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2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20화(12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20화
“거봐요! 형도 못 먹잖아요!”
의기양양한 김도빈의 표정이 영 배알이 꼴려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웃기지 마. 사레 들려서 그래.”
“제 앞에서 다시 드셔 보시면 인정해 드리죠.”
“재희야, 먹어서 이게 멀쩡한 반찬인 걸 증명해 봐라.”
“왜 형의 작품을 저한테 떠넘기시는 거죠? 만든 사람이 먹읍시다. 제 계란말이는 먹어서 증명할 수 있어요.”
내가 제육볶음을 제 입에 강제로 넣으려 한 것처럼 잽싸게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은 류재희가 오묘한 표정으로 꿀꺽 삼켰다.
“머, 먹을 만하네.”
야, 너도 연기는 안 되겠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얼굴로 먹을 만하다는 말을 뱉은 류재희는 곧바로 냉장고로 달려가 생수를 다급히 들이켰다.
“거봐! 류재희 너도 솔직히 못 먹겠잖아!”
“아니거든? 사레들린 거거든?”
내 변명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 녀석의 머리를 헤집어 주다가 문득 든 생각에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그럼 너 점심은 뭐 먹었냐?”
내 질문에 김도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침에 하준이 형한테 전화했더니 이 도시락 먹지 말고 편의점에서 김밥 사 가라 하셔서 편의점 김밥 사 갔어요.”
“뭐라고 했는데?”
“형이 강불로 고기를 볶고 있었다고요.”
어쩐지 오전에 견하준이 뜬금없이 불은 제발 중불로 맞춰 놓고 요리하라고 문자를 보내더니만.
아니, 그런데 시간은 없는데 고기는 세월아 네월아 익고 있으면 당연히 불 세기를 올려야 하는 거 아니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나 왔어.”
식탁 위에 펼쳐진 도시락과 그 앞에 모여 있는 셋을 발견한 견하준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견하준의 시선이 닿기 전에 슬쩍 제육이 든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도빈아, 아침에 김밥 사 갔어?”
“넹, 근처에 편의점 있어서 안 늦고 사 갔어요.”
“다행이네. 수능은 잘 봤고?”
그 질문에는 딴청을 부리던 김도빈이 갑자기 우리를 휙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와,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들, 수능 치고 온 수험생한테 수능 잘 봤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 누가 수험생 안부를 챙기지, 도시락 안부를 챙기냐고요!”
“네가 도시락 뚜껑 안 열렸다는 거짓말만 안 했어도 충분히 물어봤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물어봐 주세요.”
“그래, 잘 자고 왔냐?”
“안 잤거든요?”
“오, 그래? 나는 잤는데. 네가 나보다 낫다, 야.”
낄낄거리며 김도빈의 머리를 마구 헤집고 있는데 견하준이 기어이 제육볶음이 담긴 도시락 뚜껑을 오픈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겉모양은 일단 제법 제육볶음 같은 무언가를 내려다보던 견하준이 식탁 위의 젓가락을 집자마자.
“야야야야, 먹지 마.”
다급하게 도시락을 잡아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탈탈 털었다.
“내가 방금 먹어 봤는데, 이건 사람이 먹을 게 아니야.”
“맛을 보긴 봤구나. 그런데 그런 걸 동생 수능 도시락에 싸 주면 어떡해.”
“준아, 내가 그렇게 인성 파탄자는 아니거든. 나도 방금 전에 처음 맛봤어.”
억울함에 항변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도빈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거봐요! 못 먹어서 뱉은 거 맞았네!”
“저한테는 먹어서 증명해 보라 하시더니. 비견하준 차별을 멈춰 주세요.”
류재희도 가세해서 툴툴거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나를 향한 공격에 지쳐 버린 나는 순순히 양팔을 가볍게 들고 종전선언을 했다.
“오케이, 오케이. 이제 도시락 그대로 가져온 거 가지고 뭐라 안 한다. 됐지?”
그렇게 수능 도시락 소동이 마무리되고.
휴가가 끝나자마자 잡힌 라디오 스케줄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자신의 도시락을 한꺼번에 싸다가 실수하셔서 반찬 대신 밥만 두 개가 도시락통에 들어 있었다는 수험생의 사연을 읽어 준 DJ가 우리에게 질문했다.
“레브에도 혹시 수험생이 있었나요?”
김도빈이 곧바로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아, 도빈 씨가 수험생이셨구나. 어땠어요, 잘 보셨어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김도빈이 입술 위에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수능 당일 기억에 남는 일화 같은 거 있으셨는지 궁금한데요.”
DJ의 질문에 힐끗 내 쪽을 돌아본 김도빈이 주저하다가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이든이 형이랑 재희가 도시락을 싸 쥤는데…….”
-아미친 대체 어쩌다가?
-하준이 아니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댓글을 훑었다. 이제는 태평한 마음가짐으로는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을 보니 새삼스러웠다.
원찬스 때까지만 해도 각 안 잡아도 읽을 수는 있었는데.
“그때가 휴가 기간이라 하준이 형이 하필 숙소에 안 계셨거든요. 남아 있었던 사람이 저랑 이든이 형이랑 재희, 셋뿐이었어요.”
-일단 이든이가 왜 휴가때도 집에 못 가고 숙소에 남아 있었는지는 알 거 같다
-하필 남아 있어도 요리 개노답 삼형제가…….
-도빈아 배탈 안 났지?
-멤버들이 수능 도시락을 챙겨 줬다는 말만 들으면 감동실환데 실상을 알면 감동실화가 아님
다들 한마음으로 김도빈의 당시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일단 배탈은 안 났어요.”
“그렇겠죠. 안 먹고 그대로 다시 가져왔으니까. 아침부터 열심히 만들었던 도시락을.”
류재희가 냉큼 일러바치듯 말했다. 나도 동조하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되고 있는 터라 어쨌든 보이긴 할 터였다.
-이해간다 나라도 안 먹었을 듯
-도빈이 착하네 형이랑 동생 상처받을까 봐 선의의 거짓말도 쳐주고
-이든아 네가 아무리 내 최애지만 수능 날에 네가 싼 도시락은 차마 못먹겠다
-그거 먹었으면 영어 시간에 복통으로 쓰러졌을지도
-차라리 컵라면이랑 보온병의 뜨신물을 챙겨 주지
-시도는 좋았으나……
슬프게도 다들 도시락을 그대로 들고 온 김도빈을 이해해 주기만 했지, 아무도 우리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저희 그렇게 요리 못하지는 않는다니까요.”
분명 1주년 기념 라방에서 증명해 보였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우리한테 요알못이라는 이미지가 덮여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물론 이번 도시락은 거하게 실패했긴 했지만.
-악마의열매 지옥에서 올라온 딸기케이크를 잊은거니
-나는 아직 곤약떡볶이를 잊지 않았다
-하준이한테 준따뚜이라는 별명만 선사해 준 하준이 생일상 차리기 라이브를 잊지 못해,,
-이번에는 준따뚜이도 없이 링귀니 1, 2만 있었을 텐데 어떻게 됐을지 눈에 훤함
음…… 우리가 이렇게 많은 요리 콘텐츠를 했었나?
* * *
올해의 연말 시상식 스페셜 스테이지는 S사에서 열리는 뮤직대전이었다.
이번 스페셜 스테이지에는 레브 전체가 나가는 게 아니라 나랑 류재희만 나가게 되었다.
2~4년 차의 적당히 인지도 있는 보이그룹과 걸그룹 다섯 팀에서 리더와 막내, 이렇게 두 명씩을 선출하여 총 4개의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물론 혼성은 아니고 성별로 갈라놨다.
그렇게 만든 그룹끼리 상반된 콘셉트의 크리스마스 송을 부르는 게 이번 스페셜 스테이지였다.
“형네 프로젝트 그룹은 컨셉 파워풀이죠?”
“어어, 파워풀보다는 좀 힙합 컨셉에 더 가깝긴 하지만. 너희는?”
“저희는 뭐 뻔하죠. 청순 큐트 컨셉이요.”
햄스터 이모지까지 꼬박꼬박 붙이며 자기 자신을 햄찌로 지칭하는 녀석은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뚱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너무 뻔한 거 아니에요? 차라리 막내온탑 컨셉으로 막내들에게 강렬한 댄스곡 주고 리더들은 반전매력 컨셉으로 큐트한 곡 줬으면 신선하기라도 했겠다.”
“큐티 컨셉을 그 나이에 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
2년 후에 했으면 혼자만 불쑥 솟아서 그 얼굴로 귀여운 척하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아,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고요. 귀여운 얼굴로도 충분히 힙합 컨셉을 소화할 수 있다는 반전 매력을 보여 주는 게 더 신선하다는 소리잖아요.”
“네 입으로 스스로가 귀엽다고 하면 닭살 안 돋냐?”
어차피 2년 지나고 나서는 듣지 못할 소리…… 는 아니구나. 그렇게 훅 커 버려도 이 녀석은 자기 자신을 거대 햄찌라고 하고 다닌 전적이 있구나.
아무튼, 류재희가 불만을 토로해도 그 불만은 방송국까지 닿지 못했고, 각자에게 주어진 콘셉트는 그대로였다.
곡이랑 콘셉트, 안무는 모두 방송사에서 정해 주었기에 내가 할 일은 그저 열심히 안무와 가사를 익히고 임시 콜라보 팀과 함께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죠? 레브랑 원찬스 때 활동 살짝 겹쳤잖아요.”
“당연히 기억하죠. 오랜만에 뵙네요.”
일단 데뷔 날짜로 따지든 나이로 따지든 ‘On Top’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 그룹에서는 내가 제일 막내였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On Top’에는,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심까.”
KICKS 리더 놈도 포함이었다.
못마땅한 기색을 가리지 않고 내게 고개를 까딱하는 KICKS 리더 놈을 향해 건성건성 인사했다.
차라리 작년처럼 라이벌 상대로 붙어서 경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짓밟아 줄 수라도 있지. 같은 팀이면 짓밟을 수 없잖아.
물론 막내들만 모아 놓은 팀에도 KICKS 막내 놈이 있을 테지만 문제는 거기에 우리 막내 놈도 있었다.
우리가 부를 크리스마스 송은 일렉트로닉 느낌이 강렬한 댄스 장르. 그리고 작곡가 및 프로듀서는…….
“형님, 바쁘시다면서. 이거 때문에 바쁘셨던 거예요?”
“오, 너도 있었냐? 운 좋네.”
“에이, 미리 기획안 받아 보셨으면 저 있는 거 아셨을 텐데.”
“그래, 이 자식아. 내가 이 그룹 맡겠다고 했다. 됐냐?”
킹갓프로듀서, G1이었다.
프로젝트 그룹임에도, 받아 본 안무는 난이도가 꽤 있었다. 녹음 역시 짧은 연습 시간을 주고는 곧바로 진행되었다.
두 번 만에 오케이를 받은 나와 달리 다른 멤버들은 계속되는 ‘다시’ 요구에 고전 중이었다.
<어떤 엔딩> 때는 건성건성 임하는 모습과 오케이를 외치는 모습만 봐서 옛날 기억이 많이 지워졌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까 G1과의 옛날 작업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놈의 ‘다시’ 지옥이 말이다.
“역시 G1 프로듀서님…… 여전히 깐깐하시네.”
함께 작업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녹초가 된 채로 녹음실에서 벗어난 1년 선배 그룹 리더가 터덜터덜 내 옆자리로 와서 널브러지며 중얼거렸다.
“다시. 연습한 거 맞아? 음정이 전혀 안 맞잖아.”
계속 지적을 받는 KICKS 리더 놈을 보며 혀를 찼다.
녹음실 투명부스 너머로 나랑 눈이 마주친 KICKS 리더 놈이 입술을 깨물었다.
녹음은 어찌어찌 마치고 이제는 안무를 맞추어 볼 차례였다.
다들 각자 다른 그룹이다 보니 서로의 스케줄도 있고 해서 시간을 본래 그룹 연습만큼 내긴 힘들었기에 자기 파트를 개인으로 먼저 익히고 합을 맞추어 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채민 씨, 혹시 연습 안 해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지금 스케줄이 겹치다 보니까…….”
“일단 동선만 맞춰 보죠. 채민 씨, 모레까지 파트 다 외워 오실 수 있으시죠?”
다들 리더라서 그런지 갈등의 기미가 보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조율하는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촬영을 위해서 각 소속사를 돌아가면서 연습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번 순서는 뉴본. 오랜만에 걸음 하는 전 소속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