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5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53화(15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53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저희 타이틀곡, 케이제이랑 공동작업한 작곡가님이 레브 앨범 수록곡들을 작업했다고 들었거든요.”
차연호가 싱긋 웃으며 우리를 향해 말했다.
“같이 작업하던 분과 계속 작업하시고 싶으셨을 텐데, 왠지 죄송하네요.”
아니, 그닥. 우리야말로 지뢰를 가져가 줘서 감사할 따름이지. 잘 쓰쇼. 이후로 그쪽 마음에 들 곡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너무 대놓고 말하는 거 아닌가? 무슨 반응을 원하는지는 알겠다만.
“그 작곡가님이 저희 대표님 친한 형님 조카라던데.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대한민국 참 좁네요, 하하.”
굳이 굳이 히트곡 하나 없고 음악성도 인정받지 못한 작곡가를 찾아낸 게 차암 대단하십니다.
무언가를 가늠하듯이 나를 빤히 보는 차연호를 향해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이번 노래 정말 좋았습니다. 후렴구 중독성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별말씀을요. 후배님들 노래도 좋던데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서로 칭찬을 주고받았다. 대화를 마친 우리가 대기실을 나갈 때까지 차연호의 표정은 끝까지 웃는 얼굴이었다.
대신 이제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견하준과 류재희를 향해 있었다.
* * *
음악 방송 스케쥴이 끝나고 밴에 탄 차연호는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차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회귀 전 레브의 최고 아웃풋이자 그들을 2군까지 끌어올려 준 곡이나 다름없는 을 빼앗아 온 게 회심의 한 수라고 생각했는데.
‘젠장, 이렇게 반응이 없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레브에도 회귀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속 같았던 레브의 노선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타 그룹에만 곡을 팔아 대고 프로듀싱해 주던 회귀 전과 정반대의 노선을 탄 윤이든을 의심했지만…….
‘떠보다가 내 속만 터질 뻔했지.’
진심으로 사람 속 터지게 만들던 영문 모르겠다는 그 표정. 떨떠름하게 사람 보는 그 얼굴!
그게 연기면 그 새끼는 배우계가 아이돌판에 뺏긴 인재요.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회귀 전과 똑같은 소속사의 신인 그룹에 윤이든이 곡을 팔았다는 소문까지 입수했다. 오늘의 반응까지 보니 확실히 윤이든은 회귀자가 아니었다.
‘그럼 회귀자는 누구지? 견하준인가? 아님 류재희?’
차연호의 의심은 회귀 전, 연기로 전향하는 것에 성공했던 견하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무런 동요가 없던 레브 멤버들. 그중 한 명은 분명히 연기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렵네…….”
중얼거린 차연호가 팔로 눈을 가렸다. 그가 보는 시야는 여전히 붉었다.
* * *
오늘로 확실해졌다. 차연호는 회귀자다.
을 뺏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계산 하에서 이루어진 행동이리라.
이번 연도 대상을 탄 곡은 이번 활동 곡이 아닌 4분기에 나온 곡이었으니, 곡을 가로채면서까지 바꾸는 것에 별 미련이 없었을 것이다.
제 딴에는 그렇게 하면서까지 나를 떠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유감이지만 은 내게 애증의 곡이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곡은 아니었다.
회귀한 게 서예현이었으면 오히려 차연호가 원하던 반응을 고스란히 보여줬겠지.
덕분에 차연호는 제 패만 내게 까 보이게 되었다. 차연호의 회귀는 이제 100%의 확률로 확실해졌으니.
“장고 끝에 악수 뒀네.”
피식 웃으며 느긋하게 중얼거리다가 옆에 있던 김도빈을 향해 물었다.
“이거 무슨 뜻인지 아냐?”
“네, 바둑 용어잖아요. 괜히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패착인 수를 던지는 거.”
이솝우화도 모르던 놈이라 당연히 모를 줄 알았는데, 무려 정답을 말한 김도빈의 대답에 놀란 눈으로 휙 돌아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렸을 때 엄마가 집중력 기르라고 바둑 학원 보냈어요.”
“너도냐……?”
산만한 아이들의 필수 3코스. 바둑 학원, 서예 학원, 주판 학원.
친가에서 도자기 하나 깼다는 이유로 나는 망할 할아버지에게 서예 학원과 바둑 학원 중 택 1을 강요받았고, 잘 다니던 태권도를 그만두고는 강제로 바둑 학원으로 끌려갔다.
“몇 급까지 땄냐? 나는 20급까지 땄는데.”
노잼이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급수는 따야지 그만두게 허락해 준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단기간에 20급까지 딴 후 미련 없이 때려치웠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내 머리가 좋은 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성적을 조져오기 전까지는.
“급이요? 저는 알까기만 주구장창 했는데여.”
김도빈이 멋쩍게 대답했다.
“그래, 그 나이에는 알까기가 제일 재밌지.”
김샌 웃음을 흘린 나는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으며 몸을 일으켰다. 현관으로 향하며 잊지 않고 녀석에게 행선지를 말했다.
“형은 형 크루 형들이랑 약속 있어서 다녀온다.”
“이제 보고 안 하셔도 되는데요…….”
김도빈이 소심하게 대꾸했다.
용철 형 외 2인의 DTB 2차 예선 통과 축하 및 주성 형의 탈장발 기념으로 오랜만에 크루 형들이랑 언더 인맥들이 모였다.
나는 스케줄을 마치고 좀 늦게 합류했다.
“와, 누구세요? 못 알아볼 뻔.”
드디어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다시 스포츠머리로 돌아온 주성이 형을 발견하고 빵 터지자, 사방에서 타박이 날아들었다.
“얌마, 너는 니 여친도 못 알아보냐?”
“성이 윤이드이에게 실연당해가지고 머리 자른 거 아니나.”
술잔을 거칠게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주성 형이 이를 빠득 갈았다.
“씨발, 태훈아. 쌉소리 그만해라.”
“내 말이요. 무슨 디x패치 입 찢어지라 웃으면서 쫓아 올 소리를. 내가 그래도 명색이 아이돌인데.”
투덜거리며 용철이 형 옆에 앉았다.
“얘네 오늘도 커플링 끼고 온 거 아니야?”
“형들이 이럴 줄 알고 안 끼고 옴.”
손바닥을 쫙 펴 반지 하나 없는 깨끗한 두 손을 보여 주며 삐딱하게 웃었다.
“우우, 주성이는 끼고 왔는데! 순정이 부족하다, 이든아!”
“순정은 얼어 죽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술잔을 받아 들었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미없다고 혀를 차던 형들은 금세 또 DTB로 화제를 옮겼다.
“타이밍 쥑인다. 어떻게 DTB 하기 한 달 전에 거물급들 쌍방폭로 디스전이 똭!”
“내 말이. 지금처럼 힙합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냐.”
DTB 시즌 3이 작년 시즌과 달리 주목을 받으며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건 거물급 래퍼들의 폭로 디스전의 역할이 컸다.
불공정 계약과 일방적 손절, 마약 등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고스란히 폭로되며 힙합에 별 관심이 없던 대중들도 이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발단.
“그런데 누구 말이 맞는 거예요? 디스전 들어 보니까 둘 다 말이 다르던데.”
“나도 몰라. 네가 G1에게 물어보고 와라. 너 G1이랑 친하잖아.”
DTB 예선에서 있었던 일을 푸는 형들의 말을 들으며 키득거리고 있던 도중.
“야야, 이든아. 너 혹시 박규혁이랑 그 따까리들 만났냐?”
나를 툭 치며 뱉는 물음에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하도 술 한 번 마시자고 불러 대서 한 번 술자리 나가긴 했는데…….”
그들은 회귀 전, 내가 용철이 형 및 크루 형들과 멀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놈들이었다.
‘야, D.I가 너한테 세미 파이널 무대 피처링 부탁했다며? 그거 D.I가 너 존나게 불쌍해서 동정심에 맡긴 건 아냐?’
‘걔가 우리한테 그랬다니까? 자기도 아이돌 래퍼 무대 세우긴 찝찝하긴 한데 어차피 망돌이라 인기 편승한다는 말은 안 나올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옆에서 박기정이 무대 망하는 거 아니냐고 개쪼개고.’
‘야, 너네 크루 형들, 맨날 너 보고 불쌍한 새끼라고 그래. 아이돌 래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뜨지도 못한 불쌍한 새끼라고.’
그 당시의 나는 오랜 망돌 생활로 지친 데다가 언더를 뛰쳐나온 것에 대한 후회와 자격지심에 가득 차 있었고, 여유라고는 없을 때 들었던 그 말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몇 년을 내리 후회할 멍청한 선택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놈들은 DTB로 뜬 용철 형을 싫어했다. 그래서 용철이 형이랑 친했던 나를 이간질하고 손절 과정을 지켜보며 저들의 저열한 흥미를 채운 거다.
그래서 이번 만남에서는 그렇게 못난 심보로 살지 좀 말라고 시원하게 할 말 다 퍼붓고 돌아왔다.
“내가 그쪽에게 좀 막말하고 연락 끊었지. 왜, 그 인간들이 내 뒷담이라도 깠어?”
“아니, 그 미친 새끼들이 네가 아이돌로 좀 뜨더니 언더힙합 개무시한다고 그 지랄을 하냐.”
시간선은 당겨졌지만 이간질 수법은 그때와 참으로 비슷해서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용철 형이었지만 이제는 타겟이 내가 된 모양이다.
“어쩐지 대화하는데 계속 그런 쪽 답이 나오게 몰아간다 싶더라.”
피식 웃으며 다 들리도록 중얼거리고는 용철 형한테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지. 걔 그럴 새끼 아니라고.”
나는 멍청하게 믿었는데. 멍청하게 그 말을 믿고는 형한테 그깟 동정 필요 없다고, 나를 그딴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냐고 온갖 악다구니는 다 내뱉고는 연락도 다 씹으며 내 쪽에서 먼저 연을 끊었는데.
손바닥으로 시큰거리는 눈을 꾹 눌렀다.
“야, 막내 감동받아서 운다!”
감동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곧바로 들려오는 외침에 고개를 파득 들고 바로 부정했다.
“아, 안 운다고요!”
“뭐? 막내가 운다고?”
“야, 이든이 운단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에 이를 갈자 용철이 형이 얘 안 운다고 훠이훠이 손을 내저었다.
내 얼굴에 물기 하나 없는 걸 확인한 형들의 관심은 곧 다른 곳으로 분산되었다.
용철 형이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 충고를 귀담아들은 건지, 대걸레 같던 머리 스타일은 깔끔하게 커트로 잘려 있었다.
“야, 이든아.”
“왜.”
“만약 내가 본선까지 올라가면 형 무대 피처링 한 번 서 주라.”
초심도 때문에 턱을 괸 채로 술잔을 쥐고 흔들기만 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그 부탁에 술잔을 흔들던 손을 멈칫했다.
“ED.I 듀오 무대 한 번은 해 봐야지.”
용철 형이 나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런 형을 향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형 무대를 망치면 어떡하려고. 본선이잖아. 아이돌 래퍼 무대에 세웠다고 형이 조롱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고, 인마! 형 아직 예선 통과만 겨우 했어!”
진저리친 용철이 형이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내리쳤다. 얼얼한 등에 몸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지. 형은 진짜 결승까지 갈 거니까.”
“하, 짜식. 낯간지럽게…….”
아니, 딱히 응원이 아니라 그냥 미래 스포였는데 저 형은 왜 저런 뿌듯한 웃음을 짓고 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