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2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27화(12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27화
“보니까 랜덤플레이댄스는 무조건 시키더라고요. 프로젝트 그룹이라 각 그룹 대표곡으로 돌릴 것 같은데 미리 연습하고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고요.”
“도빈이한테 도움 좀 받아야겠구먼? 그런데 대표곡의 기준이 뭔데?”
“킥스랑 신드롬, 인트로진은 대충 예상이 가는데 우리랑 레볼루션은 애매하긴 해요. 레브는 일지 일지 모르겠고, 레볼루션은 일지 일지 모르겠어서…… 레볼루션 곡은 둘 다 연습해 가세요.”
“타 아이돌 춤까지 익혀야 한다니, 귀찮아 죽겠네…… 그냥 대충 추면 안 되냐. 우리 거도 아닌데.”
괜히 투덜거렸다. 서예현처럼 춤을 못 추는 편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로 오디션을 봤던 대형 기획사에서 댄스 때문에 떨어지기도 했고, 랩은 춤보다 제스처였기에 딱히 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설렁설렁한 태도와 마인드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아야, 귀찮다는 말도 못 하냐.
“형이 도빈이 형이 아닌 이상은 연습해야죠. 형 춤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는 해도 모르는 안무를 남들 하는 거 보고 곧바로 따라 출 수준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도 나의 한계는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형이 대충 하면 쪽팔리는 건 우리 팬들이에요. 다들 잘 추는데 형 혼자 못 따라가면서 안무 실수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사실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정체는 류재희가 아닐까. 회귀 전에도 귀찮아하는 나를 붙잡고 이래서 이러면 안 된다, 이래서 이래야 한다고 잔소리해 대던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아닙니다.]어어, 그래.
“각 그룹 기본적인 정보, 예를 들면 몇 인조 그룹이라든지, 데뷔일이라든지, 그런 것도 숙지하면 좋죠.”
내게 이것저것 충고하는 류재희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 그룹이 나오는 건 또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를 모르겠네요.”
류재희는 영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 뭉쳐야 하는 팀도 아니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실 나가듯 가볍게 다녀오려 했던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슬슬 레브도 섭외될 것 같아서 이전 편들 보면서 분석 좀 해 봤죠. 형 혼자 먼저 섭외될 줄은 몰랐지만.”
항상 말하는 거지만 이 짓을 시스템의 조종 없이 자율의지로 하고 있는 류재희는 참 대단한 놈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형이 그 팀에서는 막내죠?”
“어어, 하필 권윤성 생일이 6월이라 내가 막내야.”
“내아소에서 꼭 막내한테 애교시키더라고요. 저야 준비된 인재니까 문제없는데 형은 좀…….”
지금 7년+1년 짬밥의 아이돌에게 애교를 문제라고 들이밀어?
코웃음을 치다가 멈칫했다. 애교도 유행을 따른다.
조금 지난 애교를 들고 오면 촌스럽고 올드하게 비추어질 수가 있고, 만약 지금 시점보다 이후에 유행하는 애교를 들고 오면.
나는 그 애교의 선두주자가 되어 버려 온갖 곳에 불려 가 그 애교를 선보여야 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무슨 애교가 유행하더라…….
“요즘 귀요미송 유행이거든요? 형, 귀요미송은 알아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류재희가 내 마음속 물음에 대답했다.
이 미친 타이밍은 류재희 시스템 음모설에 신뢰감을 한층 더해 주었다.
[아닙니다.]어어, 알았다니까. 거참 단호하네. 사람 무안하게.
“알기야 알지.”
물론 해 본 적은 없었다. 그야 회귀 전에 우리가 뜨고 난 후에는 귀요미송 유행이 한물갔는걸.
그래도 지금 이 시점에 유행하는 애교가 ‘귀신꿈꿨어’ 애기동자 버전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가늘게 뜬 류재희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요?”
“그래, 안다니까?”
“1절부터 6절까지 다 알아요?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긍정이 아니고요?”
“그래, 인마. 6절까지 안다고. 속고만 살았냐.”
“자, 그럼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도빈아! 형 춤 좀 가르쳐라!”
제 앞에서 내 애교를 유도하는 류재희의 모습에, 벌떡 일어나 다급히 김도빈을 찾았다.
“아, 형! 빨리 애교 해 보시라니까요! 안 되면 특훈이라도 하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나 애교 잘해! 나 완전 애교 킹이야!”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질질 매달리는 류재희를 달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애교 킹인데 왜 제 앞에서는 못하는데요!”
“내가 이 나이 먹고 동생 앞에서 애교를 부려야겠냐! 김도빈! 빨리 안 튀어나오냐!”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자 웬일로 늦잠을 잔 모양인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온 서예현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막내야, 너 취향 진짜 이상하다…… 볼 게 없어서 윤이든 애교를…….”
“제 취향은 정상이거든요! 이든이 형 애교를 딱히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방송을 위해서거든요! 누구를 이상 취향 만들고 그러세요!”
울컥한 류재희가 서예현의 말에 반박했다.
“야, 그게 그렇게 목에 핏대 세우고 따질 만한 일이야? 내가 애교 부리는 걸 보고 싶은 게 이상 취향이냐고.”
기가 막혀서 걸음을 멈추고 물으니 류재희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예현이 형이 이상하게 몰아가잖아요!”
“그래, 인마. 실컷 보고 이상 취향 적립해라. 1 더하기 1은-.”
“하아, 아침부터 인생 빡세다, 진짜…….”
내가 볼에 손가락을 누르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쉰 서예현이 눈을 비비며 방으로 들어갔다.
“내 애교가 뭐 어때서!”
“아니요, 형! 완전 잘 어울려요! 완전 귀여웠음요! 괜히 예현이 형 잡지 말고 계속해 봅시다!”
류재희가 내 허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방으로 쫓아 들어가려는 나를 막았다. 저 방이 내 방인데 왜 들어가지를 못해!
* * *
<내 아이돌을 소개합니다> 촬영 당일.
촬영 스튜디오에 모인 우리는 최대한 메이킹 촬영 당시 카메라 앞에서의 화기애애함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MC 2의 주도 아래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On Top 촬영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 등을 하며 토크를 이어 나가던 중, 진행에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보고 있던 MC 1이 턱을 쓸며 말했다.
“아, 다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데면데면해 보이는데?”
“아니에요, 저희 친해요!”
“맞아요, 저희가 On Top 활동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친해졌는데요.”
시온이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고 우리가 동조했지만, 대본에 지금 게임 한 번 하라는 게 있었던 듯, 어색한 사이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연차 비슷하고 동갑에다가 인터넷에서 한창 묶이던 조합인 탓에 내 게임 상대는 권윤성이었다.
대체 돈이 뭐라고 얼마 전에 절교한 전 친구 놈과 껴안고 풍선 터트리기 같은 게임을 해야 하는 건가.
동태눈깔로 변하려는 눈을 애써 생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란히 선 나와 권윤성, 강한과 시온, 그리고 MC 1과 준혁.
5분 동안 서로 껴안고 풍선을 가장 많이 터트리는 팀이 우승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꼴찌를 직감했다.
풍선을 터트리려면 최대한 꽉 붙어야 하는데 나랑 권윤성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1등 하면 뭐 주는 것도 아니고, 대충 하지.’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내 발치에 툭툭 채이는 풍선을 가볍게 건드리고 있는데 MC 2가 은근한 어투로 입을 뗐다.
“여기에서는 On Top이라는 그룹으로 뭉쳤지만 다들 각자 그룹에서는 리더이시잖아요?”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자 스태프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걸 받아 든 MC 2가 우리에게 상자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한우 선물세트! 짜잔!”
“멤버들에게 위신을 세울 아주 좋은 기회! 이런 좋은 기회, 두 번 다시 오지 않아요.”
저 정도면 레브 다섯 명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밥상에서 내가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팀의 리더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갑자기 살아났다.
기다려라, 멤버들아. 이 리더가 오늘 한우 들고 간다.
제일 먼저 MC 1과 준혁이 게임을 시작했다. 의욕 없는 준혁의 모습과 달리 그들은 5분 만에 풍선 18개를 터트리는 쾌거를 이뤄 냈다.
“이게 다 노하우가 있어요. 빨리빨리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준혁이 이 친구가 노하우를 잘 알아.”
MC 1이 어깨가 잔뜩 올라간 채로 히죽거리며 말하면서 준혁의 등을 두드렸다.
다음으로는 시온과 강한의 차례였다.
“자자, 한우 가져갑시다!”
“파이팅!”
잔뜩 기합을 주며 서로 마주 본 그들은…….
“으악! 어디 가는 거야! 풍선 어디 갔어!”
“아니, 풍선이 저희를 밀어요! 안 터져!”
계속해서 풍선을 놓치고, 그들 사이에 낀 풍선이 튕겨 허공으로 날아가고, 자꾸만 풍선의 움직임을 따라 밀려남으로써 6개라는 기록을 세웠다.
‘18개만 넘으면 된다는 소리군.’
권윤성과 마주 보며 우승에 필요한 풍선의 개수를 계산했다.
스타트를 알리는 버저 소리가 들리자마자 발밑의 풍선을 잽싸게 집어 들어 권윤성과의 사이에 두었다.
서로의 팔은 서로의 허리를 어색하게 감싸고 있었다. 풍선이 사이에 있는데도 권윤성은 가까이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좀 팍 붙어 봐.”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토끼 같은 우리 멤버들에게 한우 세트를 가져다줘야 한단 말이다! 나를 향한 respect를 높일 기회라고!
나랑 최대한 몸을 붙이지 않으려는 권윤성의 허리를 팔로 팍 끌어당겨 바싹 붙였다. 우리 중간에 있던 풍선이 단번에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지금 시발 한우가 걸렸는데 우리가 인연 끊은 게 대수냐? 그냥 풍선 터트리기용 인형 하나 끌어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곧바로 풍선 하나를 주워 다시 권윤성을 꽉 끌어안았다.
풍선 터지는 소리에 권윤성이 움찔했지만 바로 풍선 하나를 더 주워 몸을 붙였다. 지금 풍선 소리에 놀랄 시간이 어디 있어?
“둘이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야?”
“아니, 저 스피드 뭐예요? 사람이 아니라 거의 압착 프레스 수준인데요?”
“이건 거의 내아소 신기록이에요. 오늘 신기록 갱신하겠는데?”
“역시 한우의 힘은 대단하네.”
마지막 감탄사는 4년 차 그룹 리더, 준혁이었다.
우리가 멱살 잡고 서로에게 욕설 날리면서 싸운 걸 직관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