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3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36화(13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36화
PT체조 8번. 온몸 비틀기.
체육 시간에 조금이라도 까딱거리거나 수군거리면 드럽게 말 안 듣는 새끼들이라는 욕설과 함께 우리에게 내려졌던 기합.
이 쉐키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먹는다면서 빠따를 들고 다니던 호랑이 체육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조교랑 비교하자면 빠따 갈기던 체육쌤이 무섭기로는 완승이었지만, 빡센 건 군대 유격 훈련의 완승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한 명이었기에 시선을 피해 설렁설렁 요령을 피우는 게 가능했지만, 조교는 한 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들부들 떨며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다리를 내리다가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조교 모자를 쓰고 있는 녀석은 분명 내 고등학교 친구 김우찬이었다.
군대 예능 찍으러 온 곳에서 조교로 내 친구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웃음을 참고 있는지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녀석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믿는다, 친구야!
은근슬쩍 머리를 내리자 입꼬리를 꿈틀거리던 녀석이 곧바로 불호령을 내질렀다.
“227번 올빼미! 머리 올리고 다리 더 내립니다!”
“악!”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FM 자세를 취했다.
너 인마, 내가 휴가 나온 기념이라고 술도 사 줬는데 그걸 이렇게 원수로 갚는 거냐! 다음에 휴가 나오기만 해 봐라.
14번까지 PT체조를 마치자 10분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물론 나는 쉬지 못하고 개인 인터뷰를 하러 카메라 앞으로 불려 갔다. 방송이 뭐라고 이 꿀 같은 휴식 시간도 못 누리게 하다니.
“조교 한 분이랑 아시는 사이 같던데, 지인인가요?”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이 친구를 여기에서 다 만날 줄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오랜만에 만나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 몇 달 전에도 저 친구가 휴가를 나왔을 때 만났습니다.”
몇 달 전에 휴가를 나와 휴가 기간이 겹친 나와 신나게 놀았던, 바로 그 친구였다.
마찬가지로 불려 나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우찬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를 보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야, 최대 8년 남았다더니! 네 얼굴 보자마자 너 무슨 사고 치고 도피성 입대한 줄 알고 식겁했다. 진짜.”
“그러게 말이다…… 이게 뭔 고생이냐.”
“너 이 프로그램 고정이야?”
“아니, 이번 한 번 땜빵.”
“야, 어쩌냐. 너 이제 유격 체험하고 힘들어서 빤스런한 놈 되겠네. 푸하하, 천하의 윤이든이!”
생각지도 못한 관점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열심히 해서 유격왕 따. 그러면 말이 덜 나오는 게 아니라, 너는 신이 되는 거다. 아까처럼 요령 부리려 하면 못 버티고 도망쳐 나온 폐급이 되는 거고.”
“그게 무슨…….”
“야, 나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해. 그러면 알게 될 거다.”
격려하듯 등을 세차게 두드린 김우찬은 휴식 시간 10분이 끝났다고 곧바로 조교 모드로 돌변해서 내 등을 떠밀었다.
다음으로 유격 코스 훈련이 이어졌다. 유격왕을 마음속으로 새기며 이를 악물고 훈련에 응했다. 평소에 운동으로 체력을 쌓아 놔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쓰러지거나 밧줄을 손에서 놓치고 저 흙탕물에 빠지거나 벽을 타다가 바닥에 나뒹굴었을 테니.
잠시 카메라가 꺼지자 여전히 군기 잡힌 군인들과 달리 패널들은 한곳으로 모여 편하게 널브러졌다. 여기는 언제까지나 예능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죽겠다. 이 나이에 군대 다시 끌려와서 무슨 고생이냐.”
40대 중년 배우가 어깨를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옆에서 격한 동감을 표하는 이는 30대 후반의 방송인이었다.
30대 중반의 개그맨이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이든이 네가 올해로 몇 살이지?”
“스물둘이요.”
“스물둘이요? 군대에서 ‘요’자 쓰는 놈이 어디 있어?”
“관등성명도 안 대네?”
시발, 카메라 꺼졌잖아요.
“이병 윤이든! 스물둘입니다!”
하지만 나는 슬프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막내였다. 관등성명을 대며 다시 대답하자 낄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 방송인이 내게 말했다.
“너는 딱 와야 할 때 왔다. 5박 6일이지만.”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아. 팔팔하던데, 아주.”
“그런데 진짜 잘하긴 하더라. 체육 하다가 데뷔했어? 아님 군필?”
“에이, 형님. 군필 아이돌이 어디 있어요. 요즘 아이돌 애들 다 서른 넘어서 가드만.”
“아닙니다. 힙합 하다가 데뷔했습니다.”
“야야, 편하게 말해. 편하게. 장난 좀 한 거로.”
정색하며 내게 관등성명을 대라고 했던 개그맨이 피식 웃으며 내 등을 두어 번치고는 충고했다.
“적당히 설렁설렁해. 어차피 예능인데 여기에서 다치면 앞길 갑갑하다.”
저는 꼭 유격왕 타이틀을 따고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단 말입니다. 힘들어서 하차했다는 그런 불명예를 얻을 수는 없었다.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돈다고, 유격훈련 마지막 날이 밝아 왔다.
아, 내 기준으로는 방송국 시계인가?
목봉 체조로 존나게 상쾌한 아침을 시작한 우리 앞에 나타난 건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는 높이 11M의 모형탑. 바로 레펠 훈련이었다.
위로 올라가니까 탁 트인 경치가 보였다. 회귀 전에 번지점프 체험을 한번 해 봐서 다행이었다.
당시 번지점프는 국내 최고 높이를 자랑해서 이거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애인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찬아, 굳이 아이돌인 친구한테 애인이 있냐고 묻는 이유가 뭐냐.
여기에서 있다고 하면 다시 회귀 각이라고. 물론 실제로 있지도 않지만.
“하고 싶은 말 외치고 하강 실시합니다!”
“내가 여길 왜 오겠다고 해서! 아 맞다, 이게 아니고. 데이드림, 사랑합니다아악! 하강!”
진심을 내뱉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아이돌 자아를 뒤늦게 장착했다.
하강하기 전에 본 김우찬의 얼굴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227번 올빼미, 하강 끝!”
밧줄을 붙잡고 내려와 매트리스 위로 가볍게 착지하며 보고했다.
“야, 잘하네. 이든아, 너 고정으로 들어올 생각 없냐? 땜빵으로는 아까운데.”
칭찬하는 말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세 괜찮게 내려온 듯했다. 물론 고정으로 들어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바로 화생방 훈련뿐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화생방 훈련을 받지 못할 것 같다, 거수.”
교관의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올라가려는 손을 내리눌렀다. 여기에서 손을 들면 유격왕 타이틀은 저 하늘 위로 날아가는 거다.
방독면을 쓰고 건물 안으로 죽상을 한 채로 걸어 들어가자 자욱한 CS 연기가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정화통 분리!”
교관의 지시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 겪는 지옥이 찾아왔다. 그 와중에도 교관은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다.
“어머니의 마음 재창한다, 실시!”
어머니의 마음이 뭐였지…… 대충 옆사람 멜로디를 따라부르던 나는 점점 이상해지는 노래에 숨을 참고 눈을 깜빡였다.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음?”
“어머니의 마음 부르라고 했지, 누가 스승의 은혜 부르라고 했나! 다시, 진짜 사나이 재창 실시!”
또 모르는 노래가 등장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은 멜로디를 듣자 띄엄띄엄 기억이라도 났지, 이건 아예 몰랐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노랗게 변하는 시야를 깜빡이며 다시 군가를 눈치 보며 따라 불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들어오는 CS 가스에 진짜로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내가 래퍼라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피해 등을 돌렸다. 이런 얼굴로 방송을 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또 지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격 훈련 퇴소식의 날이 밝아왔다.
“유격왕, 이병 윤이든!”
호명되는 내 이름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단상으로 걸어갔다.
됐다, 힘들어서 한 번 하고 튀었다는 불명예는 안 얻게 되는구나!
상장과 함께 레드 컬러의 유격 조교모를 머리에 얹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복귀 행군까지 끝내고, 유격 훈련 종료와 동시에 촬영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PD와 스탭, 출연진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내게 손짓하는 매니저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앞으로 8년간은 보지 말자! 슬쩍 보이지 않도록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는 건 덤이었다.
[금지 동작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안 들키면 좀 봐주면 안 되냐니까?
* * *
드디어 5박 6일간의 군부대 체험 촬영을 마치고 그립고 그리웠던 숙소에 도착했다.
“이든아, 우냐……?”
내가 숙소 앞에 우두커니 서 있자 차 창문을 내린 매니저 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울긴 누가 울어.”
뻑뻑한 눈가를 쓱 문지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숙소 문을 열자 한창 식사를 하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뭐야, 왜 벌써 왔어? 독방 좋았는데.”
같은 방 쓰는 남동생이 전역하여 돌아와 다시 혼자만의 방을 뺏기게 된 형 같은 말을 하며 서예현이 투덜거렸다.
다른 그룹은 화기애애한 유사 가족으로 셀링 포인트를 잡는다는데 우리는 왜 이러냐.
내가 친형은 없지만 친형 있는 친구에게 들었던 소리랑 똑같잖아.
“형이 군대 가서 유격 훈련을 받고 와야지 5박 6일이 벌써라는 소리가 나오지.”
밥그릇에 밥을 퍼서 식탁 의자에 털썩 앉으며 투덜거리자 서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들으면 만기 제대한 줄.”
역시 서예현이 다녀왔어야 했다. 그래야지 그룹 활동의 소중함도 좀 느끼고, 정신도 좀 차려서 돌아오지. 나처럼.
정말로 오랜만에 먹는 것 같은 견하준의 반찬을 한 술 가득 떴다. 감격 어린 얼굴로 식사하는 나를 흘깃 본 서예현이 물었다.
“군대에서 굶었냐?”
“군대 밥 존나 맛없어.”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이건 비속어를 붙이지 않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고.
식사를 마치고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들이켜고 있는데, 류재희가 쪼르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뉴스가 뜬 휴대폰 화면을 보이며 말을 꺼냈다.
“형 G1 프로듀서님이랑 친하지 않았어요? 형 군대 가 있던 동안 난리 났던데요. 생일파티 중이었던 클럽에서 마약사범들 현장 검거했대요.”
결국 그렇게 됐구먼. 혀를 차며 물을 마저 들이켜던 중, 류재희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신고자가 G1.”
그 말에 사레가 들려 콜록거리며 당장 휴대폰을 찾았다.
와씨,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 예능 말고 그냥 생일파티를 갈걸! 이런 개꿀잼 콘텐츠를 놓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