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5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55화(15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55화
상품으로 타 온 한우 세트 덕분에 오랜만에 숙소에서 한우 파티가 열렸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물론 서예현은 몇 점 집어 먹고는 그 이후론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형, 더 안 드세요?”
“으응, 나는 배불러서…….”
“엥, 예현이 형 고기 세 점밖에 안 드셨잖아요.”
“지금 6시 10분이야.”
하지만 한우를 못 받게 만들 뻔했던 일등공신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딱히 더 먹으라고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서예현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답지 않게 어두운 얼굴로 고기를 깨짝거리고 있는 류재희였다.
고기도 자꾸 태우는 바람에 김도빈이 집게를 빼앗아 제가 구울 정도였다.
“막내, 무슨 일 있냐?”
내 물음에 류재희가 애써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이 아주 죽상이구먼. 말없이 류재희의 쪽으로 고기만 더 밀어 주던 와중, 류재희의 폰이 진동했다.
전화 수신이 뜬 화면에는 [엄마]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베란다와 제 방을 번갈아 보던 류재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제 방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왜 대체……!
방문 너머로 흐릿하게 들리는, 무어라 소리치는 류재희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리모컨을 들어 티비 볼륨을 높였다.
“방음 진짜 더럽게 안 되네. 그나마 좋은 곳 골랐나 싶었는데, 역시 대표님 안목은 믿을 게 안 돼. 그렇지?”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류재희 대신 열심히 고기를 굽던 김도빈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은가? 그러고 보니까 동생들 이야기 한 번씩 하는 거 말고는 재희 가족 이야기를 거의 못 들어 본 거 같네.”
“괜히 남의 집안 사정 궁금해하지 말고 고기나 뒤집어. 고기 타잖아, 인마.”
내 타박에 김도빈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짐도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소리도 있잖아요. 저는 솔직히 힘들 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 주는 게 더 고마울 것 같은데여.”
“네가 류재희냐? 네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마. 방금 별일 아니라고 대답한 거 못 들었냐? 그리고 가족 이야기는 나도 너한테 안 했어.”
“그거야 형과 제 사이는 재희랑 제 사이랑 같지 않잖아요. 형은 하준이 형한테 가족 이야기 안 하셨어요?”
김도빈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에, 나를 힐긋 돌아본 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든이 집 강아지 이름이 포도라는 것까지 알아.”
“언제는 바둑이라며.”
끼어든 서예현에게 정확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걔는 나 어릴 적에 무지개다리 건넌 첫째. 포도는 지금 키우는 둘째.”
“헐! 형, 본가에서 강아지 키워요?”
“엉, 우리 포도 사진 보여 줄까?”
실실 웃으며 휴대폰에 엄마가 보내 준 포도의 최근 사진을 띄웠다.
귀엽다고 입을 틀어막으며 훌륭한 리액션을 보여 주는 김도빈을 뿌듯한 눈으로 보고 있자 서예현이 주춤거리다가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결국 내게 물었다.
“야……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포메라니안이라 포도냐……?”
“엌, 그거 생각난다. 강아지 이름 초코나 포도로 짓는 건 사람 이름을 청산가리로 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김도빈이 집게를 딸깍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어머니가 지은 이름인데, 왜?”
눈썹을 치키며 묻자 서예현과 김도빈이 빠른 태세 전환을 시도했다.
“아니, 강아지랑 엄청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다시 보니까 동글동글한 게 딱 포도알 같다.”
“사람 이름이 김청산가리여도 특색 있고 멋있는 이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로 샌 거예여?”
벌컥, 방문이 열리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눈가가 붉어진 채로 다시 거실로 나온 류재희에게 모른 척 고기를 밀어 주었다.
“막내야, 고민 있으면 말하고.”
조심스럽게 건넨 서예현 나름의 위로에 류재희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다.
“별일 아니에요, 진짜. 제가 괜히 분위기만 가라앉혔네요. 도빈이 형, 집게 패스! 내가 구울게.”
이 중 누구도 류재희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막내가 원하는 대로 모른 척해 줄 뿐.
* * *
“그러고 보니까 우리도 막방 날에 역조공 한 번 해야지. 소속사에서 지원해 줘 봤자, 저번처럼 절반도 지원 안 해 주실 것 같은데 우리가 대부분 낸다고 생각하자.”
음방 2주 차, 웬일로 서예현이 먼저 역조공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정산일은 멀었지만 모아 놓은 돈은 충분했으므로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
딱 한 명 빼고.
평소였으면 제가 더 나서서 추진했을 류재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회귀 전에 있었던 일 덕분에 류재희가 왜 저러는지 대충 알고 있는 터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이번엔 내가 다 낼 테니까.”
나를 돌아보는 류재희의 눈동자가 커졌다. 눈이 마주치자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류재희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회귀 전과 비교하여 바뀐 건 많았지만, 변하지 않은 것 역시 많았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은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유였다.
남의 가족 사정을 내가 어떻게 건드리겠나.
“엥? 형 혼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도 낼 수 있어요.”
김도빈이 나를 만류했다.
“그래, 이든아. 우리 팬들을 위한 역조공인데 왜 혼자 감당하려고 그래. 다 같이 내야지.”
“소속사에서 지원금 받고 나머지 금액 N빵 해, 그냥.”
견하준과 서예현 역시 나를 말렸다. 멤버들이 나를 만류하는 말을 한마디씩 할 때마다 무릎에 올려진 류재희의 손이 움찔거리는 게 훤히 보였다.
“사랑하는 우리 멤버들 덕분에 통장에 들어오는 저작권료가 얼마나 빵빵한 줄 아냐? 내가 내는 돈에 우리 멤버들 몫도 다아 포함되어 있으니까 부담 가지지 마.”
휘휘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물론 이건 특수 상황인 이번 한 번만 발휘되는 일회성 마인드다. 이걸 핑계 삼아 지속적으로 내 돈을 뜯어 가려 한다면 곤란하다.
그러니 아까 이번에는이라고 못 박아 뒀지.
“이든이 형……! 역시 갓리더……! 형은 정석적인 리더예요! 이제 인정할게여!”
“언제부터 리더의 정석에 돈이 들어갔냐?”
입을 틀어막은 김도빈이 감동 어린 눈을 한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류재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확인한 서예현이 농담조로 키득거렸다.
“오, 그러면 우리한테도 저작권료 지분 주냐?”
“형, 선 넘네? 댁이 내 뮤즈야? 어? 작업에 제일 기여도 높은 준이도 요구하는 게 없는데.”
분위기 풀기 용의, 진심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그 말에 나 역시 장난식으로 맞받아쳤다.
“달라고 하면 줘?”
견하준의 진지한 물음에 멈칫했지만 말이다.
주는 게 맞는 건가……? 만약 지분을 떼 줘야 한다면 몇 퍼센트를 줘야지 적당한 거지?
머리를 굴리고 있자, 픽 웃은 견하준이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시발, 준아. 연기 실력 그렇게 써먹지 말아 줄래.
분위기는 순탄하게 내가 회사 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전부 부담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늦은 시간인 터라 다들 방으로 자러 들어가고, 나는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의미 없이 휙휙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류재희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떡하니 소파에 자리를 잡은 채로 앉아 있었다.
혼자만의 사색을 좀 즐기려고 했더니 제일 신경 쓰이는 놈이 버티고 있을 줄이야.
먼저 입을 연 건 류재희였다.
“형, 혹시 제 상황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예전에는 동글동글하더니만 이제는 제법 선이 짙어져 매서워진 눈매를 마주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네가 말 안 하면 나야 모르지.”
이게 좀 컸다고 형한테 눈을 부라려. 리모컨을 던져 놓고 손을 뻗어 정수리를 꽉꽉 누르자 류재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눈을 순하게 떴다.
멈춘 채널에서는 심야 영화가 한창 방영 중이었다. 느와르 장르의 한국 영화였다. 의미 없는 모자이크된 채로 나오는 담배와 담배 연기를 보고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담배를 왜 피우는지 알 것 같아요.”
류재희의 뜬금없는 그 말에 아프지 않게 머리를 쥐어박으며 투덜거렸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피울 생각도 하지 마, 인마. 한 번 피우면 끊기 얼마나 힘든데.”
“형도 피워 봤어요?”
하루에 반 갑씩도 펴 대던 골초였지. 지금은 사라진 시간선에서. 그리고 겨우 끊었고.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을 부러 회피하자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류재희가 피식 웃었다.
망할 뉴트리아 자식, 네가 금연껌 씹다가 턱 나갈 뻔한 헤비 스모커의 고충을 알아?
“가족이란 게 뭘까요.”
류재희가 베란다 창문으로 비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왜, 무슨 일 있냐?”
“신용카드 빚을 제가 갚으래요. 저 믿고 긁었다고. 이래서 성공하고 싶었는데도 성공하기 싫었어요. 엄마 아빠 씀씀이만 커질 거 알아서. 그런데 또 내가 성공 못하면 우리 집은…….”
류재희가 말끝을 흐리며 푹,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그만한 돈이 당장 없었으면 대체 어쩌려 했냐고 물어보니까 사채 쓰려 했대요. 하, 그 사채빚 갚는 것도 다 제 몫이겠죠. 동생들은 아직 중학생이니까.”
그나마 지금은 레브가 떠서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카드 빚을 내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회귀 전 류재희는 부모님의 사채 빚을 갚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 돈이 없어요. 다 빚 갚는데 써서. 당연히 팬분들께 역조공해야 하는데, 돈 보태는 게 맞는데…… 그런데 형이 다 낸다고 했을 때 안도해 버려서…….”
눈가가 붉어진 류재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죄송할 게 뭐 있냐. 어차피 그 노래 불러서 세상에 나오게 한 건 넌데. 내가 빈말한 줄 알아?”
정확히는 류재희 및 4인이지만.
“그리고, 막내야. 끊어 내는 것도 용기다.”
저를 옭아맨 족쇄를 너무 늦게 끊어 낸 과거의 류재희의 그 고난과 후회를 고스란히 보고 온 이 형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였다.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린 류재희가 몸을 일으켰다.
“자게?”
“네, 수면제라도 먹고 자려고요. 내일 스케줄 있으니까 형도 잠 안 오시면 한 알 먹고 주무시는 건 어때요?”
김도빈이 잠이 안 온다고 징징거려 처방받아 온 수면제는 이렇게 한 번씩 나를 제외한 멤버들에게 쓸모를 증명하고는 했다.
참고로 김도빈의 불면증은 불면증이 아니라 밤에 휴대폰 하느라 수면 패턴이 바뀐 것이었다.
“아니, 나는 딱히…….”
“형 눈에 졸음기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괜히 밤새우지 마시고요.”
수면제를 한 알 털어 넣은 류재희가 내게 휙, 수면제 통을 던졌다.
정말 잠이 안 오는 건 사실이었기에 껄끄러운 눈으로 수면제 통을 노려보다가 한 번 먹어 보기라도 할까 싶어 뚜껑을 열었다.
수면제 통을 잘못 기울여 손바닥에 약이 와르르 쏟아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시 약을 하나를 제외하고는 약통에 집어넣고 류재희에게 물컵을 건네받아 목구멍 너머로 수면제를 넘긴 순간.
그대로 토해 냈다.