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4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43화(14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43화
팔짱을 끼고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서예현이 매니저 형한테서 건네받은 대본집을 툭툭 치며 말했다.
“왜 내 드라마 캐스팅 기회를 방해하려는 건지 말이나 좀 해 봐. 주연도 아니고, 러브라인도 따로 없는 여주인공 친구 역인데.”
“그야, 그야……!”
초심도를 희생하고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뒈지게 욕먹고 나서 스스로 연기를 단념하도록 놔두어야 하는가.
내가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두드릴 뿐 말을 하지 못하고 있자, 류재희가 옆에서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형은 연기를 못 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류재희 덕분에 사이다를 들이켠 듯 속이 시원하게 뚫렸다.
“저희의 첫 연기 시도였던 뮤직비디오 촬영을 잊으셨어요?”
그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어떻게 잊겠는가. 서예현이 내던 그 수많은 NG를.
“그때는 예현이 형이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견하준이 서예현의 편을 들어 주자 서예현이 맞는 소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청자들이랑 팬들에게 발연기라고 처맞는 소리.
“연기가 타고난 사람들은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아도 잘 해요. 하준이 형은 그때 카메라가 익숙하셔서 그렇게 명연기를 펼치셨어요?”
류재희의 반박에 모두가 감탄을 내뱉을 수준의 짝사랑 연기를 해냈던 견하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쓸어 올렸다.
“게다가 예현이 형한테 캐스팅 들어온 역할은 단순한 여주인공의 소꿉친구가 아니라 여주인공의 쌍둥이 언니를 짝사랑하다가 그 언니가 사고로 죽고 여주인공과 묘한 유대감과 감정을 느끼는 사이라잖아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선이었건만 회귀 전의 서예현이 연기한 건 여주인공과 어색한 남사친이었다. 그 탓에 미스캐스팅이라는 비난을 엄청 받았다. 서예현의 얼굴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그리고 서예현에게 붙었던 뚝딱이라는 별명은 춤을 넘어 연기까지 아우르는 광범위적 별명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형, 지금까지 연기 수업도 받아 본 적 없잖아. 당장 형 얼굴만 보고 캐스팅한 것 같은데 나중에 쏟아질 비난들 다 감수할 수 있어?”
“너 계속 내가 연기를 못 한다는 쪽으로 몰아간다?”
몰아가는 게 아니라 진짜 못하잖아! 이놈의 초심도만, 불화 조장만 아니었어도 서예현에게 현실을 마주하게 해 주는 건데.
“그러면 해 보면 되죠!”
김도빈이 짝! 박수를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뭘 해 봐?”
“연기를요.”
그 말에 서예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 혼자 여기서 연기를 하라고? 너희들을 앞에 두고 원맨쇼를 하라는 거야?”
“카메라 앞에 서면 스탭들이 멤버 수의 배인데요?”
어쨌건 맞는 말이긴 한 터라 서예현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싫어. 쪽팔리게 나 혼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게 쪽팔리면 카메라 앞에서는 어떻게 연기한대?”
들으란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서예현의 따가운 시선이 닿자 휘파람을 불며 쓰윽 시선을 피했다.
“예현이 형 혼자 하면 부끄러우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레브 연기 경연대회나 해 보죠.”
룰은 간단하다. 멤버 넷이 주제를 정해서 대상자에게 연기를 시킨다.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주는 사람에게 상금 10만 원!
“그런데 상금은 누가 줘?”
“그야 당연히 리더가?”
“내 통장 돈이 무슨 레브 곗돈이냐? 어? 우리가 언제부터 계모임 했냐?”
류재희를 향해 눈을 부라리자 옆에 있던 김도빈이 슬그머니 손을 들고선 말했다.
“그럼 제가…….”
“됐다. 니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낼게.”
“저희도 정산받았는데요.”
“엉, 그 돈으로 까까나 사 먹어.”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고는 순서를 정했다. 순서가 정해지자 제일 첫 타자의 연기 주제를 정하기 위해 넷이 머리를 맞대고 모였다.
첫 타자인 김도빈의 주제는 바로……!
“실수로 발을 헛디뎌서 왕 얼굴에 세숫물을 끼얹어 버린 내시.”
제 주제를 들은 김도빈이 미묘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주제를 정한 기준이 뭐예요?”
“첫 타자라서 메리트를 좀 줬지. 본인 이미지랑 크게 다르지 않아서 쉽게 할 수 있을 만한 거로.”
“제가 내시 같다는 소리에여?”
집요정이 아님을 감사히 여겨라, 도빈아.
무언가를 든 시늉을 하고 침대 위를 걸어가다가 철퍼덕 넘어진 김도빈이 경악 어린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더니 곧바로 넙죽 엎드렸다.
“즈언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우렁찬 목소리로 나온 사극 단골 멘트에 배를 잡고 웃으며 침대를 굴러다녔다. 아, 이거 좀 재미있네.
연기 죽인다고 낄낄거리며 5점을 박아 주려 했는데 서예현이 선수를 쳤다.
“0점. 역할 해석부터 틀려먹었어.”
냉정한 그 평가에 김도빈이 쓰윽 고개를 들고 물었다.
“왜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는 헤아려 살펴주시라는 뜻이라 우국충정에 관련된 거고, 너는 감히 임금 용안에 물을 끼얹는 대죄를 지었으니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죽여 주시옵소서.’ 가 맞아.”
“한 번만 봐 주세요가 아니고요? 죽여 주라고 그러다가 소원 들어준다고 진짜 죽이라고 하면요?”
“죽어야지.”
역시 왕권 시대는 냉정했다. 평등 사회 만세.
“그리고 내시는 목소리 그렇게 안 굵어. 변성기 전에 잘리니까.”
“뭐가요…….”
“뭐겠니.”
슬쩍 서예현의 시선이 향한 곳에 모두 파드득 몸을 떨었다.
“응, 그렇단다. 0점.”
“0점이래, 형.”
“역할 해석이 아쉬웠네. 1점.”
0점의 향연 속에 1점을 준 견하준을 향해 김도빈이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며 와락 달려들었다.
다음 타자인 류재희의 주제는,
“미팅 갔는데 친누나를 만난 상황.”
“이의 있습니다. 저는 미팅을 한 번도 안 해 봤습니다.”
류재희의 그 이의 제기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여기 있는 아무도 안 해 봤을걸.”
“나는 해 봤는데.”
네 개의 시선이 서예현에게 쏠렸다.
“언제요? 대체 언제 저희 눈을 피해서 미팅을 하신 건데요?”
“스무 살 때 했어. 막 대학 입학하고.”
“아, 그때면 뭐…….”
그때는 서예현이 연습생으로도 들어오지 않았을 때라 모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그러면 심사위원 네 명 중에 세 명이 저게 잘한 연기인지 모르잖아. 바꿔, 바꿔.”
“아니, 드라마에서 나오는 미팅 장면도 안 봤어?”
“봤는데 딱히 관심 없어서 넘겼죠.”
“몰라, 나는 야인시대 말고는 한국 드라마 잘 안 봤다고.”
“와, 언제적 야인시대…….”
내 대꾸에 옆에서 류재희가 감탄인지 질색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아무튼, 류재희의 주제는 바뀌지 않았고.
“헉, 누나? 누나가 왜 여기서 나와…….”
류재희는 친누나인지 현재 사귀고 있는 여친인지 모를 연기를 선보이며 평균 1점의 점수를 얻었다.
다음으로 회귀 전에 연기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견하준의 주제는……
“여친이랑 헤어졌는데, 일주일 후에 후폭풍 온 쓰레기 전남친.”
“형, ‘쓰레기’ 잘 살려야 해요!”
주제를 듣고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은 견하준이 잠시간 눈을 감더니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모로 누워 휴대폰 화면을 보던 견하준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연기 돌았네.”
감탄하며 류재희의 귀에 속삭였다.
전여친에게 전화를 걸어 제 잘못들을 나열하면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연기를 하는 견하준을 보며 다들 입을 틀어막았다. 연기인 걸 아는데도 견하준이 존나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와, 진짜 쓰레기 같다.”
“여친 분 헤어지시길 잘한 듯.”
“얼른 여친 번호 삭제하란 말이야! 여친을 놔줘!”
과몰입해서 견하준의 어깨를 붙들고 마구 흔드는 김도빈의 후드를 잡고 휙 내팽개쳤다.
아무리 견하준이 연기를 잘했다지만 하극상은 좀 아니지 않냐, 도빈아?
견하준은 만장일치로 5점이라는 점수를 얻으며 단번에 1위로 등극했다.
그다음으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어느 주제든 겸허히 받아들여 최상급의 연기를 선보여 10만 원 지출을 막을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눈을 감고 감정선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자 주제가 내 귀에 들렸다.
“일진 선배한테 삥 뜯기다가 갑자기 조폭이랑 영혼 체인지 되어 버린 상황.”
“갑자기 영혼 체인지가 왜 되는데!”
난이도 별 다섯 개의 주제에 눈을 번쩍 뜨며 따져 물었다.
“와, 우리가 정한 주제기는 한데 난이도 장난 아니다. 1인 2역이라니.”
“그래도 밸런스 맞춘다고 형이 나름 자신 있어 할 역할도 넣어 봤어요.”
“내가 조폭이냐? 어?”
“오, 말하지 않아도 아시네요.”
류재희에게 가볍게 헤드록을 걸어 주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감정선을 잡았다. 준아, 미안하지만 10만 원은 내가 가져간다.
좋아, 지금부터 나는 일진한테 돈 뜯기는 불쌍한 학생이다. 물론 뜯겨본 적은 없지만.
“예? 돈이요? 돈 없는데요?”
“아니야, 땡! 땡! 일진에게 삥 뜯기는 게 아니라 촌지 없다고 선생님한테 반항하는 70년대 양아치 같아!”
서예현이 내가 대사를 한마디 내뱉자마자 곧바로 태클을 걸어왔다. 표정을 한껏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아, 쫌 연기 좀 하자!”
겨우 감정선을 잡아놨건만, 이 인간이 지금 내가 10만 원을 못 가져가게 하려고 방해질이냐?
막내라인이 서예현을 양옆에서 붙들고 나서야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움찔거리며 꼽먹는 연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다음 페이즈로 돌입했다.
바로 영혼 체인지 된 조폭 연기.
“돈? 돈 내놓으라고? 이야, 친구야. 니 미칫나.”
삐딱하게 웃으며 껄렁껄렁하게 말하다가 정색하며 목소리를 한껏 깔면서 앞의 일진 놈의 뺨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자 경력자 같다는 감상이 쏟아졌다.
하지만 서예현이 태클을 건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어설픈 사투리 좀 하지 말아 줄래.”
“엥, 아는 부산 출신 형이 이러던데?”
“그거 아니라고.”
찐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 하니까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뭔데?”
“니 미쳤냐.”
네이티브 사투리를 듣자 알 수 있었다. 억양이 문제였구나, 억양이.
내 점수는 서예현 1점, 류재희 3점, 견하준 4점, 김도빈 3점으로 내 10만 원은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이 쓸데없는 경연대회가 열리게 만든 원인인 서예현의 주제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