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2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21화(12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21화
메이킹 영상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설치된 연습실에 도착하자, 프로젝트팀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KICKS 리더 놈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했다.
카메라는 이미 켜져 있었다. 아마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찍혔겠지.
‘On Top’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나는 그 틈바구니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애써 펴며 웃어 보여야만 했다.
“이든이 형, 오랜만! 여기 완전 익숙하지! 우리 여기에서 자주 연습했었잖아. 기억나?”
내게 친한 척하는 최현민에게 카메라 앞이라 차마 꺼지라고도 못 하고 어금니를 악물며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물론 카메라가 없었어도 초심도 때문에 꺼지라고는 못 했겠지만.
“오, 두 분 친한 사이세요?”
켜져 있는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궁금해서인지 ‘On Top’ 멤버 하나가 나랑 최현민에게 질문해 왔다. 내가 부정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인 최현민이 냉큼 말했다.
“예전에 이든이 형이랑 데뷔할 뻔했거든요.”
아, 여기에서 이렇게 내가 전 뉴본 데뷔조 소속임을 밝히시겠다?
낙하산 이야기 퍼지면 누가 손해인지 한번 해 봐? 어?
내가 삐딱하게 웃으며 입을 막 열려고 하자 KICKS 리더 놈이 다급하게 최현민을 밀었다.
“야, 빨리 가. 너희도 오늘 연습 있다며.”
“그럼 저는 이만 막내들의 큐트한 프로젝트를 연습하러 바이바이!”
우웩, 바이바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실 회귀까지 한 내 기준으로는 뉴본에 몸담았던 게 거의 10년이 지난 터라 별 감흥은 없었다.
여기가 우리가 함께 연습했던 연습실이라는 것도 최현민이 말해 주고 나서야 알았으니.
뭐, 뉴본 같은 중대형 두고 LnL 같은 좆소로 간 걸 후회하는 꼴을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인데, 유감이지만 견하준에게 말했던 것처럼 딱히 후회는 없었다.
멤버들도 다 모였겠다, 안무 연습이 시작되었다.
저번에 안무를 익히지 못하고 왔던 이도 오늘은 완벽하게 안무를 익혀 왔기에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든 씨랑 윤성 씨는 따로 두 분끼리 연습하신 거예요?”
“예?”
“아니요?”
나랑 KICKS 리더 놈이 동시에 휙 돌아보며 대꾸하자 당황한 프로젝트 그룹 멤버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유독 두 분 합이 잘 맞아서요. 음, 잘 맞는다기보다 윤성 씨가 이든 씨에게 잘 맞춰 준다고 해야 하나?”
“아, 이전에 이 친구가 춤이 좀 부족해서 제가 맞춰 주는 쪽으로 연습을 하던 게 습관이…….”
말하다가 멈칫한 KICKS 리더 놈이 나를 돌아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표정이 곧 멍한 얼굴로 변했다.
잠시 두어 번 숨을 고르던 놈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는 모양인지 연습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남은 이들만 당황 어린 눈으로 빈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카메라가 꺼져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라, 휴식 시간 5분도 안 남았는데…….”
“오늘 여기에서 연습 끝내기에는 남은 기간이 빠듯하거든요? 중간에 다른 날짜 잡기에는 다들 스케쥴도 있으시잖아요. 아무래도 윤성 씨 다시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윤성 씨 번호 있는 분 안 계세요?”
가장 나이와 연차가 많은 4년 차 선배 그룹 리더가 총대 메고 물었다.
가장 리더 역할을 하고 산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이 삐거덕거리는 프로젝트 팀에서 제일 조율을 잘하는 인간이었다.
다들 제 휴대폰 주소록을 확인하는 동안, 가볍게 한쪽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거든요.”
내 직감으론 아마 그곳에 있을 터였다. 없다면 뭐…… 전화해서 빨리 튀어 오라고 협박이나 날리면 되겠지. 아직 번호는 지우지 않았으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뉴본의 복도를 걷고 계단을 내려가니 추억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회상해 보니 이 소속사에 몸담고 있을 당시 딱히 사고나 문제나 기분 나빴던 일은 없었다.
뉴본에서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던 녀석들은 다들 나랑 제법 친한 사이였다.
서예현처럼 안 맞아서 삐거덕거리는 녀석도, 김도빈처럼 유독 내 눈치를 보던 녀석도 없었다.
데뷔조에는 비록 서예현 같은 비주얼은 없었지만 그 같은 실력 구멍도 없었고, 데뷔곡도 <내 우주로 와> 같은 괴랄한 곡도 아니었으며, 뉴본은 트레이닝과 레슨도 잘 갖춰진 꽤 체계적인 소속사였다.
데뷔조 멤버들도 다들 1년 이상 함께 연습해 온 사이라 서로 부딪힐 일도 없었다.
겨우 낙하산 때문에 견하준을 데뷔조에서 밀어낸 게 가장 큰 유감이자 뉴본의 가장 큰 문제였을 뿐이지.
견하준에게 이후에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연습생들의 정치질도 꽤 문제였으나, 당시의 나는 느끼지 못했으므로 이건 일단 문제로 치지 않겠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LnL이 뉴본보다 훨씬 노답이었고 나를 괴롭게 만들긴 했다.
나는 익숙하게 건물 뒤쪽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미성년자였던 최현민의 흡연 장소이자, 트레이너 쌤들에게 깨질 때마다, 혹은 연습 땡땡이를 치고 싶을 때마다 나와서 시시덕거렸던 곳.
우리 나름의 추억의 장소.
역시나 예상대로 KICKS 리더 놈, 권윤성이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놈의 옆으로 다가가 마찬가지로 벽에 등을 기대고 털썩 앉았다.
기척에 옆을 돌아본 KICKS 리더 놈이 마른세수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꽉 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픽 웃으며 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어떻게 우리 잘못이겠냐.”
내 대꾸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슬그머니 든 KICKS 리더 놈이 나를 돌아보았다.
부러 시선을 맞추어 주며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 너희 잘못이지. 여기에 내 잘못이 어디 있어? 니들이 나랑 견하준 뒷담만, 그리고 내 그룹 뒷담만 안 깠어도 사이 파탄 안 났어.”
이어 말하자 KICKS 리더 놈이 벙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반박해 봐. 내가 너네 선빵 때렸냐? 니들 뒷담이 먼저인지 내 독설이 먼저인지 타임라인 한 번 세워 봐?”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도 모자라서 책임 전가야? 내 과실은 0, 니 과실은 100.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 오케이?
“그리고 너는 진짜…… 다행으로 여겨라.”
초심도 시스템이 지금의 내게 존재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이 자식아. 이 빌어먹을 초심도 때문에 내가 너를 후려치지도 못하잖아.
멱살 잡고 싸웠던 회귀 전의 과거를 회상하며 짧은 비소를 내뱉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처맞았던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다.
사과했으면 봐줄 마음이 0.0001%라도 생겼을 텐데 기어이 나한테까지 잘못을 덧씌우려 하는 모습을 보니 봐줄 마음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웠다.
“어쭙잖게 죄책감이고 미련이고 가지지 말고 계속 나랑 레브 무시하면서 까 내려.”
나답지 않은 꽤 다정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움찔거리는 놈을 똑바로 응시하며 덧붙였다.
“그래야지 나도 너네 무너뜨릴 때 뒷맛이 안 찝찝하지.”
툭툭, 어깨를 두드려 주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은 팀으로 묶였으니까 일단은 연습이나 하러 가자고. 남의 시간 뺏으면 쓰냐?”
내 말에 꾹 입을 다문 녀석이 나를 따라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 앞에서 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놈을 보자 불쾌감이 더해졌다.
나는 저놈이 죄송하다, 혹은 미안하다는 단어를 모르는 줄 알았지. 하도 사과를 안 해서.
“아니에요, 휴식 시간에서 2분밖에 안 지났는데요. 이 정도야.”
다시 돌아온 KICKS 리더 놈을 한결 안도한 표정으로 보던 프로젝트 팀 멤버들이 다들 다시 연습 준비를 했다.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나랑 놈이 붙어 있을 때 유독 자연스러운 동선을 자각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기분이 더러운 건지 짜증 나는 건지, 나조차도 상태를 모르는 채로 연습을 이어 나갔다.
* * *
스페셜 스테이지 연습을 마친 후.
뉴본에서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준 로드매니저가 퇴근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류재희와 딱 마주쳤다.
보기 드물게, 기분 더럽다는 티를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며 성큼성큼 걸어오던 류재희는 나를 발견하고는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형, 표정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러는 네 표정은 왜 그러냐? 뭔 일 있었냐?”
내 되물음에 류재희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뭐, 인마. 말로 해.”
“숙소 가서 말해 드린다고요. 이런 건 말하지 않아도 딱딱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독심술사냐. 삿대질 하나 보고 네 마음 읽게.”
타박하자 류재희가 밉지 않게 입을 비죽였다.
“그런데 내 표정은 왜?”
내 표정이 어땠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까지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자 볼을 긁적인 류재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오랜 친구랑 절교하고 온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래서 혹시 형이 하준이 형이랑 싸웠나 싶었다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형도 연습 가서 싸울 틈이 없겠더라고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랜 친구? 내가, 그 녀석이랑?
친했냐고 묻는다면, 친했다. 뉴본에서 견하준 다음으로.
비록 아무도 견하준의 편을 들지 않고 윗선의 결정에 수긍했을 때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분은 계속 이어 나가고 있었다.
뒷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회귀 전에 낙하산에게서 뒷담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더욱 열 받았지.
멱살잡이하고 주먹다짐까지 했지만 앙금은 풀지 못한 채 다시 과거로 돌아와 또다시 우리를 기만하려 한 너를, 너희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뻔뻔하게 나오던 회귀 전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쏟아 내던 말에 당황하던 너희를 마주했을 때.
그때의 내가 느꼈던 건 통쾌함이었나, 후련함이었나.
아니면 반박 하나 못하던 너희를 향한 실망감이었나.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대표님이 감 찾는 날은 영영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내가, 회의에서 대표님이 무어라 하든 내 의견을 주장하며 가볍게 넘기는 것도.
서예현의 랩 성장 가능성이 C-임을 알고 있는 내가 서예현에게 랩 파트는 기대하지 않고 거슬리지 않게 들릴 수준으로만 만드는 것도 그 일종이었다.
그럼 내가 그 녀석들에게 실망했던 이유는…….
“하…….”
뒤늦은 깨달음에 허탈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아주 늦은, 완전한 절교였다.
내가 헛웃음을 흘리자 아닌 척 나를 힐끔거리기 시작하는 류재희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한마디 했다.
“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니까 괜히 눈치 보지 마, 인마.”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겉옷을 벗어 소파 한구석에 던져놓고 소파에 편히 앉아 옆자리를 탁탁 쳤다.
옆자리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대고 앉는 류재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표정이 그 모양이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