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3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30화(13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30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레브에서 견하준과 류재희만을 편하게 여겼던 이유는 그 둘만 내게 익숙했던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견하준은 팀원이라는 관계성 이전에 뉴본에서부터 서로를 잘 알아 온 친구였기에.
그리고 류재희는 나를 선망하고 잘 따르는, 내가 이제까지 지겹도록 봐 왔던 그런 인간군상이었기에.
습관처럼 익숙한 관계만을 찾으며 낯선 관계를 배제하던 내 모습을 서예현이 제대로 꼬집은 것이다.
레브는 내가 이제껏 겪어 왔던 인간관계처럼 내가 좋아서 모인 놈들이 아니고, 멤버들이 내게 맞춰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회귀 전, 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회귀 전 멤버들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감정의 골이 깊어 나와 대화조차 하지 않았던 서예현.
서예현과 마찬가지로 나를 회피하던 김도빈.
가끔 한 번씩 지친 표정을 짓던 견하준과 류재희.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내가 여유가 생겼다는 것과, 망할 시스템이 하도 불화 조장이라고 초심도를 깎아 대는 바람에 말을 내뱉기 전, 이게 불화 조장일까 생각하며 조금 조심하고 있다는 것.
내가 복잡하다는 표정을 짓자 서예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너는 22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을 텐데 쉽게 바꿀 순 없겠지.”
더 정확히 따지자면 22년에 7년까지 더해야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조금씩이라도 바뀌더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제가 생각해도 얼굴 보고 하기에는 머쓱한 말이었던 듯, 서예현이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러니까, 헷갈리면 차라리 말을 내뱉기 전에 물어보기라도 하라고. 이 말이 해도 되는 말인지, 아닌지.”
“결국 입 밖으로 내는 건 똑같지 않나?”
“아니지. 직접적으로 말이 닿는 것과 한 번 경유하는 건 분명히 달라.”
내게 불화 조장 마이너스를 가장 많이 이끌어 냈던 당사자가 하시는 말씀이니 맞는 말이겠지,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그리고 서예현이 변했듯이 나 역시 변해야 하긴 했다. 기왕 이 녀석들과 같이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으니, 회귀 전보다는 가까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회귀 전에는 나와 말도 섞지 않았던 서예현과 지금 이렇게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내 딴에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리고 하준이는 너희가 음색을 제외하고는 뭐 때문에 친해진 건지도 모르던데. 네가 자기보다 킥스 리더랑 더 친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서예현의 말에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복잡하네.”
“뭐가?”
“시작은 음색 때문인 게 맞는데, 그게 우정을 지속한 전부는 아니니까.”
따지자면 내가 견하준의 음색이 마음에 들었기에 먼저 다가가 시작된 관계이긴 했다.
하지만 단지 그거 하나로 친구 관계를 이어 간 건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편했으니까, 의외로 잘 맞았으니까.
언더를 뛰쳐나와 아이돌의 길을 선택하고,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건가, 불안함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때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던 면모로 나를 붙잡아 준 녀석이었으니까.
이유를 꼽자면 정말로 차고 넘쳤다.
“말을 안 하면 몰라, 멍청아.”
“자꾸 사람 보고 멍청이라고 해라?”
“은근슬쩍 ‘형 너’라고 부르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날카롭게 꼬집는 말에 혀를 찼다. 쳇, 들켰나.
“아무튼, 대화 좀 하라고, 너희는.”
“전에 했긴 했어.”
“더 해, 더. 대화가 부족해서 지금 숙소 분위기가 이 꼴이 난 거 아니야.”
대화는 견하준이 독감으로 앓아누웠던 그날 밤에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뭐가 부족했다는 건지.
나중에, 견하준이 생각 정리를 다 하고 나서 대화를 다시 한번 나누어 보자고 결심하며 눈을 감았다.
오늘이 그나마 쉽게 풀릴 마지노선이었음을 내가 알 리가 없었다.
* * *
김 모 양은 오늘도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혈육을 밀어내고 필사적으로 혈육의 손에 있는 리모컨을 뺏기 위한 쟁탈전을 벌였다.
오늘은 <내 아이돌을 소개합니다>가 방영되는 날이었다.
비록 레브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최애인 윤이든이 나왔기에 본방 사수는 필수였다.
겨우 리모컨을 쟁취한 그녀는 채널을 돌리자마자 걸어 나오는 최애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혈육을 한 번 더 걷어찼다.
김 모 양은 잽싸게 내아소 시청 불판을 열었다.
[MC 청: 자, 오늘은 조금 특별한 그룹을 게스트로 모셨는데요.] [MC 백: 로 히트를 친 프로젝트 그룹 On Top을 소개합니다!] [On Top: 월드 온 탑! 안녕하세요, On Top입니다!]메이킹 영상에서 만들었던 구호와 손동작을 선보이며 On Top 멤버들이 우렁차게 인사했다.
[MC 청: 각자 다른 그룹에서 모여서 이 스페셜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을 거 같은데, 혹시 이거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있나요?] [준혁: 다들 팀에서 리더를 맡은 친구들이라 갈등이 일어날 일이 정말 없었습니다. 좀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싶으면 다들 멤버들 다뤄왔던 리더 짬밥으로 분위기 풀기-.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 [시온: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제가 스케쥴 때문에 안무를 익히지 못하고 온 적이 있었는데 다들 이해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연습을 도와주셔서 너무 감동을 받았던, 그런 에피소드는 있어요.] [MC 백: 그럼 혹시 프로젝트가 끝나고 따로 만났다거나, 아니면 단톡방이 있다거나, 그래?] [이든: 단톡방은 아직 있고요, 다들 바쁘신 터라 약속 날짜만 잡아놓고 아직 따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강한: 맞아요, 내아소가 프로젝트 팀 해체하고 저희 첫 만남이에요.]토크를 하던 중, 말을 끊은 MC에 의해 풍선 터트리기 게임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풍선 터트리기 게임은 내아소에서 무조건 거쳐 가는 관문이었기에 김 모 양은 앞의 두 팀이 게임을 진행할 동안 잠시 휴대폰 타임을 가졌다.
‘레브 멤버도 아니고 KICKS 리더랑 하는 거라 그닥…….’
이든의 차례가 와도 그녀는 심드렁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윤성-이든 팀의 게임이 시작되자…….
[MC 청: 이건 거의 내아소 신기록이에요. 오늘 신기록 갱신하겠는데?]MC의 감탄사를 들으며 김 모 양은 눈을 비볐다.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풍선을 터트리는 미친 속도 때문에. 그리고 꽤 친밀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에.
-둘이 로봇이야? 배에 자석 달렸어? 압착 프레스야?
-아니 윤이든 왤케 적극적으로 끌어당겨서 껴안는 거? 이든아 한우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대외적으론 라이벌 관계인 두 리더들의 우정 발각 저건 ㄹㅇ 친하지 않고선 저렇게 못 껴안는다
└222 애매한 사이면 시온-강한꼴 남
-소속사 갈라졌다가 On Top 활동으로 다시 만난 찐친 서사 미쳤다
-윤성 표정 뭔데 왜 웃고 있는 건데
└좋아서라기보다는 넋 나가서 웃는 거 같은데ㅋㅋㅋㅋ
└찐친인 거 어이없게 발각되게 생겨서 저러는 듯ㅋㅋ
-윤이든 ㄹㅇ 한미새(한우에미친새끼)
-이게 다 ㅇ3이 한우를 안 사줘서……
불판의 댓글 역시 폭발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레브와 KICKS의 라이벌 구도는 꽤 유구했으니 말이다.
이든과 윤성이 풍선을 무려 26개나 터트리며 한우는 그들에게 주어졌다.
[MC 청: 자,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멤버들한테 한마디씩 해 주시죠!] [이든: 얘들아, 이 리더가 한우 가지고 간다!] [윤성: 어쩌다 보니까 한우가 생겼네, 응…….]-윤성 여전히 넋 나간 거 같은데ㅋㅋㅋㅋ
-윤이든 왜 저렇게 뿌듯해 해ㅋㅋㅋ
-저 의기양양한 미소 진짜ㅋㅋ
[MC 청: 자, 그러면 이번에는 리더들의 리더를 맡은 준혁 씨에게 질문 들어갑니다! 멤버들의 나이를 모두 알고 있는가! 제한 시간은 30초!] [준혁: 제가 스물여섯, 시온이가 스물넷, 강한이가 스물셋, 이든이랑 윤성이가 스물둘.] [MC 백: 오, 다들 맞아? 준혁이가 나이 헷갈리지 않았어?] [시온: 와, 저희 팀에 래퍼 한 분 더 계신 줄. 나이는 다 맞췄네요.] [MC 청: 그럼 동갑인 이든 씨랑 윤성 씨 중에서 누가 더 생일이 빠른가요?] [이든: 윤성 씨 생일이 6월 12일이라 이쪽이 더 빠릅니다.] [MC 백: 그럼 이든이가 여기에서 제일 막내네.]음흉한 미소를 지은 두 MC들이 막내가 거쳐야 하는 관문을 소개하고, 이든이 해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올린 입꼬리와 떨리는 눈가로 귀요미송을 수행하는 이든의 모습이 뜨자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갈렸다.
-아미친 애기고영 ㄱㅇㅇ!
-와 호랑이가 내게 애교부리면 저런 느낌일까
-5 더하기 5 혹시 그거임? 니 두개골을 반으로 쪼갤 거라는 경고?
-귀요미송 끝판왕 등극ㅜㅜㅜㅜ 졸귀임 진짜ㅜㅜㅜㅜ
-귀여움과 살벌함이 공존하는 게 가능한 거였구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티가 나서 더 웃곀ㅋㅋㅋㅋㅋㅋ
참고로 김 모 양은 아기 고양이의 애교에 감탄하는 파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어그로- 윤이든은 아기고양이가 아닙니다. 윤이든은 인상 사나운 20대 남성입니다. 윤이든 아기 고양이 모에화를 멈춰 주세요-를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그녀는 열심히 불판에 댓글을 달았다.
[이든: 저는 정석적인 엄한 리더인데요. 팀 내에서 애교는 없습니다.]-동생들에게 은근슬쩍 져 주면서 엄하단다ㅎㅎㅎㅎㅎㅎ
-엄하다고 하기에는 2% 부족하자너ㅋㅋㅋ
-(생긴것만)호랑이 리더
윤이든의 외강내유 콘셉트가 아주 훌륭하게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시였다.
대망의 마지막 순서인 랜덤플레이댄스!
을 시작으로 마치 다 같이 모여 미리 연습이라도 해 온 것처럼 각자의 히트곡에 맞춰 착착 안무를 해내는 On Top 멤버들의 모습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 레볼루션의 메댄인 준혁 옆에서도 묻히지 않는 춤 실력을 보여 주는 이든 덕분에 김 모 양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가 끝나고 가 나오자 칭찬 일색이던 댓글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 시온 불안불안한데
-ㅇㄴ 시온 틀렸다
-히트곡 당빠 아님? 그리고 만약 가 더 히트쳤다고 해도 랜덤플레이 댄스는 당연히 퍼포곡 나오지 않겠냐고
-역시ㅋㅋㅋㅋ 신념을 굽히지 않는 우리 리더ㅋㅋㅋㅋㅋ
-신드롬 불판에서 이든이 눈치없다고 욕먹더라
└ㅈㄴ 어이없네;;; 즈그 리더가 안 틀렸으면 됐을 일 아님?
└저거 슬럼프 극복곡이라고 윤리다가 말했잖아 생각해 보니까 더 빡치네
-그래도 당사자 둘은 훈훈하게 끝냈네ㅎㅎ 우리도 이만하자ㅎㅎ
방송이 끝나고 김 모 양은 SNS에 잽싸게 글을 올렸다.
꿈♥백일몽 @revedream
2E 귀요미송 움짤 찌신 분?
│
에덴eden @edden
@revedream 님에게 보내는 답글
움짤은 쪘는데 이걸 떠돌아다니게 하는 게 2E이에게 과연 좋은 일일까 고민이 되어서요……
│
꿈♥백일몽 @revedream
@edden 님에게 보내는 답글
왜요? 귀엽지 않아요?
│
에덴eden @edden
@revedream 님에게 보내는 답글
백일몽님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을 잃으신 듯…… 너Jㅔ 애교 한 번 보고 객관성 되찾으시는게……
* * *
“망할, 편집 좀 해 주지.”
“그게 하이라이트였는데 편집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진짜 형이 너무 적극적이긴 했음요.”
“네 입에 들어간 한우가 거저 나온 줄 아냐?”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절교한 친구분을 끌어안으면서 얻어 왔는지는 몰랐죠. 덕분에 형은 지금 절교한 친구랑 절친 조합으로 한창 엮이고 있고요.”
“나도 알아, 인마. 하아, 이거 유해 키워드로 신고 못 먹이나?”
“형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말 같죠?”
“……어.”
<내 아이돌을 소개합니다>가 방영되고 난 이후, 숙소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하필 내아소가 방영하는 날을 깜빡 잊고 나는 작업실에 가 있었고, 덕분에 내 애교 하나 구경하겠다고 그걸 본방 사수한 멤버들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한우를 위한 나의 고군분투는 멤버들에게, 견하준에게 3D로 생생히 전달되었다.
견하준이 나를 피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를 볼 때마다 생각에 잠겨 있는 게 훤히 보였다. 그 고민의 끝이 부디 긍정적인 방향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난 작업실이나 가련다.”
그리고 내게는 작업실이라는 아주 합법적인 피신처가 있었다. 물론 곡은 완성 직전의 단계에 있긴 했지만, 아무튼 피신 목적만은 아니었다.
원래 4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미니앨범이 5월로 밀리면서 3월 초에 디지털 싱글로 컴백 일정이 잡혔다.
덕분에 내게는 숙제가 생겼다. 대표님이 거지 같은 곡을 사 오기 전에 먼저 내 곡을 들이밀어야 하는 숙제가.
DAW를 띄워 놓고 턱을 괸 상태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가사가 굉장히…… 음, 뭐랄까…… 40~50대 아저씨들이 소주 한잔 걸치고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부르는 우정 찬양 노래 같아요.’
가사를 본 류재희의 평가였다.
멜로디에는 제법 맞는 것 같은데 올드하다니, 이걸 뜯어고쳐야 해, 말아야 해?
일단 데모를 듣고 난 후에 판단하기로 결정하고 류재희한테 가이드녹음 좀 하게 내 작업실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평소였으면 견하준에게 부탁했을 테지만 지금은 사이가 평소 같지 않았으므로 내린 선택이었다.
차로 10분 거리라 그닥 멀지도 않은데 30분이 지나도록 오지를 않는 류재희에 전화를 걸으려 휴대폰을 드는 순간,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빙글, 의자를 돌리며 물었다.
“뭐 이렇게 늦게 왔냐? 오는 길에 차라도 막혔…….”
턱까지 칭칭 감싸고 있던 머플러를 푸는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와 말문이 멈칫했다.
“늦어서 미안.”
문 앞에 선 견하준이 여상한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