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2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22화(12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22화
“프로젝트 팀 놈들 짜증 나요. 한 놈만 그 모양이면 ‘그래, 세상은 넓으니, 저런 놈도 있을 수 있고, 나랑 같은 팀일 수도 있지.’하고 넘기겠는데 그런 놈이 한두 놈이 아니에요.”
류재희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 모습에 기시감이 들어 어디서 봤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저거 내 습관이잖아.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건가.
“배려심도 없고, 자기 돋보이는 게 우선이고, 바쁘다고 연습도 안 해 오고, 실력은 없으면서 파트 욕심부리느라 계속 삑사리 내고! 연차도 제일 낮고 나이도 제일 어려서 지적도 못 하니까 진짜 속 터지겠더라고요.”
내가 심란해하든 말든 류재희의 한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씩씩거리면서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조별 과제 잔혹사 한 편 찍는 모양이었다.
리더들만 모인 우리 프로젝트 팀은 약간 삐걱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의견을 조율하며 순탄하게는 굴러 가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리더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배워 가는 중이었다. 무작정 명령하고 이끄는 게 리더십은 아니더라.
파트도 애초에 G1이 인지도보다는 멤버들의 실력 위주로 나누었기에 다들 파트에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류재희의 프로젝트 팀 프로듀서는 그룹 인지도랑 소속사 규모를 우선해서 파트를 나눴다.
그래도 레브가 라이징 소리를 듣는 덕에 받은 파트가 적진 않다며 류재희가 말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파트부터 그렇게 경쟁을 붙여 놓으니 협조가 되겠는가. 카메라에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비치고 튀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 버리지.
“그리고 최현민 그 인간은 왜 그렇게 은근히 시비를 걸어 대는지. 웃으면서 사람 속 긁는 거 진짜 짜증 남요. 래퍼라면서 보컬 욕심은 대체 왜 부리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그러고 보니 최현민도 류재희 팀에 있었지.
오늘 나하고 마주쳤으니 류재희에게 시비를 걸어 댈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류재희는 이제 주먹으로 소파를 퍽퍽 내리치고 있었다.
“다들 팀에서 막내라고 형들이 오냐오냐해 주나 봐요. 씨이, 깡그리 모아다가 레브에서 막내 체험 한 번씩 시켜봐야 해요.”
영 거슬리는 말에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너도 레브에서 막내라고 상당히 오냐오냐 자란 편 아니냐?”
그 말에 코웃음을 친 류재희가 반박했다.
“형,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형들이 저를 오냐오냐한 적이 있었나요.”
류재희의 말을 따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이 정도면 정말로 막내라고 부둥부둥해 준 수준 아닌가?
“나 정말로 착한 형이었네.”
“양심은 어디에 두고 오셨어요?”
“야, 내가 언더에서 크루 막내였을 때는 온갖 잡심부름 다 떠맡고 살았어, 인마. 쌍욕 먹는 건 기본이었고. 지금도 모이면 막내 신세라 내가 얼마나 부려 먹히는데. 너는 복 받은 줄 알아야 한다니까.”
투덜거리자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은 꼰대예요.”
“와, 세상 좋아졌다. 내가 거기에서 꼰대라는 단어를 뱉었으면 바로 뒤통수 후드려 맞았을 텐데. 세상 차암 좋아졌어.”
이죽거리자 류재희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오, 꼰대 18번 대사.”
저놈은 레브 막내 체험 운운하기 전에 언더 크루 막내 체험 한 번 시켜봐야지 제가 얼마나 우쭈쭈받으면서 사는 건지 알지.
[멤버들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오픈 마인드를 지닌 나한테 꼰대라고 한 류재희가 더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거 아니냐.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보통 남의 빡센 경험담을 들으면 ‘아, 나는 편하게 산 거구나’ 싶어서 위로가 되지 않나?
이해할 수 없는 위로의 기준에 혀를 차며 류재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별거 있냐. 두 달짜리 프로젝트 팀이 다 그런 거지, 뭐. 그냥 레브 대표로 고생하고 있다- 생각해.”
“끄응, 그러고 보니 형도 고생하고 계시는데 저만 너무 불평 늘어놨네요.”
“엉? 나는 딱히 고생 안 하는데?”
한 놈 빼고는 다들 제정신 박힌 사람들이라 KICKS 리더 놈과 함께 연습하는 걸 제외하고는 딱히 고생이라 말할 건더기도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자 류재희가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레브에서 막내라고 오냐오냐 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야, 다음 연습에서 너네 멤버들에게 물어보고 와. 팀 형들이 막내라고 밥숟가락으로 밥 떠먹여 주고 자장가 불러 주냐고.”
“그건 막내라고 우쭈쭈가 아니라 애기 취급이잖아요. 저도 애기 취급까지는 안 바란다고요.”
서러웠던 기억 때문에 나름 내가 받았던 막내 취급에서 개선된 취급을 해 줬건만.
류재희와 오냐오냐의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서예현에게서 온 문자였다.
같은 팀 멤버이긴 하지만 문자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라 웬일이지 싶었다.
[서예현- 너 혹시 숙소야?] 오후 10:22 [서예현- 숙소면 혹시 근처 편의점으로 한 번만 나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오후 10:23방에 있는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자 텍스트로만 봤을 때는 꽤 침착해 보였지만, 굳이 서예현이 내게 문자를 보내서 저를 데리러 와 달라는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굳이 류재희한테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계속해서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 내는 류재희를 제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분명 같이 간다고 떼를 쓸 게 뻔했으므로.
마스크를 쓰고 겉옷을 챙겨 입고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숙소와 편의점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예현아, 마스크 한 번만 벗어 보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서예현이 사람 서너 명에게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자 상황이 대충 파악되었다.
‘사생이군.’
곧바로 휴대폰 녹음을 켜고 성큼성큼 서예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예현아, 좀 떴다고 스타병 걸린 거야? 초심 잃었어?”
나를 발견하고 눈이 커진 서예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수신호를 보내고는 사생들의 뒤에 서서 손을 뻗어 한창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는 사생 휴대폰의 카메라 앱을 껐다.
“아, 씨발! 누구야!”
“한밤중에 이러면 있던 초심도 달아나겠다.”
내 빈정거림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사생이 씩씩거렸다.
“아저씨는 또 뭔데-.”
“와, 아저씨라니. 나 아직 스물한 살밖에 안 먹었는데 너무 마음 아프다.”
마스크를 쓱 내리며 심드렁하게 맞받아치자 드디어 내 얼굴을 본 사생이 눈을 깜빡였다.
“헐, 윤이든……?”
대꾸하지 않고 혹시나 몸이 닿을까 한 발짝 물러났다.
사생이 열댓씩 붙어도 숙소 이사를 더럽게 미루던 회귀 전의 소속사 덕분에 사생팬을 대하는 건 도가 튼 수준이었다.
회귀 전에는 내가 사생을 존나게 싫어한다는 소문이 쫙 퍼져 내게는 사생이 그리 많이 붙지 않았지만, 서예현은 꽤 시달렸었다.
“가자, 형.”
서예현의 팔을 잡고 데리고 나오려고 하자 다시 가로막혔다.
정색하며 내려다보자 움찔한 사생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대충 내 선에서 정리되는 사생팬들은 매니저 형을 부를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정색하는 걸 보고도 달라붙으면 그건 진짜 겁대가리가 없는 거라 그때는 정말로 바로 매니저 형 불러야 하고.
“아, 씨발, 뭔데 진짜. 지가 무슨 예현이 경호원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불평에 맞다는 표시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맞대어 ok 사인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그 말 듣고 꼬와서 서예현을 버리고 가리라 생각했으면 오산입니다.
다행히 사생들은 아파트 단지 안까지는 따라붙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밤중에 무슨 개고생인가 싶었다.
하지만 서예현 입장에서도 나 말고 부를 다른 멤버가 없었을 터였으므로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 숙소 층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그제야 말수 하나 없던 서예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편의점도 마음 놓고 못 가겠네…….”
미간을 문지르며 서예현이 한탄했다.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건전지를 꼭 쥔 채였다.
“대체 마스크랑 모자로 꽁꽁 가렸는데 나인지 어떻게 알아본 거야? 편의점 가는 손님이 나만 있던 것도 아닌데.”
“거울 봐 봐. 못 알아보겠는지.”
숙소 현관에 있는 거울을 가리키자 서예현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훑었다.
“진짜 못 알아보겠는데?”
떨떠름한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00m 뒤에서 봐도 서예현이다.
“도와줘서 고맙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서예현이 멋쩍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같은 팀인데 데리러 가는 거 하나 못해 주겠어?”
내 대꾸에 피식 웃은 서예현이 중얼거렸다.
“그러네. 이제는 정말 같은 팀 같네.”
이제까지 같은 팀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묻기에는 당장 나부터 그랬으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 마주 웃어 주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잊고 있었다. 우리가 같은 방이라는 사실을.
‘시발, 더럽게 어색하네…….’
쓸데없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한 대가는 무거웠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어색한 공기에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 * *
스페셜 스테이지까지 D-10.
리허설을 제외하면 오늘이 프로젝트 팀 ‘On Top’이 따로 모여서 연습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의 대화 이후로 KICKS 리더 놈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의도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알 지경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하필 안무 중에 나랑 녀석이 어깨동무하는 안무가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동작이.
“두 분 혹시 싸우셨어요?”
노래가 끝나자마자 4년 차 그룹 리더가 우리를 향해 물어 왔다.
싸운 건 진작 싸웠고, 지금은…… 둘 다 알게 된 거지.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걸.
“이든 씨 랩 파트에서 윤성 씨랑 붙을 때 너무 어색해 보이거든요? 지금 와서 동선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서로에게 사감이 있더라도 무대에서는 좀 숨겨 주세요.”
따끔한 충고에 볼을 긁적이며 고개만 끄덕였다.
“다시 한번 가죠.”
다시 AR이 재생되었다.
내 파트를 들으며 녀석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치자 녀석이 몸을 움찔했다.
“똑바로 하라고, 똑바로.”
녀석의 귀에 음산하게 속삭였다.
공은 공, 사는 사. 너 때문에 우리 팀이 최현민 있는 팀에게 발리면 책임질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