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2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29화(12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29화
“엥? 더 안 먹어?”
약간 덜 구워서 아직 핏기가 비치는 소고기를 우물거리며 묻자, 미간을 문지른 견하준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권윤성 이야기를 내 앞에서 또 꺼내는 이유는 뭐야?”
“너희 감정의 골이 그렇게 깊었냐…….”
권윤성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짜증이 치솟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이유 모를 냉전의 시작도 권윤성의 사과를 대신 전달하고 나서부터였지.
“말했잖아, 사과받을 만큼 의미 있지도 않았다고. 너 혹시 일부러 그래?”
의미 모를 말에 타고 있는 소고기를 젓가락으로 뒤집으며 눈을 멀뚱히 깜빡였다.
“아니, 뭐를?”
나는 네가 의미 있지도 않았다면서 권윤성 이야기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이제는 내게도 아무런 의미 없는 녀석인데.
“아니다. 내가 말실수했네.”
그런 내 반응을 보던 견하준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먹으라고 상품으로 타 왔는데, 왜 몇 점 먹지도 않고 들어가? 이게 얼마짜린데?
“한우 잘 먹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데?”
“그냥, 한심해서.”
그 말에 나도 입맛이 떨어져 탁,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류재희가 슬그머니 불판의 화력을 줄였다.
“야, 하준아.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정색하며 묻자 마른세수를 한 견하준이 말을 정정했다.
“주어 말하는 걸 깜빡했네. 내가,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 말만 남기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견하준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구겼다.
저건 또 뭔 소린데.
일단 시스템이 불화 조장 어쩌고로 초심도를 깎지 않았으니 이 대화에서 내 잘못은 없다. 이건 확실하다.
“하준이 형 몫만 더 빼 놓고 먹져. 형들 싸우는 건 이제는 익숙해서, 뭐…….”
그 와중에도 태평히 소고기를 집어 먹고 있던 김도빈이 제안했다. 집게를 쥔 채로 굳어 있던 류재희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타박했다.
“형, 지금 소고기가 넘어가?”
“한우는 죄가 없어.”
“그래, 형은 눈치가 없고.”
“도빈이 말대로 한우는 죄가 없지. 그래도 익혀는 먹어라, 도빈아.”
내 말에 류재희가 한숨 쉬며 불판 온도를 다시 높였다. 다시 소고기 파티가 시작됐다. 다만 먹는 속도는 처음보다 현저히 늦어졌다.
“그러고 보니까 혹시 내가 걔랑 확실히 정리했다고 말 안 했냐?”
“그러게요? 안 한 것 같은데요…….”
“안 했어요.”
“손절 했어? 오늘 이야기만 들으면 다시 화해한 것 같던데.”
김도빈, 류재희, 서예현이 차례로 대꾸했다. 서예현의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켰다.
“대체 내가 한 말 어디에서?”
“너는 절교한 친구랑 풍선 터트리기 게임에서 이길 정도로 껴안는 게 가능해?”
“한우가 걸려 있는데 당연하지. 그럼 내가 나 좋으라고 껴안았겠냐?”
투덜거리자 서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무섭긴 무섭다, 참.”
찬양은 듣지 못할망정, 망한 분위기에 이어 한우에 미친놈 취급까지 받게 된 나는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에이씨, 멤버들 먹이려고 몸 바쳐서 한우 받아 왔더니.”
“아무도 너한테 절교한 친구랑 끌어안기까지 하면서 한우 받아 오라고 강요 안 했거든.”
“형은 먹지 마, 그럼.”
“안 그래도 그만 먹으려고 했어.”
우리의 대화에 류재희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내 입에 집게로 소고기를 쑤셔 넣었다.
“왜 형들까지 싸우려고 하는데요.”
강제로 입안에 쑤셔 넣어진 소고기를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뭘 싸워? 이건 그냥 대화거든?”
“그래, 막내야. 우리 싸우는 거 아니야.”
“하준이 형하고도 그렇게 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뭐 때문에 저러는지 알아야지 풀든 말든 하지.”
투덜거리며 김도빈이 넘보기 전에 견하준 몫의 고기가 담긴 그릇을 옆으로 쓱 치웠다.
* * *
한우 사태로부터 이틀째.
그리고 윤이든과 견하준의 냉전이 지속된 지 일주일째.
“형이 수고 좀 해 주세요.”
팀 분위기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류재희가 결단을 내렸다.
“하준이 형이나 이든이 형이나, 어린놈한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든이 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하준이 형도 은근 자존심이 세서…… 그러니까 형의 역할이 엄청 중요해요. 둘의 속마음을 끌어내야 한다고요.”
서예현을 붙들고 류재희가 신신당부했다.
“형한테 우리 그룹의 미래가 달려 있어요.”
“막내야, 괜히 짐 지우지 말아 줄래…….”
류재희의 비장한 말에 서예현이 힘없이 대꾸했다. 최연장자라는 이유로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 그는 이 화해 프로젝트에 영 회의적이었다.
그냥 둘이 한 방에 밀어 넣고 못 나오게 막으면 안 되나. 그렇게 두면 안에서 주먹질을 하든 대화를 하든 알아서 풀지 않으려나.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는 견하준과 김도빈이 함께 쓰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현이 형?”
왜 왔냐는 물음이 함축된 그 부름에 서예현이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아, 도빈이가 방 한 번만 바꿔 주라고 해서…….”
“도빈이가 이든이랑 한 방을 쓰고 싶다고 했다고요?”
물론 김도빈의 자발적인 의견은 아니었다. 팀을 위한 눈물겨운 희생이었지.
제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서예현은 일단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픽 웃은 견하준이 물었다.
“이든이랑 저 때문에 그렇죠?”
속내를 단번에 간파당한 서예현이 김도빈의 침대에 풀썩 누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해서. 네가 그렇게 반응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야.”
“있죠. 이든이에게 직접 말하기는 쪽팔린 이유라서 문제죠.”
“나한테도 말 못할 정도야?”
“궁금해요? 과거 일까지 들춰야 해서 꽤 지루할 텐데.”
웃음기 서린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견하준이 나직한 목소리로 과거를 꺼내 놓았다.
“저는 뉴본에 좋은 기억은 없어요. 정치질에, 텃세에, 인성 덜된 놈들, 실력 있는 사람만 보면 견제하는 놈들 바글바글하고.”
[도빈아 윤이든에게 뉴본 어땠냐고 물어봐봐] 오후 11:47서예현은 그 말을 들으며 윤이든과 한 방에 있을 김도빈한테 잽싸게 문자를 보냈다.
지독한 침묵이 감도는 도중,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머쓱하게 웃은 서예현이 곧바로 휴대폰을 무음으로 변경했다.
[도빈이- 괜찮았다는데요? 나름 좋았대요] 오후 11:49 [정치질, 텃세, 견제 없었대?] 오후 11:49 [도빈이- 있었다고 하준이형한테 전해 듣긴 했는데 자기는 체감 못 했대요] 오후 11:51같은 소속사, 다른 평가.
하지만 화자가 화자인지라 견하준 쪽으로 신뢰가 기울 수밖에 없었다.
“윤이든은 체감 못 했다는데.”
“못 알아차릴 만하죠. 저랑 달리 이든이는 정치질 대상도, 텃세 대상도, 견제 대상도 아니었으니까.”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서예현의 표정을 보고는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 애들 있잖아요. 언제나 무리에서 중심이 되는 애들. 이든이가 딱 그랬어요.”
윤이든이 그럴 만한 놈인가?
서예현의 기억 속에 가장 짙게 남은, 연습생부터 데뷔 초 시절의 악귀 들린 윤이든을 떠올렸을 때는 전혀 공감이 안 되긴 했어도.
여유가 생긴 현재의 윤이든은 인정하기 싫지만 그럴 만한 놈이 맞았다.
“뉴본에서 그런 이든이랑 성격이 잘 맞아서 친해진 건 권윤성이에요. 제가 아니라.”
서로 얼굴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비꼬고 잡아먹으려 드는 모습밖에 보지 못한 서예현으로서는 꽤 의외였다. 그 둘한테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둘이 정말 친했어요. 저랑 걔 사이보다 권윤성이랑 걔 사이가 더 가까웠을걸요.”
[도빈아 뉴본에서 킥스 리더랑 더 친했는지 하준이랑 더 친했는지 물어봐봐] 오전 12:07 [도빈이- 비슷했다는데요?] [도빈이- 그런데 아무래도 같이 자작곡 가이드녹음 따고 그래서 하준이 형이 더 가까웠대요] 오전 12:10 [도빈이- 헐 형 이든이 형 눈치챈듯여 심기 불편해 보여서 더 못 물어보겠어요ㅠ] 오전 12:11‘하준아, 윤이든은 너랑 더 가까웠단다.’
차마 지금은 하지 못 할 말을 속으로 삼키며 서예현은 휴대폰을 껐다.
“그래서 좀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네요. 아무리 권윤성이 뒷담에 가담했다고 해도 그동안 쌓인 정을 그렇게 짧은 시간 만에 털어 낼 리가 없으니까.”
허공에 실소를 내뱉은 견하준이 덧붙여 중얼거렸다.
“혹시 나 때문에 둘 사이가 멀어졌다고 원망하는 걸 그렇게 돌려 표현한 건가 싶어서…….”
서예현은 땅굴 파고 들어가려는 견하준을 황급히 붙들었다.
“윤이든이 그렇게 고도로 돌려 말할 놈은 아니잖아. 걘 그렇게 못 해. 내가 봤을 땐 걔는 직설적으로 말 안 하면 죽는 병에 걸렸어.”
“그래서 말실수했다고 한 거예요. 저도 울컥해서 답지 않게 생각 없이 뱉은 거라.”
견하준이 머쓱하게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윤이든 말로는 킥스 리더랑 확실하게 정리했다는데? 윤이든 성격상 깔끔하게 털어 냈겠지.”
“아니요, 의외로 이든이가 정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 꼴 보기 싫은 최현민 흡연 사진도 안 뿌리고 협박용으로나 쓰고 있지. 저한테 있었으면 진작 뿌렸어요. 나 참, 자기들이 좆 같이 살면서 누구 보고 씹선비래?”
정 많은 윤이든은 둘째치고 은근 성깔 있는 견하준의 모습에 서예현은 조금 놀랐다.
“그럼 너희는 뭐 때문에 친해진 건데?”
“저도 모르겠는데요. 음색이 자기 마음에 들었대요.”
“설마 그게 끝이야……?”
견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대체 왜 권윤성 두고 겨우 나 따위를 따라서 뉴본 데뷔조까지 걷어차고 나온 건지.”
이게 이 갈등의 시초임을 알아차린 서예현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윤이든, 이 미친놈아. 이유를 너무 생략했잖아.
“왜 그래 놓고 내가 먼저 자기를 끊어 낼 거라고 확신하는 건지. 우리는 망하지도 않았고, 내가 걔한테 가진 부채감은 이제 망할 대표님의 존재밖에 없는데.”
원망한 적 없다고 했으면서…… 언젠가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견하준이 자조했다.
“그냥 손절 하기 전에 말해 달라고만 하지 않았어? 따지고 보면 확신은 아닌 것 같은데.”
“걔가 그렇게 말한 것 자체가 확신이에요. 이미 자기 머릿속에서는 결론 내리고 말한 거거든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게 이번만은 독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제 마음속의 말을 모두 털어 낸 견하준이 담담하게 사과를 건넸다.
“분위기 가라앉힌 건 죄송해요. 이유가 있었다 해도 다 모인 식사 자리에서 그런 건 합리화할 수 없죠.”
“괜찮아. 같은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하기는커녕 제가 뭘 잘못했냐고 뻔뻔하게 나올 놈도 있는데, 뭐.”
그 ‘뻔뻔하게 나올 놈’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거렸다.
* * *
“나한테 견하준은 뭐냐고?”
뜬금없는 서예현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툭 대답을 던졌다.
“특별하지.”
“그러니까 왜.”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귄 친구니까.”
이유를 말해 달라 해서 말해 줬건만, 서예현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왜 특별해?”
“그야 이제까지는 내가 먼저 다가가서 친구를 사귄 일이 없었으니까.”
“대체 얜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거지…….”
떨떠름한 혼잣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大)자로 누웠다.
“김도빈도 그렇고, 형 너도 그렇고, 이번에 준이도 그렇고…… 인간관계란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방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자 서예현이 한심하다는 어투로 대꾸했다.
“인간관계는 원래 어려운 거야, 멍청아.”
“글쎄…….”
학창 시절부터,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중에서 나랑 맞는 놈들을 고르기만 하면 됐다. 편했지.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용철이 형이 먼저 다가와 줬고, 크루 형들과 친해지고 계속 지인들을 건너 건너 소개받으며 인맥은 쉽게 넓어졌다.
뉴본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곳에서 어려웠던 건 오직 친해지고 싶었음에도 내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견하준 하나뿐이었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어려워 본 적이 없어서.”
회귀 전에도 데뷔 이후부터 꼬이기 시작했으니.
느릿하게 말하자 한숨을 내쉰 서예현이 툭툭, 제 침대를 두드렸다.
“그동안은 너를 좋아하는 놈들만 네 주변에 모였을 테니 당연하지.”
내가 저를 돌아보자 진지한 눈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한 서예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너 좋아서 모인 놈들 아니야. 우리 시작은 비즈니스라고. 너는 그걸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