지만 분위기에 찬물 끼얹기에도 베스트였다.
특히 어르신들 비중이 높은 곳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집안 어른들이 뭐라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써 내려갔던 디스곡 가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회귀 전의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무대 두고 뛰쳐나간 건지.
기왕 뛰쳐나갈 거 지금처럼 이렇게 거하게 엿이나 선사해 주고 나가지.
벌스가 끝날 때마다 경악이 서리는 어른들의 얼굴이 볼만했다. 그야 그럴 게 자기들 디스곡이었으니까. 나를 무시했던 사촌들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 팔순연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였기에 디스 비중은 할아버지가 제일 높았다.
축사곡을 가장한 프리스타일 디스곡이 끝나자 내 기대만큼 숙연해진 분위기에, 마이크에 대고 여상히 한마디 내뱉었다.
“아니, 무대가 끝났는데 박수도 안 주시네.”
이 정도 퀄리티의 무대면 내가 출장비를 받아야 할 수준인데.
할머니는 이미 이마를 짚고 계섰고, 할아버지는 내가 절을 할 때보다 더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초심도와 팔순연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욕은 한마디도 집어넣지 않았는데 참으로 억울했다.
“당장 나가!”
벼락같이 떨어진 불호령에 과장스럽게 무대 인사를 했다.
“넵, 그럼 이 효손은 먼저 밥 먹고 있겠습니다. 다들 케이크 커팅하고 천천히 오세요.”
싸늘해진 분위기에 사회자가 급히 수습을 시도했다.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무대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해탈한 표정의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아빠, 나 식권 세 장만.”
깊은 한숨을 내쉰 아버지가 식권 세 장을 건네줬다. 미간에 깊이 파인 골을 보니 당분간은 본가 근처엔 얼씬도 못할 것 같았다.
휴가 내내 막내 라인 녀석들이랑 꼼짝없이 숙소에 있게 생겼군.
잡혀서 무어라 소리를 듣기 전에 잽싸게 튀어 테이블에 뻘쭘하게 앉아 있는 류재희와 서예현을 끌고 연회장에서 나왔다.
연회장 바깥으로 나오자 이제야 좀 살 만하다는 얼굴이 된 류재희가 투덜거렸다.
“저는 형이 축가 부르라고 저희 데려온 줄 알았어요.”
“아니? 진짜 밥 먹으라고 데려온 건데? 이 집구석 돈은 뜯어먹어도 돼.”
“체할 것 같은데요…….”
“연회장 안에서 먹으면 체했겠지. 그런데 벗어났잖아, 일단?”
오랜 원한을 갚아 준 내 속은 사이다를 100개를 들이켠 것처럼 너무나도 시원했다.
“진짜 오늘 하루 별별 꼴 다 본다…… 남의 집 팔순연에 밥을 먹으러 오질 않나, 딴따라 소리를 듣질 않나, 남의 집안 디스곡을 듣지를 않나…….”
서예현이 넋 나간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을 끌고 뷔페에 도착하여, 식권을 내밀고 배정된 룸에 안내받았다.
의자에 겉옷을 걸쳐 놓고 곧바로 뷔페 음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막내, 많이 먹어라. 형도 샐러드만 가져다 먹지 말고.”
접시 한가득 음식을 담아 온 류재희가 올리브를 깨짝거리던 서예현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맞아요, 예현이 형. 여기 디너 1인 10만 원이래요.”
대체 언제 검색해 본 건지. 류재희의 그 말에 서예현이 정말 체할 것 같다는 얼굴로 제 접시의 풀떼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오늘 얘 축하 공연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렸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화제가 됐을까, 부정적인 방향으로 화제가 됐을까?”
연어 샐러드를 우물거리며 서예현이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로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내심 궁금해졌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 무대는 정말 찢었는데.
“일단 커뮤 제목은 ‘팔순잔치에서 할아버지 디스랩한 레전드 불꽃효손 ㄷㄷ’ 이거 달고 올라올 듯요.”
역시 커뮤잘알 모니터링의 대가 류재희답게 제목 뽑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교 중시라 아무리 집안 사정이 있더라도 불효손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못 되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세부 상황은 잊히고 붙은 이름만 남는 터라.”
포크로 고기 조각을 쿡 찌른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당장은 화제를 얻겠지만 장기적인 방향으로 봤을 때 좋은 일은 아니다- 이 말이죠.”
금세 접시를 비운 류재희가 음식을 또 담고 온다고 자리를 뜨고, 서예현 역시 음료수 좀 떠오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홀로 남은 룸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중, 바깥에서 기웃거리던 익숙한 얼굴이 후다닥 룸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한참 찾았잖아!”
“왔냐?”
공부 머리가 없다는 공통분모로 이 엿 같은 집안에서 서로 뭉쳤던 3살 아래의 사촌 동생, 윤정아였다.
나야 힙합 소울 장착한 이래로 집안 어른들이 뭐라 하든 속으로 프리스타일 디스랩 내뱉고 있었지만 멘탈 여린 윤정아는 그런 말을 들어도 털어내는 걸 영 못 했다.
덕분에 내가 이 녀석 전용 탱커가 되어 주며 윤정아는 사촌 형제들 중에서도 나를 제일 따랐다.
내 마지막 기억에선 대학교도 졸업한 녀석이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와 있는 걸 보니, 확실히 7년이라는 시간이 제법 긴 시간이었다는 걸 체감했다.
대학 졸업 축하한다고 100만 원 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내가 감회에 빠져 있든 말든 내 옆자리에 턱 앉은 윤정아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연호 오빠 싸인 좀.”
아, 맞다. 이 녀석 알테어 팬이었지.
이건 회귀 전에도 한 번 받았던 부탁이었다.
그때는 느이 연호 오빠는 사람 가려 가면서 상대하는 인간이라 이런 좆소 망돌은 상대 안 해 준다고 대꾸했다가 우리 연호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라는 고함과 함께 처맞았지.
얘 사촌 오빠가 차연호가 아닌 나라는 걸 고려했을 때 참 아이러니한 반응이긴 했다.
야, 차연호는 네가 중학교 성적으로 잔소리받을 때 옆에서 9월 모의고사 성적 오픈해서 어그로 끌어 주지도 않았잖아.
물론 얘도 결국은 탈덕해서 내가 프로듀싱했던 타 아이돌로 갈아탔지만. 걔넨 내가 사인 앨범도 받아다 줬다.
“싸인 맡아 놨냐. 그리고 활동 겹치는 것도 끝나서 당분간 만날 일 없어.”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대꾸했지만 윤정아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대안을 제시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성적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오빠, 연호 오빠랑 친하다며. 그럼 여기서 혹시 영상통화는 안 될까?”
되겠냐. 안 친하다고.
대체 그 새끼는 적당히 아는 사이인 선후배 사이라 하면 되지, 왜 친하다고 지 SNS에 쳐 지껄여서 나를 이렇게 귀찮게 만들고 난리야.
성질이 뻗쳐서 차연호에게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를 퍼붓다가 진정했다. 그래, 차연호도 설마 내 사촌 동생이 자기 팬인 걸 알았겠나.
안 친하다고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그게 퍼지면 또 귀찮아질 게 뻔했기에 구구절절 변명하는 대신 내 세컨폰 저장 이름만 차연호로 바꿔 세컨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숙소 안 내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진 세컨폰으로 누가 전화를 받을 리가 없었다.
“봐, 안 받지?”
“울 오빠들 슈스라 많이 바쁜가 보다…….”
“한가하게 할아버지 팔순연이나 온 이 오빠 저격은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우리 학교에 오빠 그룹 팬도 많아. 우리 점심시간에 신청곡 나오거든? 거기에 꼭 오빠네 그룹 이번 신곡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나와.”
“혹시 네가 신청한 건 아니고?”
“뭐라는 거야. 내가 알테어 노래 신청하지 오빠네 그룹 노래를 왜 신청해? 이번에도 1위 밀려날까 봐 스밍 얼마나 돌렸는데.”
그 말에 삐딱하게 웃으며 윤정아의 정수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꾹꾹 눌렀다.
“이 배은망덕한 꼬맹이가 은혜도 모르고 내 노래를 밀리게 하는 데에 일조를 해? 어?”
“끄아앙, 연예인이 일반인 잡는다!”
그래도 여자애라고 류재희나 김도빈에게 하는 수준의 10분의 1도 힘을 안 실었는데, 엄살은.
내가 제 머리에서 손을 떼자 주섬주섬 가방에서 레브 정규 1집 앨범과 팬을 꺼내며 윤정아가 내게 내밀었다.
“아, 맞다. 내 친구가 레브 팬이거든. 여기에 오빠 사인 좀 해 줘.”
“친구 이름 뭔데?”
펜 뚜껑을 열며 묻자 윤정아가 냉큼 대답했다.
“김서연, 그런데 참고로 걔 최애는 오빠가 아니라 오빠 그룹에 그 엄청 잘생긴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이야.”
“오, 그러니까…….”
그릇에 대개 다리와 샐러드를 담아 들고 오는 서예현을 향해 턱짓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저 인간이 네 친구 최애라는 소리지?”
내 턱짓을 따라 시선을 옮긴 윤정아가 마스크를 막 벗은 서예현의 얼굴을 보고는 뻣뻣하게 굳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나랑 윤정아를 번갈아 보는 서예현에게 앨범과 펜을 넘기며 말했다.
“형, 얘 친구가 형 팬이래. 사인 좀 해 줘. 아, 얘는 내 사촌 동생.”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서예현이 앨범에 사인했다. 멘트까지 꼼꼼하게 챙겨 적었다. 류재희도 옆에서 앨범과 펜을 넘겨받아 사인하고 멘트를 길게 적어 내려갔다.
“저, 혹시 저도 사인 좀…….”
윤정아가 수줍게 공책을 내밀었다. 살면서 저 녀석 저런 모습은 처음 봐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서예현은 미소 지으며 기꺼이 사인해 주었다.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돼요……?”
서예현과의 셀카까지 야무지게 챙긴 윤정아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는 속삭였다.
“오빠, 혹시 팬클럽 키트 남은 거 있어? 오빠 사진은 빼고 줘도 돼.”
“너 계속 그러면 내 사진만 꽉꽉 채워서 주는 수가 있다.”
윤정아가 접시를 들고 나가자 류재희가 서예현을 돌아보며 감탄했다.
“와, 역시 레브의 입덕요정. 또 한 명의 팬을 영입하는 데에 성공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