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4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44화(14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44화
“갑자기 사람이 된 강아지가 주인에게 내가 댁네 강아지라고 밝히는 장면 가겠습니다!”
주제를 정하는 데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김도빈이 해맑게 외쳤다. 나는 이중인격 살인마 정도나 시키려고 했는데 김도빈이 정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더라.
원래는 서예현의 성격이 개 타입은 아니어서 고양이로 하려고 했는데, 연기 실력을 보려면 반대되는 이미지를 잡아야 한다는 류재희의 강력한 주장에 강아지로 변경되었다.
“야, 그게 뭐야!”
“그래도 이중인격이나 빙의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나를 슬쩍 돌아본 서예현이 순순히 긍정했다. 내 명연기를 지금 폄하하는 거냐.
“그런데 주인은 남자야, 여자야?”
“형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그게 중요하나…….”
“중요해.”
심호흡을 한 번 한 서예현이 감정선을 잡고 입을 열었다.
“형?”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이는 모습에 벌써부터 항마력이 딸려왔다. 그러게 이중인격 살인마나 시키자니까.
“나야, 나. 형 동생인 바둑이.”
마치 책을 읽는 듯한 정직한 발음에 옆에서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았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왜 지금 저 인간의 머리색은 백금발이어서 내가 14살 때 무지개별로 갔던 우리 골든리트리버 바둑이를 생각나게 하는 거지.
지금 본가에서 포메라니안인 포도를 키우고 있었지만 내게 영원한 반려견이자 첫 번째 강아지이자 내 동생은 바둑이었다.
하필 다른 이름도 아닌 바둑이라고 지칭해서, 덩치가 대형견만 해서, 하필 대가리 색이 백금발이라서 저런 거지 같은 발연기에도 몰입되는 게 열이 뻗쳤다.
정말로 씹덕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혹시 바둑이가 이 형을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서예현의 몸에 잠시간 빙의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게 다 김도빈 때문이다. 뭐만 하면 빙의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어 대서 내 사고방식도 씹덕 사고방식에 물들어 버렸잖아.
“형, 설마 울어요……?”
웃음을 꾹 참으며 나를 돌아보던 류재희가 내 얼굴을 보고 경악하더니 내 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울긴 누가 울어.”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아무도 모르게 눈가를 쓱 훔쳤다. 시발, 바둑아. 보고 싶다.
내가 제 연기에 감동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서예현이 한껏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피날레인 개소리를 냈다.
“멍.”
그 개소리에 나는 감상에서 깨어났다. 저건 바둑이가 아니라 서예현이다.
“아니야! 그건 개소리가 아니야!”
원하는 악상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는 베토벤처럼 발악했다.
“아씨, 깜짝이야. 뭔데?”
“우리 바둑이는 그렇게 울지 않았어!”
“내가 느이집 개소리를 어떻게 아냐?”
“그런데 ‘멍’은 솔직히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개소리이긴 하죠.”
김도빈이 깐족거리며 끼어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적을 하는 걸 보아하니 대사 고증을 틀렸다고 서예현에게 0점을 받은 게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아, 그러면 네가 내 보든가. 얼마나 잘 내는지 보게.”
“누가 못할 줄 알고?”
큼큼, 두어 번 목을 가다듬고 포도와 바둑이를 생각하며 열연했다.
“왈왈! 왈! 컹! 으르릉…… 컹컹!”
“와, 진짜 개소리다. 아니, 말이 좀 이상한데…….”
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하던 류재희가 말끝을 흐렸다.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서예현이 네가 이겼다며 인정했다. 물론 딱히 뿌듯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평가 점수 발표가 이어졌다.
“저는 0점 드릴게여.”
“저도 0점이요. 사감 하나 들어가지 않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니까 마음 상하진 마세요. 사람이 연기 정도는 못 할 수도 있는 거죠. 저희가 뭐 배우도 아니고, 그냥 아이돌인데.”
비주얼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이돌으로서의 능력치도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말을 하면 내 초심도가 깎일 게 분명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1점 드릴게요.”
견하준은 역시 온정이 깊었다. 저런 연기에 무려 1점이나 주다니. 하지만 충격 받은 얼굴로 견하준을 돌아본 서예현이 말했다.
“하준이 너, 윤이든은 4점 줬잖아!”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은 김도빈이 서예현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진실을 말해 주었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이든이 형 연기가 예현이 형 연기보다 훨-씬 나았어요.”
“봤냐? 들었냐?”
비죽 웃으며 말하자 서예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 역시 평가를 내렸다.
“2점.”
오랜만에 바둑이를 떠올리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다.
마지막 개소리에서 망쳤기는 하지만.
“2점이요? 0점이 아니고요? 아니, 하준이 형도 아니고 이든이 형이 2점을 줄 리가 없는데.”
“아니야, 형. 이든이 형, 저 연기에 감동 먹으셨어. 취향이 좀 특이하신가 봐.”
류재희가 김도빈에게 속닥거렸다.
다 들린다, 인마. 서예현이 개 이름을 바둑이로 설정만 안 했어도 그딴 발연기에 심취했을 일은 없었다고.
결국 상금 10만 원은 만장일치로 5점을 받아 최종 우승자로 등극한 견하준에게로 돌아갔다. 10만 원을 곧바로 송금해 주자 5만 원이 페이백되어서 돌아왔다.
견하준이 우승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연기 안 하련다.”
이 쓸데없는 연기 경연을 시작하게 만든 원인인 서예현이 한탄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따로 배운다고 해서 몇 달 만에 극적으로 실력이 성장할 것 같지도 않고. 어렵네…… 역할 분석은 쉬운데 막상 표현하려니까 어려워.”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예현의 발연기 흑역사를 지우는 데에 성공했군. 이게 다아 그룹을 위해서다. 이해해라.
“그런데 형, 왜 주인 부를 때 주인님이라고 안 하고 형이라고 했어여?”
“보통 반려동물은 가족이잖아. 나도 우리 집냥이한테 나 지칭할 때 오빠라고 하거든.”
“헉, 고양이 키우세요?”
김도빈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자 서예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양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응, 사진 보여 줄까? 고등어 태비 코숏이야. 올해 10살이고 이름은 카이사르. 내가 열세 살 때 동생이 주워 와서 지금까지 키우는 중.”
“그런데 오빠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암컷 아니에요? 그런데 이름이 카이사르?”
“동생이 강한 이름을 지어 줘야 한다고 해서…….”
말끝을 흐리며 서예현이 김도빈에게 제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
고양이 사진을 본 김도빈이 애매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류재희를 툭툭 친 김도빈이 쓰윽 화면을 보여 주었다.
류재희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든이 형 좀 닮지 않았나……?”
“뭔 말인지는 알겠네. 이든이가 살짝 보이긴 한다.”
휴대폰 화면에 띄워진 고양이 사진을 힐긋 본 견하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슬쩍 끼어서 고양이 사진을 봐 보았지만 딱히 닮은 건지는 모르겠다.
“어디가?”
“눈매가 좀 닮았잖아요.”
“야! 너네 지금 우리 카이사르한테 무슨 악담이야!”
서예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악담은 지금 댁이 하고 있는 게 악담이고.
* * *
이번 뮤직비디오는 액션 씬이 많았다. 건물에서 건물을 뛰어다니는 수준의 격렬한 액션은 스턴트맨이 맡았지만 웬만한 장면은 우리가 촬영했다.
예를 들면 탁 트인 외국 도로에서의 자동차 추격씬이라든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형형형, 속도! 속도 좀 줄여 봐요!”
스포츠카의 옆자리에 타고 있던 류재희가 안전벨트를 꼭 쥐며 간절히 외쳤다.
“야,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밟아 보겠냐!”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핸들을 쥐지 않은 한 손으로 모형 권총을 가볍게 한 바퀴 돌리다가 뒤쫓아 오는 차를 향해 쏘는 시늉을 했다.
핸들을 비틀어 차 방향을 꺾고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자, 도로에 스키드 마크를 쭉 내며 차가 멈췄다.
“컷!”
감독님의 지시에 겨우 안전벨트를 풀고 나온 류재희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차에서 벗어났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과속하면 절대 안 돼요, 형. 이번에 차도 뽑으실 거라면서요.”
“야, 나도 사회면에 나오고 싶지는 않거든?”
사회면에 내 얼굴이 나오는 순간 바로 다시 <내 우주로 와> 시절로 회귀하는 거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뮤직비디오가 제에발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류재희가 다시 스포츠카에 타며 투덜거렸다. 휴대용 캠코더를 켜며 그가 신신당부했다.
“지금 메이킹 영상 찍을 거니까 과속하시면 안 돼요.”
“너 또 내가 엄청 밟을까 봐 그러는 거지?”
“저는 순수하게 형이 운전하는 모습을 찍고 싶을 뿐이었는데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점점 팔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게 자각될 때마다 기분이 좀 묘해졌다.
액션을 찍으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뮤직비디오 촬영과 퍼포먼스 영상 촬영을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그러니까 해외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돌아가면 바로 본방사수 해야지.”
“맞아요. 이번 주에 참호 격투랑 화생방 나오잖아요.”
“리펠 훈련도 있…… 야, 니들 이번 주 거 보지 마!”
“왜요? 걸그룹 댄스 춘 것도 아무렇지 않아 하더니 대체 뭐가 있길래.”
“이러면 더 보고 싶죠.”
리펠 훈련에서 하강하기 전에 두 자아가 싸우다가 나왔던 멘트를 멤버들에게까지 공개할 순 없었다. 이건 몇 년 치 놀림감이다.
“야식 사게 마트 갈 사람?”
내 물음에 류재희와 김도빈이 곧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야, 이 시간에 무슨 야식이야?”
“아, 마지막 날인데 좀 봐 줘.”
역시나 서예현이 막았지만 내 유들유들한 말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여기 치안 별로 안 좋다고 매니저 형이 신신당부했잖아.”
제작비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호텔을 외진 곳에 잡은 탓이었다.
“어엉. 그럼 이거나 챙겨 가야겠다.”
견하준의 말에 대충 대꾸하고는 막내라인을 끌고 호텔이랑 조금 떨어져 있는 마트로 향했다. 호텔 안에 입점해 있는 마켓은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더럽게 비쌌으므로 내린 선택이었다.
“와, 그런데 진짜 음산하긴 하다.”
후드를 쓴 남자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지나가자 김도빈이 내 옆으로 슬쩍 와 붙으며 중얼거렸다.
마트에서 먹을 것을 한가득 샀는데, 봉투에 다 들어가지 않아 입고 온 스포츠 져지 주머니에도 캔을 쑤셔 넣었다.
“형…….”
류재희가 불안에 잠긴 목소리로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왜?”
“저 사람이요, 저희가 마트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지 않아요?”
류재희의 고갯짓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아까도 보았던 외국인 남자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김도빈이 내 팔을 강하게 움켜쥐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거, 총 아니에요……?”
어둠 때문에 선명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은 분명히 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