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3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32화(13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32화
트레이닝복을 대충 걸치고 머리도 대충 가라앉힌 후,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해 주는 윤정아의 문자로 동태를 살폈다.
[윤정아- 오빠 보고 호적에서 파버릴 놈이라고 할아버지 지금 둘째 큰아빠한테 소리 지르는 중] 오전 9:11 [윤정아- 지금 둘째 큰아빠가 오빠 데리고 온다고 겉옷 찾으심] [윤정아- 이제 곧 세배 시작 손자들 다 나오래 나 이제 폰 못 만져] 오전 9:16참고로 윤정아가 말하는 둘째 큰아빠는 우리 아버지다.
[나 데리러 올 필요 없다고 전해 줘] 오전 9:17 [호주제 폐지되면서 호적 사라져서 파고 싶어도 못 판다고도 전해 드리고] 오전 9:18윤정아한테 마지막으로 문자를 넣고 할아버지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분노로 시뻘게진 할아버지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찼다.
-너!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작년이야 바쁘다 해서 눈감아 주니까 올해까지 빠지려 들어!
“아, 왜 그러세요. 세배드리려고 새해부터 연락한 손자한테. 그리고 올해도 바쁘거든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역정을 내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투덜거렸다. 너무 할아버지 얼굴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서 류재희한테 폰을 넘겼다.
“재희야, 폰 좀 잡아 봐라. 각도 좀 잘 맞추고. 전신 잘 나오냐?”
-지금 당장 뛰어올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는 거냐?
“영통 세배요. 요즘 세대가 바뀌어서 디지털 세대잖아요. 아날로그는 한물갔어요, 이제.”
소파 앞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자 열심히 폰 각도를 전신이 나오게끔 조정하던 류재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할아버님께서 말이 없어지셨는데요……?”
“괜찮아, 할 말 잃으셔서 그래. 기막힌 일 있으면 저러시더라.”
많이 기막히게 해 봐서 잘 안다.
“예현이 형, 얼른 와서 옆에 서고. 재희야, 잘 잡히냐?”
내 손짓에 넋 나간 얼굴로 서예현이 비척비척 걸어와 내 옆에 섰다.
“그런데 나는 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떨떠름하게 묻는 서예현의 귓가에 목소리 낮춰 속삭였다.
“세뱃돈 뜯어야지.”
“아니, 난 정말로 괜찮거든. 뷔페에 이어서 아침에 먹은 떡국마저 얹히게 하지 말아 줄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옆으로 탈주하려는 서예현을 턱, 붙잡고 다시 속삭였다.
“최소 30만 원임.”
그 말을 듣자마자 서예현이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두 손 모으고 반듯이 섰다.
나는 고졸이라 30만 원이고 대학 진학한 다른 사촌들은 50만 원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세뱃돈에도 묻어나오는 이 망할 학력 차별.
둘 다 화면에 잘 나오게 다시 류재희를 조종하여 각도를 한 차례 더 조정했다.
-헐, 오빠, 옆에 예현 오빠 있어? 예현 오빠도 같이 절해? 할아버지, 저 한 번만 옆에서 같이 구경하면 안 돼요?
-윤정아!
윤정아의 다급한 물음과 작은 엄마의 호통이 들렸다. 대체 팬심이란 뭐길래 윤정아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할아버지한테 저런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걸까.
-이든 오빠, 들리지? 나 이따가 나한테도 영상통화 한번 해 주라! 오빠 말고 예현 오빠 얼굴 나오게 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쩌렁쩌렁 소리치는 윤정아의 간절한 외침을 듣다가 할아버지가 전화를 끊기 전에 서예현과 함께 넙죽 절을 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도 해야 해? 그냥 우리도 지금 하자. 뒤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입 모아서 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주섬주섬 서예현이 몸을 일으키는 걸 따라서 일어났다. 다시 류재희한테서 폰을 넘겨받고 최대한 멀찍이 폰을 떨어뜨려 다시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세뱃돈은 제 계좌로 보내 주시면 돼요. 참, 세 배로 쳐 주시는 건 잊지 마시고요. 남의 집 자식 세배까지 받아 놓고선 입 싹 씻으실 건 아니죠, 설마?”
-절한 놈은 두 명인데 왜 세 배야?
“한 명은 앞에서 휴대폰 각도 맞추느라 열일해서 품삯 줘야 해요.”
그 말에 류재희가 매우 감동 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꼴 좀 보고 세뱃돈 주라는 소리를 해라! 거지꼴로 세배하는 놈 뭐가 예쁘다고 세뱃돈을 줘?
이제 옷차림으로 트집을 잡는 할아버지를 향해 심드렁하게 맞받아쳤다.
“한복 입고 새해 인사랑 세배 한 건 너튜브에 레브 공식 채널 가시면 나오거든요. 팬분들 보시라고 올려놓은 거긴 한데 한복 입고 절하는 손자 모습 보고 싶으면 그거 보세요. 인사도 기체후일향만강이라서 거슬리지는 않으실 듯.”
설 연휴 휴가 전에 소속사 주도로 미리 스튜디오에서 한복 입고 찍어 놓은 설 인사 영상이 오늘 아침에 업로드된 걸 확인했으니 원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할아버지가 찾아보실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뱃돈 이체 부탁드립니다.”
-이 배은망덕한 놈이 할아비를 제 지갑으로 알아!
“예, 뭐라고요? 디스랩 2탄도 듣고 싶으시다고요? 프리스타일이라 지금 당장도 가능한데.”
그 물음에 전화가 뚝 끊겼다.
“그래, 세배하러 얘네 조부모님 댁에 끌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디냐…….”
서예현이 소파에 축 늘어져 중얼거렸다. 기준치가 많이 낮아진 듯했다.
혹여 모르고 계실까 봐 계좌번호까지 문자로 보내드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자 다시 문자를 보냈다.
[계좌번호도 보내드렸는데 왜 세뱃돈 안 주세요?] 오전 9:46 [세뱃돈 안 주시면 팔순연 디스랩 공식발매해서 용돈 벌게요 미리 ㄱㅅ] 오전 9:47내가 진짜로 집안 디스랩을 공식발매할까 봐 식겁하셨는지 5분 후에 계좌로 90만 원이 들어왔다.
“오, 들어왔다. 재희야, 30만 원 계좌로 보낸다. 형도.”
“악, 형, 잠깐! 잠깐만요!”
제 계좌로 수고비 겸 세뱃돈을 이체해 주려는 나를 막은 류재희가 내 앞에서 넙죽 절을 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냐.”
킬킬거리며 장난식으로 맞받아쳐 주고는 마저 류재희의 계좌로 30만 원을 이체했다.
“얘 조부님이 주신 거 아니야? 왜 얘한테 세배를 해?”
“겸사겸사? 그렇다고 다시 영통 걸어서 이든이 형 조부님께 제가 세배를 올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던 듯 순순히 긍정한 서예현이 제 휴대폰을 켜며 중얼거렸다.
“나도 못 찾아뵈는 김에 영통으로 세배나 드려야겠다.”
서예현의 조부모님에게도 영통 세배를 마치고, 걸치고 있던 트레이닝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리웠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할머니!”
애정을 담아 반갑게 외할머니를 불렀다. 서예현과 류재희가 식겁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주름진 눈이 곱게 휘어지는 걸 보다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냈다.
“형, 잠깐만 들고 있어 봐.”
서예현에게 휴대폰을 넘기고는 곧바로 머리를 박았다. 대표님 설득을 위해 할머니를 팔았던 속죄였다.
“너 뭐 하냐……?”
“할머니를 향한 속죄.”
-우리 강아지가 잘못해 봤자 뭔 잘못을 했다고. 머리 상할라. 얼른 일어나.
그 말에 냉큼 일어나서 다시 서예현에게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이것저것 안부와 건강상태를 묻고, 웬일로 영상통화를 다 했느냐는 물음에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설날인데 세배드리려고 전화 드렸죠. 연휴 동안 엄마랑 해외로 여행 가신다면서요. 아무래도 시간이 애매해서 저는 못 낄 거 같거든요.”
친할아버지가 세뱃돈을 이체할 동안 엄마하고 나누었던 문자에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덕분에 나도 남은 나흘간 꼼짝없이 숙소에 틀어박히게 생겼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인사와 함께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는 다시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참, 엄마한테 여행 경비랑 할머니 용돈 부쳤으니까 용돈은 엄마한테 꼭 받으세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됐다. 아범에게 받은 거로 충분하니까 너 써라.
“저 돈 벌잖아요, 이제.”
하핫 웃고는 외할머니가 정말로 돈을 돌려주려는 마음을 먹으시기 전에 빠르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음 휴가 때는 꼭 찾아뵐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요.”
-바쁜데 뭣 하러. 안 와도 된다.
“에이, 할머니도 손주 오는 거 내심 좋아하시면서.”
약간의 애교를 담아 말하자 서예현이 사례 걸린 듯한 기침을 내뱉었다.
통화가 끝나자 서예현과 류재희가 차례로 말을 꺼냈다.
“너 혹시 인격이 두 개니……?”
“전 형이 효륜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조부모님 태도에 따라 효륜아가 될 수도 사랑스러운 손자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니 대꾸하고는 우리가 조부모님에게 연락할 동안 휴대폰 거치대 역할만 한 류재희를 툭툭 치며 물었다.
“너는 연락 안 드려도 돼?”
“친가는 없고 외가랑은 연 끊음요.”
심플한 대답에 더는 파고들지 않고 고개만 까딱하며 티비를 틀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사이 좋게 나란히 앉아 명절 특선 영화를 시청했다.
광고 시간에 서치 퀘스트나 하기 위해 SNS에 접속했다.
리챔 @liiicham
이거 틀고 명절 잔소리 퇴치함
윤이든씨 ㄱㅅ합니다
https://yxxtu.be/GKPSOEx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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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연 디스랩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걸 보니 아주 뿌듯했다.
휴가 나흘째에 견하준과 김도빈이 컴백했다. 둘 다 두 손 가득 명절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 온 채였다.
“잡채 칼로리가 1인분에 285kcal, 전 칼로리가-.”
“형, 제발.”
서예현은 입맛 떨어지게 어김없이 칼로리를 줄줄 읊어댔다.
“그런데 너는 왜 안 먹냐? 너도 다이어트냐, 아님 편식이냐?”
“편식이요. 형도 일 년에 여덟 번씩 제사음식 먹어 보시면 제 마음 이해할걸요.”
차례 음식만 피해서 먹는 류재희에게 묻자 류재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섯 명이 다 모여서 보내는 휴가가 꽤 낯설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
* * *
짧은 닷새간의 휴가를 끝으로 다시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스케줄로 잡힌 행사 무대에, 탄산음료 CF에, 녹음 및 뮤비 촬영까지. 그나마 디지털 싱글이라 컴백 일정을 맞추기에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5월에 있을 미니 앨범 활동 준비도 미리 해 놔야 했기에 여유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5월이었나?’
회귀 전 5월, 우리는 망돌로 해체될 뻔한 레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곡으로 컴백했다. 사실상 마지막 활동이 될 뻔한 곡이었다.
그 곡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역주행을 하였지만, 그래도 그 곡이 레브를 2군까지 올리는 데에 서예현의 얼굴과 함께 한 몫을 했다는 걸 부정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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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4년을 레브의 대표곡으로 우뚝 서 있었던 곡.
서예현의 직캠이 큰 역할을 하긴 했으나 노래 자체도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평을 들으며 연말 시상식 음원 본상까지 차지했었다.
왜 무려 4년 동안 대표곡이었냐면 이 너무 명곡이어서가 아니라, 이 곡 이후로 4년간 받아 왔던 곡이 깡그리 구려서 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귀 전처럼 성공이 보장된 으로 활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내 곡으로 활동을 할 것인가.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